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92화
앨콧은 정말 오랜만에 순수히 감탄했다.
정말….
정말 이 상황에서 저런 냉정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니!
생각해 보니 김태현이 맞았다.
‘맞는 말이야. 그 세 놈을 뭐하러 구해줘?’
그놈들 때문에 지금 대륙에서 한 고생을 생각하면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드래곤의 보물 때문에 이렇게 오냐오냐 해주고 있는 거였지, 아니었다면 벌써 몇 번을 죽였을 것!
드래곤의 보물만 찾을 수 있다면 굳이 괜한 고생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놈들을 구해주느라 괜한 고생을 하는 것보다는 그냥 드래곤의 보물만 찾는 게 훨씬 속이 시원하다!
세 놈에 대한 분노로 머리가 꽉 찬 앨콧은 바로 감탄했지만, 케인은 걱정했다.
“이 주변에서 그런 거 찾는 게 가능해? 계속 눈 내려서 발자국 같은 흔적을 추적 스킬로 찾는다고 하더라도 페널티 심하게 붙을 거고, 설령 놈들이 머무르던 거처를 찾는다고 해도 아이템이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게다가 놈들이 안 숨겼을 수도 있고.”
“!!”
앨콧은 깜짝 놀랐다.
케인의 말이 매우 논리적이었던 것이다.
‘내… 내가 케인 놈이 하는 생각도 못 했다고…?’
자괴감 폭발!
다른 일행들도 케인의 논리적인 지적에 감탄하고 있었다.
…<국제강도연합>의 길드원들만 빼고!
“네이놈 케인! 어디서 김태현 님 말에 토를 다느냐!”
“아주 배가 불러가지고! 죽어!”
“네깟 놈이 생각할 수 있는 걸 김태현 님이 모르시겠느냐!”
“아, 아니. 단체로 미쳤냐? 뭐야 너희?!”
케인은 당황했다. 얌전히 ‘살려만 줍쇼’ 하던 길드원 놈들이 뭘 잘못 먹었는지 사납게 덤빈 것이다.
태현도 신기해했다.
‘케인한테 평소 원한이 있었나?’
“찾는 거 자체야 어렵겠지만 일단 내 권능 스킬들이 있어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고… 못 하면 그때 생각해도 될 일이지. 놈들이 진짜 갖고 있든 다른 곳에 숨기고 있든 그때 찾아도 되니까.”
“나중에 찾아도 된다고?”
“뭐 아이템이 어디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붙잡힌 놈들이 키메라가 되거나 죽을 수야 있겠지만… 부활하지 않겠어?”
붙잡힌 셋이 들으면 ‘안 구하러 오냐 이것들아!?’ 했을 소리!
일행은 태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혹시 수색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딱히 손해 보는 게 없었던 것!
손해 보는 건 붙잡힌 셋뿐이었다.
* * *
“곧 악마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여러분. 대(對) 악마 장비를 맞추세요!”
“악마 상대로 쓸모 있는 아이템들 팝니다! 광장에서 하도스를 찾아주십시오!”
“아키서스 교단 상급 사제가 직접 축복 걸어준 무기 팝니다! 은도 조금 섞였어요!”
골짜기의 분위기는 활발했다.
교단에서 내려온 공지 때문이었다.
-골짜기에 곧 악마 침공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모두 준비하십시오!
“?”
“?????”
처음에는 ‘뭔 소리야?’ 하고 당황했던 사람들이었지만, 교단은 몇 번이고 계속 공지를 내렸다.
그러자 사람들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악마들이 침공한다는 건가? 어디서?”
“설마 저기 통로에서 오나?”
“아니… 저기 성기사들이 얼마나 있는데….”
골짜기에서 교단 전력이 가장 많이 있는 곳 중 하나가, 마계와의 통로가 연결된 곳이었다.
각종 살벌한 함정들과 최정예 NPC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소!
-악마들이 쳐들어오면 성벽에서 싸움이 개시될 테니 모두 참가하십시오!
<영지를 방어하라!-골짜기 악마 사냥 퀘스트>
아키서스 신앙의 총본산인 골짜기는 수많은 적들이 노리고 있는 곳이다.
마계의 악마들은 악마를 토벌하고 대륙을 평화롭게 만드는 아키서스의 위엄을 질투하고 있다!
곧 그들이 영지로 몰려들 테니 성벽에서 영지 방어에 참가하라!
“어? 밖에서 오나보네?”
“그러면 되게 쉽지 않나? 나도 참가해야겠다.”
“쉽다니… 야. 악마잖아. 악마랑 싸우는 퀘스트에 참가하겠다고? 네가??”
영지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친구가 미쳤나 봐!
“악마 나오는 영상 못 봤어? 레벨이 200, 300은 쉽게 넘긴다니까? 우리가 낄 퀘스트가 아니야!”
레벨 100 안팎인 그들.
이제 판온에서 고렙 취급을 받으려면 레벨 200은 넘겨야 하니, 100 안팎인 그들은 간신히 초보 티만 벗어난 셈이었다.
골짜기가 재밌다지만 분수는 알아야지, 왜 저런 퀘스트에 참가한단 말인가.
“아냐. 우리도 참가할 수 있어.”
“대체 뭔 소리를…?”
“여기 골짜기 방어 퀘스트, 그것도 성벽 위에서 싸우는 거면 진짜 레벨하고 상관 없다니까.”
골짜기에서 오래 있었던 친구는 자신만만했다.
예전에 골짜기 공성전에서도 그랬었다.
이 골짜기의 방어는 그야말로 천하무적!
레벨 차이고 뭐고 다 무시해 버리는 막강한 방어였다.
-뭐 이딴 곳이 다 있냐! 김태현 미친 XX야! 영지 운영비 다 방어에만 꼬라박았냐?!
-네 양심은 대체 어디다 갖다 팔아버린 거냐!!
공격하는 쪽 입에서 욕이 나올 만한 구조!
일단 골짜기 앞에 설치된 위풍당당한 삼중성벽.
성벽을 하나 넘더라도 그 뒤의 성벽에서 바로 살벌한 공격이 들어왔다.
하필이면 이 골짜기의 명물은 기계공학!
기계공학 스킬은 서로 움직이기 힘든 공성전에서 그 위력이 몇 배로 늘어났다.
게다가 삼중성벽의 하나를 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성벽 앞 곳곳에는 요새들이 위치해 있고 그 안에서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또 ‘와 신난다~ 실험 시간이다~’ 하면서 목숨 버린 공격을 가해오는 것!
골짜기의 성벽 하나 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역사가 있었지….”
비장하게 말하는 친구의 말에 새로 온 플레이어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진짜야? 거짓말 같은데….”
“너무 과장한 거 아니야?”
“과장 아니야. 너희들도 영상을 봤어야 하는데. 아. 이거 진짜 해본 사람만 아는 건데!”
골짜기에서 오래 있었던 친구에게서는 판온 좀 해본 사람의 여유가 철철 풍겼다.
멋있다!
“진짜 우리도 낄 수 있어?”
“어. 원거리 공격만 해도 된다니까. 화살이나 주문서 같은 거 돈 아끼지 말고 사. 본전 뽑고도 남아. 공격 많이해서 공적치 포인트 높게 쌓이면 여기 NPC들한테 공성 병기 사용 허가도 나온다고.”
“오오… 오오오…!”
골짜기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새 퀘스트에 가슴 설레했다.
고렙 플레이어들이 마계로 사냥을 갔던 게 내심 부러웠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부르자! 이거 엄청 남는 퀘스트일 거 같아!”
“마계 가려고 했는데 어차피 악마들 올 거면 여기서 기다릴까? 마계는 안 그래도 힘든데….”
순식간에 골짜기에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 악마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곳으로 변했다.
악마들이 오면 ‘저기 미쳤냐??’ 소리가 절로 나올 살벌한 대비!
* * *
“후후. 내가 생각했지만 정말 잘 생각한 계략이야. 김태현 놈. 이번에는 꼼짝없이 당하겠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쑤닝 님!”
“감탄했습니다, 쑤닝 님!”
쑤닝은 악마 군세들을 다 아래로 내려보낸 다음 만족스럽게 웃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오스턴 왕국이었지만 오늘만큼은 행복하다!
“쑤닝 님. 거기서 만족할 때가 아닙니다.”
“???”
쑤닝은 고개를 돌렸다.
저번에 간부로 새로 들어온, 길드 동맹에 투자한 사람들이 보낸 직원이었다.
일종의 감시!
길드 동맹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길드 동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했다.
이 직원은 회의부터 운영까지 분석하고 보고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간부들은 이 직원이 껄끄러웠지만….
앞에서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돈이 최고니까!
‘심기 거슬렸다가 투자 끊기면 큰일이지.’
‘암암.’
몇몇은 아예 방향을 바꿔 아부를 하고 있었다.
“아이고. 그러면 무슨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아앗!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쑤닝은 그 태도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간부 놈들이 다 뭘 잘못 먹었나?
직원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길드 동맹에 관해서 분석한 결과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아, 아니. 내가 몇 가지 실수를 한 게 있긴 하지만 길마는 나다. 날 바꿀 수는 없어!”
“…그런 소리는 하지도 않았습니다만?”
지레 찔린 쑤닝은 얼굴을 붉혔다.
“쑤닝 님의 능력은 존중하고 있습니다. 쑤닝 님이 아니었다면 길드 동맹은 예전에 망했겠죠.”
정확히는 예전에 쪼개졌을 것!
보통 사람이면 몇 번이고 탈주했을 텐데 이걸 붙잡고 있었다는 게 대단했다.
그 미묘한 뜻을 눈치 못 챈 쑤닝은 행복해했다.
“바로 그렇지!”
“지금 길드 동맹의 수입은 오스턴 왕국에서 들어오는 영지 수입과, 광고 수입. 길드원들 수입 등… 그리고 영지전 수입이 있습니다.”
“영지전 수입이 엄청 짭짤하지.”
“한 번 싸우면 팍팍 들어오니….”
길드 동맹 계정이 직접 올리는 영지전 영상은 광고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수천 명 넘는 이들이 한 곳에서 부딪히는 박력!
“그런데 제가 더 높은 조회수를 만들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헉. 그게 뭡니까? 역시 인텔리는 다르십니다!”
“아앗! 너무 궁금합니다!”
“김태현을 공격하시죠.”
“…….”
“…….”
“…그건 좀 아닌듯.”
직원에게 아부하던 사람도 정신 차리게 만드는 소리!
“저번에도 말했지만 김태현은 진짜 건드려서 좋을 거 없다니까요? 아니. 투자자 분들이 김태현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다른 놈들이 싸운 다음에 끼면 안 될까? 전 세계의 놈들이 공격하면 우리도 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중국 쪽 투자자들은 ‘아 왜 돈을 이렇게 줬는데 김태현 못 잡음?? 님들 놈???’ 같은 소리를 서슴없이 해댔다.
쑤닝은 ‘네가 한 번 해봐라 XX야!’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 했다.
돈이 최고니까!
처음 나온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쑤닝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흠흠. 물론 투자해 주신 분들이 김태현을 꺾고 판온의 최고가 되길 원하시는 건 안다. 하지만 길드 동맹을 이끌어 온, 이 내가 판단하기에 아직은 때가 아니야! 지금은 힘을 더 길러야 할 때다!”
김태현과 싸우기 좋을 때는 언제일까?
‘김태현이 게임 접으면?’
‘판온 2 끝나면?’
‘건강 관리 잘 해서 김태현보다 오래 살면 그게 승리 아닐까?’
그러나 직원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기길 바라고 한 소리가 아닙니다.”
“???”
“뭔…?”
지라고?
너 김태현 스파이냐?!
“져도 이득이니까 한 소리입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분석한 결과, 김태현에게 두들겨 맞을 ㄸ… 아니, 김태현과 싸울 때 조회수가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영지전보다 몇 배는 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살짝 공격해서 피해가 적게 패배하시면 그걸 상회하는 어마어마한 수입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쑤닝은 격노했다.
그나마 자기가 이길 거라고 기대해 준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어?!
“그보다 휴전 깨는 순간 김태현이 전면전으로 덤벼올 거 아냐!”
“흠. 그게 부담되시면 김태현 쪽에 연락해서 짜고 쳐도 될 것 같습니다. 저쪽도 수입을 나눠주면 좋아할 테니….”
“저… 저거 정말…!”
“미친 아이디어…!”
져도 이득이라는 말에 간부들은 감탄했다.
하긴 김태현하고 싸운다고 하면 일단 광고는 불티나게 팔리겠구나!
물론 플레이어로서의 자존심과 체면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냉혹한 자본주의의 논리였다.
쾅!
쑤닝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 쑤닝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그런 식으로 하는 건 절대 납득할 수 없어!”
“흠… 이 아이디어를 제안하신 건 투자자 분들입니다. 받아들이면 진지하게 추가 투자를 고민해 보시겠다고….”
“…하지만 대를 위해서는 가끔 소를 포기해야 할 때가 있기도 한 법이지. 얼마나 더 투자하신다고 하셨길래?”
쑤닝은 솔깃했다.
아….
진짜 김태현한테 연락해서 부탁해야 하나?!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