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91화
“아니. 정말로 놓고 나온다고? 너무 나간 거 아냐?”
케인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태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케인. 넌 약탈자 플레이 하면서 뭘 배운 거냐? 기본도 모르냐?”
“케인.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약탈자 플레이를 하니까 네가 망한 거야.”
태현과 앨콧이 동시에 구박!
케인은 매우 억울해졌다.
‘아니 뭔 이런 미친….’
약탈자 플레이를 가볍고 즐겁게 놀려고 하는 거지 진지하게 하는 놈이 어디 있어!
‘저러니까 아이템 다 털리고 길드가 망하지.’
앨콧은 안쓰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케인은 그 눈빛을 알아채지 못했다.
“케인. 약탈자 플레이 할 때 기본은 한 바구니에 모든 달걀을 담지 않는 거다. 죽었을 때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거지.”
태현은 약탈자와는 좀 달랐지만 그에 못지않게 PK를 많이 해온 사람이었다.
이나 같은 자기계발서를 내도 될 수준!
덕분에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하는 짓은 태현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귀중한 아이템은 어딘가 숨겨놓고 나오거나. 일부러 값싼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채워놓고 다니거나, 잃어버려도 될 만한 장비들을 입고 다니거나….
그런 수작을 부렸다면 바로 공격해서는 안 됐다.
잘 구슬려서 진실을 토해내게 해야 한다!
“그냥 공격해서 협박하면 될 것 같은데….”
중얼거리는 케인의 모습에 앨콧이 말했다.
“너 대체 쟤 어떻게 데리고 다니는 거냐?”
“케인이 저래 보여도 할 때는 해. …아마.”
“아마?!”
기다리던 일행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기다려도 셋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눈치챘나?’
태현은 의아해했다. 눈치챌 만한 요소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추운 곳에서 버티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
그런 상황에서 날아온 길드원들!
도와줄 놈 하나 없이 외로운 상황에서 날아온 도움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됐다.
‘그러면 뭐지?’
그 답은 금방 나왔다.
-우, 우리 잡혔어! 우리 잡혔어!
-도와주러 와줄 거지??
“?!”
* * *
“잘 숨겨놨지?”
“걱정하지 말라니까.”
“누가 가져가기라도 할까 봐 그래.”
당연히 셋은 묘비를 숨겨놓고 나왔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것!
나름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이상하게 꼬여 들어갔다.
-정지!
“?”
“???”
“뭔 정지?”
분명 동굴 근처는 아무것도 없던 황량한 얼음 벌판이었다.
몇 분마다 얼음 폭풍이 휘몰아쳐서 앞이 잘 보이지도 않던 곳!
그런데 그 위에 웬….
중무장한 전사들이 있다!
‘강하다!’
‘레벨이 최소 400? 설마 500을 넘기나??’
‘저건 아이스 드레이크??’
추운 지역에서만 나타난다는 아이스 드레이크!
냉기 속성 공격을 하는 데다가 흉포해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놈이었다.
그런 놈들을 부려서 타고 있다니!
‘잠깐만. 저 전사들 모습이 너무 특이한데…? 뭐야? 언데드야?’
온몸을 기워서 만든 것처럼 피부색이 얼룩덜룩한 데다가 한쪽 눈은 크고 한쪽 눈은 작고….
심지어 한 전사는 팔이 세 개였다.
‘아니. 언데드라기에는 너무 살이 많은데? 언데드는 아닌 것 같은데.’
‘몰래 스킬 써봐.’
-중급 종족 파악!
[상대방의 종족은 키메라입니다!]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종족을 버리고 돌연변이가 된 이 종족은 종잡을 수 없는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
키메라!
마법으로 인해 종족이 변하거나, 각종 사고로 인해 종족이 변한 특별한 케이스의 종족!
원래라면 볼 일 없는 희귀한 종족이었다. 판온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키메라 종족을 얻은 플레이어는 드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어야 할 정도로 좋은 종족도 아니고!
애초에 멀쩡한 종족이 아니라 돌연변이다 보니 종족 스탯부터 스킬까지 다 랜덤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키메라들이 우르르 무장하고 있다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너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고대 제국에 충성하는 놈이냐, 아니면 건방지게 불충하는 놈이냐?”
“충, 충성하는 놈이요?”
강한 NPC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되는 분노조절!
세 약탈자 플레이어는 다소곳한 자세로 대답했다.
“좋다! 그 대답은 훌륭하다!”
[<고대 제국의 죄수들>이 당신의 대답을 마음에 들어합니다!]
‘휴. 살았군.’
‘오히려 잘된 거 아니냐?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 강해 보이는데….’
‘그러게? 마을로 데려가 줄 수도 있잖아.’
세 명은 순간 희망에 빠졌다.
이 아무것도 찾을 수 없던 프로즈란드에서 마을을 찾는다면?
어떤 플레이어도 하지 못한 발견은 덤에, 그들 혼자서 꿀을 빨 수 있는 것이다.
“너희들을 우리가 있는 곳에 데려다주겠다.”
“마, 마을입니까?”
“마을? 그보다는 더 크지.”
“도… 도시?!”
“그래. 도시라고 볼 수 있겠지. 하하!”
“오오… 오오오…!”
“야. 우리 길드원 만나기로 했잖아.”
“까라 그래! 지금 그거 만나게 됐냐! 그런 놈들 필요 없어!”
착하게 살다 보니 이런 행운이!
셋은 대흥분했다. 이대로만 가면 아무 도움 필요 없이 그들만 엄청나게 이득을….
“우리의 본거지에 가게 되면 너희들도 강하게 바꿔주지.”
“감, 감사합니다!”
스킬이나 아이템도 퍼준다고!?
너무 잘 해줘서 무서울 지경!
‘어? 잠깐만.’
강하게 만들어주지가 아니라 강하게 바꿔준다고?
뭔가… 뭔가 말이 이상한데?
“어… 어떻게 바꿔주시는 겁니까?”
“일단 너희들의 나약한 종족을 벗어던지게 해야겠지. 걱정 마라. 너희 각자에게 맞는 새로운 종족이 있을 거다.”
“…….”
“…….”
셋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키메라로 만들어준다는 거였냐!?
‘미친…!’
‘뭐가 걸릴 줄 어떻게 알고!’
팔 여섯 개 달린 케인은 ‘네가 아수라냐?’ 같은 비웃음을 사곤 했지만, 케인은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
겉모습은 좀 구려도 전투에 좋은 돌연변이 특성들만 얻지 않았던가.
…겉모습은 좀 구려도 말이다!
그 이후로 용감하고 욕심 많은 플레이어들이 <아키서스 특수 기도 신전> 가서 돌연변이 특성들을 뽑으려고 하고 있었지만, 운이 나쁜 사람들은 피를 제대로 봤다.
<물리 방어력 약화>, <시야 약화>, <마법 방어력 약화> 같은 건 어떻게 참더라도 <팔 하나 제거> <다리 하나 제거> 같은 미친 옵션이 뜨면….
그때부터는 그냥 모든 걸 다 걸고 계속 뽑기 돌려야 했다.
-다리…! 다리를 더 얻어야 해!
이러면서 말이다.
이런 돌연변이 특성 뽑기도 무서운데 키메라라니.
“저, 저희는 괜찮습니다만….”
“겸손하군. 하지만 괜찮다. 우리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잡아온 놈들 중 키메라 전환 의식을 해서 살아남은 놈들이 얼마 없었거든.”
“…….”
“…….”
“그래서… 우리는 우리 동지를 늘리기 위해 하는 거니 부담 가질 필요 없다는 거다.”
“아, 예.”
미친놈아 그건 부담 가져야지!
셋은 속으로 절규했다.
‘튈까?’
‘튀어야지. 연막 주문서 남은 거 있냐?’
‘하나 있다. 쓰면 바로….’
슥-
연막 주문서를 꺼내려고 가방에 손을 넣는 순간, 키메라 전사가 쉭 검을 휘둘렀다.
‘헉!’
눈 깜박할 사이 목 앞에 멈춰 있는 검!
“아. 미안하군. 습관이 되어서. 혹시 모르니까 이상한 짓 하지 말게.”
“…예….”
그 한 수에 셋은 모두 얼어붙었다.
주문서 꺼내는 순간 반으로 쪼개진다!
‘…야! 도움 요청해! 도움 요청해!!’
‘이러다 진짜 키메라 되거나 죽겠다!!!’
* * *
“잡혔다는데? 도와주러 와줄거냐는데?”
“????”
“이런 곳에서 뭔 어떤 놈들에게 잡혀? 이 자식들이 감히 이런 구라를…!”
앨콧은 분노했다.
어디서 씨도 안 먹히는 거짓말을 하다니!
잡히면 진짜 부활 지점 찾아서 계속 죽여 버리겠다!
그러나 태현은 의외로 침착했다.
“아니.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무슨 소리야! 저거 우리 얕보고 놀리고 있는 거라니까?”
“앨콧.”
“어?”
“나보고 도와달라고 불렀으면 내가 말할 때는 입 다물고 들어라.”
“…응….”
태현은 말 한 마디로 펄펄 날뛰는 앨콧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 카리스마에 보고 있던 길드원들은 감동했다.
저거지!
저게 김태현이지!
“수상하게 생각했으면 연락을 끊었을 것이고 함정을 팠으면 그럴듯한 거짓말을 했겠지. 뭐하러 저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겠냐.”
판온에서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의외로 진실일 때가 많았다.
“자세히 물어봐. 어떤 상황인지 확실하게 알아내라고.”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분고분한 길드원들 모습에 앨콧은 수상쩍어했다.
너무 고분고분하잖아!
앨콧은 케인에게 물었다.
“저 자식들 너무 고분고분한 게 이상하지 않냐? 원래 좀 더 대들고 꿍꿍이를 꾸며야 하는데….”
“어? 김태현 앞에서는 원래 다들 저러던데?”
“…….”
하긴 그건 그렇지!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
“에이. 됐다. 너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
“이 자식이 지금 시비 걸러 왔냐?!”
케인은 울컥했다.
김태현은 나를 무시해도 되지만 다른 놈들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길드원들한테서 필요한 정보를 다 뽑아내고 있었다.
“<고대 제국의 죄수들>이라고, 키메라 종족으로 구성된 정체불명의 집단이 있는데 얘네들이 와서 ‘크헤헤 너희들도 키메라로 만들어주지!’ 하면서 끌고 갔다고?”
“진, 진짜에요! 진짜입니다! 믿어주세요, 김태현 님!”
“제발…!”
길드원들은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이지만 이때만큼은 진지했다.
김태현…!
우리를 믿어줘!
우리의 진심을 믿어줘!
‘카르바노그 이야기랑 비슷한데?’
고대 제국 죄수들이 이 프로즈란드의 감옥에 갇혔다는 카르바노그의 이야기!
<고대 제국의 죄수들>이란 이름은 우연으로 꾸며내기에는 너무 공교로웠다.
[카르바노그가 자기가 뭐라고 했냐고 의기양양해합니다. 언제나 언데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언데드가 아니라 키메라라는데.’
[그거나 그거나!]
“좋아. 믿어주지.”
“…!!!”
<국제강도연합>의 길드원들은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말하면서도 ‘김태현이 안 믿을 것 같은데?’, ‘우리 말을 안 믿으면 어떡하지?’ 생각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믿어주다니!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인 것 같았다.
“으흑흑…!”
“정말 믿어줄 줄이야…!”
“???”
“쟤네 왜 우냐?”
“글, 글쎄?”
길드원들이 울면서 충성을 맹세하는 동안 다른 일행들은 당황해서 수군거렸다.
* * *
“바로 움직인다. 따라와!”
태현의 명령에 일행은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로즈란드는 어디가 어딘지 구분도 잘 안 되는 순백의 땅이었지만, 태현은 용케도 주변 지형지물들을 알아듣고 길을 찾아냈다.
“안 되겠다. 용용아. 흑흑아. 날아올라서 위치 확인 좀 해줘.”
-알겠다. 주인이여.
-알겠습니다.
원래 태현은 낯선 곳에서는 드래곤들을 날게 하지 않았다.
비행 몬스터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을 다투고 있는 상황!
위험을 감수하고서 확인을 해야 했다.
앨콧이나 길드원들은 긴장한 얼굴로 태현의 뒤를 따라 붙었다. 자연스레 긴장이 된 것이다.
앨콧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김태현. 싸움 벌어지면 먼저 뛰어들까? 아니면 기다릴까?”
“? 무슨 소리야?”
“…??”
앨콧은 태현의 의아하다는 표정에 당황했다.
“어, 우리 지금 걔네 구출하러 가는 거 아니었냐?”
“아닌데?”
“????”
“걔네 잡힌 위치 확인한 다음에 걔네가 숨어 있던 곳 뒤지러 갈 건데? 걔네가 잡힌 곳을 확인해야 석판 숨긴 곳을 찾아내지.”
“…!!!!”
이… 이 자식은 정말…!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