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82화
윤 사장은 판온에 별 관심이 없었다.
판온이 엄청나게 인기라고 언론에서 계속 떠들어댔지만, 윤 사장은 ‘뭔 애들 장난 같은 게임이냐’ 하면서 무시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판온 선수들이 사인한 유니폼은 아무 가치가 없는 물건!
여기 모인 재계의 회장, 사장들이 저런 걸 가져가기 위해 돈을 낼 것 같지는 않았다.
“왜. 별로인가?”
“아닙니다. 회장님.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겠는걸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서 갖고 왔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미리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인사를 해왔다.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하하. 자네도 오랜만이네.”
“뭐 갖고 왔는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저번에 갖고 오신 낚싯대도 참 잘 쓰고 있는데.”
유 회장에게 몰리는 사람들을 보며 윤 사장은 속으로 질투했다.
지위도 지위고, 유 회장의 사람됨이 워낙 괜찮다 보니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였다.
“회장님. 요즘은 왜 골프장에서 뵙기 힘드십니까?”
“낚시도 안 권하시고… 이거 섭섭합니다.”
“허허. 요즘 일이 바빠서….”
“무슨 일 말입니까?”
“나중에 말해주겠네. 음. 자네들은 뭘 갖고 왔나?”
모인 사람들은 각자 갖고 온 물건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림부터 시작해서 각종 물건들이 촤르륵 나왔다.
“회장님께서는 뭘 갖고 오셨습니까?”
“나는… 유니폼을 갖고 왔지.”
“유니폼? 아. 혹시 판온 유니폼입니까?”
“에이. 회장님. 그냥 유니폼은 너무 심심한 거 아닙니까? 유성 게임단이 아무리 잘 나가도 그렇죠. 유성 게임단 자랑하시려고 오신 겁니까?”
유 회장과 비교적 친한 사장이 놀리듯 말했다.
유성 게임단이 요즘 엄청 잘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유성 게임단 유니폼이라니!
‘게다가 난 팀 KL 팬인데.’
유 회장 앞에서 말했다가는 정색할 수도 있어서 말 안 했지만, 사실 그는 김태현 팬이었다.
“사인 유니폼이네.”
“오호? 사인 유니폼이라면 설마 이세연 선수 사인이….”
사장은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김태현 팬이긴 했지만 이세연 사인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져다 주면 딸이 얼마나 좋아할까!
“이세연 선수 사인 유니폼도 있고, 다른 선수 사인 유니폼도 있고… 김태현 선수가 사인한 유니폼도 갖고 왔지.”
“!”
“!!”
“!!!!”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절반 넘는 사람이 고개를 홱 돌렸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윤 사장은 깜짝 놀랐다.
이 사람들 왜 이러지?
“김, 김태현 선수가 사인한 유니폼이 있다고요?”
“그래. 왜 그러나?”
“아, 아니. 유성 게임단 소속이 아니잖습니까?”
“좋은 일 하는데 개인적으로 부탁했네.”
“세, 세상에… 세상에…!”
사장은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유 회장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이세연 선수 사인 유니폼하고 반응이 좀 차이 나는 것 같은데?”
“하하… 아닙니다. 회장님. 오해십니다! 이세연 선수 유니폼도 좋지요! 저희 딸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장의 눈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김태현 사인 유니폼을 찾고 있는 사냥꾼의 눈!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되니 왜 이렇게 기분이….’
유 회장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복잡한 기분이었다.
가져 온 물건이 대박 난 건 좋은데….
왜 김태현이 더 인기가 좋은 걸까!
물론 유 회장도 이유는 알고 있었다.
이번 판온 리그에서 보여준 태현의 실력이 너무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유성 게임단이 그냥 강팀이라면….
팀 KL은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팀!
선수 여럿이서 만든, 아무 지원도 받지 않는 팀이 돌풍을 일으키며 리그를 뒤집는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환호했다.
어떤 대형 게임단도 따라할 수 없는 이야기가 팀 KL 뒤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고생해서 갖고 온 보람이 있군.’
유 회장은 당연히 고전을 각오하고 있었다.
태현이 이런 부분에서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놈이었으니까!
세상에 영지 팔면서 ‘영지는 자기 힘으로 가져가셔야 해요 ㅎㅎ’이러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태현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어. 그런 게 왜 필요하십니까?
-기부 경매에 갖고 가려고 하는데….
-아. 그런 거라면야 그냥 해드릴게요. 좋은 일 하시는데요 뭐.
-??!??!
유 회장은 정말 놀랐다.
-김… 김태현 선수 맞나?
-…어르신… 아니, 좋은 일 한다는데 그거 하나 못 해드리겠습니까. 게다가 도움도 받았고….
-뭔 도움?
-하하. 그건 알아서 찾아보십쇼. 어쨌든 별로 어려운 일 아니니 해서 보내겠습니다.
덕분에 유 회장은 김태현 사인 유니폼과 이세연 사인 유니폼이라는 두 전설 아이템, 아니, 기부에 낼 두 물건을 얻을 수 있었다.
전설 아이템은 농담이지만 정말 전설 아이템을 든 기분이 든다!
“아니… 저게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윤 사장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처음에는 유 회장한테 아부하나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반응이 진지했던 것이다.
심지어 몇몇 사장들은 진지하게 구석에서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얼마까지 쓸 거요?
-양보합시다. 이번에는….
-헛소리하지 맙시다! 이걸 어떻게 양보해!
-내 아들이 반항기란 말이야! 이런 기회 아니면 친해질 수도 없어!
-아, 당신 아들만 아들이요? 나도 아들 있어!
-난 내가 직접 입을 거니까 당신들이 양보하쇼!
-아니 이런 주책맞은 양반을 봤나…!
-나 주책 맞으니까 당신들이 양보하쇼! 중년이라고 이런 거 입으면 안 돼?
윤 사장의 질문에 옆에 앉은 사람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사장님. 김태현 모르십니까?”
“이름은 들어봤는데… 판온 하는 선수 아닌가?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윤 사장의 말에 옆에 앉은 사람은 매우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판온을 모르다니 너무 불쌍하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건가?”
“어휴. 대단한 수준이 아닙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야구나 축구는….”
“비교할 게 못 되죠!”
“그 정도란 말인가?”
“역시 유 회장님. 저 나이에도 아직 유행을 아시네요.”
유 회장 칭찬에 윤 사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나도….
나도 할 수 있어!
‘그러고 보니 가 있지 않았나?’
“우리 그룹도 게임단이 있을 텐데, 혹시 그 게임단 유니폼도 인기가 있을까?”
“LK 갤럭시요?”
“이름을 아는군? 역시 인기가 있는 건가?”
윤 사장은 살짝 기대한 채로 물었다. 혹시 LK 갤럭시도 저렇게 인기가 좋으면 지금 전화해서 사인 받아오라고 할….
“거긴 2부 리그 팀입니다. 사장님.”
“…응?”
판온에 관심이 없었으니 LK 갤럭시가 잘하는지 아닌지 잘 알지도 못했던 윤 사장이었다.
“2부라는 건….”
“그러니까 여기 보시면, 여기 있는 팀들이 1부고요… 여기보다 약간 부족한 팀들은 2부죠.”
“뭐!? 우리 게임단이 2부란 말이야?!”
윤 사장은 울컥했다.
기껏 게임단을 키워놨더니 2부라니!
이런 쓸모 없는 놈들 같으니!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정색하며 말했다.
“사장님. 판온 리그를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온갖 대형 게임단들이 투자를 받아가며 뛰고 있는 곳이란 말입니다. 2부 리그도 대단한 거죠.”
“아니… 그거야 그렇지만….”
“게다가 LK 갤럭시는 지원을 거의 못 받는 게임단입니다. 이 정도 성적도 잘 하고 있는 거죠.”
“…자네는 어떻게 남의 게임단 사정을 그렇게….”
“볼 줄 아는 팬이라면 기본입니다.”
선수 영입하는 꼴을 보면 그 게임단 자금 사정이 느껴진다!
옆에 앉은 사람은 보통 판온 팬이 아닌 모양이었다. 입만 열면 온갖 지식이 술술 터져 나왔다.
윤 사장은 슬슬 지겨워 물러서려고 했지만, 옆에 앉은 사람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을 판온에 초대할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붙잡고 온갖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이건 판온 1 때 있었던 일인데, 정말 그때는 파란만장한 때였습니다. 온갖 대형 길드들이 자기들이 최고라면서 돌아다니던 때였으니 말입니다. 저도 그때 게임 좀 했었는데, 저는 거기서 고개도 못 들고 다녔었죠. 그때 나타난 게 김태현 선수였는데….”
“…….”
윤 사장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간신히 참아야 했다.
‘내가 뭔 잘못을 했기에 이걸 들어야 하지?’
윤 사장은 차마 거절도 못하고 묵묵히 들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의외로 이야기가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됐나? 김태현이 세 길드의 길마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어떻게 했지? 아무리 셋을 상대로는 무리지 않나? 근처에 길드원들도 많았다면서….”
“역시, 윤 사장님.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아차.’
“그 다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김태현 선수가 한 달 전에 했던 광산 퀘스트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합니다. 이 광산에서 김태현 선수는….”
“오오, 오오오…?”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자리에 착석해 주십시오!
주변 사람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진행자를 노려보았다.
진행자는 당황했다.
다들 왜 이러시지?
‘유니폼… 유니폼…!’
‘일등 아빠가 되고야 말겠다.’
‘아들한테 줘서 뭐하냐! 내가 입는다!’
“앗. 경매 시작하네요. 사장님. 잠시만요. 저도 저걸 살 생각이라 집중해야….”
“아니! 거기서 끊으면 어떡해! 말을 시작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사, 사장님. 저거 저도 사야 하는데….”
“어차피 자네는 못 사! 그래서? 길마 세 명이 덫에 날아간 다음? 김태현은 어떻게 된 건가!”
기부 경매는 역대급으로 흥행했다.
특히 김태현 유니폼은 그 백미!
중년 넘은 아저씨들이 입찰에 실패해 머리를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윤 사장은 한 가지 취미가 생겼다.
“판온 1 동영상… 으음. 여기인가….”
판온 1 영상을 찾아보게 된 것!
어디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지 한 번 볼 생각이었다.
* * *
“2층은 좀 더 모일 때까지 기다리고, 우리는 우리 퀘스트를 하자.”
고대 제국 훈련 탑은 계속 기다릴 수가 없는 탑이었다.
한 층 깨질 때마다 다른 곳에서 퀘스트를 한 다음 돌아오는 게 일반적인 방법!
“케인. 노드란체 상태 어떻지?”
“영지 상태 아주 양호! 사람 숫자는 쭉쭉 늘고 있고, 폐쇄된 광산들도 빠르게 개발 중! 고대 지하 도시도 수리 중이니 이제 곧….”
“흠… 엘프들 힘도 좀 빌리면 좋겠군. 가까운데 협조 얻으면 좋지.”
“어떻게?”
케인은 의아해했다.
덩글랜드의 엘프들은 고귀하고 오만하고 싸가지 없기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덩글랜드 쪽에서 퀘스트 뛰는 플레이어들이 하소연을 할까!
“뭘 어떻게냐니. 이렇게.”
태현은 나가서 겔렌델 공작을 불렀다.
그리고 둘이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더니, 겔렌델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알겠습니다 페하!’이러는 것 아닌가!
[엘프 공작, 겔렌델이 자신의 함대를 이끌고 노드란체를 순찰합니다!]
[노드란체의 군사력이 일시적으로 크게 오릅니다!]
“!??!?!”
케인은 기겁했다.
태현이 귀족 NPC들과 매우 친하게 지내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말 한 마디로 함대를 빌린다고?!
“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오크들이나 고대 수인족 더 올까봐 무서우니 도와달라고 했더니 도와주던데?”
“…!!!”
무시무시한 친밀도!
거기에 어마어마한 공적치 포인트까지!
겔렌델 공작은 지금 보증 서달라고 해도 1분 정도 고민하고 결정할 수준으로 태현을 좋아하고 있었다.
“자. 그러면….”
태현은 일행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가 태현이 무슨 소리를 할 지 알고 있었기에 두근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다만티움 장비 세트 만들러 가자!”
“와아아아아아아!”
드디어 <태초의 불>로 아다만티움을 녹일 준비가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