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61화 (1,060/1,826)

§ 나는 될놈이다 1061화

<국제강도연합>은 꽤 잘나가는 약탈자 길드였다.

영지나 그런 건 없어도 소속된 플레이어들이 PK를 워낙 잘해, 이곳저곳 치고 빠지고 랭커도 가끔 함정에 빠뜨려 잡으면서 명성을 얻었다.

약탈자 길드가 성장하는 방식은 보통 이랬다. 케인 같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다들 저렇게 성장했다.

실력 있고 싸가지 없는 플레이어들 몇몇이 모여 도원결의를 맺고, 같이 파티를 짜서 만만한 플레이어들을 털어먹고, 이런 영상들을 올려서 조회수를 올리고(동시에 욕도 먹고)….

그런데 지금 이렇게 쌓아 올린 길드가 박살 나기 직전!

모두 다 유물을 갖고 튄 더글라스, 찰스, 해롤드란 놈들 때문이었다.

“이렇게 쫓기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저놈들을 받아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백 명 넘게 쫓아오는데 소름이 돋더라. 야. 이걸 어떻게 이겨?”

약탈자 길드의 결말은 언제나 비슷했다.

너무 잘나가게 되면 어그로를 사방에서 끌게 되고, 두들겨 맞고 분해되는 것이다.

지금 그들은 그걸 직접 겪고 있었다.

그것도 몇십 배나 더 매운맛으로!

무슨 제보만 들어오면 사방에서 플레이어들이 찾아와 뒤져대니 뭘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먼저 찾아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만 조져지게 생겼어.”

<국강연>은 재빨리 ‘우리는 상관없어요! 길드원 놈 잘못이에요!’라고 했지만 그걸 들어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같은 놈이다! 조져!’ ‘일단 잡고 생각해!’ 같은 반응이 바로 돌아왔다.

이게 약탈자 플레이어의 단점!

뭔가 팰 일 생기면 아무도 망설이지 않고 공격해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유물을 찾는다고 이 저주가 풀릴까요?”

“뭔 소리야?”

“어? 그놈들 잡아서 유물 뺏는 거 아닙니까?”

“하. 이 자식 봐라. 눈치가 아직도 없네. 그게 될지 안 될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

“???”

신참 약탈자 플레이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퀘스트 해결하려고 찾는 거 아닙니까?”

“아냐 멍청아! 그놈들 잡아서 던져주고 현상금 받으려는 거지. 퀘스트 해결을 우리가 어떻게 해? 우리가 김태현이냐?”

“지금 김태현이 혼자서 1 대 100으로 싸우는 거 보고 있는데 참조가 전혀 안 되는데. 일단 다시 태어나야 하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그들 중 가장 성공한 롤모델인 태현의 영상을 보며 공부하려 했다.

수백 명 넘는 플레이어들이 나만 쫓아다닐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폭탄을 사야 하나?”

“관둬. 미친놈아. 그거 잘못 사용하면 바로 폭발한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떠드는 사이, 밑에서 플레이어 한 명이 걸어 올라왔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플레이어였다. 장비도 저렙 장비에, 한 손에는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약초 캐러 온 저렙 플레이어!

-잡을까요?

-미쳤냐?? 넌 변장한 이유를 모르냐? 마을에 있는 플레이어들 다 불러오고 싶어?

원래라면 기분전환 겸 잡았을 테지만 지금은 숨어 다니는 상황!

“저기요.”

“?”

“여기 혹시 <푸른민첩초> 못 보셨어요? 일퀘로 수집해서 가야 하는데.”

“아. 그거는 저쪽으로 더 가야 나올 겁니다.”

저벅.

“진짜요?”

“네.”

저벅.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저벅. 말하는 사이 세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온 플레이어는 씩 웃었다.

“죽어라!”

“!?!”

팍!

피 튀기는 소리와 함께 단검이 그대로 몸통을 후려쳤다.

‘암살자!!’

근접 거리에서 단검 딜로 이 정도 폭딜을 뽑는 건 도적 계열 직업 중에서도 암살자 부류!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맹렬한 상급 마비 독>에 당했습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완만한 철의 방어>가 깨집니다!]

[……]

[……]

기습을 당했고, 끼고 있던 아이템의 효과가 사라지고, 각종 페널티가 붙었다는 메시지창이 우르르 올라왔다.

“앨… 앨콧!!”

“앨콧이다!”

암살자 앨콧!

길드 동맹의 유명 랭커 중 하나로 영지까지 따로 얻은 플레이어 아니었던가!

그 이름을 들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앨… 앨콧! 우리는 상관이 없….”

“죽어!”

“앨콧, 그 레벨 먹고 치사하지 않냐!? 이렇게 변장해서 기습이라니!”

“뭐? 치사? 네가 진짜 치사한 걸 당해봐야 치사란 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김태현 안 만난 걸 감사하게 여겨라!”

앨콧은 신나서 단검을 휘둘러 박살을 냈다.

치사는 무슨 치사!

이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아직 애송이들이었다.

변장 스킬은 제법 높아도, 저렇게 산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당연히 수상쩍지 않은가.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라!

<변장 해제> 스크롤을 사용해서 확인한 다음 앨콧은 초보자로 위장해서 접근한 것이다.

“다 잡았다.”

“훌륭하십니다, 앨콧 님!”

길드 동맹의 길드원들은 존경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길드 동맹의 위치가 변하는 와중에서도 앨콧의 자리는 굳건했다.

-외국인이지만 앨콧은 인정한다.

-솔직히 앨콧 정도 충성하는 랭커가 드물지.

길드 동맹에서도 에랑스 왕국 영지까지 받은 랭커를 푸대접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앨콧 본인도 꽤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으니….

그러나 사실 앨콧은 이미 반쯤 첩자나 다름없었다.

가장 성공한 첩자 중 하나!

다른 한 명은 지금 길드 동맹 간부로, 길드 동맹 첩자들을 책임지는 장샨이었다.

“더럽게 덥군.”

“여기 차가운 물 준비해놨습니다!”

“어. 고맙다.”

“다음 놈들은 또 언제 잡으러 가실 겁니까? 크헷헷….”

“재촉하지 마라. 한 번에 다 잡을 수는 없으니까.”

앨콧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동맹은 치열하게 영지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에랑스 왕국에 있는 앨콧은 거기에 끼지 않아도 됐다.

자기 영지 지키면서 시늉만 내도 충분!

이렇게 <국강연> 길드원 놈들을 사냥하는 건 명성과 조회수를 얻기 위해서였다.

모두의 증오가 하늘을 찌를 수준인 지금.

국강연 길드원 한 명 잡으면 사람들은 찬양을 해댔다.

‘그리고 이 더위, 정말 해결을 하긴 해야 하는데.’

앨콧은 이마의 땀을 연신 닦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나오는 더위였다.

원래 그렇게 덥지 않은 곳도 이러니, 더 더웠던 곳은 지금쯤 지옥에 가까우리라.

‘김태현은 안 나서나? 나서줬으면 좋겠는데….’

길드 동맹 간부로서 이런 소리를 하는 건 미친 짓이었지만, 의외로 길드 동맹에서도 김태현 이야기를 종종 했다.

-김태현 이 자식은 전설 퀘스트란 전설 퀘스트는 다 하면서 왜 이 더위는 해결 안 해주는 거야?

-드래곤 꼈는데 너 같으면 하겠냐?

-드래곤 잡은 적 있잖아!

-…확실히 논리적이군. 반박할 수 없다.

지금 꽤 많은 랭커들이 이 <화산의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지만, 앨콧은 크게 기대가 가지 않았다.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

원래 이런 전설 퀘스트는 단순히 레벨만 높다고 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태현은 이제까지의 실적으로 그걸 증명했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러지 못한 것이다.

“앨콧 님. 앨콧 님은 영지전에 안 끼십니까? 앨콧 님 실력이면 충분히 활약하실 텐데.”

“바보야. 앨콧 님은 영지 관리하시기도 바쁘시다고!”

“싸우지 마라. 둘 다 맞는 말이니까.”

앨콧은 엄격 진지 근엄하게 말했다. 영지를 갖고 나서 앨콧은 꽤나 성격이 바뀌었다.

영주다운 행동!

“일단 잡았으니 마을로 내려가자.”

“예!”

앨콧은 화기애애하게 길드원들과 같이 산을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

앨콧은 고개를 돌렸다. 아까 잡은 약탈자 놈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딱히 이상할 거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무언가가 이상하다!

태현 같은 괴물과 몇 번 부딪히고 나니, 앨콧의 직감도 꽤 많이 예민해진 것이다.

‘뭐지? 뭐지?’

“…젠장!”

엎드려 있던 약탈자 한 명이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일어서더니 후다닥 달리기 시작했다.

“이 자식이 죽은 척을…!?”

스킬 중에 죽은 척하는 스킬도 있었다. 설마 이 상황에서 그걸 쓰다니!

제법 잔머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이었다.

“항복! 항복!”

“좋아! 고통 없이 죽여주지.”

“미친놈아! 고통은 원래 없어! 항복했잖아!”

“부활 지점에 가서 또 죽여 버린다.”

“아. 아니. 죄송합니다.”

앨콧이 살벌하게 말하자 약탈자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앨콧은 차갑게 말했다.

“남들 잡고 다녔으면 네가 잡힐 때도 받아들여야지. 잘 가라.”

그 모습에 길드원들은 수군거렸다.

“역시 앨콧 님이야. 가차 없지.”

“정말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지 않냐? 김태현보다 더 차가워 보여.”

그 말을 들은 앨콧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 정도면 김태현하고 비교했을 때 착한 편 아닌가?’

“아. 아니. 제안할 게 있다.”

“?”

“유물 갖고 튄 놈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 불 테니까 살려줘!”

“…!!”

앨콧은 깜짝 놀랐다.

명성이나 좀 얻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지고 있었다.

‘잠깐. 이걸 내가 혼자 깰 수 있나?’

드래곤 관련된 퀘스트에 앨콧 혼자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

그건 미친놈이거나 김태현이지!

‘크로포드를 불러? 불러도 모자랄 거 같은데. 길드 동맹에 지원 요청하면… 아, 이것들 지금 바빠서 못 도와줄 거 같은데.’

길드 동맹 랭커들은 영지전하느라 바빴다. 이걸 내버려 두고 불확실한, 그것도 위험한 퀘스트를 하러 오지는 않으리라.

‘…김태현 지금 뭐하고 있지?’

앨콧은 슬쩍 방송을 켰다. 김태현은 뭐하고 있나?

* * *

“음. 역시 곰 전사들밖에 안 보여.”

“다른 놈들은 잘 얼어서 안 녹는 거 아닐까?”

“매우 긍정적이라 좋긴 한데 솔직히 그건 무리지.”

태현은 케인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더 나타나면 나타났지 덜 나타나겠냐?

“음. 일주일 무리인 거 같은데….”

“두고 가지 마! 제발!”

케인은 재빨리 태현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훌륭한 자세 전환!

“안 가니까 걱정 마라.”

“정, 정말이지? 나 속이려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속고만 살았니? 음. 속고만 살긴 했군.”

구체적으로 내가 속였지!

“…….”

“어쨌든 아무것도 없을 때야 시간이 아까웠지만, 이렇게 지하도시가 있으면 뭔가 있겠지.”

난이도가 어렵다면 거기에는 무언가 있게 마련.

가끔 아키서스 교단처럼 아무것도 없을 때가 있긴 했지만 그건 예외니까….

“숲 요새는 아직 안 무너졌지?”

“메시지창 안 떴으니까 아직 잘 버티고 있네. 녀석들. 역시 잘 싸우는군.”

도망칠 길을 없애주니 치열하게 잘도 싸운다!

태현은 흐뭇하게 숲을 쳐다보았다.

“…진짜 안 도와줘도 되냐?”

“에이, 뭘 또. 알아서 잘 하는데 자꾸 도와주면 애들이 약해진다.”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하 도시로 내려가기 전에 그렇게 난리를 쳤던 괴수 놈은 어디로 갔지?

‘아. 저기 있군.’

다행히 숲으로 가지는 않고 섬을 어슬렁거리는 모양이었다. 배가 고픈지 심심하면 가끔 울부짖기까지!

“일단 저놈을 길들여봐야겠어.”

“?”

-네?

-예?

-주인님. 그건 좀….

빙글빙글빙글!

[카르바노그도 질색합니다!]

정말 다양하게 거절하는 일행들!

그러나 태현은 단호했다.

“완벽하게 길들이지는 못해도 이용할 수는 있어야 해. 지금 적들이 너무 많다고.”

이런 상황에서 저런 괴수를 안 쓸 수는 없다!

“어떻게 길들입니까?”

“괴식 요리로….”

“괴식 요리 먹였다가는 우리 먹는 거 아닐까? 평범하게 좋은 요리로 승부해야지.”

“덩치 보세요. 요리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양이 문제일걸요. 백 명이 먹을 음식도 한 끼가 안 될 텐데.”

“태현 님. 식재료들을 다 꺼내 볼까요?”

이다비는 토왕이의 목을 붙잡고 물었다. 토왕이가 구슬프게 울었다.

딱히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자세가 무서워!

“아니. 얼마나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쓸 수는 없지. 내가 만들어보겠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그것이 바로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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