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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063화 (1,062/1,826)

§ 나는 될놈이다 1063화

“봐라. 널 위해 준비했다.”

태현은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을 가리켰다. 그러자 괴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마음껏 먹어도 좋다!”

와구와구-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괴수는 이미 음식에 돌진하고 있었다.

-다들 긴장해라.

-왜? 잘 먹고 있잖아.

-저거 먹고 만족 못 하면 우리가 다음 먹이니까.

-…….

케인은 소름이 돋았다.

저 괴수는 이제까지 펫과는 차원이 다른 놈!

[최고급 화술 스킬을…]

[칭호…]

[아키서스의 화신…]

[괴수 <도시파괴자>를 일시적으로 만족시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도시파괴자>의 만족도가 올라갑니다!]

[<도시파괴자>가 일시적으로 당신의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도시파괴자>는 만족도가 내려갈 경우 당신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산더미처럼 쌓은 음식은 괴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저 괴수는 언젠가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고 걱정합니다.]

‘나도 동감이다.’

카르바노그가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저 괴수는 다른 신수들처럼 완전히 태현을 따르는 게 아니었다.

먹이로 이뤄진 일종의 계약관계!

매번 저렇게 시간을 들여서 먹이를 준비할 수는 없었다.

‘영지의 요리사들을 동원해서 음식을 갖고 와야 하나?’

태현은 그런 생각까지 했다.

원래라면 저런 곳에 골드를 낭비하는 건 꺼렸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태현은 사기 쳐서 얻은 골드로 재정이 매우 넉넉한 상황.

-태현 님. 지금 아탈리 왕국 쪽은 워낙 안정적이긴 한데, 전체적으로 다 오르고 있어요.

-뭐가?

-식재료나 요리 가격들이요.

-!

이다비의 말에 태현은 무슨 소리인지 깨달았다.

<화산의 저주>를 왕국에서 막아낸 덕분에 놓치고 있었는데, 지금 다른 지역들은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 * *

[맹렬한 더위로 인해 농작물이…]

[맹렬한 더위로 인해…]

[……]

예전에 추위가 몰아쳤을 때처럼 더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막아내기 힘든 상황!

눈치 빠른 사람들은 벌써부터 사재기에 들어갔고 그 행동이 가격을 더 올려 나가고 있었다.

-농사? 그런 걸 왜 해? 우리는 인생 한 방이야!

-농사로는 한 방을 할 수는 없잖아! 물론 농사도 일종의 복권 같은 거긴 한데… 어쨌든 너무 번거로워! 안 해!

평소에 귀찮다고 농사에 관심이 없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미리 농사를 짓던 길드원들을 보며 배 아파 죽으려고 하고 있었다.

-으흑흑… 왜 우리보고 농사를 지으라고 하지 않은 거야!

-아니 여러분들이 성실하게 하기 싫다고….

-너희는 파워 워리어 길드에 들어왔으면서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도 돼?! 그래도 되는 거야?!

-야. 쟤네 떼어내. 성실한 신입들한테 이상한 물 들인다.

간부들은 재빨리 고참 길드원들을 떼어냈다.

파워 워리어 규모가 크다 보니 성실한 플레이어들 숫자도 제법 됐다.

화기애애한 길드 분위기를 보고 들어온 순진무구한 플레이어들!

간부들의 임무 중 하나는 고여도 너무 고여 버린 길드원들과 신참 길드원들을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자꾸 이상한 물 들인다!

-쯧쯧. 멍청한 놈들.

-그렇죠? 역시 인생은 성실하게….

-아니. 농사야말로 진정한 복권이지. 한 번 농사에 맛 들이면 고블린 제작기나 상자 열기는 안 하게 된다니까.

게다가 아키서스 신앙까지 곁들이면 한결 더 짜릿해진다!

-…….

신입 길드원들은 고참 농부 길드원의 말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성실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잖아?!

* * *

-으음. 그러면 확실히 재료는 아껴놔야겠군.

그냥 괴수한테 바치기에는 너무 아깝다!

-영지 창고 쪽에 쌓여 있는 양이 꽤 있긴 하니까 급하면 말해주세요.

벌써 만반의 준비를 끝낸 이다비!

표정은 평소와 똑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였다.

상인의 행복함은 바로 이럴 때 아니겠는가.

곧 닥쳐올 상황에 맞춰 잔뜩 아이템을 준비해놨을 때!

-이다비… 지금 되게 행복해 보인다?

-아, 아뇨… …티가 많이 났나요?

-아주.

이다비는 민망했는지 얼굴을 붉혔다.

-아니, 즐거우면 좋은 거지. 케인 봐. 매일 행복하잖아.

-그, 그건 좀 다른 것 같은데… 어쨌든 행복하긴 해요.

-역시 지금이 이득 보기 가장 좋은 상황이지? 화산의 저주 푼 놈한테 상이라도 줘야 하나 싶을 정도야.

-아뇨 그게 아니라….

-?

태현하고 같이 다녀서 그냥 행복하다고 말하려던 이다비는 순간 정신줄을 붙잡았다.

내가 미쳤나!?

-…역시 물가가 올라서 너무 좋네요!

-그… 그래.

괴수를 일단 길들이는 데 성공한 태현은 명령을 내렸다.

“널 위해 새로운 먹이를 준비해 줄게. 해안 쪽으로 이동해서 올라오는 전사 놈들은 모조리 먹어버려!”

-뿌오오.

[괴수, <도시파괴자>가 만족해합니다!]

[만족도가 오릅니다.]

자신 입맛에 딱 맞는 명령에 만족해하는 거대괴수!

배가 더 고파지기 전에는 태현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를 것 같았다.

‘일단 곰 부족 놈들은 막았고… 시간은 벌었다.’

괴수가 날뛰는 동안에는 곰 전사들도 기겁해서 올라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사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봉인이 녹아내리면서 더 많은 부족들이 풀려나올 테고, 태현도 솔직히 곰 부족 수준의 적들이 많아지면 자신이 없었다.

레벨 3, 400 넘는 적들이 각종 저주를 걸어가며 포위를 펼치면….

“자. 고민해 보자. 어떤 방법이 좋을까?”

태현은 일행을 앉히고 토론에 들어갔다.

배가 불러서 숨만 내쉬는 케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활발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제 태현 일행은 한 명 한 명을 떼놓아도 어디 흠잡을 곳 없는 랭커들!

판온 초보였던 유지수도 날카로운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당연했다.

태현은 갑자기 새삼스럽게 기뻤다.

판온 1에서 혼자 플레이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

태현과 같이 한 플레이어들의 성장은 생각 외로 즐거웠다.

“왜 그러세요?”

“아니. 즐거워서.”

“나, 나 폭탄해야 되냐?”

케인은 태현의 말을 오해하고 되물었다.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놈은 내가 즐거우면 지 괴롭힐 계획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 맞지만!

“해안가에 요새 만드는 건?”

“비용도 많이 들뿐더러 너무 오래 걸려. 지금 계속 싸움 일어나는데 쓸 만하게 건설하는 것도 힘들고.”

“지하도시로 전부 피난시키는 건 어떨까요?”

“나쁘지 않아 보여. 지금 그것도 생각하고 있긴 해. 계속 싸우게 될 거면 그냥 지하도시로 빼버리는 게 낫겠지. 요새 개조도 훨씬 좋아 보이고.”

넉살 좋게 ‘하하 우리 같이 좀 삽시다!’ 하고 치고 들어가면 고대 제국 사람들이 어쩌겠는가.

같이 살아야지!

“하지만 계속 방어만 하는 건 능사가 아니야. 어떻게든 타격을 줘야 퀘스트가 깨지는데….”

“바다 밑이라 문제죠.”

“새삼스럽게 내가 바다 밑에서 약하다는 걸 깨달았어.”

화력도 약해지고 이동 속도도 느려지고 숨도 못 쉬고….

그 말에 최상윤은 어이없어했다.

“태현아… 바다 밑에서는 누구나 약해…!”

사람은 보통 바다 밑에서 숨을 못 쉰단다!

바다 밑에서도 강하면 그게 사람이냐!

둥둥둥-

“?”

“??”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일행은 고개를 돌렸다.

수평선에서 처음 보는 함대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적인가?”

“날 노릴 만한 게… 너무 많아서 짐작을 못 하겠군.”

“잠깐. 저 깃발 어디서 본 깃발인데.”

“갈카드 드워프 깃발인데요?”

“어? 진짜로?”

저번에 자이언 산맥에서 친해진 갈카드 드워프 왕국!

그들의 문양이 새겨진 깃발이 배 위에 펄럭이고 있었던 것이다.

“드…워프가 배를 타나?”

“그, 그러게? 안 어울리는데?”

일행은 모두 당황했다.

기본적으로 드워프는 광산이나 지하에 사는 종족!

하늘을 날거나, 배를 타는 건 어울리지 않는 종족들이었다.

“…잠깐만… 깃발이 하나 더 있는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

태현과 케인은 갑자기 불길함을 느꼈다.

갈카드 드워프 왕국 깃발 옆에 하나 더 있는 깃발.

저 깃발….

왜 이렇게 익숙하지?

[카르바노그가 불길하다고 중얼거립니다.]

“덩글랜드 왕국의 공작, 겔렌델 깃발 아닌가요?”

이다비는 바로 알아보고 말했다. 그 이름에 태현은 질겁했다.

“그 미친놈?!”

[아키서스한테 미친놈 소리를 듣다니 정말 대단한 엘프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중앙 대륙의 북쪽 섬나라, 엘프들의 왕국 덩글랜드 왕국.

거기의 공작 겔렌델!

태현은 그와 오크 사냥 핑계를 대며 친해졌었다.

-위대한 모험가 김태현. 오크 목 따러 가겠나?

-위대하고 고결한 모험가 김태현. 오크 목 따러 가겠나? 크흠. 내가 아주 새하얀 백마를 준비했지. 흐, 흥! 딱히 자네를 위해서 준비한 건 아니니까….

-이건 오크 두개골로 만든 우정 반지인데… 이건 자네니까 주는 거야. 어디 가서 내가 줬다고 소문내지 말게.

…물론 태현은 정체를 숨기고 모험가로 위장했었고, 얻을 거 다 얻은 다음에는 바로 튀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겔렌델 같은 NPC는 같이 해서 좋을 NPC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른바 주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아키서스?]

‘무슨. 사디크지.’

[카르바노그가 사디크로 합의를 봅니다.]

사디크 같은 NPC!

오크만 보면 눈 돌아가서 오크 머리통을 따자고 외치는데 잘 굴러갈 리가 없었다.

애초에 태현이 데리고 있는 부족 중 하나가 오크들인데….

‘내가 국왕인 거 들키면 일이 매우 골치 아파지는데.’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그러게 엘프들의 집념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했다고 카르바노그가 다시 한번 말합니다.]

‘아니, 내가 뭔 실수를 했는데?’

태현도 억울했다.

분명 실수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이렇게 찾아온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아무리 판온이 불합리하다지만….

‘됐다. 이미 벌어진 일. 어차피 안 들키면 돼.’

가면으로 외모 바꾼 다음 우기면, 함께 오붓하게 오크들을 썰고 다니던 그 모험가가 아탈리 국왕이라고 생각하진 못하겠지!

‘그런데 겔렌델 공작이 여기에는 왜 오는 거지?’

* * *

“서로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는데도 이렇게 찾아와주시다니. 감사할 뿐입니다.”

갈카드 드워프 장로들은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러자 겔렌델 공작도 공손히 답례했다.

“먼 옛날, 선조들께서 같이 오크의 골통을 깨고 다녔던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어찌 잊었겠습니까?”

“…….”

드워프들은 겔렌델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일단은 도움 받고 있는 상황이니까!

갈카드 드워프 왕국은 저 먼 자이언 산맥 지하에 자리 잡은 부족이지만, 아주 예전에는 다른 곳의 엘프들과도 연락하고 지내는 부족이었다.

그중 하나가 덩글랜드의 공작, 겔렌델!

갈카드 드워프 왕국의 선조들과 겔렌델의 선조들이 같이 힘을 합쳐 오크와 싸웠던 인연이 있는 것이다.

‘장로님. 꼭 저 엘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까?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리는 게 무섭습니다만….’

‘하지만 도움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배를 구하겠느냐.’

‘끄으응….’

드워프와 엘프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지금 드워프들이 두려워하는 건 그래서가 아니었다.

겔렌델은 엘프 종족인 걸 떠나서 좀 싸이코 같아!

‘그리고 겔렌델 공작이 오크 살육에 미치기는 했어도 그렇게 나쁜 엘프는 아니라고 했다. 믿어보자꾸나.’

‘아니… 그 말 자체가 이미 좀 모순 같은데….’

‘그러면 어쩌겠느냐. 아탈리 왕국으로 돌아가자는 거냐?’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갈카드 드워프들이 왜 왕국에서 기다리지 않고 이렇게 배까지 구해서 태현을 만나러 왔는가?

그건 바로 펠마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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