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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062화 (1,061/1,826)

§ 나는 될놈이다 1062화

판온의 요리사들은 여러 종류가 있었다.

귀족들을 노리고 고급 테크를 타는 궁정 요리사나, 아니면 싸고 많이 만들어 플레이어들을 노리는 일반 요리사나, 아니면 몇몇 아저씨들을 노리는 괴식 요리사나….

그러나 모두가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었다.

-대량조리는 힘들어!!

그냥 요리가 아닌 많이 만드는 요리는 중노동 중의 중노동이었다.

적당히 만들어서 끝내는 평소 요리와 달리, 어마어마한 양의 식재료를 닥치는 대로 퍼부으면서 계속 요리를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보통 이런 퀘스트는 귀족들이 내주는 연회 준비 퀘스트에 오곤 했다.

-빵 천 개, 수프 천 그릇, 스테이크 천 그릇을 만들어오게.

-저 그냥 안 하겠습니다.

-경비병! 이 요리사를 붙잡아라! 다 못 만들면 나오지 못하게 해!

-크아악! 어쩐지 게시판에 평이 안 좋더니!

물론 해내기만 하면 보상이 짭짤했지만, 세상사람 모두가 태현처럼 ‘나는 좋은 보상을 위해서라면 내 영혼을 바칠 수 있어!’ 같은 정신으로 플레이하는 건 아니었다.

태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빠르고 많이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뭐가 있을까?

‘역시 국밥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혼의 음식!

‘흠. 근데 밥은 만들어서 쌓아놓기 애매하니 밥은 빼버려야지.’

국밥에서 수프로 전환!

‘빵은 대량으로 만들고, 또 만들기 좋은 게… 대량으로 고기 만든 다음 간단하게 양념만 하자.’

“애들아, 지금부터 너희 도움이 매우 중요하다. 근처에서 뭔가 좀 굴러다니는 잡템이란 잡템은 무조건 다 주워와. 돌멩이든 나뭇가지든 상관없어.”

“알겠습니다!”

“이다비. 챙기고 다니는 잡템 중에서 가장 싼 것부터 나열해 줘.”

“네!”

“케인. 넌 먹어.”

“네?”

케인은 뛰어나가려다가 멈칫했다. 왜 먹어??

“뭔, 뭔 소리야?”

“저 괴수 놈이 거인처럼 대충 먹어도 되는지 모르니까 확인해 봐야지.”

* * *

-으으. 귀가 가렵다. 귀가 가렵다.

“뭐하냐! 거인들! 와서 도와야지!”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다.

“싸우고 나서 먹어!”

숲이 워낙 미로 같고 각종 함정이 있는 데다가 길이 좁아서, 태현 일행이 빠졌는데도 곰 전사 부족들은 바로 밀어붙이지 못했다.

좁은 길을 따라서 두셋이 달려오는 상황!

덕분에 개척단 플레이어들도 계속 막아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도망칠 생각만 하던 사람들도 어떻게든 계속 막아내자 슬슬 생각이 바뀌고 자신감이 생겼다.

‘할 수 있나? 진짜 막을 수 있겠는데?’

‘이런 급조한 요새로 막는다는 게 가능하다고? 김태현 뭐 이런… 미친놈이….’

그리고 그들을 도와주는 게 노드란체의 무시무시한 종족들!

다들 단점은 명확했지만 장점도 명확한 종족들이었다.

[거인들이 배고파합니다!]

[계속 먹이를 주지 않을 경우 효율이 내려갈 수 있습니다.]

“아, 좀 참아! 지금 요리할 시간이 어디 있어!”

“우리 먹고 버프 걸기도 바쁜데!”

-치사하다. 너희만 먹는다!

“우리는 이거 버프하려고 먹는 거야!”

싸우기 전에 음식을 먹고 버프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개척단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요리사는 당연히 있었고, 그들이 내준 각종 요리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먹고 싶다!

“안 돼. 참아.”

[거인들이 배고파합니다!]

[거인들의 불만이 한계치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계속 먹이를 주지 않을 경우 거인들이 당신을 먹습니다!]

“…드, 드리겠습니다!”

“여기! 여기 마음껏 드세요!”

“여기 제가 먹던 짜장면입니다!”

“여기 탕수육도 있어요!”

-맛있다. 맛있다. 더 갖고 와라.

“여기 닭튀김하고 카레라이스…!”

“빠에야하고 파스타!”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미친놈아 그걸 주면 어떡해!?”

-맛있다. 맛있다!

‘잘 먹네!?’

* * *

거인은 이렇게 괴식 요리도 좋아해 주는, 참 상대하기 쉬운 상대였지만….

저 괴수 놈도 그럴지는 알 수 없었다.

검증된 요리로만 승부해야 했다!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의 단점은 셋.

하나는 먹었을 경우 버프가 아키서스 신도들한테만 들어간다는 점이었지만….

이건 뭐 지금 중요하지 않았고.

다른 단점 둘은 제한시간이 짧다는 점과 맛이 랜덤이라는 점!

즉석에서 만들어서 먹이지 않으면 요리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해결 가능하다.’

하나는 더럽게 빨리 만들어서 빨리 먹이면 되고….

다른 하나는 행운과 케인으로 커버한다!

-아키서스의 기도!

[<아키서스의 기도>를 사용했습니다. 행운 스탯이 일시적으로 크게 오릅니다!]

예전에 얻은 권능 스킬.

지금도 높아 죽겠는데 또 어디다 쓰냐며 투덜거렸던 스킬이었다.

하지만 이런 제작 스킬을 쓸 때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좋아! 지금부터 들어간다!”

태현은 닥치는 대로 잡템을 붙잡은 다음 손으로 뭉개고 요리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 모든 잡템들이 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빵으로 변했다.

‘봐도 봐도 신기해!’

일행들은 그 모습에 감탄할 뿐!

<녹이 슨 하급 소형 나사>도, <정체불명의 끈적끈적한 점액질>도, <이가 나간 진흙 토기>도 전부 다 빵으로 변했다.

[<아키서스의 진심 어린 빵>을 만들어냈습니다!]

[<아키서스의 진심 어린…]

[……]

산더미처럼 쌓이는 빵.

그 모습에 이다비는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태현 님 같은 사람 한 명 있으면 파워 워리어는 굶주리지 않겠어!’

파워 워리어는 밥 굶고 다니는 플레이어가 한 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요리 사먹을 돈 있으면 그걸로 기상천외한 짓을 하는 게 파워 워리어!

“케인. 조금씩 뜯어먹고 맛 본 다음 이상한 거 있으면 걸러내라!”

“…그러려고 시킨 거였냐?!”

그제야 케인은 태현의 말뜻을 이해했다.

요리 중에 좀 이상한 맛 있는 놈은 걸러내라는 것!

“케인 씨! 힘내십시오!”

“맞아, 케인! 네 6개의 팔은 이럴 때를 위해 있는 거였어!”

“케인 씨는 종족도 키메라니 저항력도 강하겠죠!”

“저항력 강한 거랑 미각은 상관 없거든?!”

그렇게 말하면서도 케인은 한 조각씩 뜯어내 먹기 시작했다.

6개의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컨트롤!

[변한 육체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인해 익숙해집니다. 페널티가 줄어듭니다.]

[모든 스킬에 보너스가…]

‘…안 기뻐!’

스킬 오르는데 왜 이상하게 슬프지?

어찌되었든 간에 갓 구운 빵은 향기롭고 촉촉했다. 태현이 행운 스탯을 올린 탓인지 꽝이 압도적으로 줄어든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었다.

“크아아악! 한약 맛이야! 한약 맛!”

“케에엑! 고수! 고수 향!”

“크악! 이건 대체 뭔 맛이야? 흙 맛인데? 제대로 만든 거 맞아?”

“케인! 너 지금 옆에 흙 퍼먹었어 멍청아!”

“아차!”

하도 작업이 빠르다 보니 옆의 흙을 착각하고 퍼먹은 것!

“빵 다 되어간다. 끝나면 다음은 고기로 들어간다!”

“생고기만 던져주게?”

“아니. 고기만 만든 다음 한 번 더 대량으로 요리하려고.”

그냥 완제품을 만드는 게 아닌, 재료만 만들고 한 번 더 요리한다!

이런 식으로 할 경우 그냥 뚝딱 만드는 것보다 더 맛이 올라갈 것이다.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요리 스킬이…]

[<고급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가 9레벨에 도착합니다!]

‘생각해 보니 요리 스킬도 고급 후반이었군.’

검술 스킬, 요리 스킬 모두 다 보정 하나 없이 고급 후반까지 온 태현.

정말 많이 패고 많이 요리하고 살았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단시간 내에 어마어마한 양의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칭호 <대량 요리사>를 얻었습니다.]

[요리 스킬이 추가로 오릅니다!]

계속해서 뜨는 메시지창은 태현에게 새로운 의욕을 주었다.

“선배님 정말 대단합니다!”

정수혁은 감탄했다. 어떻게 다른 넷이 갖고 오는 잡템보다 요리 속도가 더 빠르단 말인가.

그 말에 최상윤이 대답했다.

“태현이도 대단하지만 케인도 만만치 않아! 저걸 먹으란다고 정말 다 먹고 있어!”

“정말 날로 먹는 데에는 타고난 사람…!”

“읍 읍읍읍읍(다 들리거든)!”

케인은 울컥해서 외쳤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빵을 마치고 고기로 넘어갔다.

고기는 한 번 더 조리할 생각이니 품이 더 들어가게 마련. 빠르게 준비해야 했다.

“솥에 불 붙이고 기름 둘러! 내가 말하는 대로 양념 조합해 주고. 마늘, 간장, 소스는… 그래. 굴 소스가 좋겠다.”

먹던 케인은 의외로 정상적인 조합에 놀랐다.

아니 이 자식?

괴식 요리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대로 된 요리도 할 줄 알잖아??

‘그러면 왜 이제까지 괴식 요리만 먹인 거야?’

정답은 괴식 요리가 효과가 좋아서!

태현은 권능 요리로 만든 싱싱한 고기, 양파, 배추 등을 대량으로 솥에 던져 넣고 기름을 둘러 볶기 시작했다.

[사디크의 권능을 갖고 있습니다!]

[태초의 불을…]

[불을 더욱더 잘 다룰 수 있습니다! 요리에 추가적인 효과가 들어갑니다!]

‘사디크는 참 안 끼는 곳이 없어. 그렇지 않아?’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어쨌든 간에 요리와 대장장이 기술 모두 다 불을 다뤄야 하는 스킬이란 건 틀림이 없었다.

화르륵!

치이익-

기름 둘러진 고기가 익는 소리와 함께, 야채가 적당히 아삭하게 익혀졌다. 태현은 계속해서 맛을 확인했다. 혹시 권능 요리가 엿을 먹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쁘지 않다!’

“크… 크윽… 김태현… 배가… 배가 불러…!”

[포만감이 매우 높습니다!]

[이동 속도가 내려갑니다.]

[속이 울렁거리는…]

“소화시켜, 케인! 이 일은 너 아니면 못 하는 일이다!”

“근데 다른 플레이어들 몇 명 데리고 오면 되지 않나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도 날아다니는 탈것 정도는 쓸 수 있는데….”

“…그렇군! 케인! 이 일은 너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죽어!”

* * *

[괴수, <도시파괴자>가 음식의 냄새를 맡습니다!]

[놈이 돌진합니다!]

“잘 할 수 있을까?”

“안 되면 뭐… 튀어야지.”

“…….”

“…….”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신이냐?”

“아, 아닙니다.”

“맞는 말이긴 해!”

안 통하면 튀어야지!

산처럼 거대한 괴수는 다가오더니 음식 무더기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태현은 그 틈을 타서 말을 걸었다.

“진정해라! 배가 많이 고프겠지. 곰 전사들은 다 먹었나?”

[최고급 화술 스킬을…]

[……]

[도시파괴자가 당신의 말을 일단은 듣습니다!]

괴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내 말대로 그놈들 말 듣는 것보다 그놈들을 먹는 게 더 좋았지?”

“쟤는 뭐 저렇게 섬뜩한 소리를 웃으면서 해?!”

최상윤은 기겁했다.

같은 일행이지만 무서운 소리를 하고 있어!

악마들하고만 놀아서 그런가?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멋진 설득 아닌가요?”

“선배가 멋진 설득을 하는 것 같은데요.”

“선배님이 설득 잘하시지 않습니까?”

“…….”

그랬지!

우리 일행도 정상이 아니었어!

최상윤은 케인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케인이 여기 있어서 다행….

“크. 그렇군. 저렇게 설득하는 거였어….”

“…….”

케인마저?!

“내 말을 잘 들어봐라, 도시파괴자! 놈들은 너한테 먹이를 약속하면서 뭐라고 했지? 이기면 잔뜩 먹게 해주겠다고 했겠지.”

괴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그걸 듣더니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건 불공정계약이다!”

-?

“세상에 어떤 놈이 보수를 후불로 주냐! 그런 놈들과는 계약을 해서는 안 돼!”

천계와 마계에서 가장 계약해서는 안 되는 신의 화신이 하는 소리치고는 좀 뻔뻔한 소리긴 했다.

그러나 괴수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무조건 선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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