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59화
“정… 정말 뭐가 있는 거야?”
당사자인 케인도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영지 지하에 정말 뭐가 있단 말인가!
쓰레기만 있는 영지인 줄 알았는데…!
“나… 나한테도 드디어 운이 따르는 거 맞지? 맞지???”
“케인 씨. 솔직히 운으로 따지면 판온에서 가장 운이 좋은 건 케인 씨 아닌가 싶….”
당신만큼 운 좋은 사람이 어딨어!
“야. 케인 운다. 그러지 마.”
최상윤은 정수혁을 말렸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케인 울잖아!
“일단 무슨 유적인지 확인은 해봐야지.”
“괜찮은 던전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사람 몰리는 거 아냐?”
케인은 벌써 개발의 꿈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은 던전 하나 있으면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몰리는 게 판온!
골짜기를 보라.
마계와의 통로가 생기자 그야말로 수십 배의 플레이어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거야 그렇긴 하지.”
“역시…! 나도 드디어 그럴듯한 영주 자리를 갖게 되는 거야! 남들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영주 자리!”
영주 모임에서 ‘노드란체 영주입니다’라고 하면 얼마나 비웃음을 사겠는가!
남들은 ‘전 피넬레 영주입니다’, ‘오오 그 항구 도시…! 좋은 곳을 갖고 계시는군요!’ 같은 대화를 나눌 때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기 딱 좋은 이름이었다.
“아니. 케인. 안에 뭐가 있는지는 확인하고 좋아하라니까.”
“내 시대가 온다! 내 시대가 와!”
‘저러다가 이상한 거 나오면 어쩌려고 저러지?’
태현은 더 이상 말하는 걸 그만두고 일행을 이끌고 움직였다.
위에서는 아직도 괴수가 배고파서 난리를 치고 있는 상황.
괜히 옆에서 알짱거려서 좋을 게 없었다.
1+1 도시락 정도로 보일 테니까!
‘그나저나 저 괴수 잡아서 동물원으로 못 끌고 가나?’
[카르바노그가 미쳤냐고 묻습니다.]
‘아, 아니. 말이 너무 심하잖아.’
[안 심하다고 카르바노그가 단호하게 말합니다.]
동물원 다 부서지겠다!
* * *
“헉헉. 안 쫓아오지?”
“무사히 후퇴했다!”
임시 요새로 들어오자 개척단 플레이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식 요새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게 많지만 그래도 이렇게 든든한 게 없었다.
“케인 왜 안 오냐?”
“…진, 진짜 죽었나?”
막상 두고 도망쳤지만 안 오니까 그건 또 그거대로 불길하다!
“케인은 없어도 되는데 김태현은 있어야 하는데….”
“김태현 파티가 전력은 대단하잖아.”
“아까 김태현 봤냐? 혼자서 잡던데? 그게 혼자서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닌데.”
플레이어들은 문득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자식들 믿어도 돼??’
‘와. 정말 신뢰가 조금도 안 간다.’
어떻게 김태현 한 명 있을 때랑 없을 때가 이렇게 차이가 나지?
김태현이 있을 때는 개척단은 되게 강하게 느껴졌었다.
다양한 고렙 플레이어들이 모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파티!
그런데 김태현이 없자 그냥 이기적인 오합지졸들 모임 기분이었다.
‘튈까?’
‘김태현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이 자식들을 믿고 기다리기는 좀 겁나는데. 이 요새로 그 전사 놈들을 완전히 막아낼 수 있을까?’
“크흠. 내가 가서 정찰 좀 하고 올게.”
“잠, 잠깐 거기는 길 밖….”
“?”
콰콰콰쾅!
“…!!!”
그랬다.
지금 그들이 도망쳐 온 좁은 길 말고는 전부 함정지대!
“아니 이런 미친… 대체 뭘 이렇게 많이 깔아놓은 거야!?”
아키서스 포병대를 못 들고 온 대신 폭탄을 더럽게 많이 갖고 온 태현!
그 결과가 바로 이 숲이었다.
‘…잠깐만. 그러면 튈 곳이 없잖아?’
-우어어어어! 이 빌어먹을 함정 깐 놈들! 전부 죽여 버린다!
마침 때맞춰 좁은 길을 타고 달려오는 고대 곰 전사들!
[고대 곰 전사들의 HP가 절반 이상 깎여나갔습니다. <곰으로 변신>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곰으로 변신합니다!]
안 그래도 무서운 고대 곰 전사들이 곰 형태로 변신하자 플레이어들은 기겁했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그, 그냥 도망치면 안 되냐?”
“미친놈아! 케인도 없는데 누가 막아준다고! 다 같이 죽고 싶냐!”
“그래! 같이 싸우자!”
눈치 빠른 플레이어는 그렇게 말하고 슬쩍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다른 플레이어들이라고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스르릉-
“친구야, 어딜 가려고 그래! 너 근접 딜러인데 거기서 무기도 안 닿잖아!”
“아, 아니. 잠깐 무기 점검 좀 하려고 했지.”
“뒤로 빠지는 놈 있으면 각오해라! 나 혼자 죽을 생각은 절대 없으니까! 누굴 케인으로 아나!”
“뒤로 빠지는 놈 있으면 무조건 같이 죽는다!”
여기 있는 개척단 플레이어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도망칠 놈들이라는 걸 너무 잘 아는 그들!
서로에게 신뢰가 전혀 없었기에 의외로 견제가 잘 굴러갔다.
“싸워, 이 자식아!”
“밀지 마, 쓰레기 같은 놈아! 너가 더 HP 높잖아!”
“새로 산 장비는 국 끓여먹을 거냐!”
“함정을 이용해! 함정으로 밀어붙여! 그냥은 단단해서 이빨도 안 들어간다!”
“혼란 걸어! 오래 버티려면 저주부터 먹여야 해!”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재주를 짜내게 마련.
태현의 말이 맞았다.
고렙 플레이어가 이만큼 많으면 쉽게 무너지고 싶어도 잘 무너지지 않는다!
도망칠 곳만 없애주면 됐다.
‘김태현 이 자식 설마 이거 노리고 우리 이렇게 둔 거 아냐?!’
플레이어들은 문득 소름이 돋았다.
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본 거냐?!
* * *
쿠우웅- 쿠우웅-
멀리서 지진 소리가 나는 걸 느끼며, 태현 일행은 지하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넓다!’
맵의 넓이는 다 제각각이었지만, 태현에게는 경험으로 인한 감각이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섬 전체를 쓰는 느낌!
‘이… 이 정도로 대규모면 정말 대박일지도 모르겠는데…?’
태현은 호들갑을 좋아하지 않았다. 케인이 ‘인생역전!’ 이럴 때도 그래서 말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정말 대박의 징조가 느껴졌다.
“불 켤게요.”
이다비의 목소리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이다비도 이런 대박의 징조를 모를 수가 없는 사람!
-용용아. 불 좀 켜줘.
-알겠다. 주인이여.
용용이는 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주변으로 빛나는 구체가 생겨나며 주변을 밝혔다.
[고대 제국의 잊혀진 도시, 지하 도시 노드란체를 발견합니다!]
[이는 고대 제국의 역사에 관심 있는 NPC들에게 많은 관심을 살 것입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고대 제국에 대한 지식이 늘어납니다!]
[……]
[……]
정말 도시가 통째로 있다!
많이 망가지고 퇴색한 기색이 강했지만 그래도 도시였다.
“태… 태현 님….”
“왜 그래?!”
이다비가 털썩 주저앉자 태현은 깜짝 놀랐다.
“대박이라고 생각하니까 제가 다리가 떨려서….”
“그 마음 이해해. 손 잡아.”
“네?”
“손 잡으라고.”
태현은 이다비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원래 사람이 진짜 대박을 만나면 이렇게 다리에 힘이 풀리게 마련.
이다비는 붉어진 얼굴로 일어섰다.
“괜찮아?”
“앗. 네.”
“좀 더 잡고 있을까?”
“앗. 네.”
그 모습을 본 케인은 감탄했다.
오오…!
왠지 멋있어 보여…!
‘나, 나도 해봐야지 나중에.’
케인은 메모에 꼭꼭 적어놓았다.
-일단 어두운 맵으로 가서 상대를 넘어뜨린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옆에서 보던 정수혁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암살 팁 메모 중인가?
최상윤은 유지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냐?”
“? 아. 괜찮은데요.”
이다비와 태현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건 예전부터 봐서 알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놀라진 않았다.
“남들 앞에서 저러는 게 좀 띠껍… 아차.”
“…?!?!”
“얄밉긴 하네요. 헤헤.”
“그, 그래. 괜히 물어봐서 미안하다.”
애가 감정을 정리하고 홀가분해진 건 좋은데, 이상한 부분에서 태현을 닮아가는 것 같았다.
별로 닮아서 좋을 거 하나 없는데!
[<고대의 망가진 방앗간>을 발견했습니다.]
[고대라고 해서 무조건 다 대단한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매우 높아 배울 게 없습니다.]
‘…….’
약 올리냐?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건물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도시가 통째로 지하에 있으니, 이 시설을 그대로 쓸 수 있나 확인하고 싶었다.
영지를 새로 만드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골짜기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그렇게 미친 듯이 골드를 퍼붓고 퍼부어야 좀 사람 꼴을 갖춘 영지가 나오는데, 노드란체는 또 얼마나 걸릴지 까마득했다.
그러나 이미 있는 걸 이용한다면 훨씬 쉬워질 것이다.
“어, 어때? 좋아 보여? 좋아 보이지? 좋아 보이는 거 맞지?”
케인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더 봐야 해.”
“설, 설마… 쪽박…?”
“이 정도 도시가 그대로 있는 것만으로도 대박이지. 너 이 정도도 얼마나 건설하기 힘든지 알고나 있냐?”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케인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고대 도시라고 하니, 다른 도시에는 없는 특별한 건물을 기대하는 것이다.
‘확실히 그런 게 있으면 대박이긴 하지.’
[<고대 제국의 망령>이 나타납니다!]
“전투 준비.”
“오케이.”
태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행은 바로 버프를 걸기 시작했다.
도시 안에서 싸우는 만큼 반응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넓은 평지보다는 주변에 신경 써야 할 건물들이 많은 것이다.
“!”
도시의 대로 옆 골목에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언데드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망령 계열은 보통 약하지만, 그것도 망령 나름.
일단 레벨만 높으면 망령도 무시무시한 적이 됐다.
-너는… 너는 침입자냐?
“…?”
침입자냐고?
뜻밖의 질문에 태현은 멈칫했다.
“침입자 맞지 않냐?”
“조용히 해 인마.”
“침입자는 아니지 않나요? 영주 자격으로 온 건데.”
“헉. 나 영주였지.”
자신이 영주라는 걸 말해줘야 깨닫는 영주!
-…??
언데드도 의아하게 볼 정도였다.
“쟤는 무시하고. 우리는 침입자가 아니다. 정당한 권리에 따라서 이 자리에 왔다.”
-정당한 권리는 뭘 말하는 것이냐?
“에랑스 왕국의 국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영지의 권리다.”
-에랑스 왕국은 어디의 왕국인가?
“중앙 대륙에 자리 잡은 왕국이다.”
말하면서 태현은 상대가 덤비면 바로 싸울 준비를 했다.
안 통하면 싸운다!
[최고급 화술 스킬이…]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현재 국왕의 위치에 있습니다. 상대가 당신의 말을 신뢰합니다.]
-제국은? 제국은 어떻게 되었나?
“아스비안 제국?”
-그런 모래사막 위에서 사는 야만족 놈들 말고!
‘…….’
이세연 들었으면 뒷목 잡았겠다!
-우리의 제국 말이다.
“고대 제국 말하는 것 같은데요…?”
“고대 제국은 망했는데.”
-역시… 역시 망했는가. 에랑스 왕국 같은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이 있는 걸 보니 그럴 거라 생각은 했다만….
[<고대 제국의 망령>이 매우 실망합니다.]
에랑스 왕국 사람들이 들으면 참 좋아할 말!
-그렇다면 너는 북쪽에서 온 수인족 놈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냐?
“없다. 오히려 싸우고 있는데.”
-훌륭하다. 안을 돌아다녀도 좋다.
[<고대 제국의 망령>이 도시의 출입을 허락합니다.]
파아앗-
말이 떨어지자 벽에서 수십 명의 병사 망령들이 우르르 나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싸움이 벌어지면 공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던 것!
‘포위하고 있었나?!’
소리 하나 없이 포위하고 있었다니.
조용해서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하긴 이 정도 되는 도시에 아무런 적도 없으면 그건 그거대로 믿기지 않았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