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71화
판온에서 유명한 말이 있었다.
-노인과 아이를 조심해라!
둘 다 판온에 시간 쏟아붓기 좋은 사람들.
하루 종일 판온만 하는 이들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거기에 현질까지 한다면?
“어이. 젊은 친구들. 이리 와봐.”
아저씨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망설였다.
싸워야 하나?
아니면 튀어야 하나?
-야. 아저씨면 컨트롤은 별로일 거야. 지금이라도 선공 쳐볼까?
-그, 그럴까?
-우리가 장비가 없지 가오가 없냐?
겁이 없는 약탈자 플레이어들!
그러나 다행히도, 그들 중에는 아직 정신줄을 붙잡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었다.
-죽은 다음에도 ‘목숨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할 거냐? 야. 저거 마크 봐. <아란티스의 낚시꾼>들 마크잖아!
-…?!
* * *
해저 왕국 아란티스.
플레이어들이 새로 발견한 왕국 중 하나로, 만약 중앙 대륙에 가까이 있었다면 플레이어 숫자가 몇십 배는 되었을 왕국이었다.
그러나 아란티스는 워낙 거리가 먼 데다가 심지어 바다 밑에 있어 플레이어들이 가기를 꺼려 했다.
굳이 저기까지 갈 이유가 없는 것!
만약 다른 플레이어가 아란티스의 지배자였다면 포기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란티스 국왕 자리를 얻은 것은 유 회장!
그는 아낌없이 돈을 퍼부어가며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였다.
게다가 유 회장이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인 건 돈을 벌기 위해서 끌어들인 게 아니었다.
유 회장은 그저 그 같은 낚시꾼들을 위한 왕국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 결과 완성된, 낚시꾼들의 천국과도 같은 왕국!
새로 시작하는 플레이어들도, 나름 오래한 플레이어들도, 낚시 좀 한다 싶으면 재산 팔아서 정리한 다음 아란티스 왕국으로 향했다.
그만큼 지원이 대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유행은 게임 안에서 끝나지 않고 밖으로도 흘렀다.
-으음. 새 낚싯대 사는 것보다 판온에서 사는 게 더 싸게 먹히겠는데?
-형님. 요즘 누가 밖으로 낚시 갑니까? 형님도 같이 캡슐 사서 낚시 합시다. 이거 미끼 관리도 할 필요 없어서 아주 편한데.
낚시광들이 판온을 시작한 것!
장비에 아낌없이 현질하던 사람들이 판온을 시작하니 그 돈이 다 판온으로 들어왔다.
무시무시한 적응 속도!
-아니. 낚시대를 사야지 그 갑옷은 왜 샀나?
-아이고. 잘 모르시네. 이게 무려 낚일 확률 10% 업 시켜주는 갑옷입니다.
-그래? 꽤 그럴듯하게 보이는데. 그거 어디서 구하나?
-아키서스 교단이라고 여기 게임 내에 있는 곳인데 들어가면 여러모로 좋습니다.
-난 교회도 안 나가는데?
-에이. 예배 같은 거 안 합니다. 그냥 이름만 올려도 되요. 그리고 저처럼 다른 사람 끌어들여서 가입시키면 보너스도 있고요.
-…다, 다단계는 아니겠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 회장은 알고 지내던 정, 재계 사람들 중 낚시 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다 초대장을 보냈다.
<카톡! 판온 같이 해요!>
-어떤 미친놈이 이런 초대를… 헉?!
-왜 그러십니까?
-당, 당장 캡슐 구해와! 빨리!
반강제로 눈치를 보면서 시작한 이들이었지만, 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열렬한 판온 플레이어가 됐다.
낚시 하나만 집중해도 판온은 끝이 없는 것!
낚시에 미친 낚시광들부터 시작해서, 새 낚싯대 나오면 일단 지르고 보는 사장님들까지 전부 다 아란티스 왕국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되자 아란티스 왕국은 플레이어 숫자는 비교적 적었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왕국이 되었다.
현질 플레이어들의 땅!
집 몇 채 정도는 쏟아부어야지 ‘나 현질 좀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
아란티스 왕국에서는 아무도 돈자랑을 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돈 많이 쓴 사람이 언제든지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워 워리어에서 얻은 꿀팁★ 구걸하려면 아란티스 왕국 추천! 거기까지 가기 힘들긴 하지만 어떻게든 가기만 하면 하루 수입이 다른 도시에 수십 배!
-이제 막 시작한 것 같은 아저씨 보이면 무조건 달라붙어서 도와줘라! 그러면 학생 착하다고 막 퍼주신다!
-저 아란티스 왕국에서 알게 된 사장님네 회사에 취직했어요!
-ㅋㅋㅋㅋ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그게 말이 되냐?
이렇게 아란티스 왕국을 번영시킨 유 회장이었지만, 유 회장은 놀라울 정도로 욕심이 없었다.
태현은 영지 운영하려고 정말 온갖 짓을 다 하고 있었지만 유 회장은 그냥 현질 버튼을 누르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일수록 더욱 퍼준다!
-대체 영주님께서는 뭐하시는 분이시길래 이렇게 퍼주시는 거지?
-잘나가는 회장님이시라는 소문이 있어.
-에이. 회장님이 왜 이걸 해?
-사장님도 지금 하고 계시잖….
-헉. 그러네.
아낌없이 퍼주는 국왕 덕분에, 아란티스 왕국의 낚시꾼들은 충성도가 매우 높았다.
직접 왕국 문양을 새겨서 장비에 달고 다닐 정도!
이걸 보고 주변 플레이어들은 <아란티스 낚시꾼>이라고 불렀다.
일반 낚시꾼=평범한 플레이어.
아란티스 낚시꾼=일단 집 몇 채는 판온에 쏟아부었을 가능성이 높은 미친 현질 플레이어!
* * *
<아란티스의 낚시꾼>들의 우정은 끈끈하기로 유명했다.
만약 운 좋게 이 아저씨를 이긴다 하더라도 매섭게 보복이 들어올 것이다.
“젊은 친구들. 뭐해? 내가 먼저 갈까?”
“아이고!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해?”
“예!”
“방금 대화에서 뭔 오해가 가능하지?”
“저희가 세금을 드려야겠다고 말하려고 한 건데 잘못 나왔습니다!”
“…하하하! 젊은 친구들. 유우머 감각이 제법이군!”
“하, 하하…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웃자 약탈자들은 안도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바로 정색하며 말했다.
“개소리하지 말고 빨리 덤비게.”
“아이고! 오해입니다! 오해!”
“맞아요!”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아저씨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약탈자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전략을 바꿨다.
“아. 맞다! 선생님! 아주 고급 정보가 있습니다!”
“?”
“이 근처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보라색 청새치>가 나오는데….”
“그 물고기라면 벌써 50마리 잡아서 아키서스 교단에 바치기까지 했지. 그래서?”
“…….”
약탈자 플레이어는 입을 다물었다.
나름 희귀 정보였는데, 저 아저씨는 저 정보를 구입한 게 분명했다.
아오…!
진짜 현질 더럽고 치사하네!
-어떡하냐?
-아니. 방법 자체는 쓸 만한 거 같아.
-뭐?
-저 인간이 모를 만한 정보를 주면 되는 거 아냐?
-그런 게 있어? 우리보다 더 잘 알 것 같은데.
정보 쪽 게시판 VVIP일 거 같은 외모!
“선생님!”
“그만 좀 부르게. 왜?”
“여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나오는 노드란체에서 아주 대단한 퀘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흠….”
아저씨는 못 믿겠다는 듯이 플레이어들을 쳐다보았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필사적으로 손짓, 발짓 해가며 설득하려 애썼다.
“진짜입니다! 진짜!”
“저희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만약 거짓말이면 자네들 목에 현상금 걸 거야.”
“하, 하하… 농담도 참….”
“농담 아닌데? 어쨌든 고맙네. 확인은 하러 가보지.”
말을 마친 아저씨는 배에 다시 앉았다.
촤아아아악-
마치 모터라도 달린 것처럼 빙글 돌더니 빠르게 돌진하는 배!
겉모습만 평범한 낚싯배였지, 어마어마한 옵션이 달린 배였던 것이다.
“어. 잘 있었나? 응. 다름이 아니고. 내가 지금 <행운을 가져다주는 보라색 청새치> 잡으러 벡텔 앞바다에 있었는데. 응. 응. 대단한 퀘스트가 진행 중이라네. 자네도 오지 않겠나? 마침 낚시 다 했다고? 그래. 그래. 데리고 오게.”
<아란티스의 낚시꾼>들 중 친한 사람들을 부르고….
“아는 사람 데리고 가도 됩니까?”
“아, 당연하지. 이 사람아. 혼자 하는 판온도 아닌데!”
그 친한 사람들이 또 친한 사람들을 부르고….
그 결과, 아란티스 낚시꾼들 집합!
* * *
엘프 전사들은 태현 뒤에 바짝 붙어서 쫓아갔다.
겔렌델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너희들은 내 뒤가 아니라 거기에 있지?”
“…….”
“…….”
엘프 전사들은 대답을 피했다.
“앗. 공작. 저기 보게.”
태현이 말하자 겔렌델은 다행히 거기에 넘어갔다.
“뭐가 있기에… 혹시 오크라도… 헛!”
겔렌델은 깜짝 놀랐다.
도시파괴자가 밀어낸 길 바깥, 깊은 바다 속에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는 몇 척의 날렵한 배들이 통째로 갇혀 있었다.
노드란체를 공격하려다가 얼어붙은 고대 수인족들이 분명했다.
“폐하. 저놈들이 분명합니다!”
“나도 보고는 있는데.”
태현은 고민에 잠겼다.
보아하니 저런 얼음덩어리가 심해 곳곳에 가라앉아 있고, 녹아서 풀리면 바다 위로 헤엄쳐 나와 덤비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막냐??
도시파괴자가 날뛰는 덕분에 바닷길이 만들어졌다지만, 얼음이 녹는 걸 다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럴 능력도 없을뿐더러 하나를 막더라도 다른 쪽에서 녹으면….
[카르바노그가 냉기의 저주를 쓰면 어떠냐고 묻습니다.]
‘그걸로 될 스케일이 아니야. 큰일이군.’
너무 크고, 너무 많았다.
태현 혼자서 할 수준이 아니었다.
[악명이 매우 높습니다!]
[고대 제국 관련 퀘스트를 해결한 적이 있습니다.]
[……]
[퀘스트 조건을 달성합니다.]
<노드란체를 약탈하라-고대 수인족 부활 퀘스트>
고대 제국을 약탈하려다가 얼어붙어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고대 수인족들에게, 노드란체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그들의 떨어진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당신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그들을 발견했다. 만약 얼음의 봉인에서 풀려나고 있는 그들을 도와준다면, 그들은 당신에게 감사하며 같이 노드란체를 약탈할 기회를 줄 것이다.
보상: ?, ???, ????
“…….”
태현은 메시지창을 보고 1초 정도 고민했다.
그냥 갈아타 버릴까?
[카르바노그가 정신차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일단 케인부터가 엉엉 울 것이고, 노드란체 지하에 고대 제국 도시가 있다는 걸 안 이상 그걸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패!
‘저걸 어떻게 활용할 수 없나?’
뿌오오오오-
태현이 고민하던 사이 괴수, 도시파괴자가 길을 벗어나 바다로 돌진하더니 안에서 얼음덩어리를 하나 꺼내왔다.
태현은 기겁해서 외쳤다.
“야! 그건 꺼내오면 안 되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걸 꺼내오면 어떡해!
[<도시파괴자>가 허기 때문에 당신의 말을 듣지 못합니다!]
아키서스의 완벽한 대책!
귀 막기!
도시파괴자는 신이 나서 얼음덩어리를 발굽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 거대하고 강력한 얼음이, 도시파괴자의 일격에 점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폐하! 저놈을 쏘면 됩니까?”
겔렌델은 호전적으로 외치며 활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태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가만히 있….”
“닥치고 있으십쇼 좀!”
“?”
“??”
엘프 전사들 중 누군가 참지 못하고 외친 것!
겔렌델은 귀를 의심하며 물었다.
“방금 누가 내 욕을….”
쩌적, 쩌적, 쩌저적-
얼음이 갈라지더니, 안에서 배 한 척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대 제국의 힘으로 유지되던 얼음 봉인이 풀립니다!]
[고대 수인족 부족 중 하나가 깨어납니다!]
쿵-
배의 선실에서 늑대인간 전사 한 명이 기듯이 걸어 나오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그리고 태현을 보며 물었다.
“네가 우리의 봉인을 풀어준 것인가?”
“…….”
“…….”
겔렌델은 침묵했다.
엘프 전사들도 침묵했다.
그리고 태현은 냉큼 대답했다.
“그렇다!”
“!??!?!”
아니, 뒷감당 어쩌려고!
엘프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