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68화
“아무리 친구가 없어도 그렇지, 자꾸 널 괴롭히면 차단해 버려.”
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다비는 당황했다.
“아, 아니. 괴롭히는 거 아닌데요. 그리고 에반젤린 씨도 친구 있어요 이제.”
“가상의 친구? 상상의 친구?”
옆에서 케인도 거들었다.
“크흠. 이다비. 돈 빌려달라고 하는 건 사실 친구가 아니라….”
경험담 100%!
“아니. 진짜 친구 있거든요. 애초에 선수까지 뽑혔었는데 친구가 없을 리가 없잖아요. 직업 페널티도 이제 막고 있고.”
“그래?”
태현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태도!
“그러면 왜 자꾸 너한테 연락하는데?”
“아. 곧 한국 올 건데 만날 수 있냐고….”
“수상해!”
“수상쩍어!”
“진짜 수상합니다!”
남은 일행들도 동시 반응!
그 반응에 이다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에반젤린 씨는 대체 어떤 이미지길래….’
“아, 아니. 한국 모르는 사람인데 한국 오면 부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탁-
태현은 이다비의 손을 잡았다.
“?!”
“이다비.”
“네, 네, 네???”
“같이 나가자.”
“어, 네, 음.”
“…?”
고장났나?
이다비가 고장난 사람처럼 말을 반복하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이 나가자니까?”
“네… 네! 네!”
“그래. 좀 수상하다. 내가 꼭 에반젤린을 의심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같이 나가자.”
“…….”
이다비는 에반젤린이 매우 불쌍해졌다.
* * *
토론토 메이플베어즈.
캐나다의 게임단이자, 판온 2부 리그의 팀 중 하나였다.
최근 2부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팀 중 하나!
판온 1부 리그에 들어가지 못한 게임단들은 처음에는 ‘아 우리가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2부에 들어갑니까! 우리 선수들이 어떤 랭커들인데!’라고 반응했지만, 1부 리그의 대흥행을 보고 ‘크흠 2부 리그에서 잘해서 승격하면 되니까…’ 하고 2부 리그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2부 리그의 경쟁도 1부 리그 못지않게 치열했다.
2부 리그의 상위권 팀들은 리그 이후 1부 리그로 올라갈 수 있으니 당연한 것이다.
-<토론토 메이플베어즈>는 반드시 승격한다!
-캐나다도 1부 리그에 한 팀 정도는 있어줘야지!
-<토론토 메이플베어즈>는 너무 경기력이 불안정해서 안 됨.
-2부에서는 한국 팀들이 너무 깡패야.
-1부나 갈 것이지 왜 2부에서 양민 학살이야!
그러나 팬들은 불안불안했다.
<토론토 메이플베어즈>는 잘 나갈 때는 잘 나가는데,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에반젤린은 이 팀의 수석 코치였다.
랭커들이라고 무조건 선수로 뛰는 건 아닌 것이다.
다른 게임 감독 경험이 있는 랭커들은 아예 감독으로 뛰는 경우도 있었고, 코치 쪽으로 경력을 쌓는 랭커들도 있었다.
“끄으으으으으응….”
그리고 에반젤린은 고민하고 있었다.
선수들을 다루는 게 너무 어려워!
원래 아싸였던 에반젤린에게 선수들을 잘 이끄는 리더십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실력은 어디 안 가니, 어떻게 싸우는지 스킬 조합을 만들거나 전력을 분석하거나 전술을 짜는 건 잘 하는데….
선수들을 다독이고 뭉치게 하는 건 다른 일이었다.
다른 코치들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 팀 선수들 너무 개성 넘치는 거 아닙니까?”
“실력이 없는 건 아닌데 전술을 지시해도 멋대로 구니….”
“감독님 어디 갔습니까? 다음 경기 준비해야 하는데.”
“…감독님 사퇴했다는데?”
“!??!?”
“아, 아니. 왜? 어째서? 저번 경기 불안하긴 했는데 그래도 이기긴 했잖아요! 아무리 선수들이 말을 안 들어먹어도 그렇지!”
“아니. 그냥 건강 문제야.”
“아….”
“휴. 다행이다.”
“건강 문제라면야….”
“뭐가 다행인 건데?!”
“헉, 그렇군.”
코치들은 정신을 차렸다.
“후임 감독은 어떻게 됩니까?”
“지금 게임단에서 찾고 있는데 좀 걸릴 거 같고… 그 동안은 수석 코치가 대행을 해야겠지.”
“…….”
에반젤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제가요?”
“네. 네가요.”
“아니, 저는 수석코치로 계약한 건데….”
“감독 부재 시 대행한다고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어?”
“…예….”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절망한 에반젤린이었지만,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자기도 몰랐던 능력이 나오게 마련이었다.
에반젤린은 괴력을 발휘해 선수들을 이끌어 그 다음 경기를 어떻게든 이끌어나갔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어!’
에반젤린은 어디서 배울 만한 좋은 상대가 없나 고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1부 리그에서 혼자 소규모 게임단을 이끌고 대활약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 있었지!
* * *
이다비는 공항 앞에서 뭔가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 에반젤린을 보고 의아해했다.
뭘 들고 있는 거지?
“뭘 갖고 온 거죠?”
“앗, 이거, 선물….”
에반젤린은 우물쭈물하며 선물을 내밀었다.
일종의 뇌물 비스무리한 것!
“이게 뭐죠?”
“엑셀이라는 사탕인데 민트 맛 사탕….”
“…….”
“…이랑 메이플 시럽이랑 메이플 소스랑 아이스와인이랑 아이스와인 넣은 초콜렛이랑….”
무슨 캐나다 여행 갔다 온 사람이 줄 법한 선물!
이다비는 당황해하면서도 선물을 받았다.
“감… 감사합니다?”
“별… 별걸 다?”
선물을 건네고 난 에반젤린은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나 이 사람이랑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
온라인이나 판온에서 이야기할 때는 편했는데 실제로 1:1로 만나니 갑자기 긴장된다!
케인이 옆에 있었다면 ‘그 기분 나도 이해해!’ 하면서 아싸 토크를 펼쳤을 것이다.
에반젤린은 허둥지둥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도와줄 다른 코치라도 데리고 올 걸…!’
그 모습을 감시하던 팀 KL 선수들은 수군거렸다.
“쟤 왜 고개를 저렇게 흔들지?”
“숨겨 놓은 사람들을 부르려는 거 아닐까?”
“매우 수상쩍습니다.”
사실 수상쩍은 건 팀 KL이 더했다. 공항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시선을 던지고 있었으니까.
-저 사람들 뭐야?
-쉿. 무서우니까 쳐다보지 마.
-하지만 엄마. 저 사람 김태현 선수 같은데….
-김태현 선수가 왜 저러고 있겠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렴!
-히잉. 진짜 김태현 선수 맞는 것 같은데.
이다비는 망설이다가 에반젤린에게 물었다.
“저, 그런데….”
“네? 무엇이든 말씀해 주세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에반젤린 씨하고 만난다고 하니까 태현님이 같이 와도 되냐고 물어서….”
“…!”
에반젤린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야기하기도 전에 이렇게 쉽게?
“물론이죠!”
“앗. 진짜 괜찮나요?”
“네! 당연히!”
에반젤린이 너무 좋아하자 이다비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왜지?
“왜 그러세요?”
“앗.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부를게요.”
“어디 있….”
말하던 에반젤린은 멈칫했다. 기둥 뒤에서 팀 KL 선수들이 갑자기 우르르 튀어나왔던 것이다.
“…었나 했더니….”
“하하. 에반젤린. 오랜만이야. 딱히 널 못 믿어서 숨어 있었던 건 아니고….”
“…….”
에반젤린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이 인간들…!
날 진심으로 의심하고 있었어…!
“어? 저기 김태현 아냐?”
“김태현 맞는 것 같은데? 저기는 이다비고. 저 사람은 외국인인가?”
“에반젤린이잖아! 캐나다 랭커! 나 알아!”
“뭐, 뭐야. 판온 행사 같은 거 하는 건가?”
“케인은 어디 있지? 케인만 안 보이는데.”
“저기 작은 선수가 케인 아냐?”
“케인은 팔이 여섯 개야, 엄마!”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자 태현은 말했다.
“…일단 이동해서 이야기하자!”
* * *
“여기 사탕.”
“?”
“캐나다 선물….”
“아. 그렇군.”
태현은 케인에게 줬다. 사탕이 별로 당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케인은 신이 나서 포장을 뜯고 입에 던져 넣었다.
“#&!$^@!”
“왜 이래?”
“맛없나 보다. 우린 먹지 말자. 케인. 뱉는 건 아니겠지? 에반젤린이 멀리서 사 온 선물인데.”
“&^*[email protected]!”
태현은 케인을 내버려두고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앗. 알았다.”
“!”
에반젤린은 깜짝 놀랐다.
역시 김태현…!
살벌한 1부 리그를 혼자 독주하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알아차리다니!
“K-POP 유행 때문에 한국 여행을 하고 싶어서 온 거군!”
“…아니거든… 듣지도 않아!”
물론 유행은 유행인데 에반젤린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뭐? 안 들어?”
“김태현. 에반젤린은 아싸잖아. 아싸는 원래 저런 거 안 들어.”
케인은 잘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에반젤린은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려다가 말았다.
“그게 아니라….”
에반젤린은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들으면서 팀 KL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워했다.
오… 그런 사정이…!
“이야. 감독도 힘들군요.”
“코치도 힘든 일이지. 암암.”
케인과 정수혁의 대화를 들은 최상윤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야. 너희처럼 리그 편하게 뛰는 선수들은 판온에 없거든? 우리가 비정상적으로 쉽게 하는 거야!”
머리 비우고 뛰면 태현이 알아서 밥상 차리고 떠먹여주는 수준인데!
에반젤린의 설명을 들은 태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감독하라고?”
1부 리그 주장, 게임단 단장, 선수로 뛰면서 감독도 하라니 미쳤냐??
“아니야! 그냥 조언 들으려고 온 거야. 우리 팀 선수들이 다 널 존경한단 말이야.”
“존… 존경?”
“미쳤나?”
“아니. 말 됩니다. 선배님이랑 직접 안 부딪히는데 존경할 수도 있죠.”
“아. 하긴….”
다른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만나서 안 당해봤으면 존경할 수도 있겠다!
“그 생각 1부 리그에 올라오면 바뀔 텐데….”
“한 번 부활지점 무한킬 당해봐야….”
“조용히 해. 그래서 내가 너희 팀 플레이어들을 만나서 정확히 뭘 해야 하는데?”
“진심 어린 조언?”
옆에서 듣고 있던 케인이 신음소리를 냈다.
“음. 어렵군.”
“아니. 너한테는 부탁 안 했는데.”
“…….”
케인은 멈칫하더니 다시 말했다.
“…나도 하게 해줘!”
“그, 그래. 하고 싶다면야. 얘네들이 실력이 부족하거나 하지는 않은데, 다 좀 제멋대로에 자기중심적이라….”
플레이를 하다 보면 팀이 아닌 자기 위주로 플레이를 한다!
저기 밑에서 힐러가 쳐맞고 있는데 도와주러 갈 생각 안 하고 자기 앞에 있는 상대 팀 딜러와 승부를 가리겠다며 덤벼드는 일들을 겪고 나면, 팬들은 뒷목을 잡게 되어 있었다.
-저 미친놈 딜러 시키지 마라!
-아니, 그래도 팀에 저만한 딜러가 없는데….
-지가 김태현인 줄 알아! 또라이 같은 놈!
설명을 들은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도 많이 겪어 본 타입이었다.
자기 위주의 플레이와 팀을 생각하는 플레이는 명백하게 달랐다.
“흠. 이해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래. 나처럼 뒤에 신경 안 쓰고 딜만 넣어도 어떻게 게임을 운영하고 이길 수 있는가가 궁금한 거겠지?”
“아, 아니. 그걸 물은 게 아닌데?”
에반젤린은 기겁했다.
에반젤린이 원한 건 그들이 존경하는 태현이 가서 ‘그런 플레이는 잘못됐단다! 팀 플레이는 이런 거란다!’라고 말해주는 거지, ‘너희의 플레이는 틀리지 않았단다! 더 열심히 딜을 넣으렴!’이라고 말해주는 게 아니었다.
이 인간이 더 악화시키려고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