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78화
훈련장 같은 건물은 쉽게 푸는 건물이 아니었다.
왜 길드들이 고생고생해서 도시를 점령하겠는가?
도시의 핵심 시설들을 혼자 이용할 수 있으니까!
기껏 노력해서 영지 얻어놓고 저걸 남한테 퍼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여기에 있었다.
<고대 제국 훈련장 무료 개방>!
<케인, ‘나는 길드 동맹같이 쪼잔한 놈들과는 다르다’라고 밝혀…>
<케인, 노드란체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
-????
-아니 저거 뭐 잘못 먹었나? 지가 김태현이야??
-조용히 하세요!
-길드 동맹 놈들 자기가 욕먹으니까 케인 끌어내리려는 거 봐. ㅉㅉ.
-케인 님을 좀 본받지는 못할망정….
-아니, 아니, 아니… 너희도 같이 욕해놓고…!?
인터넷에서 케인 욕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당황했다.
원래 케인은 까야 제맛인 사람!
케인을 진심으로 싫어한다기보다는, 팀 KL에서 그런 이미지인 사람이 케인밖에 없었다.
잘해도 이상하게 까이는 사람!
그런데 갑자기 진짜 케인 팬들이 우르르 나타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케인은 판온 최고의 탱커이며 이것은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유성 게임단의 탱커는 밥만 축내는 놈이고, 베이징 파이터즈의 탱커는 탱커라고 할 수도 없는 놈이며, 뉴욕 라이온즈의 탱커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놈이다!
-단체로 미쳤냐!?
-케인 까는 놈들은 길드 동맹들임!
-맞다 맞아! 케인 까는 놈들은 길드 동맹밖에 없어!
-야! 케인 놈이 대회에서 뭘 했다고!
-하. 이거 참 뭘 모르는 분이….
-케인이 뭘 했는지 처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가 언제였냐면 던전 공략 대회에서….
-케인 그놈 자기가 밥도 안 해먹고 사장 시키는 놈 아님?
-님 신고.
-님 신고.
-님 신고.
-?!!?
반박할 수 없는 의견에는 신고로 상대하는 케인 팬들!
그러나 인터넷에서 이렇게 쓸데없이 싸우는 것과 별개로, 눈치 빠른 플레이어들은 벌써 짐을 싸고 있었다.
-야! 고대 제국 훈련장 개방이래! 당장 퀘스트 취소하고 달려와!
-무조건 먼저 들어가야 한다!
판온 좀 해본 사람이면 이런 훈련장 시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클리어만 하면 각종 스탯, 스킬 보상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곳!
원래라면 연계 퀘스트를 수십 개 해도 얻기 힘든 걸 그냥 클리어만 하면 주는 것이니….
판온에서 이렇게 퍼주는 곳도 드물었다.
‘사람 많으면 못 들어갈 수도 있다!’
‘선착순 제한 있을지도….’
플레이어들은 미친 듯이 달렸다.
이런 훈련장은 인기가 있어서,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제한까지 없으니 더더욱…!
재수 없으면 못 들어간다!
…그러나 노드란체의 훈련장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오시면 됩니다! 이쪽입니다!”
“훈련장 찾아오셨죠?”
“어? 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친절하게 노드란체 바닷가에서부터 플래카드를 들고 환영하고 있었다.
“어… 아직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럼요!”
“여러분! 노드란체 기념품 사세요! 단돈 1 실버!”
“노드란체에서만 맛볼 수 있는 <노드란체 기념 팝콘> 팝니다!”
“훈련장에서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안 될지도 모르는 아이템 팝니다!”
이미 소식을 듣고 달려온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그들은 신나게 뜯어낼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엇. 파워 워리어 팝콘이라면 인정이지.”
“파워 워리어 팝콘이라면 좀 사갈까.”
다른 수상쩍은 건 안 사도, 플레이어들은 팝콘은 샀다.
<파워 워리어> 길드의 팝콘 솜씨는 유명했던 것이다.
초기 때부터 계속 팝콘만 미친 듯이 만들던 길드원들이 많아, 팝콘 관해서는 정말 뛰어난 요리 스킬을 자랑한다!
다른 길드들도 <파워 워리어>에게 덤벼들었지만 팝콘 관해서는 이길 수가 없었다.
값싸고, 빠르고, 맛있게!
“여러분 기념품은 안 사실래요?”
“에이. 기념품은 뭐하러….”
“고대 제국의 숨겨진 비밀이 여기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훈련장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데요!?”
“…진짜?”
“그런 거라면야….”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홀린 것처럼 하나씩 사기 시작했다.
“야. 저런 걸 왜 사?”
“나 예전에 마계 갔을 때, 거인 놈들이 기념품 사라고 했을 때 안 산 게 아직도 후회된다. 이런 건 사놓는 게 좋아.”
“…그러게!”
노련한 플레이어들은 뭔가 눈치채고 기념품을 하나씩 샀다.
더 노련한 플레이어들은 기념품을 싹 사재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딱히 쓸모는 없었다.
* * *
“????”
“적이 없네?”
“몬스터도 없잖아?”
“누구랑 싸워야 하는 거야?”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은 웅성거렸다.
보통의 훈련장과 너무 다르다!
저 멀리 있던 태현이 그들에게 외쳤다.
“여긴 싸우는 곳 아니다!”
“앗! 김태현 선수!!”
“김태현이 저기 있어…!”
플레이어들은 놀랐다.
설마 얼굴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던 것!
“김태현 선수! 사인해 주세요!”
“이 거리에서 뭐 어떻게 사인을….”
“아차.”
“그보다 김태현 선수! 이 훈련장 대체 뭡니까?”
“아… 여긴 싸우는 게 아니라 그냥 맨몸으로 뛰어넘는 곳이야.”
“!!!”
“도중에 함정도 나올 테니까 잘 피하고.”
“뭐야? 별로 안 어렵잖아.”
“김태현은 왜 안 깨고 저기 있는 거지?”
“새로 온 사람들한테 설명해 주려고 그런 거겠지.”
“와… 사람이 저렇게 친절해도 되는 건가?”
“케인 놈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인성….”
“…….”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던 케인은 매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야…!
나 여기 있어 이것들아…!
“그러면 간다!”
플레이어 한 명이 자신감 넘치게 달려갔다.
그리고 점프!
“으아아아아아!”
그리고 추락!
“…….”
“…….”
싸늘한 침묵이 맴돌았다.
“…뭐, 뭐야 저놈?”
“걍 바보 아닌가?”
“내가 간다! 점프!”
그리고 추락!
“이, 이거 거리가 생각보다 되는데?”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평소에 스킬, 스탯 빨로 편하게 점프하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진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야 하는 것!
“성, 성공했다!”
“오오… 오오…!”
그래도 수십 명이 넘어가자 한두 명은 성공하는 사람이 나왔다.
태현은 그들을 보고 외쳤다.
“조심해!”
“조심하라는데?”
“하하! 김태현! 우리는 성공했다고! 뭘 조심 으억!”
날아오는 돌기둥에 치여서 추락하는 플레이어!
“…조심하라고 했잖아!”
“이, 이런 거인 줄 어떻게 알고…!”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여기까지 좀 애들이 와줘야 태현도 앞으로 갈 텐데….
* * *
참가자가 수백 명, 수천 명까지 늘자 이제 첫 번째 점프는 다들 통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슬 인간의 본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히히히 못 가!”
“아니 미친놈아!”
점프하려는 남의 발목을 잡는 플레이어들 등장!
‘이… 이거 재밌다!’
‘이거는 먹히겠는데?’
거기에 이 훈련장을 다른 식으로 이용하는 플레이어들까지 나왔다.
이 훈련장을 깨는 건 어렵겠지만….
깨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이 훈련장 1층을 깰 때까지 판온을 끄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지켜봐 주십시오!”
“이 구간에서 점프를 하려면 어느 길이 최적인지 제가 분석을….”
개인 방송 좀 한다는 플레이어들까지 우르르!
태현은 더욱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쟤네 언제 여기까지 오냐….”
하라는 점프는 안 하고 딴짓만 하고 있어!
그래도 조금씩 넘어오고 있으니 좀만 더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탁-
“후… 30번째 만에 드디어…!”
“저기 김태현이 기다리고 있는데.”
“…야. 잠깐만. 이거 기회 아니냐?”
“뭔 기회?”
“김태현 이길 기회!”
“…훈련장 나가자마자 뒤질 기회가 아니라?”
친구는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김태현한테 처맞는 랭커들 동영상 보고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그러나 플레이어는 자신만만했다.
“야. 이거 가지고 김태현이 공격하겠냐? 김태현이 케인도 아닌데.”
“하긴… 이건 뭐 PK도 아니고 훈련장이니까….”
“스타가 될 기회라고! 잘 생각해 봐. 게시판에 <훈련장에서 김태현 이긴 플레이어>로 동영상 올라오면 어쩔 거 같냐!”
“욕 미친 듯이 달릴 거 같은데.”
김태현 팬들 생각하면 ‘뒤져’가 가장 약한 욕일 거 같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 말고. 인기는 확실히 끌 거 아냐.”
“확실히 유명해지긴 하겠군….”
“게다가 스킬, 스탯도 봉인된 상태라고! 우리가 유리해!”
듣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솔깃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플레이어는 다른 사람들도 끌어들이기로 했다.
“야. 너희도 참가해!”
“뭘?”
“김태현 공격에!”
“…같이 죽자고??”
“아니야, 인마! 잘 들어봐!”
소곤소곤-
태현은 그의 앞까지 온 플레이어들이 하라는 점프는 안 하고 수군거리는 모습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르바노그가 쟤네 수상하다고 합니다.]
‘응. 보아하니 날 공격하려고 하고 있군.’
[…카르바노그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습니다.]
‘원래 플레이어는 날 공격할 놈이랑 언젠가 날 공격할 놈. 둘 중 하나야.’
[…….]
태현은 기지개를 켰다. 오랫동안 기다린 탓에 그도 좀 심심하던 참이었다.
훈련장이었기에 떨어져서 죽든 뭘 하든 아무런 페널티도 없었다.
그러니까 쟤네들도 저렇게 덤비는 거겠지.
‘근데 내가 끝나고 보복할 거란 생각은 안 하나?’
보통 그럴 텐데?
겁이 없는 건가?
태현은 설마 자기 이미지가 너무 좋아서 상대방이 그런 걱정을 안 하고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런 미친 상황이…!
탓-
“김태현 선수! 저희도 여기 도착했습니다!”
“헤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그래.”
태현은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고생했다는 뜻의 악수였다.
그러자 플레이어들은 눈빛을 번뜩였다.
“붙잡아!”
“밀어!”
“크헤헤! 김태현, 너무 원망하지 마라! 원래 이런 훈련장이니까!”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태현은 달려드는 걸 피한 다음 가장 앞에 있는 플레이어를 붙잡고 훅 밀어버렸다.
“어, 어, 어….”
순식간에 기둥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플레이어!
태현은 그의 등을 걷어차 버렸다.
“으아악!”
무심코 점프하는 플레이어!
태현은 재빨리 그의 뒤를 쫓아서 달린 다음 떨어지는 플레이어의 어깨를 밟고 점프했다.
탁-
‘됐군.’
다음 기둥에 도착한 태현은 뒤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고맙다. 모두.”
“…….”
“야!!”
“김태현! 어, 어떻게 네가 이럴 수가 있어! 사람을 발판으로!”
“이미지하고 너무 다르잖아!”
“우린 그래도 네가 그러면 안 되지! 넌 프로인데!”
태현은 개가 짖나 하고 무시했다.
다행히 다음 기둥은 사람을 밟을 필요 없이 스스로 힘으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태현은 달려서 점프하고, 날아오는 발판을 차고 한 번 공중제비를 돈 다음 기둥을 붙잡고 화염을 피한 다음 착지했다.
“…….”
“…….”
김태현을 욕하던 플레이어들은 순간 욕하는 것도 잊고 입을 헤 벌린 채로 구경했다.
그만큼 완벽한 동작이었다.
“방… 방금 봤냐?”
“저, 저거 스탯 갖고 온 거야! 저걸 어떻게 스탯 없이 해!”
퍽!
“으아악! 미친놈아 왜 밀어!”
“나도 갈 거야!”
“!!!”
그제야 모인 플레이어들은 깨달았다.
김태현이 여기서 왜 기다렸는지!
여기 넘어가려면 최소 한 명이 희생을 해줘야 한다!
“이 자식이!”
“비켜! 내가 갈 거야!”
“잡지 마! 으아악!”
서로 던지려고 필사적으로 덤벼드는 플레이어들!
‘흠. 이다비가 이 영상 좋아하겠군.’
태현은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녹화해두었다.
이다비가 부탁했던 것이다.
-태현 님. 훈련장에 사람들 많이 오면 재밌는 영상 많이 나올 것 같은데, 파워 워리어 계정에 올리게 쓸 만한 거 있으면 기록해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지.
인간의 추악함 그 자체!
“나만… 나만 아니면 돼!”
“네가 희생해!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