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60화 (1,059/1,826)

§ 나는 될놈이다 1060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뭘 하냐니. 도시를 지키고 있지 않나.

망령은 ‘무슨 이상한 질문을 하냐?’ 하는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누구한테서?”

-언제 올지 모르는 침입자들한테서. 그대처럼 제국의 위대함을 모르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 이것이 제국 귀족의 임무인 것이다.

“…….”

태현은 생각했다.

왜 내가 만나는 NPC들은 다 이상한 놈들일까?

[카르바노그가 멀쩡한 NPC는 화신이 다 아키서스해버리지 않았냐고 합니다.]

‘조용히 해.’

어쨌든 상대가 누군지는 알게 되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고대 제국의 귀족쯤 되는 모양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최상윤이 궁금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허. 어디서 평민이.

“…….”

대신 케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격은 떨어지지만 귀족은 귀족이니. 물어봐라.

“아니 저게…!”

최상윤은 울컥했다.

감히 날 케인처럼 대했겠다?

케인은 씩 웃었다.

내가 평소에 당하던 걸 너도 당해봐라!

“그래서 궁금한 게, 상대하고 있는 게 그 북쪽에서 온 수인족 놈들인가? 곰 가죽 비슷한 거 뒤집어쓰고 있는?”

-잘 아는구나? 맞다. 그 야만스러운 놈들은 제국의 풍요로운 도시를 언제나 탐내고 있지. 그리고 놈들은 곰 부족만 있는 게 아니다. 여러 부족이 섞여 있지.

“…??!”

섞여 있다고?!

곰 부족 전사들만 해도 지긋지긋할 정도로 단단했는데, 아직 더 녹지 않은 수인족 전사들이 있다는 말에 태현은 깜짝 놀랐다.

‘지금 놀랄 때가 아니지.’

“그래서 그놈들이 지금 위에서 날뛰고 있는데. 혹시 도와줄 수 있나?”

-뭐? 놈들이 어떻게 날뛴단 말이냐? 전부 다 얼어붙었을 텐데?

“얼어붙었으면 녹을 수도 있지.”

-말도 안 된다! 그 마법이 어떤 마법인데! 제국의 대마법사들이 와서 직접 쓴 마법이란 말이다!

망령 귀족은 깜짝 놀라서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수비대장!

-예. 각하.

-제국의 병사들을 불러 도시의 수비를 강화해라!

-예. 각하.

-성벽의 마법진들을 가동시켜라! 야만족 놈들이 여기에 발을 디뎌서는 안 된다!

-각하. 마법진들은 망가져서 작동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시에 있는 마법탑을 가동시켜라!

-각하. 마법탑들도 망가져서 작동이….

‘…얘네 개그하나?’

옆에서 듣고 있던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렇게 오래 지났으니 다 망가지고 부서질 법도 하겠다!

-에잇! 마법사를 불러와라.

-각하. 부르셨습니까?

고대 제국의 망령 마법사는 태현을 보더니 흠칫했다.

[느부캇네살의 마법을 이었습니다!]

[<고대 제국의 망령 마법사>가 당신의 힘을 깨닫습니다!]

-아니…? 느부캇네살 학파의 마법사셨습니까?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아, 아니. 별로 친한 거 아니야. 안 친해!”

“태현 님. 정말 설득력 없는 변명인데요 그건….”

-그래? 느부캇네살 님의 진전을 이은 줄 알고 기뻐했는데….

마법사는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태현은 재빨리 말을 바꿨다.

“…우리는 단순히 친하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사이지. 영혼을 나눴다고 해야 할까?”

느부캇네살을 조지고 영혼 일부를 흡수했으니 맞는 말은 맞는 말!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이…]

-하하. 역시! 느부캇네살 님의 힘이 느껴진다 했는데.

‘느부캇네살이 의외로 이미지가 좋다?’

고대 제국에서도 ‘크큭! 나는 죽음의 신이다!’이러다가 ‘어휴 저 미친놈’ 취급당한 게 아니었나?

[카르바노그가 미치기 전까지는 누구나 다 좋은 사람 취급받지 않았겠냐고 말합니다.]

‘아… 그렇군.’

이 사람들은 느부캇네살이 돌아서 깽판 치기 전의 사람들!

깽판 치기 전의 느부캇네살은 대단한 흑마법사였을 테니, 고대 제국 사람들이 좋게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느부캇네살 님과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저는 흑마법을 쓰지 못해서 배우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싸우면서 친해졌지.”

[…….]

-오오…! 느부캇네살 님이 재능을 알아보고 흑마법을 전수해 주신 거군요.

[<고대 제국의 망령 마법사>가 당신에게 <고대 제국의 마도 팔찌>를 건넵니다.]

[아이템을…]

[아이템을…]

“아니 뭘 이런 걸 다?”

-느부캇네살 님의 제자를 만났는데 이 정도 선물은 해드려야죠.

‘…!’

느부캇네살…!

고맙다!

사디크보다 몇 배로 쓸모 있는 녀석 같으니!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마법사,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해라! 지금 도시의 방어를 회복해야 한다. 방법을 말해봐라.

-딱히 없습니다. 각하.

-…….

왠지 망령 귀족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외부인 앞에서 날 부끄럽게 하다니!

-하지만 각하. 도시의 방어 마법들은 이제 와서 수리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고대 제국은 어마어마한 재력을 갖고 있었다.

대마법사들은 물론이고 그 대마법사들이 사기적인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 재료들도 마음껏 제공했다.

그러나 고대 제국은 망했고, 이제 이 지하 도시는 마법 재료 하나 구하기도 힘든 곳이었다. 대마법사들은 있지도 않았고.

-오리하르콘 주괴와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를 써야 저 포탑의 마법진이 다시 힘을 찾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저걸 수리할 마법사도 없고….

‘?!??!!?’

미친놈들이 뭐라는 거야?!

태현은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기겁했다.

오리하르콘부터 시작해서 저런 보석들을 단순히 마법 재료로 쓰다니!

천벌 받을 짓!

-으윽… 으으윽! 내가 폐하를 무슨 낯짝으로 본단 말인가! 알겠다! 도시 외성은 포기하고 내성 성벽으로 병사들을 불러 모아라. 내성 성벽은 아직 멀쩡히 돌아가고 있을 테니.

망령 백작은 화를 내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명령을 내렸다.

만약 그 수인족 놈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온다면 있는 걸로 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인족 놈들이 깨어났다면 이 거리도 안전하지 않으니, 그대는 어서 피하는 게 좋겠군.

“흠. 도움은 필요 없나?”

딱히 도와주고 싶어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 도와주면서 뭐 좀 얻어갈 게 없나 하는 생각으로 물어본 질문!

그 질문에 망령 백작은 코웃음을 쳤다.

-하하. 농담도 잘 하는군. 그대처럼 약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무엇하려고.

“…….”

“…….”

태현 일행은 단체로 침묵 상태에 빠져들었다.

누가 누구보고 약하다는 거야!?

-우리가 아키서스 교단이란 걸 말할까? 그러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잖아.

-그건 좀 다른 방향으로 바뀔지도 모르니까 하지 말자.

아키서스 교단의 무서운 점은, 말했을 때 상대 NPC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다는 점!

망령 백작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미안하게 됐지만 그대들을 도와줄 수는 없겠네. 우리는 이 도시를 떠날 수 없을뿐더러, 떠날 수 있더라도 떠나지 않을 테니까. 이 도시를 지키는 게 우리의 사명이란 말일세. 알겠나?

“흠… 그렇군….”

태현은 말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그러면 수인족 전사들이 여기까지 내려오면 싸우겠다는 거지?”

-그렇겠지. …잠깐. 방금 그 질문은 뭔가 이상한데. 왜 물어본 건가?

“하하. 아니. 궁금해서.”

[카르바노그는 이미 미래가 보인다고 말합니다!]

* * *

태현은 바로 떠나지 않고 망령 백작을 붙잡고 꼬치꼬치 더 캐물었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던 것이다.

이번 상대는 판온에서도 유난히 정보가 없는 놈들!

계속 얼어붙어 있다가 갑자기 녹아 나타난 놈들이니 당연했다.

“그러니까 곰 부족 말고도 여러 부족이 있다? …혹시 마법 잘 쓰는 부족도 있나?”

-수인족 부족 놈들 중에 여우 부족 놈들이 잘 썼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는군. 아. 저주에도 능했던 거 같다.

“…….”

태현은 식겁했다.

역시 곰 전사 부족은 가장 먼저 깨어나서 덤벼들어 온 놈들이었나?

단순무식한 놈들이 먼저 깨어나서 망정이었지, 다른 놈들이 먼저 깨어났다면 태현도 위험했을 것이다.

“놈들이 혹시 어디에 갇혀 있는지 아나?”

-으음… 아마 놈들의 함대를 통째로 얼려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혔을 거다.

“으윽.”

태현은 앓는 소리를 냈다.

하필이면 바다 밑이냐!

헤엄쳐서 밑으로 내려가서 싸워야 하는 셈인데, 그러면 난이도가 몇 배로 뛰었다.

바다는 불도 못 지르고….

폭탄도 터뜨릴 때 제약이 많고….

[카르바노그가 어쩌냐며 발을 동동 구릅니다.]

‘흠. 진짜 여기로 끌어들여야 하나?’

수인족들도 이 지하도시를 보면, 위에 초라한 숲 요새보다 여기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

물론 고대 제국 사람들은 여기서 싸우는 걸 질색하겠지만….

‘뭐 살다 보면 싫은 일도 해야 하는 법이지!’

* * *

태현이 시원한 노드란체에서 피서를 보내고 있는 동안, 중앙 대륙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대륙의 온도가 뜨거워지면 사람들의 마음도 뜨거워지게 마련.

“이 새끼들 죽여 버리겠어!”

“뭔 놈의 한국보다 덥고 습해!? 내가 여기서 여름 체험을 미리 해야 하냐!!”

살벌한 플레이어들의 외침!

그들이 죽이겠다고 외치는 건 약탈자 길드, <국제강도연합>이었다.

태현이 화산지대 공략할 때 끼었다가 드래곤의 유물을 건드려 대륙 단위로 저주를 퍼뜨린 놈들이 있는 길드!

“내 농사도 이 자식들 때문에 망했어!”

“이 자식들 때문에 내가 제작하던 아이템이 실패 떴어!”

“어? 그건 왜?”

“불쾌해서 손이 미끄러졌잖아!”

“…그, 그럴듯한데?”

“이것들 정보 구합니다! <국강연> 놈들 정보 삽니다!”

“야. 벌써 현상금이 이만큼이나 걸렸어…!”

원래 약탈자 길드는 남들한테 미움받는 게 보통이었고, 당연히 노리는 플레이어들도 많았다.

일단 PK를 해도,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잡으면 페널티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명성이 오르거나 왕국 공적치 포인트가 오를 때가 많았다.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그걸 잘 알았기에 당연히 대비를 하고 다녔다.

이들은 보통 PK 전문가였고, 도망칠 길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차원이 달랐다.

플레이어들 전체에게 어그로를 끈 것!

더위 때문에 빡친 사람들이 현상금을 닥치는 대로 걸자, 이제 이 플레이어들은 거의 황금고블린이 되어가고 있었다.

잡는 놈이 임자!

이 정도로 대규모로 추적이 들어가면 어떤 플레이어도 쫄게 마련이었다.

…태현은 예외였지만.

“야, 포션 사 왔냐?”

“사 왔어. 스크롤도 사 왔다.”

“눈치챈 놈 없지?”

“없어. 근데 마을에 플레이어들 많더라. 소문 돌았나 봐.”

“아씨… 변장 제대로 했는데. 변장 꿰뚫어 본 놈들이 있었나?”

<국제강도연합> 소속 플레이어들은 마을 근처의 야트막한 산에 앉아 아이템을 교환했다.

포션, 스크롤, 투척 무기 등 각종 소모 아이템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런 아이템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했다.

약탈자 플레이어가 되어봐야 이런 소모품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영지도 없고, 대부분의 마을에서 NPC들이 ‘꺼져!’ 같은 반응을 보이면 아이템 사는 것부터 힘든 것이다.

약탈자 플레이어는 아무나 붙잡고 털어먹는 편한 이미지가 있었지만, 오히려 착하게 플레이하는 것보다 몇 배로 힘들었다.

“그 개자식들 대체 어디 있어? 귓속말 안 받아?”

“안 받아. 눈치 깐 거 같다.”

<국강연> 길드원들도 지금 유물을 갖고 튄 놈들을 찾고 있었다.

이 자식들 때문에 지금 길드가 망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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