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80화
-적어! 적고 있지?
-물론이지. 그런 걸 묻냐? 당연한 거 아니냐?
태현의 뒤에서 선수들은 귓속말을 교환하며 흥분하고 있었다.
이것이 김태현의 조언인가!
피가 되고 살이 될 조언…!
“그래도 자기 팀 선수들은 잘 챙기면서 하는 게 좋지.”
“그, 그렇군요. 실례지만 김태현 선수는 어떤 식으로 챙깁니까?”
“나 같은 경우는 우리 팀 노리는 선수를 먼저 자르는 식으로 하는데.”
태현은 매우 간단한 문제 해결 방식을 갖고 있었다.
공격 상황이다→공격을 한다.
방어 상황이다→공격을 넣어서 방어를 쉽게 한다.
회피 상황이다→공격을 퍼부어서 회피를 쉽게 한다.
공격, 공격, 공격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마법!
태현의 말을 들은 선수들은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감격했다.
‘그래! 우리한테는 이런 게 부족했어!’
‘우리는 딜에 집중한다고 해놓고 우리 스스로의 딜을 믿지 못했던 거야!’
‘김태현 선수처럼 스스로의 딜을 믿을 수 있어야 했는데…!’
“내가 뭐 가르쳐 줄 게 많지는 않으니까. 직접 실전으로 가르쳐줄게. 스킬 쓰면서 딜 빠지는 거하고, 대처법하고… 맞다. 팀플레이. 팀플레이 해. 알겠지?”
태현은 그래도 너무 말 안 하는것도 미안해서 팀플레이를 한 번쯤은 말해줬다.
“예!”
“꼭 팀플레이 하겠습니다!”
‘어. 뭐야.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이는데?’
태현은 선수들의 반응에 살짝 기뻐했다.
원래 저런 딜러들은 나사가 하나쯤 빠진 놈들이라, ‘팀플레이 해야 해!’ 하면 ‘왜 팀플레이 해야 하죠? 팀은 져도 제가 이기면 이긴 거 아닐까요?’ 같은 소리를 하는 놈들이 많았는데….
에반젤린이 불평한 것치고는 의외로 다들 멀쩡하잖아?
“자. 그럼 투기장으로 들어와라! 스킬 부딪히면서 알려줄 테니까.”
“예!”
“팀플레이도 잊지 말고!”
“예!”
“팀플레이! 팀플레이!”
선수들은 신나서 팀플레이라고 외치며 태현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팀플레이!’
‘팀플레이=우리 팀 힐러가 노려질 것 같으면 무조건 먼저 죽인다!’
‘더욱더 딜을 갈고닦는 것이야!’
‘김태현 선수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거겠지.’
태현의 넓은 등이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희는 딜러면서 딜이 부족하다! 진정한 팀플레이의 완성은 딜로 완성되는 거다! 내가 직접 보여주겠다!
‘크윽! 평생 따르겠습니다!’
‘너무… 너무 멋있어요…!’
* * *
태현은 몰랐지만, 태현은 의외로 가르치는 재능이 있었다.
사실 케인부터 시작해서 태현 일행의 대부분을 태현이 키워낸 거였으니, 가르치는 능력이 없을 리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태현은 분석력이 좋았다.
“네가 지금 <피의 광란> 걸고 <피의 일격>-<광전사의 돌진>으로 이어지는 콤보를 쓰는 것 같은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없잖아. <광전사의 돌진>만 쓰고 MP 아낀 다음 <피의 일격>은 나중에 쓰자고. 흥분했다고 스킬 막 쓰지 말고.”
“!!”
“자. 너는 일단 방패를 들고 있으면서 방패를 거의 안 쓰고 있는 게 문제인데, 방패를 들고 있으면 써야지. 안 그래? 방패 스킬 뭐 있어?”
“일단 <방패 돌려치기>하고 <칼날 가시 방패> 스킬 쓰는데….”
“방패로 딜 넣지 말고 스턴부터 걸자. 스턴 무시하는 놈들이 꽤 많은데 판온에서 스턴은 기초 중의 기초야. 방패 쓰려면 특히 스턴 걸어야 해.”
“!!!!”
태현은 몇 번 겨루지도 않았는데 <토론토 메이플베어즈> 선수들의 스타일과 약점, 보완점을 술술 늘어놓았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 움직이는 거 보니까 딜 넣으면서 회복하는 스킬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맞나?”
“!??!!?”
심지어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스킬까지!
“어, 어떻게…?”
“싸우면서 빠져야 하는데 배짱 부리길래 혹시 뭐 숨긴 게 있나 했지. 어쨌든 있으면 숨기지 말고 쓰자.”
“하, 하지만 비장의 무기… 비장의 카드 같은 건데….”
“응. 그러니까 의미 없으니까 쓰자고. 그건 별로 비장도 아냐.”
태현은 비효율적인 스킬 콤보를 지적해 주고, 갖고 있는 스킬들 중 쓸모 있는 것들을 다시 골라준 다음, 마지막으로 싸우면서 명심해둬야 할 것들을 알려줬다.
꽤 오래 가르쳤지만 선수들은 누구 한 명 싫증 내지 않고 엄청나게 집중해서 들었다.
평생 한 번 받기 힘든 기회!
팀 KL 선수들이야 태현과 언제나 같이 있으니 태현의 가치를 정확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다른 해외의 선수들에게 태현은 이미 판온의 황제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이렇게 배울 수 있다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이렇게 우리를 가르쳐주시면서 한 번도 싫증이나 짜증을 내지 않으시다니….’
‘이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태현도 속으로 생각했다.
‘와. 케인보다 잘 배우는데?’
케인이 다섯 번 말해야 알아듣는 걸 한 번에 알아듣는 선수들!
가르치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 * *
“이 정도면 된 거 같다. 다들 열심히 경기하고. 너무 에반젤린 속 뒤집지 말고.”
“저희는 감독님을 존경합니다!”
“최대한 따르려고 하고 있는데, 이게 싸움에만 들어가면 머리에 피가 올라서….”
선수들은 미안한 표정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에반젤린이 미친놈처럼 날뛰는데 그걸 무시할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근데….
근데 경기만 시작하면…!
태현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게 쉽게 고쳐지지 않지. 오늘 배운 거 명심해두고, 팀플레이를 마음속에 담아두자고.”
팀플레이가 뭔지는 자기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팀플레이를 꾸준히 말하는 태현!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팀플레이!”
“꼭 팀플레이!”
“이번 경기에서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 * *
“어? 2부 경기를 보는 거야?”
최상윤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1부 리그 경기도 귀찮아하면서 보는 태현이었는데 굳이?
“얘네가 <토론토 메이플베어즈>야.”
“아…! 걔네! 잘 가르쳤냐?”
최상윤은 물어보면서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랭커들이 임시 코치를 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보통 엄청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 번 가르침을 받았다고 확 성적이 오르는 건 역시 힘든 것이다.
일반적으로 랭커들을 임시 코치로 부르는 건 특정 스킬이나 특정 상대를 노린 일회용 전략을 위해서였다.
아무리 태현이라지만 그렇게 쉽게 성과를 내기는 힘들겠지?
“괜찮던데? 잘 배우더라.”
“어? 진짜?”
“음. 뭐 나한테 배웠다고 갑자기 연승을 하진 않겠지만, 약점 같은 거 많이 없앴지.”
“오… 대단한데?”
옆에서 듣고 있던 케인이 슬쩍 다가와서 물었다.
“걔네랑 나랑 누가 더 잘해?”
“…….”
“…….”
“…….”
태현, 최상윤, 정수혁 숙소에 있던 모두가 침묵했다.
태현은 상냥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너지!”
“그, 그렇지?”
“당연하지. 1부와 2부의 차이가 있는데.”
케인은 신이 나서 가버렸다. 최상윤은 몰래 물었다.
“설마 걔네가 더 잘하냐?”
“컨트롤만 놓고 보면 좀….”
“…….”
“…….”
모두 안쓰럽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경기 시작한다!”
-안녕하십니까. <토론토 메이플베어즈>와 의 경기가 이제 곧 시작됩니다. 해설자님. 이번 경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두 팀 다 2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팀이지요. 하지만 저는 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오, 이유가 궁금한걸요?
-알다시피 는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을 바꿀 수 있는 팀입니다. 재능 넘치는 한국 선수들이 많은 만큼 가능한 전력이겠죠. 그에 비해 <토론토 메이플베어즈>는 전략이 좁은 팀입니다. 자신들의 팀이 갖고 있는 확실한 장점으로 밀어붙이는 팀이지만… 아무래도….
-허를 찔리면 불리하다?
-예. 그렇습니다. 실제로 저번에 <토론토 메이플베어즈>를 상대하는 전략으로 탱커 네 명과 힐러 한 명을 넣지 않았습니까? 요즘 유행하는 전략 중 하나지요. 는 충분히 쓸 수 있을 겁니다.
4탱 1힐은 우악스럽게 딜러 위주로 밀어붙이는 상대의 발을 묶고,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
딜러 위주의 팀한테는 특효약!
-아. 해설자님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확실히 <토론토 메이플베어즈>는 강한 팀이지만, 안정적인 경기력을 갖고 있냐면은 대답하기 어렵지요! 저번에도 딜러들의 실수로 인해 다 이긴 경기가 뒤집어지지 않았습니까? 아, 역시 는 탱커 네 명으로 나옵니다!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하!
-그래도 아직 모릅니다. 시즌 중에 감독이 사퇴했는데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 성적이 좋아진 <토론토 메이플베어즈> 아닙니까! 선수들이 잠재력이 있어요.
-아. 지금 첫 경기가 시작됩니다. 초원 맵이네요. 근접 딜러들 위주인 토론토가 더욱 힘들게 됐… 아, 돌진합니다! 돌진해요!
-나눠져서 돌진합니다! 아! <토론토 메이플베어즈>!
-아니, 이러면 안 되죠! 토론토! 아무리 공격을 좋아해도 탱커 네 명한테 먼저, 그것도 나눠서 돌격하는 건 자살행위에요! 자기들이 먼저 부러질 겁니다!
-너무 무모한 전술 같은… 앗, 동시에 돌격합니다! 상대 진형으로 파고드는 <토론토 메이플베어즈>!
-파고 들었습니다! 파고드는 데 성공합니다! 당황했습니다! 스킬 못 쓰고 있습니다!
-토론토! 힐러만 노리고 있어요! 딜이 장난이 아니에요! 힐러 피가 쭉쭉 빠져요!
-의 허점을 정확히 찔렀어요! 설마 이렇게 덤벼오겠나? 했던 거 같아요! 아, 아! 힐러 잡혔어요! 토론토! 잡는 데 성공했어요! HP 30%도 안 남았지만 힐러 잡았어요! 아! 튑니다!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 이대로 놓치면 안 돼요! 놓치면 게임 망합니다! 한 명이라도 잡아야 해요! 아! 놓칩니다…!
-전부 다 빠져나갑니다! 이걸로 게임은 토론토 쪽으로 기웁니다!
-차이가 벌어집니다! 밀려요! 계속 밀립니다. 아아아…!
탄식과 함께 토론토 쪽으로 경기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한 번 잡은 이점을 토론토는 절대 놓치지 않았다.
얄미울 정도로 침착하게 한 방씩 먹이는 선수들!
게다가 딜러들도 예전과 달리 놀라울 정도로 끈질겼다.
‘이 자식들 뭐 잘못 먹었나??’
‘뭐야 대체? 왜 이렇게….’
사실, 토론토의 딜러들은 힐러까지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치고 들어가서 진영 좀 흔든 다음 어떻게든 유인해내서 싸워보려고 했는데….
상대가 예상 못했는지 의외로 힐러 방어를 허술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핫핫핫! 우리가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김태현 선수도 보고 있을까?”
“분명 보고 있을 거야! 뿌듯해하고 계실 거라고!”
경기를 보던 최상윤이 당황해서 물었다.
“하는 게 너랑 비슷한데 저런 전략 가르쳤냐?”
“…아니 안 가르쳤는데.”
전투를 가르쳤지 저런 전략은 가르친 적 없어!
“근데 하는 게 너하고 비슷한….”
기습적으로 치고 빠지는 런 앤 건 전략!
태현은 혼자서 하지만 이들은 여럿이서 한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아마 태현이 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야 우리도 저거 해보자! 배웠잖아!’, ‘그런가? 우리도 배웠으니까 할 수 있나?’ 하고 한 게 분명!
에반젤린은 경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이마를 짚었다.
“으으으… 좀 정석적인 경기 한 판이라도 하면 안 되니…!”
선수들이 ‘시작하고 나서 가볍게 견제할 겸 정찰 시도해 봐도 되나요?’ 묻길래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HP 관리하면서 치고 빠져야 해!’라고 했는데….
저런 걸 꾸미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