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93화
“쑤닝 님! 정신 차리십시오!”
“저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몇몇 간부들은 솔깃했지만, 아직 정신줄을 놓지 않은 간부들도 있었다.
아무리 돈이 좋고 이익이 좋아도 그렇지 자존심이 있는 것이다.
김태현과 짜고 친다니!
그것도 심지어 이기는 게 아니라 지는 역할로!
“이제까지 김태현 놈에게 당한 걸 생각해 보십시오. 자다가도 벌떡 일어서지 않으십니까!”
“언젠가 강해져서 김태현 놈한테 복수를 하기로 하셨잖습니까!”
쑤닝과 친한 간부들은 예전에 쑤닝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쑤닝이 ‘으흑흑! 김태현 개자식! 두고 보자! 내가 대륙만 지배하면 넌 사형이야 사형!’ 하고 외치던 진실된 모습!
그리고 이런 감정적인 이유를 빼더라도 짜고 지는 건 좀 너무 위험해 보였다.
나중에 들키기라도 하면 진짜 길드 망신 아닌가!
단기간에 투자금 좀 땡기겠다고 길드 이미지를 깎는 짓일 수도 있다!
“아니 투자를 해주신다잖아!”
“그렇게 체면 따지고 자존심 따지면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냐?”
그러나 간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자존심은 자존심, 돈은 돈!
투자를 받는데 이것저것 따지는 건 배부른 소리였다.
김태현이랑 <우리 결혼했어요>를 찍으라고 해도 고민해야 할 마당에!
간부들은 둘로 나뉘어서 다퉜다. 말싸움이 심해지자 직원은 헛기침을 했다.
“흠흠. 싸움은 나중에 하시고… 저는 의견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진지하게 고민해 주십시오.”
“아니. 일단 김태현한테 수입 나눠준다고 협조가 된다는 것부터가 좀….”
“돈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직원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지는 것도 길드 동맹이고 돈도 받는데 왜 싫어하지?
“김태현은 좀 다르다고!”
“그러십니까? 그건 잘 모르겠고… 어쨌든 잘 생각해 보고 결정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지금 영지전을 하고 있는 건 길드 동맹뿐만이 아니니 말입니다.”
직원의 말에 간부들은 아픈 표정을 지었다.
원래 대규모 영지전을 벌이고 있던 곳은 길드 동맹과 미다스뿐이었다.
그들만 꿀을 빨고 있었는데….
다른 길드 놈들도 그들만 꿀을 빨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발 빠르게 사방에서 영지를 구해서 끼어들기 시작했다.
대형 길드들이 마음을 먹으니 그 행동력은 무서웠다. 놈들은 정말 별의별 방법으로 영지를 구하고 있었다.
제일 기막혔던 건 <우드스탁> 놈들!
대체 뭔 짓을 했는지 김태현한테 영지를 구입한 것이다!
덕분에 이제 영지전은 길드 동맹만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길드들도 각자 영지전을 시작하고 있었으니까.
경쟁에서 이기려면 더 화려하고 더 강렬한 걸 보여줘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김태현을 공격하는 건 좀 오바였지만 다른 방법이라도!
* * *
“찾았다. 끌려가고 있군.”
저 멀리서 특이한 생김새의 파티가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치….
[아키서스의 노예 같은 생김새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래. 케인처럼 생겼… 아니.’
무심코 카르바노그의 생각을 따라가던 태현은 멈칫했다.
‘케인 말고 영지에 있는 아키서스의 키메라들 생각한 건데.’
[아. 그러고 보니 걔네들도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확실히 걔네들도 키메라는 키메라지!
‘왜 굳이 케인을….’
케인이 불쌍한 것과 별개로, 지금 발견한 상대들은 매우 특이한 종족이었다.
키메라 종족은 판온에서 보기 정말 드문 종족!
자연적으로 발생할 일이 없는 종족인 만큼 매우 희귀한 종족들이었다.
“저거 케인처럼 생기지 않았냐?”
“뭐? 뭐 이 자식아? 팔 여러 개 달리면 무조건 나 같냐?!”
“어… 응.”
“…….”
발끈했던 케인은 앨콧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판온 플레이어 중 팔 여러 개 달린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됐고. 일단 쟤네들은 내버려 둔다. 놈들이 숨겼을지도 모르니 수색부터 들어가야지.”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파악해둬야 하지 않나?”
“흠. 맞는 말이야. 앨콧. 부탁한다.”
“…….”
아 젠장!
내가 왜 괜히 쓸데없이 말을 해가지고…!
앨콧은 후회했지만 이미 꺼낸 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쿨하고 멋지게 받아들일 뿐.
“알겠다. 나만 믿어라.”
“오오… 앨콧…!”
케인은 살짝 감탄했다. 방금 있었던 대화에서 있었던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앨콧 녀석 자신만만한데?’
‘아. 저놈 끌고 갔어야 했는데.’
이다비는 무언가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뭐가요?”
“평소라면 케인 씨가 눈치 없이 말 꺼냈다가 했을 역할을, 지금은 앨콧이 먼저 해버린 거죠. 덕분에 케인 씨가 피해를 안 보고 있어요.”
“아하…!”
* * *
앨콧이 벌벌 떨면서 고대 제국 죄수들을 쫓아가고 있는 사이, 태현은 <신의 예지>를 켰다.
‘으음. 길이 세 갈래군.’
신의 예지 스킬은 세 가지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는 고대 제국 죄수들이 간 길.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한테 속지 말라고 말합니다!]
‘카르바노그. 내가 아키서스의 화신인데….’
이미 속고 말고 할 거 없이 너무 멀리 온 사이!
그건 전직하기 전에 말해줬어야지!
‘아마 고대 제국 괴수들과 관련된 퀘스트를 깨라는 거겠지. 운이 좋으면 아키서스 관련 신전도 발견할 수 있겠고….’
저번에도 생각한 거지만 고대 제국 도시를 발견하면 아키서스 신전, 아키서스 유물을 발견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아마 이 길은 그런 퀘스트를 염두에 두고 보여진 것이리라.
…물론 난이도는 더럽게 어려울 것 같다!
‘난이도 배려까지는 안 해줬겠지.’
다음 하나는 알기 쉬웠다. 왔던 방향으로 직선으로 쭉 나 있었다.
프로즈란드를 빨리 튀어라!
[가장 현명한 조언일지도 모른다고 카르바노그가…]
‘나도 1초 정도 그 생각을 하긴 했지.’
남은 한 가지 길은 전혀 모르는 방향으로 나 있었다.
아마 이 길이 태현이 찾는 길이리라.
<신의 예지>는 아키서스의 능력으로 길을 보여주는 아주 강력한 스킬이었지만 언제나 확실한 스킬은 아니었다.
보는 사람이 그 뜻을 잘 이해해야 한다!
휘이이잉-
“이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 뭔가 있으니까 스킬이 떴을 거야. 샅샅이 뒤져봐.”
태현 일행은 새로 맞춘 장비 덕분에 추위 페널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었다면 조금 수색하다가 쓰러졌을 정도의 추위!
[사방에서 눈보라가…]
[사나운 폭풍이…]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
“동굴이다! 동굴을 찾았어!”
최상윤이 저 멀리서 외쳤다. 일행은 우르르 달려갔다. 과연 사람 여럿이 안에서 머물 정도의 동굴이었다. 입구가 가려져 있던 탓에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자식들이 얕은 수작을….”
“약탈자로 뛰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그, 그렇지. 기본이지.”
케인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 모습에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 이런 기본도 안 지키고 살았나…?’
대체 약탈자 플레이를 어떻게 한 거야?
“안에 없는데?”
“다른 곳에 숨겨놨겠지.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데.”
태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멀리 가서 숨기지는 않았을 테고, 이 근처 어딘가에 숨겨놓았을 것이다.
<신의 예지>도 여기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있었으니….
“야. 이거 좀 골치 아프겠는데.”
최상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갖고 있던 추적 스킬을 썼는데, 전부 다 [눈보라로 인해 흔적이 가려졌습니다]하고 실패한 것이다.
이 프로즈란드는 무언가를 숨기기 딱 좋은 땅이었다.
사방이 눈과 얼음으로 가득하니, 적당히 파서 숨기면 그 뒤로는 싹 사라지는 것이다.
“전부 다 갈아 엎어봐야 하나?”
동굴 안부터 근처까지 다 땅을 파야 한다면….
일행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한 사람에게 쏠렸다.
“어? 왜?”
“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믿음직스럽다는 눈빛!
다른 상황에서는 절대 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케인이어도 이 근처 다 파는 건 무리지. 음… 다 비켜봐. 스킬로 찾아봐야겠다.”
“괜찮겠어요?”
“그냥 케인 시켜서 파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잠깐. 방금 그런 뜻으로 나 쳐다본 거였냐?!”
일행이 물러나자 태현은 스킬을 사용했다.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이 소환됩니다!]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
토템에 신성한 기도를 바칩니다. 토템이 당신의 기도에 반응해 아이템을 내려줄 것입니다.
예전에 얻은 권능 스킬,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
주변의 아이템을 랜덤으로 하나 뽑아오는 강력한 스킬이긴 했지만 의외로 쓰기 어려운 스킬이었다.
원하는 걸 뽑기가 너무 힘든 것이다.
고렙쯤 되면 가방에 온갖 잡템에, 포션에, 주문서에 수백 개가 넘는 아이템을 넣고 다니는 것!
거기에 근처에 여러 명 있으면 또 그만큼 개수가 늘어나니….
‘아무리 생각해도 진지한 스킬보다는 <파워 워리어> 같은 애들이 좋아하는 특이한 스킬에 가깝단 말이지.’
하지만 어떤 쓰레기 스킬이든 간에 쓸 방법은 있게 마련.
지금처럼 주변 플레이어들 다 치우고 아이템 하나 없는 공간에서는….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에 기도를 바칩니다!]
[토템이 기도에 반응합니다!]
[아이템을 내려줍니다!]
[<고대 제국 감옥 요새의 열쇠>를 얻었습니다!]
[<고대 제국 감옥 요새 간수장의 검>을 얻었습니다.]
‘아니 뭔?’
[여기 근처에서 사람 죽었냐며 카르바노그가 섬뜩해합니다.]
‘…뭐 어딘가 묻혀 있던 걸 얻었으니 손해는 아니겠지.’
게다가 고대 제국 감옥 요새라니.
태현이 찾고 있던 게 맞긴 했다. 카르바노그가 말했던 것처럼 이 근처에 있는 게 분명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고대 언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읽지 못합니다.]
[감정 스킬이 부족해…]
‘찾았다!’
쓸데없는 아이템 몇 개가 들어오긴 했지만 다행히 MP가 다 떨어지기 전에 찾고 있던 아이템이 들어왔다.
태현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정체를 확실하게 만들어줬다.
드래곤의 석판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카르바노그가 드래곤의 묘비라고 확인해 줍니다!]
‘다행히 한숨 돌렸군.’
만약 찾지 못했다면 퀘스트가 길어지고 꼬일 뻔했다.
일단 아이템을 찾은 것만으로 퀘스트의 1차 조건은 해결된 셈!
이제 이걸 드래곤한테 돌려주고 나서 잘 설득해야 했다.
[…꼭 우리가 해야 하냐며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냥 다른 사람 시키면 안 될까?
태현도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 말고 드래곤 상대로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걸.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전설 퀘스트를 위험하다고 남 주는 건 플레이어가 아니다!
못 먹어도 자기가 해야 하는 거지 이걸 위험하다고 남 줄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최소한 <용의 파멸>이나 <용의 비늘과 가죽으로 만든 황제의 셔츠>은 고이 숨겨놓고 만나러 가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고마워. 카르바노그. 기억해둘게.’
둘 다 들고만 있어도 드래곤을 도발할 수 있는 마법의 장비!
참으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그러는 사이 앨콧에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추위를 뚫고 미행에 성공한 앨콧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김태현. 놈들이 요새로 들어갔어! 여기 요새가 있어! 지도 보낼게!
이런 곳에 요새가 있다니!
판온 플레이어 아무도 못 했을 대발견이었다.
-아. 그럴 거 같더라.
-…응? 그럴 거 같다니? 알고 있었….
-그리고 나도 석판 찾았다.
-…뭐? 벌, 벌써??
귓속말을 보내던 앨콧은 깜짝 놀랐다.
대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