§ 나는 될놈이다 1103화
당황한 태현의 목소리를 상대 직원은 다른 뜻으로 이해한 것 같았다.
김태현이 감동했나 봐!
-김태현 선수. 괜찮습니다.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갖고 있지 않습니다만?”
-바로 그겁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주십시오.
“아니 애초에 제가 받지도 않은….”
-그렇게 저희의 진심만 기억해 주시면 됩니다.
“…….”
태현은 케인을 보며 대화하는 기분을 느꼈다.
‘뭐지? LK가 케인한테 뭘 원하지? 1부 팀에 스카웃하려 하나? 아니. 얘네는 게임단이 1부도 아닐 텐데?’
“아 예… 알겠습니다.”
태현은 전화를 끊고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대체 LK가 뭘 잘못 먹고 이러는 걸까?
“케인 선수 스카웃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
“2부 리그인데?”
“2부로 스카웃할 수도 있긴 하죠… 보통 그런 선수가 없겠지만.”
“사람을 뭘로 보고?!”
1부 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2부 리그로 스카웃하는 또라이가 어디 있어!?
“태현 님. 혹시 태현 님에게 부탁하려고 이러는 거 아닐까요?”
“?”
“그, 저번에 <토론토 메이플베어즈>가 태현 님한테 코칭 받고 미친 듯이 날뛰고 있잖아요.”
“아. 요즘 그렇게 잘하고 있어?”
경기 한두 번 본 다음부터는 2부 리그 경기는 안 보고 있던 태현이었다.
1부 리그 다 챙겨보기도 힘든데 2부 리그까지 어떻게 챙겨보겠는가.
“네. 기세가 대단해요. 아무래도 입장에서는 부럽고 배가 아플 수밖에 없을 거고, 그래서….”
“나한테 선물을 보냈다고?”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면 김태현한테 보내야 하지 않아? 헉. 설마….”
“네. 바로 그거에요.”
이다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도 눈치를 챘구나!
“…나한테 코칭을 맡기려고? 이, 이런. 뭘 가르쳐줘야 하지?”
“…….”
“와… 저런 뻔뻔한 놈….”
“양심이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일행 모두 경악!
케인은 당황했다.
“아, 아니. 그거 말고 뭐가 있는데?”
“당연히 널 꼬드기면 태현이도 1+1로 오니까 하는 거겠지 인마! 네가 코칭하러 가서 말아먹으면 태현이도 불쌍해서 도와줄 테니까!”
“!”
그, 그런 치사한 수법이…!
하지만 매우 그럴듯한 수법이었다.
“가서 내가 말아먹더라도 김태현이 안 도와주면 되지 않냐?”
“음… 케인. 네 안티팬을 굳이 더 늘려야 할까?”
LK 갤럭시 코칭했는데 성적이 더 내려가면….
LK 갤럭시 팬들이 다 케인을 욕하겠군!
“…임시 코치는 포기하겠습니다!”
케인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선물도 돌려줘야 하나?”
“아니. 선물은 그쪽에서 줬는데 받아야지. 그냥 써.”
말하던 태현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요청 온 자선행사, LK 쪽에서 진행하는 거 아니었나?”
“그랬을걸?”
‘…그걸로 설득하는 게 낫지 않나?’
LK 전자에서 주최하는, 판온 선수들로 구성된 자선행사!
좋은 일 하는 거였으니, 주최 측에서 ‘김태현 선수. 이렇게 오신 김에 저희 선수들한테 조금 팁이라도 주실 수 있으신가요?’ 하면 태현도 선선히 ‘뭐 그 정도야 해줄 수 있지요’ 했을 것이다.
그런 좋은 의도의 행사는 내버려 두고 뭔 저런 스토커 같은 짓을 하고 있지?
“어. 잠깐. 이다비. 까먹을 뻔했네. 자선행사 같이 나가자니까?”
“아차…!”
이다비는 아차 싶었다.
잘 넘어갔다 싶었는데 케인 때문에 다시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나가기 싫어?”
“그런 건 아닌데요….”
좋은 행사고 태현과 같이 나가는 거니, 자선행사가 아니라 판온 계정 삭제 행사여도 같이 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자격지심!
옆에 있던 정수혁과 최상윤이 손짓발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나가십쇼!
-나가! 기회를 놓치지 마!
유지수도 판온에서 이다비에게 냉정하게 말을 했었다.
-나가야지요! 전설 퀘스트 나와도 그럴 거예요?
-아니. 전설 퀘스트는 아닌데요….
-전설 퀘스트죠. 이게 전설 퀘스트가 아니면 뭔데요?
게임으로 비교하니 이해가 확 된다!
-언니. 안 나가면 어떻게 일이 흘러갈지 제가 정확하게 예상해드릴게요.
-어… 어떻게 되죠?
-선배가 혼자 가면 당연히 누군가 옆에 붙일 거예요. 2인 1조니까 주최 측에서 제안하지 않더라도 누구든 간에 옆에 서려고 하겠죠.
-…!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 달에는 결혼하고 그 다다음 달에는 1남 1녀를 낳아서 행복하게 살겠죠.
-? …너무 많이 건너뛴 것 같…?
-건너뛴 게 아니에요. 요즘은 다들 빨리 결혼하잖아요. 게다가 선배 정도면 상대가 더욱더 그러지 않겠어요?
-듣, 듣고 보니….
이다비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 축에 들어가는 태현이었다.
상대방이 그 정도 속도로 내달려도 이상할 것 없어 보였다.
-하지만 팬들이 싫어하면….
-걱정 마세요.
-팬들이 안 싫어할까?
-그건 모르겠고. 싫어하는 사람은 제가 유성 법무팀 불러서 처리할게요. 다 없애버리면 되죠.
-…그,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음. 그렇게 싫으면 그냥 나 혼자 나가지 뭐. 혼자 가도 상관없으니까….”
최상윤은 움찔했다.
정수혁도 움찔했다.
케인은 아무 생각 없었다.
“나갈게요!”
“어? 정말 괜찮아? 싫으면 억지로 나갈 필요 없는데.”
“방송이 긴장되어서 그랬던 거였어요!”
“그래? 내가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도와줄게.”
이다비는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음. 긴장되는군.”
태현은 키메라 죄수들을 불러 모았다.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하는 것보다는 보여주는 게 낫겠지?
-이런 곳에 감옥이 있었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황제 폐하께서도 너무 심하시군!
죄수들은 추운 3층 지하 감옥에 분노했다.
귀한 사람들을 여기 모아 놓다니!
게다가 타락한 엘프 부족, 아르드 부족 같은 잡놈들까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저놈들이 감히 어디를….
-오기 전에 쓸어버리겠다!
그러나 죄수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주교 펠마른이 나서서 신성 마법을 난사해대자, 아르드 부족은 기겁해서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주교 펠마른이 <위대한 분노의 장막>을 사용합니다!]
[주교 펠마른이 <아키서스의 신성 화살>을 사용합니다!]
[주교 펠마른이 <아키서스의 신성한 창>을 사용합니다!]
[주교 펠마른이…]
[……]
보통 신성 마법은 여러 부가효과가 있는 대신 공격력 자체는 좀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펠마른의 위력은 살벌했다.
유령 계열의 언데드 몬스터는 물리 공격력이 줄어드는 대신 마법 공격력이 늘어나게 마련!
거기에 생전에 갖고 있던 능력까지 합쳐지니, 마법의 폭풍이 주변을 뒤덮었다.
[아르드 상급 마법사가 마법을 실패하고 피를 흘립니다!]
[아르드 상급 마법사가 마법을 실패하고 리바운드…]
[……]
[……]
콰콰콰쾅!
‘세상에!’
태현은 옆에서 깜짝 놀라서 구경했다.
이, 이게 주교인가?
혼자서 이런 능력을 보여주다니…!
-하찮은 재주를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교황님. 이 정도는 교황님도 할 수 있으실 텐데.
“아, 아니. 못 하는데.”
-하하. 겸손하시기도 하십니다.
“…….”
진짜 못해 인마!
태현은 주교와 달리 마법 위주로 캐릭을 키운 사람이 아닌 데다가, 신성 마법도 저렇게 많이 알지 못했다.
저건 신성 마법 위주로 익힌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
-아니! 주교님! 살아계셨습니까!
-정확히는 살아 있지는 않네만. 어쨌든 그렇게 됐네.
키메라 죄수들 중 주교를 알아본 죄수들이 매우 반가워했다.
“자. 이렇게 부른 이유는…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다.”
-?
-앗. 황자님을 찾으신 거군요!
찾긴 했지!
시체지만!
-황자님은 어디 계십니까! 뵙게 해주십시오!
-드디어 제국의 이름이 부활하는 날이 온 건가!!
키메라 죄수들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목소리에서 신이 난 게 느껴질 정도!
-우리의 외침이 부족해서 황자님께서 나오지 않으시는 게 분명해!
-아앗. 그렇군. 다 같이 입을 모아 부르자!
-황자님! 저희가 모시러 왔습니다!
-황자님! 저희와 같이 제국의 이름을 이어주십시오!
-황자님! 황자님!
“…미안하다. 황자님 돌아가셨다.”
-??????
* * *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태현은 최악의 상황도 대기하고 있었다.
죄수들이 미쳐 날뛰면 제압해서라도 빠져나가겠다!
[고대 제국의 죄수들이 매우 실망합니다!]
그러나 죄수들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엉엉엉! 황자님! 이렇게 보내게 될 줄이야…!
-저희가 어떻게든 키메라로 만들어드렸어야 했는데! 생각해 보니 키메라도 안 되셨는데 그렇게 오래 살 리가 없잖아!
-으흑흑! 흑흑!
눈물바다가 되어버린 감옥 앞!
태현은 일행을 슬쩍 쳐다보았다.
‘음. 이 틈에 그냥 빠져나갈까?’
죄수들이 태현에게 별 관심 안 보일 때 빠져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교도 만났고, 권능 정보도 얻었고, 드래곤 석판도 얻었으니 여기까지 온 목적은 다 이룬 것이다.
죄수들은 덤!
아니, 덤도 아니었다. 덤보다는 혹에 가까워 보였다.
“흠흠. 그러면 우리는 이만….”
태현은 슬금슬금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키메라 죄수들은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뭐. 사람은 죽으니까.
-황자님도 죽을 수 있는 법이지.
-황자님께서도 편하게 죽으셨을 거야. 암. 명복을 빌어드리자고.
“…….”
그냥 떠나려던 태현은 후회했다.
더 빨리 떠났어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태현의 눈앞에 퀘스트창 하나가 떠올랐다.
<누가 고대 제국을 부활시킬 것인가?-고대 제국 부활 퀘스트>
고대 제국의 마지막 적통이 사라진 지금, 고대 제국을 부활시키려는 미친 키메라 죄수들은 그나마 거기에 가까운 영웅을 찾아 부활시키려고 한다.
현재 대륙에서 영웅으로 꼽히는 모험가들, 작위를 가진 모험가들, 명성 높은 모험가들 등이 대상이 될 것이다.
당신도 운 좋게 이들 중 포함되었다! 공적치 포인트를 쌓아 이들의 선택을 받으라!
보상: 고대 제국 죄수들의 선택.
퀘스트 등급: 전설.
아직 드래곤 석판 퀘스트도 못 깼는데 또 뜨는 전설 퀘스트!
게다가 이건 태현한테만 뜬 퀘스트가 아니었다.
지금 대륙에 있는 랭커들이나 영주들에게 전부 다 뜬 퀘스트였다.
한마디로 황제 없으니까 황제에 어울리는 사람을 뽑아서 황제로 만들어주겠다!
‘정말 민폐 그 자체군!’
물론 고대 제국 황제라는 타이틀은 매우 매우 탐나는 것이었지만….
거기에 어울리는 게 있어야 그것도 의미가 있는 거지, 지금 고대 제국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존재하지도 않는 제국을 줘봤자 어그로만 잔뜩 끌지 별 이득이….
-교황님. 섭섭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객관적으로 황제가 될 인재를 평가하겠지만, 아무래도 교황님을 높게 평가하니 말입니다.
-교황님은 저희 사이에서 점수가 매우 높습니다.
키메라 죄수들은 눈을 찡긋찡긋거리며 태현에게 말했다.
매우 불쾌한 제스처!
[현재 <누가 고대 제국을 부활시킬 것인가?> 퀘스트에서 공적치 포인트가 1등입니다!]
[이대로 퀘스트를 진행하십시오!]
“와… 정말 신나는군. 그런데 이건 어떻게 공적치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건가?”
태현은 테스트 방법을 물었다.
무조건 평가 기준이랑 반대로 가야겠다!
-으음. 일단 이름난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여러모로 테스트를 해볼 겁니다. 명성, 악명, 전투 능력, 외모, 생식 능력, 인성, 통치술 등등….
-1차로 걸러내는 테스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테스트에서 일단 높은 점수를 받아야겠죠. 아. 교황님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교황님은 이미 검증된 분이시니까요!
“와….”
검증되었다니 너무 행복한데?
-교황님. 대륙에 이름난 모험가들이 혹시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이들을 찾아가서 테스트해야 할 것 같은데.
“!”
태현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지! 지도 꺼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