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81화 (1,080/1,826)

§ 나는 될놈이다 1081화

그래도 다행인 건 이기고 있다는 것!

저래놓고 말려서 졌다면 혈압이 두 배로 뛰었을 것이다.

‘제발 실수하지 마라, 제발 실수하지 마라….’

에반젤린의 간절한 기도가 먹혔는지, 선수들은 무난히 경기를 이끌어서 끝을 냈다.

“이겼다! 이겼다고!”

“우리가 해냈어!”

“그래, 하면 되잖아! 이 자식들아! 이렇게만 하라고! 미친놈들처럼 우리 버리고 가지 말고!”

“사실 이번 경기도 우리 버리고 간 거지만…!”

힐러, 탱커 선수들도 딜러들을 껴안고 기뻐했다.

평소에는 ‘한 번만 더 멋대로 굴어버리면 진짜 팀킬한다’ 하며 으르렁대던 사이였지만, 경기에서 이기자 그런 건 사라졌다.

원래 이길 때는 평소 원한도 사라지게 마련!

“그런데 스콧. 평소에는 한 번 싸우면 절대 후퇴 안 하다가 죽었잖아. 이번에는 뭐 잘못 먹기라도 한 거야?”

“맞아. 평소에는 무슨 마약한 놈처럼 날뛰더니.”

“…….”

스콧은 날카로운 동료들의 말에 반성했다.

내가 진짜 개 같이 플레이하긴 했구나!

“김태현 선수한테서 배운 게 커다란 도움이 됐지.”

“오…! 그게 정말이야? 대단한데?”

“역시 초일류 선수는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김태현 선수가 뭘 가르쳐준 거야? 우리한테도 말해줘!”

다른 선수들의 말에, <토론토 메이플베어즈>의 딜러들은 코밑을 쓱 훔치며 말했다.

“김태현 선수는 가장 중요한 걸 가르쳐줬지.”

“그, 그게 뭔데?”

대체 뭐길래!

“바로…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

그 말에 힐러와 탱커들은 당황했다.

“뭐? 진짜?”

“좀 덜 믿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면서 머리를 써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 자식들이 가장 넘치는 게 자신을 향한 근거 없는 믿음인데…?

“아니야! 김태현 선수를 너희 같은 놈들 기준에서 생각하지 마!”

딜러들은 화를 냈다. 감히 불경하게!

“미안. 미안. 하도 신기해서 그랬지.”

“김태현 선수는 우리를 믿어주셨다고! 우리의 가능성을 믿어줬어!”

태현은 ‘야 왜 이렇게 플레이를 하냐?’ ‘너희는 쓰레기야!’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단단히 각오를 한 딜러들에게 그건 매우 큰 감동이었다.

물론 태현은 ‘얘네가 케인도 아니고 뭐 그렇게까지 참견을 하냐’ 생각해서 넘어간 거였지만….

딜러들은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거 말고는 뭐 없었고?”

“스킬들 조합하는 거하고 약점 같은 거 가르쳐주셨지.”

“…그게 가장 중요한 거 아냐?”

‘너 자신을 믿으렴’보다는 훨씬 더 대단한 가르침 같아 보이는데…?

그러나 딜러들은 다시 벌컥 화를 냈다.

“아니야! 그런 거하고는 다르단 말야!”

“좀 더 영혼적이고 정신적인 그런 가르침이었다고!”

“아, 아니. 왜 화를 내? 그것도 대단한 건데!”

경기가 끝나고 경기 인터뷰 시간이 되자 기자들이 호다닥 달려왔다.

2부 리그도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뜨거운 리그!

경기 후 인터뷰는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토론토 메이플베어즈>는 여러모로 화제의 팀이었다. 감독이 도중에 바뀐 것도 그렇고, 팀 색깔도 확실히 강렬하고….

그런 팀이 이번에 불리한 싸움을 뒤집고 승리했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다!

“대니얼 선수! 이번 경기에서 불리하다는 평가를 뒤엎고 에게서 승리를 거뒀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감사합니다. 지금 엄청나게 기쁘고요. 는 강한 팀인데 승리를 거둘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길 수 있었던 건 감독님과 저희 팀 스태프 모두가 저희를 응원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범적인 말에 에반젤린이 눈시울을 붉혔다.

게임도 저렇게 좀 인터뷰처럼 모범적으로 해주면 소원이 없을 텐데…!

“하지만 그것 말고도, 이번 경기를 이길 수 있었던 건 김태현 선수 덕분이었습니다!”

“?”

“??!”

“!!!!!!”

무심하게 받아적고 있던 기자들이 전원 고개를 들었다.

마치 짜고 친 것처럼 동시에!

“방금 김태현 선수라고 하셨나요?”

“예! 김태현 선수께서는 저희를 도와주기 위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오셨습니다! 김태현 선수가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이번 경기를 이렇게 이길 수 없었을 겁니다!”

“오….”

“저게 정말이야?”

“아니. 김태현 선수는 대체 일상 생활을 하고 있는 거긴 한 거야?”

기자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태현이 대충, 판온 랭커로서 레벨 유지하고, 퀘스트 하고, 리그 경기 뛰고, 게임단 사장이니 각종 업무도 처리해야 할 거고, 보아하니 선수 관리도 다 자기가 하는 것 같던데….

그 와중에 다른 팀 가서 임시 코치까지 하다니!

사람 맞나?

“지금 그게 중요해? 빨리 받아 적어! 기사 올려야 해!”

“아차. 미안. 미안.”

기자들은 신이 나서 선수들의 인터뷰를 받아 적었다.

안 그래도 주목 받기 좋은 상황인데 김태현까지!

기자들 사이에서 김태현은 흥행이 보장된 수표나 다름없었다.

오죽하면 기자들 사이에서 ‘김태현 이름 어떻게든 집어넣는 TIP’ 같은 게 돌까!

-<베이징 파이터즈>, 충격적인 패배 이후 격해지는 내분… 감독 해임설까지. 이 이유는 역시 ‘김태현’?

-<길드 동맹>, 대규모 투자 이후 공격적인 영지 건설… 앞으로의 오스턴 왕국은? 이에 대해 김태현 선수는 이렇게 밝혀… ‘딱히 관심 없다’

-유명 랭커 게리, 김태현과의 숨겨진 관계에 사람들 모두 ‘충격’ …지나가다 한 번 만난 적 있다고….

물론 이런 기사들은 리플에 욕이 수백 개 달려 있었다.

-김태현하고 아무 사이 아닌 걸 왜 기사로 쓰냐고! 미쳤냐고!

-기자야 그렇게 살지 마라!

하지만 이번 건 진짜 김태현!

기자들은 신나서 받아 적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먼저 올려야 한다!

* * *

“으으윽. 혈압이….”

“단장님! 진정하세요!”

“내가! 뭐라고 그랬나! 어! 토론토 팀이 김태현을 코치로 데리고 가면 위험하다고 그러지 않았나!”

의 단장은 방방 뛰었다.

직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단장이 ‘아! 위험하다니까!’ 할 때도 솔직히 ‘에이 김태현이 정말 갈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그렇게 바쁜 김태현이 어떻게 코칭까지 할까!

게다가 김태현이 가르친다고 해도 그렇게 바로 효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김태현도 신이 아니라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효과가 바로 나오겠나!

…그런데 정말 바로 나왔다.

그것도 하필이면 를 상대할 때!

효과가 너무 극적이라 그들도 할 말이 없었다. 선수들의 약점이 싹 사라지니 전투력이 장난 아니게 올라간 것이다.

“자네가 뭐라고 했었지? 책임지게!”

“예? 제가 뭐라고 했죠?”

-단장님. 반드시 김태현 선수를 모셔오겠습니다!

-메이플베어즈 쪽이 섭외를 한다면 저희도 반드시 섭외를 하겠습니다!

“…….”

스태프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그렇게 말했었지!

“아, 아니. 단장님. 그건….”

“말한 걸 지키게!”

“무, 무리입니다! 그럴 만한 예산도 없어요!”

“꼭 돈으로 해결을 봐야 하나! 정성! 정성으로 해결을 보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게 통합니까! 돈 아니면 해결 못 봐요! 토론토 팀 기사 못 보셨습니까? 코칭 한 번 받으려고 거액을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걔네 감독부터 단장까지 전부 다 찾아가서 삼고초려 한 건 물론이고요!”

물론 헛소문이었다.

기사들이 신이 나서 부풀리다 보니 매우 달라진 것!

태현은 그냥 아는 사람 부탁이라 해준 것에 가까웠지만, 기사는 ‘<토론토 메이플베어즈>가 어마어마한 제안과 대접을 통해 초일류 선수의 마음을 돌렸다! 그 선택은 옳았다!’이러면서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그럴듯해서 스태프들도 ‘역시 그런 식으로 마음을 돌렸나!’ ‘하긴 그 정도는 해야겠지!’ 하고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가서 직접 무릎을 꿇겠네!”

단장은 열정 넘치는 사람이었다.

예산은 팍팍 깎이고 그룹 내에서는 게임단이 푸대접을 받고 있었지만, 반드시 공을 세워서 실적을 내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사람!

게임은 잘 몰라도 의지 하나는 대단했다.

“단장님. 감독님이 자존심 강하신 분이라….”

“잘리고 싶지 않으면 따라오라고 하게!”

“…그건 그래도 예산이….”

“크으으…!”

단장은 이를 갈았다.

다른 대형 게임단들은 본사에서 팍팍 지원 받으면서 뛰는데, 그들은 허리띠를 조여야 하니….

요즘 유성 게임단이 너무 부러웠다.

대체 유성 그룹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걸까?

회장이 미쳤다는 소문부터 회장이 판온 직접 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는데, 그런 건 다 헛소문일 것이고….

‘판온이 이렇게 크게 성장할 걸 예측하고 미리 준비한 거겠지! 과연 유성 그룹의 인재들은 대단해…!’

판온의 시장성을 정확히 예측하고, 막대한 투자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성공!

지금 유성 게임단이 성과를 거두면서 만들어낸 브랜드 홍보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우리도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 * *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음. 오랜만이군. 윤 군.”

LK 그룹의 윤 사장은 유 회장을 보고 깍듯이 인사했다.

나이 차이도 그렇고, 유 회장은 재계의 원로 취급을 받는 사람 중 하나.

앞에서 공손하지 않을 사람은 얼마 없었다.

‘이 사람은 나이를 거꾸로 먹나?’

윤 사장은 유 회장을 보며 의아해했다. 저번에 봤을 때부터 혈색도 좋아지고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하긴, 하는 일마다 다 잘 되고 있으니….’

LK 그룹의 후계자인 윤 사장은 유성 그룹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에게 유성 그룹은 타도해야 할 1인자!

유성 그룹이 있는 한 LK 그룹은 영원히 2인자 이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자네는 뭘 갖고 왔나?”

“예. 명인께서 만드신 청자 다기 세트를 갖고 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재계의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기부 경매 때문이었다.

이제 한 해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겠다, 각자 이렇게 모여 갖고 온 물건들을 경매에 붙인 뒤 그걸 기부하는 것이다.

훈훈하고 좋은 행사였지만, 여기서도 경쟁이 있었다.

누가 더 귀하고 좋은 걸 갖고 오느냐의 경쟁이었다.

일종의 자존심 싸움!

문화유산에 버금가는 귀한 보물을 갖고 오는 건 안 됐고, 너무 대놓고 비싼 걸 갖고 오는 것도 안 됐다.

그러다 보니 참가하는 사장들이나 회장들은 좋은 걸 갖고 오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윤 사장은 자기가 고른 선택에 매우 자신이 있었다.

유명한 명인이 직접 구워 만든 청자 다기 세트!

보기만 해도 품격 넘치는 것이, 다들 보면 감탄할 것이 분명했다.

“오오… 괜찮겠군. 윤 군. 혹시 그 도자기, 도성 김 선생께서 만드신 건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우리 집에도 있으니까…? 대단하신 분이지.”

유 회장의 말에 윤 사장은 허탈해했다.

나름 아무도 예상치 못할 물건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유 회장은 이름만 듣고 맞춘 것이다.

뭐 이런…!

‘아직… 아직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갖고 온 것보다 더 괜찮을 수 있으니까.’

“회장님께서는 무얼 갖고 오셨습니까?”

“아. 나는….”

유회장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왠지 민망한 표정이었다.

“?”

대체 뭘 갖고 왔길래 저러지?

“으흠. 판온 선수들의 사인이 들어간 유니폼을 갖고 왔네.”

“…….”

윤 사장은 순간 웃음과 비웃음이 동시에 나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판온 선수 사인이 들어간 유니폼이라니!

그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야구나 축구도 아니고 고작 판온… 나 원 참….’

윤 사장은 속으로 유 회장을 비웃었다. 아무리 유성 그룹의 게임단이 잘나간다고 해도 그렇지 여기까지 갖고 오다니.

‘오늘 망신 좀 당하시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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