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70화 (1,069/1,826)

§ 나는 될놈이다 1070화

“나… 나는 빼줘.”

에반젤린은 당황해서 말했다.

해야 할 퀘스트들이 많은데 굳이 길드 동맹과 척을 지고 싶지는 않다!

…물론 이제까지 어그로를 꽤 끌긴 했지만, 길드 동맹의 적이 한둘이 아니니 나는 좀 잊어주지 않았을까?

물론 태현이 이런 원한을 혼자 독점할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원래 원한은 같이 나눠야 더 좋은 법 아니겠는가!

“하하. 에반젤린. 나하고 같이 퀘스트를 했는데 길드 동맹이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사이 좋게 같이 싸우자고.”

“이… 이런 물귀신…!”

에반젤린이 경악하는 사이 주변에 있던 팬들이 에반젤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이분은 누구신가요? 팀 KL에 이런 선수도 있었나?”

“…혹시 랭커 에반젤린? 맞는 것 같은데?”

“와! 김태현 선수하고 친하다더니 한국에 놀러 올 정도인가 봐!”

“그 정도라면 길드 동맹하고 같이 싸워도 이상할 게 없긴 하겠네!”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말은 에반젤린의 귓가에 쏙쏙 들어박혔다.

“…저, 저는 한쿡말 잘 몰라요. 무슨 소리 하는지 잘 모르겟서요.”

“?!?!?”

결국 무리수 두는 에반젤린!

그러나 모인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통역기 있으시잖…?”

“코장났나 봐요.”

“괜찮아. 에반젤린. 내가 통역해 줄게. 마음껏 편하게 길드 동맹 욕해도 괜찮아.”

“…주거버렸으면 조켔네요.”

“방금 욕하지 않았나?”

“에이. 잘못 들었겠지.”

* * *

에반젤린과 팀 KL 일행이 만나 동네에서 즉석 팬미팅을 한 일은 소소하고 훈훈한 미담이었다.

기사가 올라오긴 했지만 모두 다 ‘역시 팀 KL 팬서비스 좋지 않냐? 김태현 인성 안 좋다고 하는 놈들은 다 억지로 욕하는 듯’이나 ‘근데 사진에서 케인 어디 있음? 외국인이 케인인가?’ 같은 반응을 보여줬다.

팬뿐만 아니라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그렇게 파급력이 크지 않았다.

팀 KL이 원래 이미지 안 좋던 팀도 아니었고, 워낙 잘나가던 팀에 미담 하나 더해진 수준이었으니 다들 ‘뭐 팀 KL이면 당연히 그렇겠지?’, ‘역시 김태현만큼 인성 좋은 플레이어가 드물다니깐’ 같은 수준으로 넘긴 것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이 기사에서 다른 것을 느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단, 단장님. 그냥 흔한 기사 아닙니까? 팀 KL은 원래 이런 팀인데요….”

“저희도 기자한테 의뢰해서 하나 기사 낼까요?”

판온 2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팀, LK 갤럭시의 단장이 화를 내자 직원들은 당황했다.

“이런 바보 같은 사람들을 봤나! 이 기사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

“?????”

직원들은 단장의 성화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팀 KL은 팬들이 많다?”

“팀 KL은 이미지가 좋다?”

“케인은 존재감이 희박하다? 앗. 대우를 못 받으니 스카우트를 해오라는….”

“야 이 머저리 같은 사람들아!”

단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쾅쾅 쳤다.

“여기 이 에반젤린이란 플레이어가 누군지도 모르나!”

“으음. 외국인에,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앗, 곧 한국 예능에 나올 사람입니까?”

“…….”

단장은 휘청거렸다. 다행히 그 직원 말고 제정신을 갖고 있는 직원들이 여럿 있었다.

“어, 이 플레이어… 설마 지금 <토론토 메이플베어즈> 감독 대행으로 뛰고 있는 수석 코치 아닙니까?”

“뭐?!?!”

다른 직원들도 깜짝 놀랐다.

“아니, 옷차림이 너무 달라서 못 알아봤네. 판온 안에서 갑옷 입고 욕하는 것만 봐서.”

직원들도 에반젤린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다만 판온에서 무기 휘두르면서 팀원들을 닦달하는 다혈질 코치로 기억하고 있을 뿐!

-1킬! 1킬만 하라고 이 XX XX들아!

-너 이 자식! 옆에 힐러 안 보여?! 막아! 막으란 말이야! 아오!

에반젤린은 자기 자신이 매우 지적이고 신사다운 코치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 착각이었다.

에반젤린은 경기 들어가면 훌리건에 가까웠다.

오죽하면 ‘미친 감독 모음’ 같은 거로 동영상이 돌아다닐까!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어?”

“와, 굉장한 미인이네요.”

“그런데 왜 한국에 온 거지?”

“그래. 바로 그게 문제다. 왜 왔겠나? 왜 김태현 선수를 만났겠나?”

“??”

“이런 눈치 없는 사람들을 봤나. <토론토 메이플베어즈>로 스카우트를 하려고 온 거 아니겠나!”

“예?”

“…김태현이 미치지 않고서야 2부 리그 선수로 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직원들은 황당해했다.

김태현이 뭐가 아쉬워서?

“꼭 선수로 갈 필요는 없지. 그것 말고도 많잖나! 감독이나….”

“아니. 지금 김태현 선수는 판온에서 고난이도 퀘스트 집중적으로 깨고 있고, 팀 주장에 감독에 단장까지 맡고 있는데 그게 가능합니까?”

“케인 선수 집안일도 해준다던데.”

“그게 사람인가?”

“초인이야, 초인.”

단장은 수군거리는 직원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서 말했다.

“물론 감독은 못 하겠지. 나도 그건 가능성 없다고 보네. 하지만 임시로 코치를 맡아서 도와주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이지 않나?”

“그 정도야….”

“확실히 그건….”

감독을 맡아 시즌을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능성 높아 보였다.

유명 랭커들을 임시 코치로 앉히는 건 꽤 잦은 일이었던 것이다.

판온 리그는 수십 가지 전략이 새로 나왔다가 사라지는 것은 기본이고, 상대팀 선수들이 갑자기 못 보던 스킬들을 쓰는 일도 흔했다.

실로 변화무쌍한 리그!

그러다 보니 게임단도 쓸 수 있는 건 모두 쓰게 마련이었다.

A팀의 스킬 B가 위협적이라면, 그 스킬 B를 갖고 있는 랭커 C를 불러내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게 만약 김태현이라면….

“김태현이 코치를 맡으면… 와, 장난 아니겠는데요?”

“정말 굉장하겠는걸?”

직원들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김태현이 코칭을 해준다니. 아무리 임시라고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 나올 것 같았다.

팀 KL은 모든 경기를 역대급으로 치러내는 팀.

그런 팀의 절반만 따라가더라도….

꿀꺽-

“지금 남의 이야기처럼 말할 때냐! 이런….”

“죄, 죄송합니다. 단장님.”

“반드시 이번 해에 1부 리그로 승격하겠다고 다짐한 건 나뿐인가!”

“아닙니다!”

“유성 게임단을 보게! 얼마나 잘나가는지….”

LK 갤럭시 단장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전, 유성 게임단이 연패 기록을 깨고 바닥 중의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바로 한 칸 위에 있던 게 LK 갤럭시였다.

네가 있어서 행복했던 시절!

든든하게 꼴찌를 깔아주는 유성 게임단에, LK 갤럭시는 우정을 품고 있었다.

물론 유성 게임단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했지만!

그러나 그건 이제 정반대였다. 유성 게임단은 회장이 미쳤는지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으며 국내 게임단 중 손꼽히는 수준으로 솟구쳤고….

LK 갤럭시는 2부 리그에서 허리띠를 조이며 헉헉대고 있었다.

반드시 성적을 내야 했다!

“단장님, 반드시 김태현 선수를 모셔오겠습니다!”

“메이플베어즈 쪽이 섭외를 한다면 저희도 반드시 섭외를 하겠습니다!”

* * *

촤아아아아악-

“…미친.”

[괴수, <도시파괴자>가 <대지진>을 사용합니다!]

[바다가 갈라집니다!]

바다로 돌진하는 <도시파괴자>의 뒤를 쫓아온 태현은 경악했다.

저게 대체 무슨 광경이냐??

바다가….

바다가 갈라지고 있다!

[카르바노그가 <도시파괴자>의 괴력에 경악합니다!]

발을 굴러대며 스킬을 사용하자 주변의 파도가 쫙 밀려나며 깊은 심해 바닥이 드러나는 괴력!

그 모습에 겔렌델 공작이 감탄했다.

“폐하, 실로 놀라운 괴력입니다.”

“그렇군….”

“저 괴수를 붙잡아서 길들인 다음 오크를 쓸어버리면… 아차. 제가 너무 본심을 털어놓은 것 같습니다. 쑥스럽게!”

“아니, 그대는 원래 그랬는데.”

겔렌델 공작은 신이 났지만, 다른 엘프들은 매우 의기소침한 표정이었다.

-저기를 내려가야 한다고?

-바다가 다시 갇히면 익사하는 거 아닙니까?

-저 괴수 놈이 뒷걸음질 한 번만 쳐도 우리는 죽을 것 같은데….

태현은 엘프 정예 전사들이 갑자기 불쌍해졌다.

나름 왕국의 정예로 훈련받은 자부심 강한 이들이, 상관 한 명 잘못 만나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만약의 일이 있을 경우 어떻게든 빠져나가게 도와줄 테니까.”

[화술 스킬이 매우 높….]

[명성이….]

[….]

그 한마디에 갑자기 눈물을 그렁거리며 감동하는 엘프 정예 전사대!

“폐하…!”

“폐하 같은 분은 처음 뵙습니다!”

“폐하께서 저희의 상관이셔야 했는데!”

“언제 한번 왕국에 찾아와 주십시오!”

“아니, 저희를 요청해 주시면 저희가…!”

뜨거운 엘프들의 반응에 오히려 태현이 당황했다.

[카르바노그가 이 엘프들이 좀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했냐? 나도 그래.’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럴까!

하지만 지금은 엘프들을 배려해 줄 시간이 없었다. 괴수의 뒤를 쫓아서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했다.

[카르바노그가 바닷길이 다시 닫히면 어떻게 할 거냐고 의아해합니다.]

‘그건 그때 고민하자.’

[…!]

* * *

“아, 아니. 노드란체잖아?”

“왜 하필이면 와도 김태현이 있는 곳에…?”

“김태현이 없을 수도 있지 않냐?”

“아냐. 거기 개척단 플레이어한테 물어봤더니 김태현 있다는데.”

겔렌델 공작과 드워프 사신단의 뒤를 쫓아온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목적지를 깨닫고 배 위에서 웅성거렸다.

원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겁이 없었지만….

이번은 예외!

김태현은 정말로 무서웠던 것이다.

실력도 있고 세력도 강한데 집요하기까지 한 놈!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노는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도망치기도 힘든 놈!

“…….”

“…….”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잠시 고민했다.

김태현이 있는 곳에 괜히 고개 내밀고 깝치다가 한 대 맞느니….

그냥 근처에서 적당히 해적질 좀 하다가 돌아가자!

“흠흠. 난 덩글랜드 왕국하고 사이가 나빠지면 안 되니까… 엘프 공작 얼굴 봐서 이번만 봐줬다.”

“크흠. 나도 뭐… 노드란체 같은 곳에 뭐 대단한 게 있다고.”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서로 눈빛만 봐도 뜻이 통했다.

우리 그냥 건드리지 말자!

“야. 근처에 적당한 배 없냐? 빨리 찾아봐. 기껏 배 끌고 나왔는데 뭐라도 건져야 할 거 아냐. 유지비도 안 나오겠다.”

“기다려 봐. 지금 찾고 있어. 어. 저기 어선인가? 낚시꾼 배 같은데.”

“에이. 별로 같은데.”

약탈자들이 몰고 있는 배들은 날렵한 중형 범선이었다. 대형 범선은 너무 비싸기도 하고 유지하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그 정도만 해도 바다에서는 어깨에 힘주고 다닐 수 있었다.

돛단배 몰고 다니는 플레이어들이 수두룩한데, 중형 범선쯤 되면 나름 수준이 대단한 것이다.

그런 약탈자들에게 작은 낚시꾼용 배는 하찮아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안 터는 건 아니었다.

“정지! 정지!”

“?”

배 위에 타고 있던 낚시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인가?”

“아아. 여기는 우리, 벡텔 시의 영주인 우리들의 바다다. 그러니까 세금을 좀 거둬야겠는데.”

“??”

낚시꾼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민하다가 손바닥을 쳤다.

“아, 자네들 해적이군!”

사실상 주인이란 게 없는 무법 도시 벡텔의 영주라는 게 뭔 소리인가 했네!

길드 동맹인 줄 알았잖아!

“뭐, 뭐라고? 감히 우리보고 해적이라고?”

“맞는 말이긴 하지만 용서할 수 없다!”

원래 맞는 말이 더 아픈 법!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화를 내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어차피 핑계가 없었어도 무기를 뽑았을 것이다.

“하하, 젊은 친구들. 싸우고 싶으면 말하지 그랬어.”

낚시꾼은 웃으면서 배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두르고 있던 외투를 집어 던졌다.

파아아앗-

그러자 현질로 다져진 눈부신 장비 세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

“…….”

“…X발.”

보는 순간 견적이 나왔다.

집 몇 채는 판온에 쏟아부은 아저씨!

‘잘못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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