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72화
“폐, 폐하! 저들은 노드란체를 약탈하려는 놈들입니다!”
엘프 전사 중 한 명이 당황해서 속삭였다.
그는 태현이 지금 상황을 착각하고 있나 싶었다.
저들과 손을 잡는 순간 태현은 노드란체 약탈하러 가야 한다!
‘아니. 폐하께서는 노드란체를 약탈하시려는 건가?’
겔렌델 공작과 같이 노는 거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엘프 전사가 매우 실례되는 오해를 하고 있었지만, 태현은 지극히 멀쩡했다.
“알고 있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고대 늑대 부족이 당신의 친절에 감사합니다!]
“고맙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군! 그 대가로 네게 좋은 걸 주겠다.”
“오. 혹시 오리하르콘?”
“아니! 하지만 오리하르콘보다 더 좋은 것이지!”
[카르바노그가 오리하르콘 2개냐고 묻습니다.]
“바로 오리하르콘을 산더미처럼 갖고 있을 제국을 털러 갈 기회! 거기에 참가할 기회를 주겠네!”
“…….”
태현은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카르바노그가 저 늑대 놈 사기 치는 솜씨가 아키서스 수준이라고 욕합니다.]
없는 걸로 생색내기!
태현은 그 말에 살짝 반성했다.
그러는 사이 늑대 부족 전사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 괴수 오랜만에 보는군.”
“저 괴수를 아나?”
“저 먼 북쪽의 땅에 있던 놈을 우리가 데리고 왔었지! 제국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라면 저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태현은 ‘미친놈아 다루지도 못하는 걸 왜 데리고 와!’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참 귀엽지 않….”
-뿌오오오오!
“아차.”
늑대 전사는 재빨리 선실 안으로 달려가더니 재빨리 동료 한 명을 끌고 나왔다.
그러더니 괴수한테 집어 던졌다.
-뿌오오.
괴수는 그걸 받아먹고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
엘프들은 그 모습에 정색했다.
뭐 저런 야만족 놈들이 있냐?!
‘좀 소름 돋는군.’
태현은 도시파괴자의 모습에 다시 한번 저 괴수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이라는 걸 느꼈다.
고대 수인족 전사들도 먹이를 주는 걸로 비위를 맞춰주고 있는데, 나중에 못 맞추게 될 경우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흠… 일 다 끝나면 오스턴 왕국에 버리고 가자.’
[카르바노그가 좋은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폐기물 버리기 좋은 왕국, 오스턴 왕국!
물론 길드 동맹이나 미다스 길드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뭐 저런 쓰레기가…!
* * *
[오스턴 왕가의 데스 나이트들…]
[오스턴 왕가의 구울 병사…]
[오스턴 왕가의 스켈레톤…]
[……]
[오스턴 왕국에 언데드 기사단이 출몰하기 시작합니다!]
태현이 하늘성을 수리하기 위해 들린 광산 지하에서 발견한 왕국의 옛 기사들!
데스 나이트가 되었지만 충성심은 사라지지 않은 그들은 현재 오스턴 왕국의 상황에 매우 분노했다.
오스턴 왕가는 어디로 사라지고 웬 모험가 놈들이 내가 왕이니 하고 있으니….
그러나 그들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의 세력은 한 줌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태현도 ‘어라? 얘네 나갔는데 왜 소문이 안 들리지? 벌써 전멸당했나?’ 싶었을 정도!
데스 나이트 기사단은 아주 조용히, 은밀하게, 비밀리에 움직였다.
돌아다니면서 옛 왕가에 대한 충성심을 가진 귀족 NPC들을 찾아다니고, 기사 NPC를 찾아다니고, 쓸 만한 언데드 부하들을 늘리고….
어느 정도 힘을 되찾자 그들은 깃발을 올리고 봉기를 시작했다.
-왕가의 원수를 갚자!
-왕가의 원수를 갚자!!
<오스턴 왕가의 부활-오스턴 왕가 기사단 퀘스트>
옛 왕가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있는 기사들은 죽음을 뛰어넘어 돌아왔다. 그들은 오스턴 왕국을 점령하고 있는 배신자들을 몰아내고 왕가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이들의 명예로운 원정에 참가하라!
만약 성공적으로 퀘스트를 완수한다면 어마어마한 보상이 있을 것이다.
보상: ?, ???, ????
퀘스트 등급: 전설
이미 대륙에 전설 퀘스트, <화산의 저주>가 있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터진 전설 퀘스트!
오스턴 왕국 플레이어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진짜 이 왕국은 저주받은 게 분명해!!
뭐만 하려고 하면 일이 터진다!
생각해 보면 오스턴 왕국은 정말 저주받은 땅이었다.
게임 시작부터 왕국은 내전 상황이었고….
길드 동맹이 한창 잘나갈 때, 다른 길드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쫓아내자 빡친 아저씨들이 남부에 역병지대를 만들고 튄 것부터 시작해서….
태현과 길드 동맹의 싸움이 심해지고 나서부터는 진짜 왕국이 무법지대가 됐다.
태현의 이름을 듣고 온 무법자 플레이어들이 곳곳에서 산적질을 해대며 신나게 날뛰었던 것이다.
세계수 다음부터는 또 악마들이 많아졌고….
그렇게 쏟아붓고도 아무것도 못 건진 길드 동맹.
그들은 태현에게 전 재산을 꼬라박고 망하기 직전까지 가자 정신을 좀 차리게 되었다.
지금은 <미다스>와의 영지전으로 인기를 끌어 받은 투자금으로 간신히 왕국 상태를 회복시키고 운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데스 나이트들이 ‘원수!’ 하면서 나타나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미다스> 길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오스턴 왕국을 점령하고 있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
-이런 미친 NPC 놈들이…!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건데?
-막아! 경고문 올려! 일 커지면 귀찮아진다!
<미다스>도, <길드 동맹>도 바로 경고문을 올렸다.
-이 퀘스트에 참가하면 길드의 적으로 간주하겠다!
-퀘스트에 참가하는 놈은 우리의 적이다!
<길드 동맹>도, 거기서 쪼개져 나온 <미다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퀘스트는 초반에 진압하지 않으면 진짜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
태현을 상대로 겪으면서 뼈아픈 교훈을 얻은 것이다.
둘 다 비상을 걸고 병력을 보내 언데드 군대를 쓸어버리려고 했다.
사제와 성기사들 위주로 구축된 대(對) 언데드 특수부대!
그 기세가 워낙 살벌해 플레이어들은 퀘스트에 참가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야. 전설 퀘스트인데 참가 안 하냐?
-미쳤냐? 저기에 끼게. 김태현이 끼면 모를까.
-김태현은 안 낀데? 에이. 아쉽다. 꼈으면 나도 꼈을 텐데.
누가 봐도 오스턴 왕가 기사단이 불리한 상황!
그러나 이 데스 나이트들은 예상 밖의 행동을 저질렀다.
바로 남부 역병지대로 도망친 것이다.
“…….”
“…….”
두 길드는 뒷목을 잡았다.
저….
저 언데드 놈들이 진짜…!
* * *
[그런데 카르바노그가 어떻게 이용할 거냐고 묻습니다.]
‘일단 얘네들을 이끌고 곰 부족 놈들하고 싸워 볼 생각인데.’
태현은 조심스럽게 늑대 부족 전사들을 훑어보았다.
곰 부족 전사들이 반인반웅이었던 것처럼, 이들도 늑대인간이었다.
평소에는 늑대인간 상태로 있다가 전투에 들어가면 더욱더 커다란 늑대로 변신하는 것!
보아하니 곰 전사들과 비슷한 타입 같았다.
주술사나 마법사 같은 타입이 아닌 전사 타입!
‘아쉽군. 마법사 부족을 손에 넣고 싶었는데….’
일단 태현한테 가장 위험한 게 그런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태현은 있는 대로 해보기로 했다.
‘이간질부터 시작해야겠지.’
부족들끼리 사이가 좋더라도 틈은 있게 마련. 태현은 은근슬쩍 물었다.
“그런데 곰 부족 전사들이….”
“그 짜증 나고 둔하고 멍청한 놈들 이름은 왜 말해!”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할 말을 잃었다.
화술 스킬 쓰기도 전에 나오는 격렬한 반응!
“그놈들이 우리를 막 공격하더라고. 우리는 순수하게 제국을 공격하려던 마음밖에 없었는데!”
[최고급 화술 스킬을…]
[곰 부족과 늑대 부족 사이가 매우 나쁩니다!]
[……]
[……]
설득에 성공합니다!
“이 곰자식들! 제국을 치기 전에 그놈들부터 친다! 이놈들 어디 있어!!”
“크아아아! 크아아아!”
늑대 전사들은 울부짖으며 바로 분노했다. 너무 쉬운 설득에 태현은 당황했다.
아니. 이렇게 쉽다고?
여기가 바로 화술 사용자의 천국인가?
[카르바노그가 곰 부족 전사들이 귀 막은 이유를 잘 알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귀를 안 막았으면 곰 전사들도 바로 넘어갔겠다!
“잠깐. 좀 전략적으로 싸워야….”
[늑대 부족 전사들이 <늑대의 광란> 상태에 빠져듭니다!]
[늑대 부족 전사들이 변신합니다!]
[늑대 부족…]
[……]
[이 상태에서는 화술 스킬이 통하지 않습니다!]
분노로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상태!
늑대 전사들은 분노한 채로 달려 나갔다.
“크아아아아! 놈들을 죽이러 가자!”
우르르-
배에서 쏟아져 나온 늑대 부족 전사들은 전투함성을 지르며 바닷길을 달려 나갔다.
“…….”
태현과 겔렌델은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따, 따라 나가자!”
“예!”
* * *
대기하고 있던 갈카드 드워프들은 멀리서 늑대 전사들이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곰 전사 놈들만 해도 벅찼는데 새로운 놈들이 더 나타나다니!
“후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폐하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라! 그대로 후퇴하면 우리의 명예가 아니?”
“???”
크아아앙! 크아아아아앙!
늑대 전사들은 울부짖으며 곰 전사들에게 덤벼들었다.
곰 전사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분노해서 외쳤다.
“왜 이러는 것이냐!”
“크아아아앙!”
“하긴. 이유 따윈 필요 없지! 우리도 너희를 예전부터 쓸어버리고 싶었다! 크아아악!”
곰 전사들도 변신!
노드란체 위에 시끄러운 전투함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고대 곰 부족 전사들이…]
[고대 늑대 부족 전사들이…]
[증오로 인해 울음소리가 중첩됩니다! 더욱더 광란합니다!]
[오래된 원한으로 인해 울음소리가…]
[고대 곰 부족 전사들의 능력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고대 늑대 부족 전사들의…]
[……]
습격받은 곰 전사들이 울부짖으면서 동료를 불러대자, 근처의 곰 전사들은 전부 다 이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수십 마리끼리 붙는 난전!
‘와. 미친.’
태현은 일어나는 싸움에 감탄했다.
수인족 전사들의 저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태현이 따로 떼놓고 한 마리씩 잡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서로가 전투함성을 써대며 광란 상태에 빠지자 그 힘이 중첩되어서 더욱더 커졌다.
광란의 도가니!!
-크아아앙!
-크아아아악!
쾅! 콰콰쾅!
한 번 후려칠 때마다 바위가 박살 나고 땅이 울릴 정도의 위력!
태현은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내가 너무 심하게 도발한 건 아니겠지?’
일단 어쩔 수 없이 싸움을 붙이긴 했는데, 저렇게 미친 듯이 싸우는 거 보니 갑자기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지금 모습을 보니 저 상태면 레벨이 한 500은 넘어가는 것 같은데….
“김, 김태현. 저거 수습은 가능하냐?”
“…몰라. 일단 남은 일부터 하자. 내게 계획이 있어.”
늑대 전사들을 설득할 때부터 태현은 하나의 계획을 그리고 있었다.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이 방법이 그나마 최선이었다.
태현의 말에 케인은 반색했다.
이런 상황에도 안심이 되는 건 상대가 태현이었기 때문이었다.
김태현을 따라가면 절반은 한다!
“그래! 뭘 하면 되지?”
“지금부터 저 바닷속에 갇힌 놈들을 빼내서 다른 곳에 갖다 버릴 거다.”
“…….”
“…….”
[…….]
생각도 하지 못한 아이디어에 케인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그게… 말이….”
“따질 시간 없다! 녹기 전에 최대한 빼내서 더 추운 곳으로 가져다 치우는 거야!”
확실히 케인의 걱정도 이해가 갔다.
현실적으로 저 많은 놈들이 녹기 전에 다 막는 건 무리였으니까.
‘위협적인 놈들이라도 치워야 한다!’
지금 전사 부족들만 꺼내도 저 정도인데, 마법사나 주술사 부족들이 나오면 진짜 힘들어졌다.
설득이 통할지도 모르는데 설득이 통해도 문제!
‘최소한 걔네들이라도 반드시 막아야 해.’
태현은 북쪽의 프로즈란드를 생각했다.
거리가 좀 있긴 해도 여기서 그나마 가까운 북쪽의 추운 땅!
꺼내서 배에 실은 다음 최대한 달려서 프로즈란드에 가져다 놓으면….
‘시간이 늦을 수도 있겠군. 냉기 마법으로 될까? 젠장. 시간이… 좀 더 빨리 바닷속으로 들어갈 걸 그랬나?’
“태현 님! 태현 님!”
“왜?”
“하늘성을 부르죠!”
“??”
“하늘성 안에 가져다 놓는 거예요!”
“…!!!”
태현은 이다비의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이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