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89화
아다만티움은 엄청나게 희귀한 광석이지만, 아예 모습이 안 보일 정도로 희귀한 광석은 아니었다.
랭커 정도라면 퀘스트하다가 아다만티움 광석 한두 개 정도는 구할 수 있었다.
거기에 경매장에 가끔 올라오는 걸 싹 사서 모으다 보면 팔찌나 건틀렛 하나 정도는 만드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굳이 그러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페널티 크게 받으면서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페널티 안 받는 재료로 만드는 게 더 좋습니다.
-아다만티움보다는 못하지만, 만들고 나면 크게 차이 안 날 겁니다.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봤자 이득은 대장장이 기술 스킬 키우는 정도인데, 너무 비쌉니다.
그 고생하면서 구해봤자 만들 때 페널티가 들어가면 다른 재료랑 비슷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랭커들은 굳이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지 않고 다른 좋은 재료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태초의 불>이 떴다고 알려진 영지라면?
써본 적이 없어서 확실히 말은 못 해도, 소문만 들어보면 정말 아다만티움을 페널티 없이 제대로 녹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갑작스러운 의견에 대장장이들 게시판은 미친 듯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골짜기에서 만든 거 아니냐?! 요즘 대장장이들 골짜기로 많이 갔잖아! <태초의 불> 효과 보겠다고!
-아,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버프지 <태초의 불>을 쓸 수 있다는 건 아니라고.
대장장이들 사이에서 <태초의 불>은, 아키서스 교단의 대신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다.
거기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설마 저 하늘성에라도 있겠나?
-교단 공적치 포인트 많이 쌓은 대장장이가 쓴 거 아냐?
-그런 사람 방송에서 못 봤는데….
-꼭 방송에 나오란 법이 있냐! 비밀리에 만들었을 수도 있잖아!
-누가 그걸 비밀리에 만들어? 조회수가 얼마나 나올 텐데….
-맞아. 나 같으면 무조건 올린다.
-혹시 김태현이 만든 거 아닐까? 김태현도 나름 대장장이 기술 높잖아.
-에이. 김태현은 기계공학이 주력이지 순수한 대장장이는 아니지.
-맞아. 맞아.
대장장이들 사이의 미묘한 자존심!
태현은 판온에서도 정말 비슷한 사람을 찾기 힘든 유니크한 플레이어였다.
단순히 실력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폭넓은 캐릭터 성장!
근접 전투는 근접 전투대로 잘하고, 마법은 또 마법대로 잘하고, 제작은 또 제작대로 잘하는….
대체 뭔 미친 캐릭터야!? 소리가 절로 나오는 캐릭터였던 것이다.
덕분에 대장장이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질투가 날 수밖에 없었다.
김태현한테 대장장이 기술까지 밀리면 그들은 정말 변명할 게 없다!
-김태현은 기계공학이라니까. 제작은 주력이 아닌….
-근데 김태현이 만든 거 보면 대장장이 기술도 높아 보이던데?
-아! 아니라고! 안 높다고!
-저 자식 내보내!
-?!?!
* * *
“맞다. 케인. 노드란체 구경 좀 시켜줄 수 있냐?”
앨콧은 호기심에 물었다.
최근 반응이 뜨거웠던 영지는 바로 노드란체였다.
고대 수인족 퀘스트부터 시작해서 고대 제국 도시까지 발견되다니!
영상에서 나오는 수인족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적들이었다.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저 공격을 막아낸 걸까?
그리고 고대 제국 도시….
온갖 시설들이 남아 있는 그 찬란한 모습에는 가슴이 뛰었다. 케인이 부러워 죽을 정도였다.
-저 자식은 전생에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김태현한테 저렇게 업혀가냐?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냐??
-뭔 놈의 영지를 받았는데 밑에서 고대 제국 도시가 나오냐고~!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질투하는 이유가 있다!
태현 파티 중 가장 날로 먹는 것 같은 사람!
어쨌든 앨콧은 직접 보고 싶었다.
영주인 케인이 안내한다면 고대 제국 도시의 공개되지 않은 시설들을 다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어? 싫은데.”
“…….”
1초도 고민 안 하고 거절하는 케인!
앨콧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내가 이래서 이 자식을 싫어했었지!
“왜 싫은데!”
“너하고 친하지도 않은데 뭘 구경이야! 알아서 봐!”
“이 정도 퀘스트 같이 했으면 고민하는 시늉이라도 했겠다! 됐다! 앞으로 절대 너는 안 도와준다.”
나름 길드 동맹 내에서는 카리스마인 앨콧이었지만, 케인과 같이 놀면 케인 수준으로 떨어져 내렸다.
케인의 마법!
앨콧이 저렇게 나오자 케인은 살짝 당황했다.
‘이 자식이 진짜 길드 동맹 관련해서 정보 안 주면 어떡하지?’
물론 그럴 일은 없었지만 케인은 먼저 겁을 먹고 슬쩍 말했다.
“아… 아니. 앨콧. 네가 싫어서 거절한 게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그래.”
“무슨 이유?”
“…안, 안의 궁전에 김태현이 말하지 말라고 한 위험한 게 있다고.”
“…?!?!”
앨콧은 깜짝 놀랐다.
뭐?!
진짜 그런 게 있어?!
“야… 그런 걸 나한테 말하면 어떡해! 김태현이 말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앨콧은 먼저 기가 막혔다. 이 자식은 비밀 유지란 개념이 없나?
‘게다가 김태현이 알면 나까지 조질 텐데…!’
-뭐? 케인한테 비밀을 캐? 앨콧. 네가 제정신이 나갔구나! 그래. 판온을 접고 싶은 거겠지. 이해한다. 게임 오래하면 가끔 접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나는 아니지만!
“그… 그만큼 널 믿는다는 거지.”
“…!”
앨콧은 솔직히 감동했다.
물론 케인은 생각하지 않고 막 던진 거짓말이었지만, 앨콧이 알 방법은 없었다.
“…그래. 이해했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앨콧은 생각했다.
만약 노드란체에 가게 되더라도, 지하 도시는 가지 말아야겠다!
김태현이 위험하다고 할 정도면 대체…?
‘뭐 고대에 봉인된 악마라도 있나?’
* * *
[유빙이 나타났습니다! 유빙을 조심하십시오!]
[프로즈란드의 유빙은 한 번 부딪힐 때마다 배를 크게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기온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추위에 대비하십시오.]
[프로즈란드의 냉기는 사람의 피부를 찢고 뼛속을 파고듭니다. 더 위로 올라갈 경우 죽음을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
‘으음. 쓸데없이 불길하군.’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이런 곳에 굳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김태현. 너 함대 있지 않았냐?”
“있지.”
해적 함대부터 왕국 함대까지, 동원할 수 있는 함대가 다양한 태현이었다.
“…그런데 왜 그거 다 냅두고 이렇게 오는 거지?”
지금 태현 일행이 타고 있는 배는 소형선이었다. 초보 낚시꾼들이나 타는 작은 배!
굳이 이런 배로 올 이유가 있었나?
“쯧쯧. 앨콧. 이 배가 얼마나 대단한 배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이건 그 아란티스 왕국의 낚시꾼 아저씨들이 돈 주고 의뢰해서 만든 배를 선물로 받은 건데, 최고급 흑단목을 통짜로 사용해서….”
“뭐?! 아란티스 왕국의 그 미친 현질꾼들?! 아,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쩐지 배가 미친 듯이 빠르고 조용히 잘 나가더라!
-김태현 선수. 저번에 낚시 선물해 줘서 아주 고마웠어요.
-저도 도움을 받았는데 뭘 그러십니까.
-이거 별거 아니고. 우리가 타고 다니는 배인데 한 대 받아가요. 조용하게 낚시하기에는 최고거든.
-아니. 이런 건 굳이….
-받아가요. 별로 비싼 것도 아니야. 한 1….
-1천 골드?
-10만 골드쯤….
-…감사히 받겠습니다!
뭔 놈의 배가 집 한 채 값이야?!
“큰 함대가 낫지 않나? 싸울 일 생기면….”
프로즈란드의 괴수 몬스터들은 강력한 화력이 필요할 것이다.
태현이 노드란체에서 수인 부족들을 쓸어버릴 때 썼던 그 강력한 화력!
“아니. 괴수 몬스터와 싸울 일 있으면 피할 거다.”
태현은 잘라 말했다.
노드란체야 피하면 케인의 영지가 아작이 나니까 어쩔 수 없이 싸워준 거였다.
이번 목적은 프로즈란드로 튄 <국제강도연합> 소속의 플레이어들을 붙잡고 드래곤의 보물을 회수하는 것!
굳이 괴수 몬스터와 목숨 걸고 싸울 이유가 없었다.
“아. 하긴 그렇겠군.”
“괜히 큰 함대 데리고 가봤자 먼저 알아챈 놈들이 도망치기만 하면 귀찮기만 하니까.”
태현의 말에서는 PK 한두 번 한 걸로는 생기지 않는 노련함이 엿보였다.
새삼스럽게 판온 1 때 태현이 했던 일들이 떠올라 앨콧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벌써 춥냐?”
“그… 그러네.”
앨콧은 가방에서 <상급 추위 내성 물약>을 꺼내 마셨다. 아직 프로즈란드 외곽인데도 이 정도였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 추워질 게 분명했다.
‘?’
앨콧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현이야 워낙 수상쩍은 스킬들이 많으니까 추위를 버티는 건 그렇다 쳐도….
이 자식들 왜 아무도 물약을 안 마시냐?
다들 태연하게 뱃전에 앉아서 ‘와~ 빙산이다~’ 하고 있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뭔 버프라도 있나??’
“저기 땅이 보여요.”
“직진해서 들어가나?”
“아니. 돌아서 들어간다. 땅으로 올라가면 배 흔적 남아. 유빙 위로 올라가서 흔적을 없애고 들어간다. 배는 들어서 숨길 거야.”
“…!”
사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
지금 그걸 태현이 보여주고 있었다.
<국제강도연합>의 플레이어들이 아무리 덤벼봤자 태현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텐데, 철저하게 덤벼드는 태현!
“앨콧. 쟤네가 제대로 된 정보를 줘야 하는 거 알고 있지?”
“물, 물론이지.”
괜히 자기까지 긴장한 앨콧은 말을 더듬었다.
지금 배에는 <국제강도연합>의 길드원들이 타고 있었다.
‘진, 진짜 김태현이지? 김태현 맞지?’
‘와… 김태현이 앞에 있어!’
‘사인해달라고 해도 되나?’
‘배 밖으로 던져지겠지…! 그래도 하고 싶다!’
말은 차마 못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길드원들은 대흥분 중!
‘이 자식들 왜 이러지?’
앨콧은 수상쩍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눈에 핏발이 서고 숨을 헉헉대는 게 매우 수상쩍었다.
변태들인가?
“귓속말 보낼 준비 됐나?”
“예, 예!”
“제대로 보내야 한다. 만약 서투른 수작이라도 부리면 너희부터 없애버릴 테니까.”
앨콧이 그렇게 협박하지 않아도 길드원들은 딱히 의리를 지킬 생각이 없었다.
1 실버도 안 되는 의리!
-야! 우리 프로즈란드 왔다!
-우리도 쫓겨서 프로즈란드 왔다고. 서로 같이 돕는 게 낫지 않겠어? 어?
사고를 친 놈들은 현재 귓속말을 받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보내면 듣고는 있을 터.
지금 외롭게 쫓기고 있는 이상 계속 듣다 보면 솔깃할 수 있었다.
심지어 프로즈란드까지 왔을 정도면…!
-야. 끝까지 대답 안 하냐? 나 참. 지금 서로 쫓기는 입장에서 같이 도우려고 했는데… 됐다. 우리끼리 하지 뭐.
-다음에 끼워달라고 해도 안 끼워준다. 이게 끝이야.
그렇게 귓속말을 보낸 약탈자 플레이어는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 시킨 대로 했는데… 이래도 됩니까?”
“좀 더 꼬드겨봐야 할 거 같은데… 아이템을 갖고 왔다거나….”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건 괜히 역효과야. 너희 같으면 그런 걸 믿겠냐? 사고 쳤는데 길드원들이 와서 퍼준다는 걸?”
“…!”
“오히려 이쪽에서 강하게 나가야 해. 아쉬울 거 없다는 듯이. 이제 귓속말 절대 보내지 마라. 저쪽에서 귓속말을 보내도 몇 번은 무시해.”
태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길드원들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바로 세계 최고 약탈자 플레이어…!
‘이 자식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쁜데.’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속으로 화신 욕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뭐 욕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서로 원하는 게 있어서 협조하는 상황!
태현은 그 이후로도 정확하게 지시를 내렸다.
정말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이골이 날 대로 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지시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정말로 상대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정말 왔어?
길드원들은 존경 가득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