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69화
“뭐야. 그런 걸 원한 게 아니었다고?”
태현은 의아해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대체 날 왜 부른 거지?
“내가 그런 거 말고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다고?”
“…다른 좋은 말도 많잖아.”
“??”
태현은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에반젤린은 더욱 기가 막혔다.
저, 저, 저…!
“그런 플레이는 잘못됐단다! 팀 플레이를 하렴!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지 않아?”
“흠. 잘못됐나? 딱히 틀리진 않은 것 같은데….”
“틀렸어! 틀렸다고 말해줘! 제발!”
에반젤린은 태현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사납게 말했다. 그 기세가 대단해 태현도 움찔할 정도였다.
이것이 감독의 기세…!
“알겠어. 알겠어. 그렇게 말해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태현의 말에 에반젤린 얼굴이 환해졌다.
팀 선수들 모두가 존경하는 태현의 말이라면, 선수들도 듣고 반성할 것이다.
-아! 리그 1위의 선수가 저렇게 말하는데! 우리가 정말 개같이 플레이를 하고 있었구나!
-앞으로는 머릿속에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 플레이를 해야겠어!
그렇게 신이 난 에반젤린 옆에서 이다비가 말했다.
“그런데 태현 님 바쁜데 시간 내서 코칭을 부탁하는 거니까, 당연히 보수는 제대로 준비해서 갖고 온 거 맞으시죠?”
“응? 쟤한테 뜯어낸… 아니, 받아낸 게 많은데 굳이?”
태현에게도 아주 조금의 양심은 있었다.
솔직히 좀 많이 뜯어냈지!
“하지만 태현 님. 잘하는 건 공짜로 해주시면 안 돼요. 적절하게 받지 않으면 나중에 귀찮아질 수도 있잖아요.”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야.”
에반젤린도 지금 엄연히 감독(대행)이니 공적인 자리였다.
대가 없이 해주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둘의 대화를 듣던 에반젤린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
“왜 웃는 거죠?”
“글쎄? 자신감이 넘치나?”
케인은 에반젤린의 웃음을 보고 놀랐다.
“저건… 김태현이나 할 법한 웃음인데?”
“정말 자신감이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런데 뭘 갖고 왔길래?”
에반젤린은 웃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보통 보수로는 안 될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
“아니. 사실 너한테 뜯어낸 게 많아서 이번은 그냥 부탁해도 들어줄 생각이었는데.”
이다비랑 친해지기도 했고 그 정도 부탁도 못 들어주겠나!
그 말에 에반젤린의 표정이 매우 미묘하게 변했다.
“…보통 보수로는 안 될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
‘억울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매우 억울해하고 있군.’
-그럴 줄 알았으면 이 고생을 안 했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태현은 에반젤린에게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 뭘 갖고 왔는데? 와. 너무너무 기대되는걸?”
“…그만해… 으흠. 으흠. 김태현. 판온에서 가장 희귀한 금속이 뭐지?”
“오리하르콘하고 아다만티움이겠지.”
“그래! 바로 그 아다만티움을 준비했어!”
에반젤린은 그렇게 말하며 태현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태현이라도 아다만티움을 준비했다는 말에는 깜짝 놀라리라!
대장장이 직업 출신인 태현이라면 더더욱….
“…….”
그러나 태현은 매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다만… 티움은….”
“왜, 왜?!”
“우리 집에도 한 박스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게 말이 돼?!”
에반젤린은 기겁했다.
그녀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간신히 한 덩어리 구해냈는데, 뭔 한 박스가 있어!
“아니. 아다만티움은 귀한 보상이지. 고맙게 받을게.”
“전혀 고마운 표정이 아니잖아! 좀 더 고마워해달라고! 좀 더 기뻐해달라고!”
“아. 왜 이렇게 케인처럼 귀찮게 굴어? 해준다니까? 해준다고 했잖아.”
“내가 그거 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에반젤린은 울상이 되어 외쳤다.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그렇지 뭔 놈의 집에 아다만티움 한 박스가 있냐!
* * *
진정하고 나서야 에반젤린은 원래 목적을 달성했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조언해 주는 거 맞지?”
“그래. 그래. 판온에서 만나서 개인 플레이가 무엇인지 알려주면 되는 거지?”
“…팀 플레이. 팀 플레이!!”
“그게 그거지. 어쨌든 이해했어.”
한국에 온 첫날에 바로 목적을 달성하자 에반젤린은 매우 기뻤다. 캐나다를 떠날 때만 해도 게임단의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가.
-오우. 감독님. 너무 터무니없어요. 김태현이 뭐가 아쉬워서 2부 리그 팀을 도와줘요우.
-김태현이랑 친하다고요? …에반젤린 씨. 요즘 많이 힘드신가 본데 상담이라도 받으실래요?
실로 냉정한 반응!
-에반젤린 감독. 우리 게임단은 자네를 믿고 있네.
-단장님…! 단장님은 절 믿어주시는군요!
-그러니까 그냥 남아서 일에 집중해 주게. 저 친구들이 놀린다고 거기에 반응할 필요는 없어. 자네는 젊으니까 허세를 부릴 수도 있지.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김태현 선수가 워낙 영웅이니 친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이해하겠지만….
-아 진짜 친하다고! 친한 건 아니어도 아는 사이라고!!
-켁켁. 에반젤린 감독! 정신 차리게!
-대회 영상도 보여줬는데 왜 안 믿는 거야!!
…이랬던 에반젤린이었다.
하루 만에 성공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며칠을 매달리더라도 설득하려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흔쾌히 수락!
그녀는 이다비를 꽉 껴안고 고마워했다.
“다 네 덕분이야!”
“아니에요. 에반젤린 씨가 고생한 덕분이죠. 그런데 에반젤린 씨. 약속한 건 잊지 마세요.”
“…파워 워리어 꼭 홍보하고 다닐게…!”
“추천해서 가입시키셔야 해요!”
공항으로 에반젤린을 마중 오는 대가로 약속한 파워 워리어 추천!
그 모습에 태현 일행은 감탄했다.
이다비…!
이 무서운 아이!
해냈다는 표정으로 돌아가려던 에반젤린은 멈칫했다.
“?”
“…한국 온 김에 시간 남으면 관광도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너무 빨리 끝나서….”
에반젤린은 이다비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물에 빠진 강아지 같은 눈빛!
그 눈빛에 이다비는 당황했다.
“왜, 왜 그러세요?”
“한국에 아는 사람 없어…! 도와줘…!”
“아, 아니. 저도 아는 곳 없어요!”
이번에는 이다비가 태현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냥 네가 좋아하는 곳 데려다주면 안 되나?”
“제가 좋아하는 곳… 동네 놀이터요?”
입장료 무료, 제한시간 없음, 다양한 콘텐츠 제공, PVP 가능!
이다비가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다.
“…….”
“…….”
태현과 이다비는 서로 침묵했다. 이다비는 아무리 생각해도 동네 놀이터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도와주세요…!”
“아니. 나도 아는 거 없어! 쟤는 왜 굳이 한국에서 관광을 하려고 하지? 판온에서 하면 되잖아!”
한국에는 용암 화산도 없고 오로라도 없고 하늘성도 없는데!
완전 잘츠 왕국 아니냐?
“그게 지금 한국 찾아온 관광객한테 할 소리냐?”
“오. 케인.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네가 하면 되겠군.”
“맞아. 네가 하면 되겠네. 믿는다. 케인.”
“잘할 수 있지?”
“…?!?!”
케인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 *
“여기가 캡슐방이야! 판온을 할 수 있어! 요리도 나오는데 맛있어!”
“…한국까지 와서 판온을?”
“여기는 카페야! 조용한 곳이라, 카페 주인분도 날 굳이 아는 척하지 않으셔. 손님들도 물론이고!”
케인의 말에 다른 일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그냥 못 알아본 것 아닌 읍읍.”
“그만해. 그만. 일단 들어가 보자고.”
일행은 케인이 추천하는 카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카페 주인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김태현 선수?!”
“앗.”
“어.”
“…….”
“김태현 선수 맞으신가요? 제, 제 아들이 팬인데 혹시 사인 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 물론이죠.”
“혹시 옆에는 이다비 선수, 헉. 최상윤 선수까지…! 팀 KL이 다 나온 건가요?!”
“네. 맞습니다.”
태현이 사인을 해주자 카페 주인은 너무 감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두리번거리던 카페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케인 선수는 어디 있나요?”
“…….”
“…….”
“헉. 저기 혹시 저분이?”
카페 주인은 에반젤린을 가리키며 물었다. 케인은 울컥해서 외쳤다.
“쟤는 성별부터 인종까지 다르잖아요!!!”
같은 게 하나도 없어!
“커스터마이징한 줄….”
“제가 케인이에요! 제가!”
“아니. 케인 선수였습니까? 왜 말 안 해주셨습니까?”
“아저씨도 아는 줄 알았죠!!”
“아니… 말을 안 했는데 어떻게 압니까?”
“그러면 절 보고 왜 그렇게 흐뭇하게 웃어주신 겁니까?!”
“아니, 단골손님이니까… 케인 선수인 줄 알았다면 진작 사인을 받았죠! 내가 팀 KL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좋아하는데 왜 제 얼굴도 못 알아봐요!”
“그야 케인 선수는 좀 덩치가 크고 팔도 4개는 더 달려야….”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케인은 엎드려서 꺼이꺼이 울어댔다. 그 모습에 에반젤린은 귓속말로 물었다.
“우리 그냥 나가면 안 돼?”
“하하. 에반젤린. 우리하고 같이 다닐 거면 우리의 쪽팔림도 같이 감수해야지. 통역기 끄지 마라. 치사하게.”
“…!”
어떻게 알았지?!
케인을 진정시키고 태현 일행은 카페 구석에 앉았다.
몇 명 없던 손님들은 바로 알아보고 사인을 받기 위해 달려왔다.
모두가 케인이 케인이라는 것에 놀라워했다.
“아니. 케인 선수였어요?”
“그냥 수상쩍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꾸 주변 사람 힐끗힐끗 쳐다보길래 다단계인 줄….”
“자자. 여러분. 사인해드릴 테니 그런 말은 그만….”
태현은 케인을 위해 재빨리 말을 막았다. 더 들었다가는 분명 울 것 같았다.
“김태현 선수. 혹시 <화산의 저주> 퀘스트 깨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지금 혹시 준비 중이신가요?”
“화산의 저주요?”
태현은 의아해했다.
솔직히 <화산의 저주>는 태현한테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았다.
태현의 영지는 이미 대비 완료!
“지금 하고 있는 퀘스트가 있어서 굳이 할 생각 없는데요.”
“하지만 김태현 선수가 아니면 깰 사람이 없지 않나요?”
“에이, 판온에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제가 안 깨도 다른 사람들이 깰 겁니다.”
“헉. 혹시 어떤 플레이어가 준비 중인지 아시나요?”
“야. 그런 걸 물어보면 어떡해. 곤란하시게.”
“앗. 그렇구나.”
친구가 말리자 팬은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태현은 아니라며 말렸다.
“별로 중요한 사실도 아닌데 괜찮습니다. 그런데 정말 제가 아는 게 없어서….”
“아. 그러신가요?”
“길드 동맹 랭커 앨콧이 깨려고 한다고 소문이 돌던데?”
“야. 걔가 어떻게 깨냐?”
“앨콧도 꽤 강한 랭커야.”
“길드 동맹 소속이잖아. 걔네가 뭘 하겠어. 다 거품이야.”
“길드 동맹도 나름 강한 길드야. 너무 무시하면 안 된다니까. 한국에서나 비웃는 거지 길드 동맹만큼 강한 길드가 드문… 앗. 죄송합니다.”
길드 동맹 거품이냐 아니냐로 싸우던 두 친구는 멈추고 사과했다.
“아뇨. 뭐 거품 맞죠.”
“…!!”
듣고 있던 에반젤린이 기겁할 발언!
“그, 그렇게 말해도 돼?”
“거품 맞잖아.”
“역시 김태현 선수…!”
“김태현 선수한테 길드 동맹은 한 입 거리 아닙니까!”
옆에 있던 팬들만 신이 날 뿐!
길드 동맹을 과소평가하든 과대평가하든,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길드 동맹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장 길드 동맹이 잘나갈 때를 떠올려보라!
왕국을 지나가기만 해도 몇 배의 세금을 뜯어내지 않았던가.
태현 한 명을 잡지 못해서 망했을 때만 해도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그런데 그놈들이 슬금슬금 다시 부활하려고 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태현의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길드 동맹이 아무리 잘나가도, 태현만 있다면 괜찮을 거 같은 안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