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73화
물론 태현만 감탄했지 다른 사람들은 질색하고 있었다.
“야! 하늘성에 가져다 놓는 건 미친 짓이야! 그러다 녹으면 어쩌려고!”
“안 녹아. 냉기의 핵이 있어.”
“하지만 녹으면!?”
영지 위에 있는 하늘성에서 저런 놈들이 튀어나오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안 녹게 잘 해야지.”
“…….”
“애들아. 저거 꺼내서 프로즈란드로 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현실성 있잖아.”
콰콰쾅! 우지끈! 와당탕쿵탕!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곰 전사들과 늑대 전사들은 섬을 박살 낼 기세로 싸우고 있었다.
오죽 요란하면 숲 안에 숨어 있던 개척단 플레이어들도 움찔할 정도!
아직은 서로에게 눈을 안 떼고 싸우고 있었지만, 저들이 눈을 떼기만 해도 이 아슬아슬한 상황은 끝이었다.
결국 일행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일수록 태현의 판단을 믿는다!
다른 건 몰라도 여기 있는 모두는 태현의 판단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번 계획은 좀 미친 계획 같지만…!
“각자 잠수해서 무조건 하나씩 들고 나온다! 엘프 전사들은 나눠줘서 돕고!”
“아니. 교황님 아니십니까!”
“??”
뒤에서 걸쭉한 목소리가 들리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뭐야?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 낚싯배 위에 느긋하게 앉아서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맞네! 김태현 선수!”
“아이고. 우리 자식이 팬인데 사인 좀 받을 수 있으려나?”
“교황님! 교황님 덕분에 낚시 잘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장비가 무슨… 랭커들인가?’
태현은 보자마자 아저씨들의 견적을 빠르게 확인했다.
입고 있는 장비들이 어마어마했다.
‘저건 <불사조의 깃털 옷>. 입은 사람 회피력과 마법 방어력을 몇 배로 올려주는 아이템… 거기에 <붉은 공작의 부츠>와 <원한의 벨트>? 뭐야. 뭔 빌딩을 입고 있어?’
게다가 낚싯배는 평범해 보였지만 절대 일반 낚싯배가 아니었다. 일반 낚싯배였다면 여기까지 쉽게 오지 못했을 테니까.
현질 좀 한 것 같은 고렙 아저씨들이 찾아오자 태현은 긴장했다.
설마 김태산이 아들의 목에 현상금을 건 것일까?
[의심하는 상대가 이상하지 않냐고 카르바노그가 당황합니다.]
싸우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급할 때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까 웬 약탈자 놈들이 여기 가면 대박 퀘스트가 있다고 했는데 교황님이 있을 줄이야. 뭐 도와드릴 거 있습니까?”
“…?”
태현은 의아해했다.
저 사람들 왜 도와준다고 하는 거지?
‘속임수인가? 기습인가? 함정인가?’
[…….]
-태현 님. 의심하시는 건 좋으신데… 저 사람들 <아란티스> 왕국인 건 아시죠? 옆에 마크 달고 있잖아요!
-?!
이다비의 말에 태현은 놀랐다.
-걔네가 누구였지? 암살단 조직?
-…태현 님이 오픈하고 아키서스 교단 독점으로 놓고 간 해저왕국이요….
-아…!
그 낚시꾼들 왕국!
태현은 이제야 아저씨들이 왜 그를 보고 좋아하는지 이해가 갔다.
낚시꾼 같은 직업은 태현이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도 아키서스 교단에 많이 들어오는 직업 중 하나.
낚시하는 아저씨들에게 태현은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별거 없… 아니. 도와주실 거 있습니다!”
“뭡니까! 말씀만 하시죠!”
“바다 밑에 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꺼내주셔야 하는데, 낚으실 수 있겠습니까?”
태현의 말에 낚시꾼 아저씨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히….
감히 우리 낚시꾼한테 ‘낚을 수 있겠냐’니!
“교황님. 제가 이 낚싯대에 붙인 이름을 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만?”
“람보르기니라고 붙였습니다. 람보르기니랑 가격이 비슷하거든요.”
“…….”
“…….”
태현 일행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오늘 제가 이놈의 가격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낚시꾼 아저씨가 가슴을 탕탕 치며 외치자, 옆에 있던 아저씨가 어깨를 붙잡았다.
“?”
“하하. 내가 보기에 자네의 낚시 스킬은 아직 덜 여문 풋내기 같아. 고급 8도 안 된 수준으로는 무리지 않을까?”
탁-
그러자 이번에는 그 옆에 옆에 있던 아저씨가 어깨를 붙잡았다.
“크흠. 크흠. 요즘은 고급 9도 못 찍었는데 낚시하겠다고 나서는 친구들도 있나? 크흠. 크흠.”
“…….”
“…….”
낚시꾼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맴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비켜! 내가 할 거다!”
“이놈이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윗사람한테 양보해라!”
“이런 일에 윗사람이 어디 있소! 형님 저승길도 먼저 갈 거요?”
“뭐, 뭐 인마? 말 다 했어??”
낚시꾼들의 싸움은 매우 추했다. 그걸 본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다비한테 말했다.
“아란티스 왕국 완전 개판인가 본데?”
“아, 아니… 신규 유입은 적어도 되게 평 좋은 왕국인데요…?”
“저게?”
“이, 이상하다?”
이다비는 당황했다.
분명 정보만 봤을 때는 좋았는데?
별생각 없이 한 태현의 말은 낚시꾼들의 자존심에 불을 질렀다.
낚으실 수 있겠습니까?→진짜 낚시꾼이라면 이걸 낚을 수 있어야죠?→이것도 못 낚으면 낚시 때려쳐라!
이 정도로 바꿔 들린 것!
태현은 당황해서 말리려고 했다.
“아니. 얼음덩어리가 한 개만 있는 것도 아니고 거의 배를 통째로 얼린 수준이니 협력해서….”
“뭐? 여러 개라고??”
“뭐? 장난 아니게 크다고?”
“…….”
“…….”
파아아앗!
낚싯배가 갑자기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혼자 낚을 거야!!’
무슨 모터라도 단 것 같은 속도에 전원이 깜짝 놀랐다.
‘대체 배가…?’
‘현질을 얼마나 한 거야?’
“크아아아아! <미끼 감지>!”
“크아악! <상급 초음파 탐지>! <낚싯줄 조종>!!”
“캬아아악! <움직이는 미끼 소환>!! <유도 미끼 발사>!”
조용하고 평화롭던 노드란체 섬.
오늘 그 섬은 미친 듯이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 * *
“유난히 길이 좁은 거 같지 않냐?”
“그게 바로 이 골짜기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지. 친구.”
골짜기 소속 플레이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예전에 별생각 없이 골짜기 외곽에 땅을 싸게 사둔 적이 있었다.
-혹시 골짜기 외곽의 이 땅 사실 생각 없으십니까?
-아니.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요?
-바로 그게 포인트입니다. 얼마나 풍경이 좋습니까? 이렇게 탁 트인 광경….
-아니. 뒤에 산맥이 시야를 가리고 있….
-…배산임수! 뒤에 산이 있는 지형이 얼마나 드문지 아십니까?
-판온에 산이 몇 개인데….
그러나 파워 워리어 길드원은 끈질기게 매달렸고, 그 설득에 솔깃한 플레이어는 가격도 싸겠다, 조그마한 땅을 사놓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땅의 가격은 미친 듯이 솟구치고 있었다!
‘후후. 절대 안 팔아야지.’
플레이어는 직접 거기에 뭔가 쌓아 올려서 장사를 할 생각이었다.
건물도 좋고 좌판도 좋고….
골짜기가 성장해서 너무 좋다!
마계 입구 생긴 것도 모자라서 <화산의 저주>까지 터지자, 골짜기의 성장 속도는 차원이 달랐다.
하루하루 보이는 플레이어 숫자들이 다를 정도!
영지의 모든 건물이란 건물-신전들, 대장간, 재봉소, 투기장, 훈련소, 제작기, 예술관 등-에는 줄이 설 정도로 사람들이 꽉꽉 들어찼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서 길을 막고 있는데?”
“??”
그제야 플레이어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몇십 명은 지나갈 수 있는 넓은 대로에 사람들이 좌판을 쫙 깔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뭐해요! 여기 지나가는 길인데! 여기 좌판 깔면 어떡해요!”
“좌판은 광장이나 갓길에 깔아야지! 여기에 까는 놈이 어디 있어!”
플레이어들의 항의에도 좌판을 깔고 있는 사람들은 귀를 막고 무시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그렇게 배짱을 부리자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 자식들 어디서 온 거야?”
“처음 보는 놈들인데….”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은 분한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요즘 하도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많이 오다 보니 이상한 놈들이 많아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심했다.
한 번에 수십 명이 같이 와서 깽판을 치다니, 이건 뭔가 좀 믿는 구석이 없으면 하기 힘든 배짱….
“…잠깐? 너희 길드 동맹 놈이잖아!”
“길드 동맹 마크다!”
“그래서 뭐?”
“?!”
“길드 동맹이면 안 되는 거냐? 여긴 다 평화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아니, 너희들이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다른 놈들은 그런 소리를 해도 길드 동맹 길드원이 그런 소리를 뻔뻔하게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니들이 공격한 곳이 몇 군데인데!
“우리는 순수한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이다! 어디 해 끼친 곳도 없고. 정당하게 세금 내고 이용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냐!”
길드 동맹의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
이들이 골짜기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밖은 너무 더워서!
화산의 저주가 점점 심해지자, 냉기 마법으로도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몇몇 건물이나 지역을 제외하면은 이제 열기 때문에 땀이 줄줄 나고 숨이 헉헉 차는 것이다.
전투 직업이면 돌아다닐 수라도 있지,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에게는 죽을 맛이었다.
괜찮은 곳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래서야….
고민하던 그들이 떠올린 게 바로 골짜기였다.
-여기 지금 완전 저주 면역입니다!
-그, 그런데 김태현 영지에 가서 만들고 장사해도 되나?
-뭐 어때요? 어차피 세금도 적게 걷는데. 그거 좀 바치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면 안 되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김태현이 빡치면….
-우리가 거기 가서 이상한 짓 할 것도 아니고, 정당하게 아이템 만들고 팔 건데 왜요? 지금 마계 이용하는 사람들도 다 허락해 주는데 우리 허락 안 해줄 리가 없잖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김태현도 바쁜 사람인데 이런 일 하나하나 챙기겠습니까? 퀘스트가 몇 개인데.
-김태현 체면이 있지 이런 일에 안 끼어들죠.
당해본 적 없는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은 간덩어리가 상당히 비대해져 있었다.
간부들은 말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더위로 인해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의 불만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 ㄷ…
-안 된다고 하면 길드 탈퇴합니다!
-더워서 못 해 먹겠어!
-아. 아니. 돼! 돼! 탈퇴는 좀!
평소에 불만 하나 없이 성실하게 일하던 놈들까지 단체로 들고 일어서자 간부들도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더위는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원래 있던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은 길드 동맹 플레이어들의 뻔뻔한 말에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너희 김태현한테 뒷감당이 안 두렵냐?”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리고 김태현이 이런 일 하나하나 신경 쓰겠냐?”
“크으윽….”
그 말에 밀린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은 움찔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태현이 직접 나서기에는 너무 사소했던 일인 것이다.
“뭐야. 싸움이야?”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끼리 싸우나 본데. 장사하면 안 되는 곳 점령해서 싸우나 봐.”
“저기 끼면 혹시 공적치 포인트 주나?”
“안 주는 듯.”
“에이. 그러면 난 구경할래.”
영지에 있는 플레이어 숫자들은 많아졌지만, 그들 중 나서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태현이 명령한 것도 아니고, 자기 일도 아닌데 굳이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서러워졌다.
‘같은 영지를 이용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쁜 놈들!’
그 순간 메시지창이 떴다.
[하늘성이 이동합니다!]
[<화산의 저주>가 영지로 들이닥칩니다!]
쿠우우우우-
“?”
“????”
“????????”
하늘성이 갑자기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떠나가 버렸다.
그러자 후끈한 열기가 영지로 확 들이닥쳤다. 마치 여름날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을 때처럼!
“…….”
“…….”
“저, 저 새끼들 때문이야!!”
“죽여! 매달아! 불태워버려!”
“와아아아아아아!”
“?!?!?!?”
순식간에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 버린 영지 플레이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