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74화 (1,073/1,826)

§ 나는 될놈이다 1074화

그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길드 동맹 플레이어들을 노려보았다.

“아, 아니. 우리 잘못이 아니야!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잖아!”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친구들!”

“이유가 확실하지 않은데 우리를 공격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짓 크악!”

퍽!

누군가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물건을 집어 던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덥다!

순식간에 습하고 더운 공기가 가득 차자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서도 정신줄이 끊어졌다.

“저 자식들 때문이야! 크흑! 저 자식들을 내버려 둔 탓에 김태현이 하늘성을 치운 거라고!”

“우리… 우리의 잘못이야! 우리가 이기적이어서!”

“크윽…! 우리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었던 걸까! 길드 동맹 놈들을 보자마자 불태워 죽였어야 했는데!”

“??!?!?”

“야, 이거 분위기가….”

길드 동맹 플레이어들은 식겁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제작 직업 플레이어지 전투 직업이 아니었다. 같이 온 길드 동맹 호위들이 몇 명 있긴 했지만….

‘튀고 있잖아?!?!’

전투 직업 길드원들은 바로 견적을 냈다.

-여기서 싸우면 전멸이다!

그들은 바로 길드 마크를 가리고 고개를 숙인 다음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같이 죽을 의리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김태현! 우리가 잘못했다! 제발 에어컨… 아니, 하늘성을 돌려줘!!”

“이 자식! 어디서 그렇게 건방지게 말해! 김태현 님이라고 해야지!”

“김태현 님! 제발 에어컨 좀 돌려주세요!!!”

“김태현 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군중심리는 무서웠다.

몇몇 플레이어는 ‘김태현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보고 있었으면 그냥 나타나서 해결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에 여기는 너무 덥고 습했다.

게다가 옆에서 수십, 수백 명의 플레이어들이 ‘저놈들이 영지의 질서를 망가뜨렸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 김태현이 화가 난 거야!’라고 외치자, 점점 그럴듯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잘못이다!”

“초심을 잊은 우리의 잘못이야!”

“예전에는 서로 돕고 아꼈었는데!”

“…??? 우리가 언제 서로 돕고 아꼈….”

“쉿. 조용히 해. 너도 같이 끌려 나갈라.”

영지 초기부터 있던 플레이어들은 있지도 않았던 초심에 당황했지만, 입을 다물어야 했다.

“길드 동맹을 불태우자!”

“규칙을 지키자!”

“길드 동맹을 불태우자!”

“아, 아니. 진정… 진정… 으아악! 진짜 매단다! 미친놈들아! 길드 동맹이 두렵지 않으냐!”

수백 명이었던 플레이어들이 어느새 수천 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살벌하게 무기를 들고 고함을 지르는 플레이어들!

이렇게 많은 플레이어들이 순식간에 단합해서 행동하는 건 정말 극히 드문 일이었다.

영지가 더워지자 빡친 플레이어들이 ‘대체 무슨 일이야?’ 하다가 찾아왔기 때문!

태현이 없는 동안 관리를 맡는 펠마스는 기겁해서 달려왔다.

영지가 미쳐 돌아간다!

“펠, 펠마스 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제 한 명이 묻자 펠마스는 땀을 닦았다.

솔직히 그도 무서웠다.

이 자리에 모인 모험가들의 눈깔이 다 뒤집혀 있었던 것이다.

“…나, 나도 모르겠다.”

“펠마스 님. 강제로 해산시킬까요?”

“미쳤냐?! 이 상황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큰일 난다!”

“그, 그러면?”

“화를 풀게 해줘야지! 저놈들이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해!”

펠마스는 귀를 기울였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초심을 잃지 않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게 펠마스의 장점이었다.

저 모험가 놈들이 뭘 원하나?

“길드 동맹 놈들을 불태우고 우리를 반성하자!”

“에어컨이여 돌아오라!”

“길드 동맹 놈들을 찾아내라! 길드 동맹 놈들을 전부 다 불태워 죽이기 전까지는 에어컨은 돌아오지 않는다!”

“너 길드 동맹 놈이지!”

“아, 아닙니다! 저는 그냥 <동맹> 길드에요!”

광기 어린 대화를 듣고 있던 펠마스는 무릎을 쳤다.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깨달은 것이다.

“차라리 잘 됐다!”

“예? 펠마스 님. 드디어 갈락파드 님의 말처럼 정신이 나가신 겁니까?”

“…너는 이따가 보자. 자. 날 따라와라! 저 모험가들을 설득해야 하니까!”

펠마스는 망토를 휘날리며 달려나갔다. 플레이어들은 펠마스가 갑자기 튀어나오자 멈칫했다.

“이건 다 내 잘못이다!”

“!”

“내가 그대들을 잘 설득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는데! 나는 그저 그대들을 너무 편하게 내버려 뒀다!”

“아닙니다, 펠마스!”

“우리가 잘못한 겁니다! 우리가 에어컨을 껐어요!”

뜨거운 호응!

펠마스는 눈물을 찍어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내가 좀 더 규칙을 만들겠다!”

허가받은 장소에서만 장사를 해야 하고, 그 허가증에 세금도 내야 하고….

뭐 이런 것들!

평소라면 ‘아니 펠마스 놈 초심 잃었네 ㅡㅡ’ 했을 플레이어들이었지만, 지금 상황에는 박수를 쳐대며 환호했다.

“펠마스! 펠마스!”

“펠마스를 국회로!”

“펠마스밖에 없다! 골짜기를 다시 위대하게, 아니. 다시 차갑게 만들어 줄 사람은!”

짝짝짝짝!

원하는 걸 챙긴 펠마스는 씩 웃었다.

그러나 펠마스는 플레이어들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펠마스 님! 그래서 어떻게 해야 에어컨, 아니 하늘성이 돌아옵니까!”

“어… 어….”

“…….”

“…….”

“설마 대책이 없으신 건….”

목소리가 갑자기 서늘해지자 펠마스는 다급히 외쳤다.

“아니다! 물론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길드 동맹 놈들을 모조리 조져 버려라!”

펠마스는 발을 구르며 사납게 외쳤다.

목숨이 위험하자 펠마스의 머리는 미친 듯이 회전했다.

일단 사람들이 싫어하는 놈들부터 내주고 보자!

“역시…! 역시 그거였어!”

“길드 동맹을 조지자! 길드 동맹을 조지자!”

“남은 길드 동맹 놈들 찾아내! 모조리 매달아버려!!!”

“앗! 지금 길드 동맹 놈들 많이 있는 곳 생각났다!”

“그게 어딘데?”

“마계! 마계로 원정대 많이 가서 활동하고 있잖아!”

“마계 통로로 가자! 마계 통로로 가서 놈들을 잡아오자!!”

그 틈을 타 펠마스가 재빨리 외쳤다.

“오늘은 마계로 향하는 통로가 공짜다!”

“와아아아아아!”

“펠마스! 펠마스! 펠마스! 펠마스!”

“가자! 길드 동맹을 조지러!”

“가자! 에어컨을 찾으러!”

참가한 길드가 수십 개에, 크고 작은 파티가 수백 개!

그만큼 골짜기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던 탓이었다.

몇몇은 진지하게, 몇몇은 가볍게, 몇몇은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 몇몇은 그냥 길드 동맹이 싫어서….

이유는 다 똑같지 않고 다양했지만, 결과적으로 힘은 하나로 뭉쳐졌다.

훗날 길드 동맹이 <그 사건>이나 <폭염 대폭동>이라고 부르며 치를 떨게 될 사건의 시작이었다.

* * *

“하늘성 잠깐 치운다고 뭐 별일이 있진 않겠지?”

“에이. 태현 님. 에어컨 끈다고 안 죽어요.”

평생 에어컨 없이 잘 살아온 이다비는 자기 기준으로 말했다.

태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앗. 아저씨. 방금 낚시 매우 좋았습니다.”

“하하… 그런가?”

“하지만 옆의 분이 낚은 얼음이 좀 더 커 보이는데….”

“뭐?! 기다리게! 이건 내가 몸풀기로 한 거야!”

그러는 사이 태현은 이 낚시꾼 아저씨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완전히 파악했다.

‘그냥 아버지 대하듯 대하면 되는군.’

낚시 좋아하는 김태산!

옆에서 슬쩍 ‘어, 낚으신 얼음이 생각보다 작네요?’ 하면 낚시꾼들은 분기탱천해서 다음 얼음을 낚으러 갔다.

“진짜 대단하긴 하네요.”

이다비는 낚시꾼들이 가는 낚싯대 하나로 거대한 얼음 동상을 건져 올리는 묘기를 보며 감탄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낚시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얼어 붙은 고대 수인족 전사들을…]

[업적…]

[명성…]

[……]

‘세, 세상에.’

‘뭐 이런 보상이…!’

처음에는 도발에 낚여 시작한 아저씨들이었지만, 한 번 낚고 나서는 이 낚시가 얼마나 대단한 퀘스트인지 깨닫게 되었다.

<배를 낚아 올려라!-낚시 스킬 퀘스트>

월척을 낚는 것이 낚시꾼의 꿈이지만, 그 어떤 낚시꾼도 고대 수인족들의 전함을….

그 어떤 희귀한 물고기를 낚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보상!

“혹시 도움 필요하면 다른 분들도 불러도 괜찮을까요?”

“아… 아니야! 우리끼리 할 수 있어!”

“이렇게 쉬운 건 우리로도 충분해!”

아저씨들은 허겁지겁 낚싯줄을 던졌다.

느리게 하면 태현이 다른 사람들을 더 부를까봐 초조해진 것이다.

이건….

이건 우리가 먹어야 해!

“크윽… 이건 중요할 때 쓰려고 아껴둔 건데… <오리하르콘 가루가 뿌려진 일회용 낚싯줄>이다!”

“!??!?”

아니 그걸 왜 낚시에…!

태현은 기겁해서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던진 뒤였다.

* * *

“빨리 빨리 움직여라!”

태현은 아키서스 포병대까지 동원했다. 하늘성을 동원한 이상, 아키서스 포병대도 동원할 수 있는 것이다.

힘 좋은 거인들과 아키서스 키메라들은 전력으로 얼어붙은 배를 들고 달렸다.

“냉기의 핵으로!”

[더위로 인해 얼음의 봉인이…]

-냉기의 저주!

[냉기의 저주를 불러옵니다!]

[통제할 수 없는 냉기의 저주는 사용자한테도 데미지를 줍니다!]

오랜만에 닳는 태현의 HP!

크지는 않았지만 오래 쓸 수는 없었다.

-으아앗! 차갑다, 차갑다!

거인들은 몸서리치며 날랐다. 주변으로 확 퍼지는 냉기는 거인들도 섬뜩하게 만들 정도였다.

[봉인이 풀리는 속도가 잠시 느려집니다.]

[……]

여우 부족, 멧돼지 부족, 사슴 부족, 토끼 부족 등….

[?]

‘왜?’

[카르바노그가 잠시 아는 얼굴들을 본 것 같다고 의아해합니다. 기분 탓일 거라고 말합니다.]

‘그래?’

촤아아악-

태현 일행은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실어 날랐다.

“다… 다 됐다!”

[봉인된 고대 수인 부족 전사들을 다시끔 봉인하는 데 성공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고급 냉기의 저주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

[……]

[……]

[……]

[고대 제국의 적을 막고 다시 봉인한 그대의 업적은 길이 남을 것입니다!]

[고대 제국의 후예들은 이 일을 들으면 당신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할 것입니다.]

[고대 제국의 NPC들이…]

들고 나르기만 했는데도 레벨 업!

이 퀘스트가 얼마나 힘든 퀘스트였는지 알려주는 메시지창이었다.

태현도 실제로 진땀을 흘리지 않았던가.

어지간하면 옮기지 않으려고 내버려 뒀던 하늘성을 옮긴 게 그 증거였다.

“김태현 선수! 덕분에 레벨이 8이나 올랐습니다!”

“이야. 교황님 덕분입니다!”

“진짜 교황님만 한 사람이 없어요!”

“…축하드립니다….”

태현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아하니 태현보다 레벨도 훨씬 높은 사람들인데!

“좋아. 나머지도 끝내버리자. 포병대 전투 준비!”

아키서스 포병대들이 하늘성에서 묵직한 대포들과 악마들을 끌고 왔다.

그 모습에 겔렌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악마들은 왜 데리고 다니시는 겁니까, 폐하?”

태현은 순간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했다.

아무리 그래도 엘프한테 진실을 말해주면….

[카르바노그가 걱정 말라고 합니다.]

‘왜?’

[호감이 떨어지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합니다.]

‘너 천재니?’

[엣헴!]

“공작. 저 악마들은 에너지를 뽑아서 대포에 쓰기 위해 데리고 다니는 놈들이오. 나는 저런 곳에 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악마를 잡는 사람이지.”

태현은 사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겔렌델은 그 말에 감탄했다.

“폐하… 이 대륙에 폐하만 한 영웅은 또 없을 것입니다!”

[겔렌델의 친밀도가 미친 듯이 크게 오릅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데도 오릅니다!]

[덩글랜드 왕국 엘프들 친밀도 보너스를 받습니다!]

‘…카르바노그? 카르바노그???’

[카르바노그는 자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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