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67화
순간 우드스탁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니 뭐라고?
“어,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도시를 점령했으니 다른 교단 건물들은 다 치워버리겠다고 했습니다만. 당연한 거 아닙니까. 모험가님?”
갈락파드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펠마스가 있었다면 ‘으악 미친놈이 또 미쳐 날뛴다!’ 하며 도망쳤겠지만, 우드스탁은 불행히도 갈락파드가 어떤 인간인지 잘 몰랐다.
“아, 아니. 그러면 다른 교단 믿는 플레이어들이나 NPC들은….”
“아키서스 교단을 믿으면 될 거 아닙니까!”
쾅!
갈락파드는 지팡이로 바닥을 쾅 내리찍으며 사납게 외쳤다.
방금까지 인자했던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아키서스에 미친 늙은이가 등장했다.
“힉!”
우드스탁은 무심코 쫄았다. 그러자 길드원들이 말했다.
“길마님. 저건 NPC지 김태현이 아니에요.”
“맞습니다. 김태현도 없는데 쫄면 어떡합니까!”
“그런데 김태현 부르면 어떡해?”
“지금 김태현 하는 퀘스트가 몇 개고 리그도 뛰는데 여기 뭐한다고 오겠습니까? 쫄지 마세요!”
“그, 그렇지?”
그러나 갈락파드 앞에서는 쫄아야 했다. 길드원들은 아직 갈락파드가 얼마나 미친놈인지 몰랐던 것이다.
“아키서스의 하인들아!”
갈락파드는 뒤를 보며 사납게 외쳤다.
“예!”
그러자 갈락파드가 데리고 다니는 마탑 출신 마법사 노예들부터 시작해, 아키서스 십자군 때에 추가된 광신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갈락파드와 같이 아키서스에 미친 광신도들!
광신도들이라고 우습게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이 공성전에서 보여준 위력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틸라우 기사단의 돌격을 정면으로 받아치고 힘싸움으로 밀어내서 성벽을 뚫고 들어가는 괴력!
단순히 레벨이 높거나 방어력이 높은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광적인 수준의 사기!
아키서스 광신도들은 아무리 기사단이 돌격을 해도 물러서질 않고 오히려 폭탄을 들고 덤벼들었다.
몇 명이 쓰러져도 물러서지 않고 버티니 오히려 기사들이 제풀에 놀라 뒤로 후퇴를 할 정도였다.
그런 이들이 우르르 달려오자 우드스탁 길드는 말 그대로 쫄았다.
“아, 아니. 갈락파드 씨. 우리 말로 합시다. 왜 이러십니까?”
물론 갈락파드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화술 스킬이 낮습니다!]
[명성이 부족합니다!]
[신성력이 부족합니다!]
[설득에 실패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피를 아끼지 않고 이들을 도왔는데 이들은 우리를 배신하려고 한다!”
“감히 어떻게 그런!”
“아키서스에 대한 모욕! 아키서스에 대한 모욕!”
“이들을 죽여서 모욕을 씻자!”
“?!”
점점 과격해지는 광신도들의 대화!
우드스탁은 기겁해서 다시 말했다.
“아, 아닙니다! 오해가 있었습니다! 철거할게요! 철거할게요!”
“그게 정말인가?”
“예! 예!”
“갈락파드 님! 이런 놈들은 믿을 수 없습니다!”
광신도들은 우드스탁을 둘러싸고 살벌하게 외쳐댔다. 그러자 우드스탁은 겁먹고 외쳤다.
“너 어느 교단이야! 아키서스 교단이야 아니야!”
“아, 아니. 다른 교단 안 믿겠습니다! 진짜입니다!”
“못 믿겠어! 다른 교단 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하겠습니다!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길드원들도 혼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제야 광신도들은 만족한 얼굴로 물러났다.
갈락파드는 우드스탁이 정신을 차리자 다시 말했다.
“그 다음.”
“예?”
“…우리가 피를 아끼지 않고 도왔는데 배신을…!”
“아, 아니! 아닙니다! 듣고 있습니다!”
“그 다음 조건은 광장에 아키서스 동상을 짓는 것이다.”
“아. 예… 그거야 뭐….”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중앙 광장 이름은 <아키서스 광장>으로 바꾸고.”
“그것도 뭐….”
그것도 별로 어렵진 않았다. 그냥 이름 바꾸는 건데.
“아키서스 교단 아닌 자들한테는 세금을 더 물리고.”
“…….”
진짜 미친놈은 미친놈이구나!
갈락파드는 그런 생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건 몇 개를 더 늘어놓았다.
우드스탁은 속으로 끙끙 앓았다. 저걸 어떻게 다 들어주냐!
‘안 되겠다. 전리품을 좀 더 주더라도….’
“갈락파드 씨. 도시 점령하면서 얻은 골드나 전리품을 좀 더 챙겨드릴 테니….”
“그런 건 필요 없다.”
“예?”
“아키서스 님을 위한 싸움에 무슨 골드를 탐하나!”
“어, 한 푼도 말입니까?”
“그렇다!”
우드스탁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갈락파드가 미친 늙은이에서 산타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진짜?
그냥 공짜로 싸워준다고??
아니 물론 공짜는 아니긴 한데…!
옆에 있던 길드원들도 엄청 놀라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길마님! 받아들입시다!”
“어차피 우리가 내는 세금도 아니잖아요! 꼬우면 개종하라고 해요!”
“전리품을 안 받아간다는데!”
“이렇게 퍼주는 조건이 어디 있습니까!”
공성전이 성공하면 거기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공적치 포인트대로 보상을 나눠 가졌다.
공적치 포인트가 가장 높은 세력이 바로 이 십자군들!
그런데 그걸 싹 포기하겠다니.
길드원들의 눈에는 천사로 보일 뿐이었다.
‘아키서스 교단…! 이렇게 퍼주고도 남는 게 있단 말인가?’
‘사람이 남는 건가!’
‘크윽… 아키서스 교단… 오해해서 미안해! 미친놈들인 줄 알았는데!’
‘미친놈들은 맞지 않나?’
‘조용히 해, 인마. 저 조건이 얼마나 좋은 조건인데.’
다른 교단 건물 철거해 봤자 손해 보는 건 다른 교단 플레이어들이었고, 세금 더 걷는다고 해서 우드스탁이 손해 보지 않았다.
불만이야 좀 나온다지만 그런 불만 듣는다고 뭐 달라지겠는가.
판온 길드는 원래 불만 좀 들으면서 운영하는 거였다.
동상이야 뭐 지금 플레이어들한테 영주 자격으로 퀘스트 내리면 순식간에 되는 거고….
“…받아들이겠습니다! 갈락파드 님!”
“충성충성충성!”
“아주 잘 생각했다.”
갈락파드가 만족스럽게 떠나자, 길드원들은 모두 환호했다.
날로 먹었다!
“길마님. 동상 어떻게 지을까요?”
“야. 그래도 그렇게 받았는데 좀 좋게 지어주자. 퀘스트 걸 때 비싼 재료 쓰라고 하자.”
“금 쓰라고 할까요?”
“으음. 나쁘지 않지.”
“금, 금은 너무 비싸지 않아?”
“아냐. 지금 영지에서 나온 거면 충분해. 봐라, 애들아! 이제 이 영지가 다 우리 거야! 이 수입 창을 보라고!”
우드스탁은 영지의 창을 띄워서 보여줬다.
치열한 영지전 이후라서 망가지거나 수리해야 할 시설들이 많고, 주민들의 불만도 높고, 이것저것 페널티가 붙긴 했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잠재력과 수익이었다.
이 영지만 있으면 이제 밖의 수많은 투자자들이 우드스탁 길드에 투자를 하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만 되면…!
그걸 생각만 하면 황금으로 동상 세워주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다비나 태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태현 님! 저 인간들이 미쳤나봐요! 황금으로 동상을 만들겠대요!
-정신나갔냐!? 왜 황금으로 그딴 짓을 해?!
그러나 여기 있는 사람들은 태현이나 이다비만큼 생각이 깊지 않았다.
돈 많이 얻었으니까 팍팍 쓰자!
“좋아! 황금 동상이다!”
“근데 아키서스는 어떻게 생긴 신입니까?”
보통 다른 교단들은 자기네들이 믿는 신 동상 정도는 갖고 있었다.
역사가 오래되었으니 예전부터 이어져 오는 얼굴이 있었고, 그 얼굴을 따라서 또 만들고, 만들고….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키서스 교단은 멸망했다가 다시 부활한 교단!
그런 얼굴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아키서스 교단은 그냥 쿨하게 태현의 얼굴을 그대로 따와서 만들었다.
지금도 골짜기에는 태현의 얼굴을 한 동상이 살벌한 기계공학 무기를 숨긴 채 고고하게 서 있는 것!
“김태현 얼굴로 만들었는데?”
“하긴 교황이니까.”
“이야, 길마님. 이거 일석이조 아닙니까? 동상도 만들고, 김태현한테 아부도 하고!”
“김태현이 이걸 좋아하나?”
“에이, 길마님. 누가 이걸 싫어하겠습니까? 자기 모습을 황금으로 만들어주는 건데!”
“맞아, 맞아! 나도 좋아하겠다.”
“게다가 골짜기에 있는 거 보면 김태현도 좋아하는 거 맞습니다.”
“크… 김태현이 감격해서 눈물 흘리는 거 아니냐?”
“너무 감격해서 우리 퀘스트 도와준다고 나설지도 모르겠는데?”
길드원들은 지금 공성전이 끝난 상태라 너무 행복해서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행복회로 풀가동!!
“아예 이렇게 된 김에 김태현 외모도 좀 버프해주자.”
“눈매가 매서우니까 좀 살짝 깎고.”
“김태현 실제 얼굴이랑 방송은 좀 다르던데?”
“어떻게 다릅니까?”
“실제 얼굴은 무서운데 방송은 눈매가 깎여서 그런지 되게 잘생기게 나오더라고.”
“그러면 방송용으로 해줘야죠! 뒤에는 날개 답시다.”
“날개는 너무 과하지 않냐?”
“에이, 할 거면 확실히 해야죠. 뒤에 후광도 답시다.”
“후광 좋다!”
“김태현이 그냥 서있으면 좀 허전한데 뭐 밑에 넣을 거 없나?”
“김태현이 쓰러뜨린 놈들 새겨 넣을까요?”
“너 천재냐? 아. 맞다. 쑤닝도 넣자.”
“왜요? 쑤닝 말고 블랙 드래곤이나 느부캇네살 같은 게 낫지 않나?”
“아니. 내가 쑤닝이 싫어.”
“…….”
“…….”
우드스탁 길드는 길드 동맹에서 오해로 쫓겨난 길드!
아직도 그 원한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이다.
길드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입니다!”
“쑤닝도 넣죠!”
“무릎 꿇고 울먹이는 쑤닝!”
“엎드려서 발발 떠는 쑤닝!”
“좀 더 추하게 보이도록 옆에는 고블린을 넣자. 고블린들이랑 같이 엎드리는 거야.”
“김태현이 고블린 부족을 데리고 있는 건 유명하니까 잘 어울리는군!”
“아예 쑤닝을 고블린으로 만드는 건 어때?”
* * *
팀 KL은 종종 모여 회식을 하곤 했다.
숙소도 쓸데없이 넓은 데다가 이다비도 사실 윗집에 살고 있었으니 별로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어. 이다비 되게 금세 왔네?”
“와. 태현 님. 이거 어디서 시키신 거예요? 되게 맛있는데요?”
이다비는 놀라서 물었다.
그러자 다른 일행들은 빤히 케인을 쳐다보았다.
“?”
“케인 놈이 해달라고 징징대서 내가 했어.”
“…….”
“…….”
이다비도 케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케인은 울먹이면서 말했다.
“그, 그냥 먹고 싶다고 한 건데…! 너희도 맛있었다고 했잖아!”
“맛있다고 했지 뭐 먹을 거냐고 물었을 때 선배님한테 요리 해달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도 판온하면서 수많은 인간들을 만나봤지만 케인은 좀 독보적인 쓰레기야.”
최상윤도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뉴스를 클릭하면 리플에 ‘그래서 케인은 밥 하고 있음??’, ‘케인 아직도 사장 부려먹음?’이 베스트 리플인데!
태현은 이다비한테 웃으면서 말했다.
“뭐, 사실 케인이 해달라서 해준 건 아니고. 너도 온다니까 겸사겸사 한 거야. 가능하면 맛있는 거 먹이는 게 좋잖아.”
“…!”
그걸 옆에서 들은 케인이 말했다.
“거 봐. 나 때문이 아니라잖….”
“아 좀 닥쳐.”
“닥쳐 보십쇼 좀.”
“?!?!?”
말의 날카로움이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 한차례 먹던 도중, 케인이 의문이 들어 물었다.
“잠깐. 이다비. 왜 그렇게 핸드폰을 많이 만지는 거지?”
“…케인… 너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친구’라는 게 있는데….”
최상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케인에게 말했다. 정수혁도 한 몫 거들었다.
“케인 씨. 친구라는 게 뭐냐면 서로 카톡 같은 걸 하는….”
“아니 친구가 뭔지는 알거든! 이자식들아! 나도 친구 있어!”
“돈 빌려달라고 하는 5년 만에 연락 온 친구 말고?”
“방송 시작했으니까 얼굴 좀 내밀어달라고 10년 만에 연락 온 친구 말고 말입니까?”
케인은 울지 않았다. 강해진 것이다. 꿋꿋이 버티는 그 모습에 둘은 감탄했다.
‘멘탈이 성장했어!’
‘대단하군!’
“…그건 알지만…! 이다비는 다르다고! 나처럼 친구 적다고!”
“와. 쓰레기. 어디서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케인 씨… 정말 이제 떨어질 바닥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한 번 더 떨어지시는….”
이다비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그런 게 아니라, 에반젤린 씨하고 대화하고 있었어요.”
그 말에 태현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걔 친구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