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86화
“제가 후 하면 폐하는 하!”
“베켈프. 그냥 하나, 둘로 하자….”
있던 의욕도 사라지게 만드는 베켈프의 응원!
역시 드워프들 사이에서 악명 높았던 이유가 있었다.
‘으윽… MP 딸린다!’
<신의 예지>는 던전이나 퀘스트에 한해서 사기 스킬이었지만, 이런 제작 스킬 때에도 매우 유용했다.
자신의 실력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스킬!
…그러나 이렇게 오래 걸리는 제작 스킬에서는 아무래도 MP가 쭉쭉 닳을 수밖에 없었다.
태현은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던 MP 회복 포션을 빨면서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땅, 땅, 땅-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높아진다고 제작도 쉬워지진 않았다.
오히려 난이도는 더 올라갔다.
아다만티움을 다루는 과정은 총 세 가지로 이뤄졌다.
아다만티움을 녹이고.
녹은 아다만티움으로 모양을 만들고.
만들어진 모양의 갑옷을 다듬고.
그리고 아다만티움은 이 모든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망치질이 들어갔다.
[아다만티움은 열로 약해져도 쉽게 녹지 않습니다! 망치질로 미친 듯이 두드리십시오!]
[망치질이 부족합니다! 대장장이 스킬이 부족해서 페널티를 받습니다!]
[……]
[……]
조금 녹이기 위해서 엄청나게 두드리고, 녹아도 흐르지 않으니 또 엄청나게 두드려서 모양을 만들어야 하고….
그리고 그때마다 한 번이라도 망치질을 실패하면 페널티!
‘한 번 만들어서 너무 만만하게 봤었나?’
태현은 <고급 대장장이 스킬>일 때 한 번 <아키서스 화신의 아다만티움 갑옷>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 정도 스킬이 없었으니 훨씬 더 간단하게 만들었었는데….
본격적으로 만들려고 하니까 이렇게 힘이 드는구나!
“폐하! 멈추시면 안 됩니다!”
“너 좀 신난 것 같다?”
“아닙니다!”
베켈프는 다급히 망치를 휘둘렀다.
태현보다 스킬이 높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베켈프가 망치를 두드릴 때마다 모양이 팍팍 잡혀 나갔다.
작업을 시작하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이 계속 눈앞만 보며 망치를 휘두르는 중노동.
이것이 대장장이 직업의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어려운 퀘스트였다.
뛰어난 대장장이는 이런 중노동을 묵묵히 계속할 수 있는 사람!
오랫동안 전투 퀘스트만 하던 태현이었지만 간만에 이렇게 제대로 된 작업에 들어가니, 예전 기억이 슬슬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난 원래 대장장이였었지!
그러자 작업에 탄력이 붙었다. 나오던 페널티는 급격히 줄어들고 망치질은 점점 더 빨라졌다.
나중에는 베켈프가 ‘잠, 잠깐만 좀 천천히… 제 나이가 있는데 폐하…!’라고 애걸복걸할 정도로 바뀌었다.
* * *
“자이언 산맥?”
“거기를 굳이 가야 할까?”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태현이 작업하는 동안 태현 일행은 옹기종기 모여서 다음 퀘스트를 고민하고 있었다.
다음에 어떤 퀘스트를 하는 게 좋을까?
자이언 산맥은 지금까지 밝혀진 판온 맵들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축에 들었다.
마계처럼 레벨을 폭발적으로 올리기 가장 좋은 곳!
…그렇지만 일행들은 자이언 산맥이 싫었다. 마계와 같은 이유로.
“고대 거인은 진짜….”
“좀 그랬죠.”
고대 수인족도 그랬지만 고대 거인은 더 끔찍했다.
앞으로 ‘고대’ 붙은 놈들 나오면 상대하기 무서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계 갈 수는 없지 않나?”
“마계는… 음… 가긴 해야 하는데 언젠간….”
지금 고렙 이상 플레이어들은 한 번 이상 마계를 갔다 오고 있었다.
그만큼 마계가 무궁무진하고 챙길 게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고 싶지 않아!
“우리 새삼스럽게 적 너무 많지 않아?”
“우리가 좀 과격하게 플레이를 하긴 했어.”
태현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판온에서 가장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는 일행!
그들처럼 미친 퀘스트만 골라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크흠. 크흠.”
“?”
신전 2층에서 떠들던 일행은 건물 앞에서 헛기침을 하는 플레이어를 보며 의아해했다.
“30분 정도 저러고 있지 않았냐?”
“뭐지? 스파이인가?”
“스파이가 저런 짓을 해?”
“저건 막 자기를 알아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케인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최상윤이 의아해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알아봤지?”
“내가 자주 그랬… 아니, 그, 그냥 그런 것 같아서.”
“…그렇군.”
“케인 씨가 말하니 믿겠습니다.”
“믿어요.”
“이럴 때만 믿어주지 마 이 자식들아!”
쓸데없는 신뢰!
일행들이 생각한 것처럼 NPC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신전 성기사들이 나와 플레이어를 붙잡았다.
-아니야! 난 수상한 사람이 아니야!
-모든 수상한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지. 따라와라, 모험가! 아키서스 님의 이름으로 널 놓치지 않겠다!
-나, 나는 귀족이라고!
-귀족 사칭까지!
-아니. 이거 보라니까! 에랑스 왕국의 남작 작위!
-아주 정교한 위조로군!
-아오!
“어? 앨콧 아닌가요?”
이다비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물었다.
에랑스 왕국 남작 작위 갖고 있는 플레이어에, 저런 미묘하게 수상쩍은 행동이면….
“불러올까?”
“꼭 그래야 할까?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
케인은 앨콧이 당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는지 말했다.
“아니. 그래도 용건은 들어봐야지. 부르자.”
“쳇.”
* * *
“으윽. 변장을 해도 그렇지 아무도 못 알아보다니. 뭐 이런 놈들이….”
앨콧은 성기사들을 욕하며 투덜거렸다.
“왜 왔냐?”
“첩자질하러 왔냐?”
“에이. 조금만 더 일찍 오지 그랬냐. 그랬으면 너도 같이 붙잡혀서 매달렸을 텐데.”
“…….”
오자마자 쏟아지는 날카로운 말!
‘이런 김태현 같은 자식들이….’
앨콧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김태현과 같이 다니는 놈들 아니랄까 봐 말하는 게 김태현과 비슷했다.
“제안할 게 있어서 온 거다.”
“제안할 게 있어서 왔겠지 뭘 저렇게 폼을 잡고 말하는 거죠?”
“원래 저런 놈이야. 쯧쯧.”
“…아 됐어! 너희들하고 이야기 안 해! 김태현 어딨어! 김태현!”
울컥한 앨콧은 태현을 찾았다. 차라리 김태현하고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
“에이. 삐진 거 아니지? 여기 앉아서 이야기해 봐.”
“안 삐졌다!”
“삐진 것 같은데? 삐진 것 같은데?”
“…….”
앨콧은 케인을 노려보았다.
이 자식이 김태현한테 아주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화산의 저주> 퀘스트 관련해서 제안하려고 온 거다.”
“!”
“…!”
일행들의 표정이 변하자 그제야 앨콧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지. 너희들이라면 <화산의 저주> 퀘스트에 욕심을 낼 줄 알았다.”
판온에서 가장 도전적인 파티 중 하나 아닌가!
현재 진행 중인 전설 퀘스트, <화산의 저주> 퀘스트에 관심이 없을 리가 없었다.
“어? 아니. 우리 별 관심 없는데….”
“관심 없는데요.”
“?!?!?!”
앨콧은 깜짝 놀랐다.
“왜!? 아니?! 어째서!? 아. 알았다. 날 상대로 유리한 위치를 잡으려고 그런 척을 하는 거군! 그렇게 굴지 않아도 퀘스트는 독점할 생각이 없….”
“야. 야. 그게 아니라. 이 영지를 봐. <화산의 저주> 덕분에 몇 배는 이득을 보고 있다고.”
“…….”
그 말에 앨콧은 깨달았다.
아…!
얘네는 진짜 아쉬운 게 없구나!
남들 다 쪄죽어가는 동안 하늘성 기후로 인해 날로 먹고 있으니 깨고 싶지 않을 만도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이유!
“…잘 생각해 보라고. 지금이야 <화산의 저주>가 아직 견딜 만하지만 계속 심해지고 있어! 너희가 계속 이 영지에 있을 건 아니잖아. 나중에 가면 그냥 다 불바다가 될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그때 생각해도 되지 않나?”
“그러면 이미 늦지! 이 영지도 더워질지 모르잖아!”
“에이 좀 따뜻해지는 정도겠지.”
“또 더워지면 길드 동맹 놈들 다시 잡혀가는 거 아냐?”
“…아 됐어! 너희들하고 이야기 안 해! 김태현 어딨어! 김태현!”
다시 반복!
* * *
[아다만티움으로 모든 작업을 마쳤습니다!]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4에서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5로 스킬이 오릅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모든 대장장이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비전 대장장이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 NPC들이 당신을 먼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대장장이 기술의 끝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드워프들의 존경이…]
[……]
[……]
[……]
[레벨 업 하셨습니다!]
[칭호 <아다만티움의 창조자>를 얻었습니다!]
[칭호 <가장 뛰어난 갑옷을 창조한 대장장이>를 얻었습니다. 이 칭호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
[……]
‘고생한 보람이 있다!’
어마어마한 경험치와, 한 번에 스킬 레벨 1이 오르고, 거기에 각종 칭호까지.
‘<가장 뛰어난 갑옷을 창조한 대장장이>는 남이 더 대단한 걸 만들면 뺏기는 칭호군.’
플레이어들 중 가장 대단한 갑옷을 만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
지금쯤 태현에게 뺏긴 대장장이는 눈이 튀어나오는 충격을 받고 있을 것이다.
-어떤… 어떤 놈이 대체…!
‘후. 아다만티움을 다 쏟아부은 보람이 있군.’
아키서스 화신의 진화된 아다만티움 갑옷:
내구력 ∞/∞, 물리 방어력 720, 마법 방어력 720.
스킬 ‘아키서스의 상급 비전 방어’ 사용 가능, 스킬 ‘아키서스의 상급 마법 해제’ 사용 가능, 스킬 ‘아키서스의 상급 마법 흡수’ 사용 가능, 스킬 ‘아키서스의 상급 광역 결계’ 사용 가능, 피격 시 스킬 ‘아키서스의 상급 반격’ 발동.
‘아키서스의 화신’이 착용 시 주변 아키서스 관련 직업에게 강력한 보너스, HP 회복 속도, MP 회복 속도에 강력한 보너스, 물리 저항력 크게 상승, 마법 저항력 크게 상승,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파괴되지 않음.
아키서스의 화신이 대장장이 기술에 새로운 발전을 얻은 뒤 다시 한번 만든 갑옷이다.
흔히 볼 수 없는 아다만티움을 녹여 만든 이 갑옷은 재료, 신성력, 기술이 모두 합쳐져야 나올 수 있는 시대의 진정한 걸작이다!
저번에 한 번 만들었던 화신의 갑옷과는 같은 이름이었지만, 전체적인 능력치가 전부 다 대폭 올라 있었다.
태현의 갑옷만 만든 게 아니었다.
가장 갑옷이 필요한 케인부터 시작해서 최상윤의 가벼운 사슬 갑옷, 그리고 유지수나 이다비, 정수혁 같은 중갑옷을 쓰지 않는 직업의 갑옷도 만든 것이다.
아다만티움 갑옷은 약간의 페널티 정도는 감안해도 입는 게 너무 이득이었다.
‘무엇보다 아다만티움 양도 적게 들고!’
중갑옷으로 묵직하게 만들어야 하는 케인이 가장 많이 들었다.
나머지는 더 가볍게 만들어야 하다보니 사슬로 만드는 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오랜만에 피곤하군.’
하지만 기분 좋은 피곤함이었다.
어마어마하게 집중해서 커다란 퀘스트를 깨고 났을 때의 피곤함!
“드디어 완성됐다!”
태현은 기쁜 표정으로 하늘성에서 내려왔다.
다른 사람들이 분명 기다리고 있겠지!
“김태현 만나러 갈 거라고! 아, 이거 놓으라고!”
“아니 진짜 중요한 퀘스트 중이라니까??”
“구라치지 마! 니들이 나한테 사기 치는 거 다 안다고!”
“좀 놀렸다고 왜 그러냐! 얌전히 기다려!”
“…….”
-저거 팀 KL 아냐?
-에이. 팀 KL이 여기서 왜 저러고 놀고 있겠어. 지금 한창 바쁠 때인데.
태현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것들이 스킬 레벨이나 올릴 것이지….
[카르바노그가 위로합니다.]
‘별 도움 안 되는 것 같은데….’
* * *
“바쁜 와중에 이렇게 왔으니 정말 대단한 정보를 물어왔을 거라고 믿는다. 앨콧.”
“정, 정말 대단한 정보라니까. 너도 들으면 생각이 바뀔 거라고.”
올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대단한 정보면 김태현도 아쉬운 소리 하겠지?’ 하면서 왔던 앨콧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 같은 건 들지도 않았다.
“바로… <화산의 저주> 퀘스트야!”
“음….”
태현이 시큰둥하자 앨콧이 급히 하나를 더 추가했다.
“아. 그리고 <길드 동맹>에서 요즘 꾸미는 수작도 들고 왔는데.”
“오.”
‘휴. 1+1로 준비해 오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