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88화 (1,087/1,826)

§ 나는 될놈이다 1088화

“어? 왜 숨겨야 해?”

케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아다만티움 갑옷은 정말 완벽한 갑옷이었다.

물리 방어력, 마법 방어력, 속성 방어력, 옵션, 각종 스킬들….

현존하는 갑옷 중 따라올 만한 경쟁자가 없는 갑옷!

그런데 딱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겉모습!

‘너무 수수하잖아.’

케인이 생각하는 멋진 갑옷은 기본적으로 황금색에, 빛이 번쩍번쩍 뿜어져 나오고, 걸으면 주변으로 효과나 오오라 좀 뿌려주는 갑옷이었다.

태현이나 최상윤이 들으면 ‘미친놈아 뭐하러 그런 갑옷을 입어!’ 하고 질색할 갑옷들!

정말 레벨 높은 랭커들은 저런 쓸데없는 겉모습에 집착하지 않았지만, 케인은 아직도 초심을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번쩍거리는 갑옷으로 뽐내면서 걷고 싶다!

…그렇지만 아다만티움 갑옷은 황금빛으로 번쩍거리지도 않고 주변으로 특수효과를 주지도 않았다.

아니, 보통 그런 게 이상한 거였다.

“왜 숨기냐니. 알려지면 진짜 미친 듯이 덤벼들걸.”

“그건 이제까지도 그랬지 않나?”

“이제까지는 그나마 태현이만 노린 거잖아. 그리고 그것도 한동안 없었고. 잘 생각해 봐라. 그게 왜 그랬던 거겠냐?”

“어… 김태현이 진짜 미친놈처럼 애들을 잡아 대서?”

그 말에 옆에 있던 태현은 케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흠. 케인.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군.”

“아, 아니야! 단순한 비유라고!”

“…그런 것도 있지만 위험한 난이도에 남는 게 별로 없어서라고.”

길드 동맹이 태현의 목에 천문학적인 현상금을 걸었던 적도 있었지만, 휴전을 맺고 나서는 일시 정지된 상태였다.

가끔 태현을 쓰러뜨리고 그 명성으로 유명인이 되겠다는 플레이어들이 나오긴 했지만….

보통 그런 놈들은 고렙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자기 실력에 대한 냉정한 판단도 못하는 놈들이었다.

고렙 이상쯤 되면 자신이 키워 놓은 캐릭터가 아까워 이것저것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근데 그게 왜?”

“그게 왜냐니. 야. 우리가 받은 갑옷… 특히 네 갑옷이 아다만티움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이 갑옷은 지금 판온에서 나온, 플레이어들이 입을 수 있는 장비 중에서는 가장 좋은 장비 같거든? 일단 내가 알기로는 이것보다 더 좋은 갑옷 본 적이 없어. 이런 갑옷을 네가 입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 기분이 어떻겠냐?”

“뺏… 뺏고 싶어지나?”

“그렇지! 태현이야 워낙 PK에 이골이 나서 상관이 없다지만 다른 사람들은 좀 위험하다고!”

최상윤은 이 중에서 PK에 능숙한 편이었다. 근접 딜러는 원래 PK에 유리했으니까.

“역시 수혁이나 이다비, 유지수가 위험한가?”

“내가 보기엔 네가 위험한데.”

“뭐? 왜?! 왜 나야?!”

케인은 깜짝 놀랐다.

케인은 일행 중에서 나름 강한 이미지 아니었던가!

게다가 탱커라서 쉽게 잡기도 힘들 텐데!

“일단 눈에 잘 띄고, 갑옷도 가장 좋아 보이고, 그리고 실력 있는 딜러는 탱커 공격하는 걸 그리 무서워하지 않거든.”

탱커를 못 잡을 수는 있어도 탱커가 자기를 잡지 못한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무엇보다 케인은 요즘 따로 돌아다니는 경우가 잦았다.

김태현을 무서워하는 사람들한테는 절호의 먹이!

“…숨겨야겠다!!!”

“문제는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라는 거지.”

태현도 최상윤의 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이런 건 숨겨진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었다.

장비에 관한 소문은 의외로 정확하고 빠르게 도는 법!

“당장 대회 나갈 때 입고 나갈 텐데, 상대들도 다 랭커라서 바로 티가 날걸.”

때리는데 ‘튕겨 나갔습니다!’, ‘상대 방어력이 너무 대단해서 공격이 이빨도 안 들어갑니다!’, ‘저 갑옷에 비하면 당신 갑옷은 쓰레기입니다!’ 같은 메시지창이 나오면 플레이어들은 눈치를 채게 되어 있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안 입어야 하냐?”

“그건 본말전도고.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면 판온 어떻게 하려고? 장비를 얻었으면 써야지. 상윤이 말은 명심하고 있으란 거야. 이게 그만한 장비라는 걸. 괜히 단독행동 하다가 두들겨 맞지 말고, 싸움 일어나면 도망칠 방법 정도는 생각해두고.”

“네. 명심할게요.”

유지수는 활을 꽉 쥐고 동의했다. 태현은 슬쩍 물었다.

“다 죽이고 튀는 거 말고 다른 방법도 생각해놓은 거 맞지?”

“…그, 그거 말고요? 하지만 선배는….”

“쟤 방법은 굳이 따라 하지 말자!”

“김태현 방법을 뭐하러 따라 해!”

유지수의 말에 다른 일행들이 기겁해서 말렸다.

다 죽이는 건 도망 방법이 아니야!

‘뭐, 괜찮겠지.’

케인은 주의를 해야 겁을 먹으니 주의를 줬지만, 사실 태현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일단 일행은 떨어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보통 다 같이 다니지 않는가.

그리고 이제 일행들도 전원 다 랭커. 거기에 저 사기적인 장비를 입고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잘 죽지 않았다. 보통 아군이 먼저 도우러 올 것이다.

게다가….

[카르바노그가 다들 아키서스 신도라서 장비는 거의 안 흘릴 거라고 말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다른 교단에는 없는, 아키서스 교단의 장점 중 하나!

자기가 죽어서 로그아웃을 당하더라도, 좋은 아이템은 잘 안 흘리는 효과!

행운 스탯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었지만 그걸 찍는 괴짜는 없었고, 교단에서 주는 스킬이 훨씬 더 편했다.

태현은 아직 몰랐지만, 이거 때문에 약탈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아키서스 교단 유행이 불고 있었다.

약탈자 직업의 새로운 메타 성립!

-도적 계열 근딜 직업 고르고, 아키서스 교단 가서 공적치 포인트 5,000까지 찍고. 이게 가장 기본적인 정석이지 요즘. 아. 맞다. 장비는 무조건 드랍 관련 옵션 달린 거 받아라. 아키서스 교단에서 요즘 자주 나오더라.

-전사나 도적 신이 낫지 않나?

-죽거나 죽일 때 아이템 떨구는 효과가 생각보다 엄청 커. 이건 해본 사람만 안다.

-아키서스 교단은 인정이지.

-그리고 아키서스 교단은 약탈해도 페널티가 별로 없더라? 다른 교단은 공적치 포인트 깎던데….

-뭐? 진짜? 그건 대단한데.

‘그리고 대회 경기 한 번 뛴다고 바로 알려지진 않을 거야. 대여섯 경기 정도 뛰고 나서 소문 퍼지면 그때쯤 돌겠지.’

당한 팀들이 바로 ‘야! 김태현 사기 장비 먹었다!’라고 하겠는가?

뭔가 눈치채더라도 ‘야 다른 팀들도 당하게 해야지 조용히 입 다물자’ 하겠지!

대여섯 경기는 되어야 소문이 퍼질 것이다.

…그러나 태현의 예상은 빗나갔다.

태현에게 <가장 뛰어난 갑옷을 창조한 대장장이> 칭호를 뺏긴 플레이어가 있었던 것이다.

* * *

제작 직업 랭커는 전투 직업보다 숫자가 적다지만, 대장장이 랭커는 예외였다.

대장장이는 제작 직업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었던 것!

덕분에 랭커들의 다툼은 살벌할 정도로 치열했다.

당장 ‘대장장이 랭커 중 누가 가장 일을 잘하오?’라고 게시판에 물어보면 열 명 가까이 이름이 나왔다.

-해머맨, 루카스, 스티븐, 쿤트, 제너럴갓태현, 나디르, 로다문다….

그리고 <가장 뛰어난 갑옷을 창조한 대장장이>를 갖고 있던 대장장이 랭커는 해머맨이었다.

에랑스 왕국의 <왕실 대장장이 길드> 소속 대장장이 랭커!

소규모 길드만을 이끌고 있는데도 수많은 대형 길드에서 대접해 주는, 뛰어난 대장장이 랭커였다.

“지금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해머맨은 개인 방송을 자주했다. 해머맨뿐만 아니라 보통 제작 직업들은 방송을 자주했다.

전투 직업과 달리 퀘스트가 알려져도 손해가 덜한 것이다.

게다가 만들어지는 작품이 대단하기라도 하면?

알아서 홍보가 되기까지 했다!

해머맨은 긴 수염으로 얼굴을 뒤덮고 선글라스까지 쓴 미국인이었다.

미국에서도 실제로 대장장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

덩치 큰 근육질의 대장장이가 호쾌하게 때려 만드는 컨셉의 방송은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해머맨! 해머맨!

-저번에 만든 방패는 결국 누가 사간 거야?

-미다스에서 사갔을걸?

-아니 걔네는 마법사 길드 아니었어?

-마법사 길드라고 마법사만 있냐? 전투 직업들도 많아. 요즘 계속 모으고 있어. 소문에 몇만 골드가 넘었더다라.

-방패 하나에?!?!

“하하! 얼마에 팔렸는지는 비밀이지만, 생각보다 엄청 비싸게 팔린 건 사실이지!”

해머맨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부심!

해머맨에게는 자부심이 있었다. 자기가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라는 자부심.

“그건 바로 내가….”

-정말 대단한 대장장이기 때문이라는 거지? 알아. 알아.

-그만 말해도 괜찮아. 다 안다고.

“바로 그거야! 루카스하고 나 중 누가 더 잘 만들지?”

-해머맨! 해머맨!

“제너럴갓태현하고 나 중 누가 더 잘 만들지?”

-해머맨! 해머맨!

“그래! 이 내가 가장 대단한 대장장이라고! 봐라! 오늘 내가 만들 작품은 무려… 마계에서 구한 철을 써서 만든 갑옷이다!”

-!!!

-마… 마계에서…!!

마계가 열리고 나서 마계의 재료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마계의 재료들은 대륙의 재료보다 더 뛰어난 것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철!

흑마철, 백마철, 적마철 등 마철이라고 불리는 마계의 철광석들이 대장장이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건 아무나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도 무려 100% 흑마철을 써서 만드는 대박 작품이라 이거다!”

-오오오…! 흑마철 어떻게 구한 거지? 경매장에도 잘 안 올라오던데?

-의뢰해서 구한 게 분명해. 해머맨 인맥도 대단하잖아. 스미스도 친하던데.

“봐라! 지금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모두의 기대 어린 시선을 받으며 해머맨은 작업에 들어갔다.

과연 호언장담한 것처럼, 마계의 철은 강력한 효과들을 만들어냈다.

작업이 끝나자 채팅창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해머맨! 해머맨! 해머맨!

-판온 최고의 대장장이!

-그건 누구한테 팔 거야??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지! 자. 다들 잘 기억해두라고! 이 내가 최고의 대장….”

[<가장 뛰어난 갑옷을 창조한 대장장이> 칭호가 사라졌습니다.]

“…장이?”

-?

-???

-뭐야? 누가 가져갔어??

해머맨도 얼이 빠졌지만 보고 있던 사람들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 보고 있는 다른 대장장이 방송에서도 딱히 그런 건 안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떤 놈이 가져간 거야!?

<‘가장 뛰어난 갑옷을 창조한 대장장이’는 누가 가지고 갔는가?>

<제너럴갓태현이 수상하다! 제너럴갓태현의 최근 활동 심층분석!>

<길드 동맹의 비밀 대장간 탐사! 목숨을 건 방송!>

<위 글 당장 안 내리면 척살령이다! -길드 동맹->

게시판에는 온갖 추측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이 만든 가장 뛰어난 갑옷이라는 건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대체 누가 가져갔지? 하고 떠들던 플레이어들은 답이 나오지 않자 다른 걸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대체 뭘로 만들었길래 뛰어넘은 거지? 예전에 해머맨이 만든 게 뭐였더라?

-진짜 장난 아니었었지. 최상급 속성 강철에, 진은 들어가고, 황금이랑… 마법 부가된 보석에….

-그거 10만 골드 넘지 않았나?

-훌쩍 넘었지.

-그걸 넘겼다고? 와. 뭐 아다만티움을 통짜로 녹여서 만들었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다만티움 구하는 것도 구하는 거지만, 모아도 못 만들어.

-왜?

-아다만티움 같은 건 대장장이 기술 스킬 최고급 찍어야 그나마 다룰 수 있는 거잖아. 그것도 그나마지 잘 녹지도 않아. 억지로 만들었다가는 페널티 때문에 제약이 심할걸. 다른 거랑 섞어서 만들면 좀 부족할 거고… 저번에도 해머맨이 아다만티움 녹여서 팔찌 만들려다가 포기했잖아. 대장간 화력이 너무 낮다고.

-와. 해머맨이 지금 에랑스 왕실 대장간 쓰고 있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그렇지. 저번에 <태초의 불> 나온 그런 골짜기면 모를까….

-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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