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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077화 (1,076/1,826)

§ 나는 될놈이다 1077화

[<고대 제국의 훈련용 탑 1층>에 입장하셨습니다.]

[멈추지 않고 달려서 반대편에 도착하십시오!]

“?”

“???”

심플한 메시지창에, 일행은 처음에는 당황했다.

몬스터를 잡는 것도 아니고, 공격을 버텨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달려서 반대편에 도착하라니?

보통 훈련장과는 다른 특이한 목표였다.

“김태현. 이거 뭐지?”

“으음. 보통 훈련장과는 좀 많이 다르긴 한데.”

태현도 이런 식은 처음 봤는지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다.

하긴 스탯, 스킬 다 봉인한 채로 싸우는 것보단 낫긴 한데….

일행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넓고 어두컴컴한 공간에 그들만이 거대한 돌기둥 위에 서 있었다.

앞을 보니 몸을 뛰어서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아슬아슬 위치에 또 다른 돌기둥이 있었다.

점프해서 착지하란 건가?

‘떨어지면 무조건 탈락이겠군.’

밑을 내려다보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꺼멨다.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는….’

[카르바노그가 질려 합니다!]

‘오. 카르바노그. 아는 곳이야?’

[고대 제국 놈들은 변태적인 놈들이 많아,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곤 했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강해질 수 있는가?

직업?

스탯?

스킬?

물론 그것도 답 중 하나였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고대 제국이 내린 답은 바로 순수한 강함이었다.

모든 것을 다 봉인했을 때 나오는 순수한 강함!

‘오. 그럴듯한데?’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말에 설득당했다.

물론 스탯이나 스킬도 강함에 중요했지만, 판온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약한 플레이어도 전략과 전술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것!

스탯과 스킬이 강해도 약한 플레이어가 있었고, 스탯과 스킬이 약해도 강한 플레이어가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그런 말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쟤네 변태라고 합니다.]

‘아니 왜. 좋은데.’

태현은 훈련장의 목적에 만족했다.

각종 스탯과 스킬을 제외하고 순수한 판단력과 컨트롤을 기른다!

태현 일행에게 꼭 필요한 훈련이기도 했다.

이런 훈련을 하고서도 보상까지 받다니.

‘오히려 내가 골드를 내야 하는 거 아닌가?’

[…….]

카르바노그는 어이없어했다.

아, 얘 아키서스였지!

어쨌든 돈 주고도 하기 힘든 훈련. 태현은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일행에게 설명했다.

맨몸으로 달리면서 컨트롤과 판단력을 키운다!

판온은 키보드와 마우스로 하는 게 아닌, 플레이어가 직접 몸을 움직여서 싸우는 게임.

능숙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강해질 수 없었다.

태현이 신이 나서 설명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쟤 되게 신나 보이는데?”

“쟤가 원래 저런 거 되게 좋아하잖아.”

최상윤의 말에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놈은 격투기 선수를 정면에서 줘패는 피지컬을 갖고 있는 놈이었지…!

케인이야 쉬는 날에는 빈둥거리면서 과자나 까먹었지만, 태현은 꼬박꼬박 나가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왔다.

“어, 선배님. 그런데 저한테도 이런 게 필요할까요?”

정수혁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마법사한테도 이런 컨트롤이 필요한가?

“당연하지. 마법사들은 보통 ‘근접전 들어가면 끝난 거나 마찬가지니 근접전 대비할 시간에 마법이나 준비하자’라고 하고 다니지만….”

태현은 냉정하게 말했다.

“마법사도 얼마든지 근접전 할 수 있다.”

“저거 저거 지가 힘법사 했다고….”

“힘법사를 했다고요?”

“예전에 한 적 있어.”

“힘법사 하란 게 아니라 근접으로 붙었을 때 상대 평타 정도는 보고 피하란 소리야. 광역기나 스킬은 막기 무리더라도 평타 정도는 스탯 차이 심해도 예측하면 피할 수 있거든?”

태현의 말에 정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케인에게 물었다.

“저게 맞는 말인가요?”

“아냐. 미친 소리야.”

케인은 속지 말라는 듯이 질색을 했다.

상대의 공격을 예측해서 피한다!

말이 쉽지, 1초에 몇 번씩의 공격이 오가는 난전에서 상대 움직임 보고 예측할 수 있으면 그건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었다.

그게 가능한 건 몇몇 변태들 뿐!

케인이 수군거리자 화살은 케인한테 돌려졌다.

“그리고 수혁이는 어차피 마법사라 그렇다 치고, 네가 가장 문제가 크거든?”

“나, 나 열심히 하잖아! 성실하고, 근면하고, 자폭도 잘 하고….”

“와. 양심 없나 봐.”

“케인 씨가 원래 좀 선천적 양심부재증이 있죠.”

최상윤과 정수혁이 극딜을 넣자 케인은 울컥했다.

“뉴스에 나온 거 그대로 따라한 거거든?!”

“아. 그런 거야? 난 또 네가 스스로 생각한 줄 알고 경악했잖아.”

태현은 케인을 보며 말했다.

“넌 너무 컨트롤을 안 하는 편이야. 탱커니까 그냥 막고만 있어도 절반은 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뜨끔!

정곡을 찔린 케인은 움찔했다.

“탱커도 컨트롤 중요하거든? 맞으면서 피할 스킬은 피해주고 카운터 넣을 때는 넣어주고. 그냥 맞기만 하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편할 수밖에 없어. 상대를 불편하게 하라고.”

“으음. 확실히 그런 거라면 케인이 잘할지도….”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지.”

“열받게 만드는 재능도….”

“자. 그러니까 달리자!”

태현은 신이 나서 박수를 친 다음 솔선수범해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전력도약 후 점프!

조금이라도 망설이다가는 허공에서 그대로 추락이었다.

탁-

‘거리가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할 만하군.’

태현은 첫 번째 착지 후 뒤를 돌아보았다.

“별로 어렵지 않지?”

“…….”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전부 추락!

“애들아? 애들아??”

[카르바노그가 그러니까 이건…]

태현은 혀를 찼다.

이거 생각보다 어렵겠다!

* * *

탈락한 일행들은 곧바로 다시 들어왔다.

이미 첫 번째 점프는 해낸 태현이 반대쪽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케인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안 하면 안 될까? 쟤 말고는 해낼 사람 없을 것 같은데….”

-태현 님. 케인 씨가 헛소리해요.

-선배. 케인 씨가 헛소리해요.

그러자 귓속말을 받은 태현이 외쳤다.

“케인! 수작부리지 말고 빨리 뛰어!”

“?!?!”

어떻게 알았지!?

‘아니. 저 자식. 여기서 목소리가 들리나?!’

케인은 기겁했지만 정수혁과 최상윤은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귓속말 받았구나!

“으으. 나 학교 다닐 때도 체육은 못했는데….”

그러는 사이 태현은 다음 점프를 쳐다보고 있었다.

계속 똑같은 식으로 점프만 반복할 리 없었다. 그러면 너무 쉽지 않은가.

‘한 번 실험해 볼까….’

태현은 슬쩍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리 위에서 돌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쾅!

“!?”

‘미친!’

태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굴려 피했다. 스킬도 스탯도 없으니 믿을 수 있는 건 직감밖에 없었다.

아니 뭐 이런…!

‘스탯, 스킬 줘도 피하기 힘든 함정들을 맨몸으로 피하라 이거군!’

수많은 함정 퍼레이드!

태현은 다시 한번 달려서, 떨어져 내리는 돌기둥을 옆으로 돌아서 피하고 그 기둥의 벽면을 차고 달린 다음 도약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허공에서 발판이 쏘아져 날아왔다.

위에 착지하면 살지만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바로 추락!

탓, 탓, 탓-!

“!!!”

뒤에서 뛸 준비 하고 있던 일행들은 태현이 혼자서 곡예를 하고 있자 입이 떡 벌어졌다.

“저, 저거 스탯 갖고 온 거 아냐??”

“방금 공중에서 한 번 더 뛰지 않았어요?!”

남들은 맨몸으로 점프하는데 자기 혼자 스킬 쓰는 것처럼 움직이는 태현!

세, 네 번째 함정도 돌파해 다섯 번째 지역으로 들어온 태현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거리가 너무 먼데?’

점프를 해야 하는데 정상적으로는 닿을 수가 없다!

[카르바노그가 한숨을 쉽니다.]

‘카르바노그. 어떻게 하는지 알아?’

[…원래 이건 혼자 깨는 게 아니라고 카르바노그 말합니다.]

‘?’

[여럿이서 다 같이 경쟁하면서 깨는 시련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

태현은 경악했다.

그러니까 지금….

다른 놈을 밟고 뛰어라!

“이야. 잘 만들었는데.”

[?!?!?]

카르바노그는 경악했지만 태현은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고대 제국 도시는 공개를 할 생각이긴 했다.

영원히 숨겨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었으니까.

태현 일행이 챙길 걸 먼저 다 챙긴 다음 사람들을 부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사람들을 다 모아야겠군.’

이 훈련장을 깨기 위해서라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아. 그리고 에반젤린이 부탁한 것도 겸사겸사 같이 할까.’

태현은 <토론토 메이플베어즈>의 선수들도 이 노드란체 섬으로 부르기로 했다.

마침 투기장도 있으니 여러모로 도와주기 좋으리라!

* * *

-노드란체 퀘스트 클리어!

-고대 제국 도시 발견! 전면 개방!

-아무 제약 없이 사용 가능!

파워 워리어의 능력자들은 태현의 퀘스트 영상을 받아 멋들어지게 편집했다.

갇힌 얼음 훔쳐서 하늘성에 빼돌리는 건 편집!

늑대 부족들한테 사기치는 것도 편집!

뭐든 간에 태현의 이미지에 손해가 갈 것 같은 건 다 편집!

태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이거 너무 왜곡이 심하지 않아?

-왜곡이라뇨! 다 사실만 있는데! 여기서 제가 거짓말 한 게 하나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건 그렇지만….

편집한 결과 나온 영상은 태현이 봐도 좀 심했다.

-평화롭던 노드란체 섬에 닥친 위험! 수많은 개척단 플레이어들이 공포에 떨자 김태현이 나선다! 사악한 수인족 전사들을 동료들과 함께 쓰러뜨리고 고대 제국 도시의 사람들에게 감사를 받는 김태현! 와! 정말 대단해!

…틀린 건 하나도 없긴 했는데….

뭔가….

뭔가 납득하기가 힘들다!

누가 보면 태현이 순수한 마음으로 섬에 찾아온 적들과 싸운 줄 알 것 아닌가!

“태현 님. 요즘은 자기 PR의 시대에요!”

“난 굳이 PR 필요 없… 에이. 그래.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이다비한테 맡긴 이상 믿어주기로 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이 밖으로 나가자 이다비가 길드원에게 지시했다.

“예고편 영상에 특수효과 좀 더 넣어줘. 태현 님 부각되게.”

“어, 길마님. 그러면 케인 선수가 가려지는데요.”

“그래서?”

“하긴 별 상관없겠네요.”

오랜만에 본격적으로 올라온 팀 KL의 퀘스트 동영상!

저번 화산 퀘스트처럼 생중계가 아닌, 깔끔하고 박진감 넘치게 편집된 영상에 모두가 환호했다.

순식간에 폭주하는 조회수!

-와. 진짜 잘 싸운다. 이게 랭커지!

-대형 길드 중에서 이만큼 싸울 수 있는 사람 있나?

-적이 약한 거 아냐?

-ㄴㄴ. 보니까 한 명 한 명 레벨이 400 넘는다더라.

-뭐? 400 넘는다고? 진짜?

-어디서 들은 건데?

-내 친구가 그러던데.

-나도 내 친구의 친구한테서 들었음.

-와. 레벨이 500을 넘긴다니….

-잠깐. 100 오르지 않았냐 방금?

-판온 전문가인 제가 보기에 레벨 500 넘는 거 맞는듯.

태현 파티의 싸움은 물 흐르듯 화려하고 박진감이 넘쳤다.

실제로는 태현이 온갖 곳에 가서 사기를 쳐서 만들어 낸 상황이지만, 편집된 영상에서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로지 압도적인 힘!

개척단 플레이어들을 갈아버린 수인족 전사들을 정면 승부에서 밀어버리는 그 위력에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탑 마법사들보다 위력이 더 센 거 같지 않냐?

-진지하게 기계공학 투자해야 하나….

-기계공학이 왕귀형 스킬인 거 같음. 초급이나 중급 때는 구리지만 고급까지 가면….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그걸 그렇게 투자하냐. 예전에 키우다가 접은 놈들 한둘이야?

-그보다 고대 제국 도시라니. 저 정도로 멀쩡한 곳은 처음 아닌가? 이거 대단한 거 아냐?

-에이… 케인 놈이 영주라는데. 그런 대단한 곳이면 케인 놈이 받았겠어?

-케인 정도면 대단한 랭커인데 왜 무시하지? 케인하고 1:1로 만나면 쫄 놈들이.

-ㅉㅉ. 입만 살았음.

-와. 내가 케인하고 1:1 해도 이기거든? 진짜거든?

-네 다음 방구석랭킹1위.

-그보다 김태현이 들어가는 저 건물 뭐야? 훈련장인가?

-고대 제국 훈련장? 혹시 우리도 들어갈 수 있나?

-케인이 머리에 총 맞은 게 아닌 이상 안 풀겠지. 뭐가 아쉽다고 저걸 푸냐.

-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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