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58화 (1,057/1,826)

§ 나는 될놈이다 1058화

예상했던 것보다 더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오자 다른 PD들도 놀랐다.

아니 저 PD가 저런 아이디어를?

그 반응에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자신이 붙은 모양이었다.

“그렇습니다! 저희 방송국에서 별의별 컨셉의 프로그램이 다 진행됐잖습니까!”

“…꽤 많이 망했지만….”

“너무 참신하면 안 되는 법이지….”

PD들은 아픈 기억이 떠올랐는지 구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판온 붐을 타고 PD들도 온갖 아이디어를 냈지만 그중 살아남은 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판온 괴식 대회>는 솔직히 왜 망했는지 이해가 안 가.”

“비주얼적으로 너무 구려서 아닐까요?”

“아니, 근데 아까운 기획이긴 합니다. <판온 아마추어 요리사>는 잘나가고 있잖습니까.”

“자자. 다들 조용히 하고. 그래서 팀 KL에게 도움 될 만한 퀘스트나 아이템이 뭐지?”

국장은 기대 가득한 눈빛을 던졌다.

저렇게 좋은 의견을 내놨으니, 분명 신입의 생생하고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기다리고 있겠지?

“…어. 아직 생각 안 했는데요.”

“…….”

“…….”

“…일단 좋은 의견이니 이걸 발전시켜보자고. 다들 각자 아이디어 하나씩 갖고 와. 좋은 걸 갖고 오는 사람에게는 내가 특별 포상 쏜다!”

국장의 말에 PD들은 고민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기회는 기회였지만 어려웠다.

대체 뭘 갖고 가야 한단 말인가?

* * *

“어. 뭐지?”

“왜?”

“저번에 만난 MBS 쪽 PD님한테서 귓속말이 왔어요.”

“무슨 귓속말?”

“뭐 필요한 거 없냐고….”

“???”

일행은 모두 의아해했다.

“좀… 수상쩍은데??”

“그러게. 아무 이유 없이 이런 걸 보낼 리가 없는데.”

“차단하자.”

“아니, 그래도 방송국 사람인데….”

“알 게 뭐야. 방송국 사람도 수상한 짓 할 수가 있잖아. 헉. 상대 팀한테 뇌물 받은 스파이 아냐?”

“…….”

하라는 연습 대신 쓸데없는 걱정만 하는 팀 KL!

하지만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태현은 일행을 한 번 둘러보며 생각했다.

‘팀이 너무 잘나가서 걱정이군.’

태현의 원래 판온 리그 전략은, ‘일단 상위권에만 들자’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전략!

남들은 온갖 지원을 받아가며 리그에 집중하는데 태현의 팀은 아니었다.

리그를 진행하면서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태현은 줄 경기는 주고 이길 경기만 챙겨서 승점을 관리하려고 했다.

상위권에만 들면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있었다.

플레이오프는 토너먼트니, 거기서 숨겨놓은 패들을 전부 꺼내서 올라가면 우승 가능성도…!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너무 압도적으로 1위인데.’

전승 무패!

베이징 파이터즈 이후에 있었던 경기도 태현은 흠 없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베이징 파이터즈가 보여준 추태 때문인지, 상대 팀은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5인 탱커를 준비했다가 급히 취소한 것 같은 어중간함!

그런 상태로는 팀 KL을 이길 수는 없었다.

덕분에 피를 보는 건 팀 KL을 상대하는 팀들뿐.

<베이징 파이터즈>는 그 졸전 이후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팬들은 ‘이래서 외국인 감독은 안 된다!’, ‘사달라는 대로 외국인 선수들 다 사 왔더니 이러냐!’, ‘감독 사퇴!’ 하며 화내고 있었고, 게임단 프런트는 진땀을 흘리며 사과문을 올리고….

‘감독이 능력 없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태현이 보기에 <베이징 파이터즈>의 다른 경기는 멀쩡하게 잘 굴러갔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진짜 감독이 승부조작했나??

어쨌든 <베이징 파이터즈>는 그 후유증 때문에 다음 경기도 죽을 쑤고 있었고, 앞으로 몇 경기는 더 그럴 것 같았다.

원래 저런 패배는 외적, 내적으로 피해를 입히게 마련.

‘남 게임단보다 문제는 우리 팀인데.’

다들 생각보다 너무 잘나가서 긴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잘나가도 되나? 나중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실수하면 안 돼! 실수하면 안 돼!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게 느껴졌다.

‘뭐, 이런 생각을 안 하게 하는 게 내 역할이지.’

태현은 반성했다.

앞으로는 더 빡세게 굴려야지!

퀘스트 하면서 사이에 남는 시간.

그런 시간에도 다른 생각 못 하게 스킬 훈련을 시키면 괜찮겠지?

오싹-

태현 일행은 왠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뿌오오오오오-

“!”

아까도 들렸던 괴수의 울음소리가 더 가까이 들리기 시작했다.

“은신하자!”

태현 일행이 은신하자, 저 멀리 바다에서 거대한 괴수가 튀어나왔다.

“매머드??”

거대한 코끼리처럼 생긴 괴수였지만, 그 덩치와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앞에 달린 상아에서는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고대 수인족이 부리는 괴수, <도시파괴자>가 나타났습니다!]

“…….”

“…….”

뭐 이름이 저래!?

매우 불길한 이름에 태현은 긴장했다.

‘딱히 나한테 데미지를 주지는 못할 것 같이 생겼데… 그래도 위협적이군.’

판온에서 덩치는 그거 자체로 무기였다.

<도시파괴자>의 덩치는 수많은 괴수를 상대해 온 태현이 보기에도 위압적이었다.

‘넘어뜨려야 하나? 그보다 놈들이 저걸 끌고 왔다는 건, 저게 날 상대할 수 있어서라는 걸 텐데.’

어떤 식이든 간에 아키서스의 힘을 상대할 능력이 있다고 봐야 했다.

[카르바노그가 그냥 무시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합니다.]

‘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어.’

문제는 저놈이 숲에 들어가면 좀 난리가 날 것 같다!

“김… 김태현. 우리가 저거 잡는 거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줘.”

케인은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거인이 작게 보일 정도의 괴수라니.

곰 전사들도 더럽게 단단해서 하나 잡으려면 온갖 스킬을 다 퍼부어야 했는데, 하물며 저런 괴수라면 대체 레벨이 얼마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음. 어떻게든 좀 막긴 해야 하는데.”

태현은 머리를 굴렸다.

저 정도 체력과 맷집이면 태현이 아무리 폭딜을 쑤셔 박는다고 해도 짧은 시간 안에 잡는 건 무리였다.

잡지는 않더라도 혼란시키거나 숲으로 못 가게 하려면?

‘폭탄? 권능 스킬? 뭘 써야….’

-워워. 진정해라. 도시파괴자!

거인이 작게 느껴질 정도의 덩치를 가진 괴수 앞에서는 곰 전사들도 조심스러웠다.

한 번 잘못 건들면 그대로 밟혀 죽는 것이다.

-저기 숲으로. 알겠지? 저기 숲으로 가는 거야.

-저기 숲에 네가 원하는 먹이가 많아. 알겠냐? 너도 오랜만에 깨어나서 배가 고프겠지?

곰 전사들은 괴수한테 어떻게든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괴수는 시큰둥한 얼굴로 발만 굴렀다.

쿵, 쿵, 쿵-

“!”

태현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저놈들… 의외로 연결이 약하다!’

펫을 부리는 것도 종류가 다양했다.

태현처럼 아예 신수, 마수를 소환해서 영혼 단위로 묶여 있는 경우.

이런 경우는 가장 친밀한 경우였다. 흑흑이가 매번 구박을 받으면서도 태현 곁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많았다.

몬스터를 붙잡은 다음 먹이를 주면서 길들이는 것도 있었고, 마법으로 길들이는 것도 있었고….

방법은 다양했지만, 주의사항은 똑같았다.

제대로 길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펫의 불만이 쌓이면 도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곰 전사들은 괴수를 제대로 길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 제대로 길들였다면 저렇게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명령을 내리면 내렸지!

‘카르바노그. 저 괴수의 조상이 아키서스한테 사기당했거나 그런 원한 관계는 없지?’

[…카르바노그가 알기로는 그런 건 없다고 말합니다.]

‘다행이군.’

태현은 마지막으로 한 번 확인했다. 저 괴수 조상이 아키서스한테 사기당한 적 있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을 테니까.

“너희들은 대기하고 있어. 갔다올 테니까.”

“안 돼요, 선배! 케인이라도 데리고 가세요!”

“맞습니다. 선배님. 위험한데 케인이라도….”

“…야…!”

누굴 뭐 포션 취급하냐!?

태현은 괜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 빠르게 달려 나갔다.

타다다다닥-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다음 도약!

탓, 탓, 탓-

-?!?!

-놈이다! 놈이 숨어 있었다!

곰 전사들이 기겁해서 투창을 던졌지만 태현은 무시하고 괴수의 다리를 타고 위로 올랐다.

‘덩치 하나는 더럽게 크군.’

푹, 푹, 푹-

덕분에 창이 박히는 건 괴수의 몸통.

괴수는 비명 지르지도 않았다. 별로 데미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저놈들 공격이면 데미지가 장난 아닐 텐데 이 정도라니….’

탁-

태현은 괴수의 등에 착지한 다음 외쳤다.

“내 말을 들어라!”

-뿌오?

-저놈이 뭐하는 거냐? 설마 <도시파괴자>를 설득하려고 저러는 거냐?

-멍청하기는! <도시파괴자>는 절대 말을 듣지 않는다! 크하하!

-우리 말도 잘 안 듣지! 크하하하!

“…….”

[…….]

태현은 당황했지만 다시 말을 이었다.

“저 숲에는 고블린과 뱀파이어와 거인이 있다.”

-뿌오.

괴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질색하는 소리를 냈다.

괴수들 사이에서도 고블린, 뱀파이어, 거인은 혐오식품!

“그걸 먹고 싶지는 않겠지. 이해한다. 저기 전사 놈들을 봐라! 덩치도 크고, 씹는 맛도 좋아 보이지 않냐!”

-아, 아니 저런 미친놈이…?

곰 전사들은 경악했다.

설마 그들이 끌고 온 괴수한테 그들을 먹으라고 시도하다니.

정말 아키서스 들어간 놈은 다르구나!

-저 말을 듣지 마라, <도시파괴자>! 우리가 너를 얼마나 아껴줬는데!

“저놈들이 네 몸에 창을 박아 넣었다!”

-저놈 말 듣지 마라! 우리가 얼마나 친했는지 알잖냐! 빨리 저놈을 떨어뜨린 다음 포효와 냉기로 짓밟아버려라!

곰 전사들은 아직 미숙했다.

만약 사디크 교단 성기사나, 악마들이었다면 이 순간에 바로 튀었을 것!

그러나 곰 전사들은 친밀도를 믿었다.

쌓은 친밀도가 있는데 설마 처음 만난 아키서스 놈한테 넘어가지는 않으리라고 생각지 않은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는 난폭한 괴수니까!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자기 귀만 막으면 무엇하겠는가.

괴수 귀도 막았어야지!

[최고급 화술 스킬이…]

[고대 수인족 부족들이 쌓은 친밀도가…]

[……]

[……]

[설득에 성공합니다!]

[괴수 <도시파괴자>가 일단 곰 전사들부터 먹기로 결정합니다!]

‘됐다!’

“애들아! 튀자!”

-야 이…!

-저 새끼!!

바로 튀어나오는 욕설!

뿌오오오오!

곰 전사들은 괴수가 고개를 돌리자 기겁했다.

[<도시파괴자>가 <고대의 겨울>을 사용합니다!]

[인근의 모든 먹잇감이 얼어붙기 시작합니다!]

[회피 불가능한 저주입니다. <고대의 겨울>로 인해…]

[<신성 권능>으로 인해 데미지를 경감시킵니다!]

[사디크의 권능으로 인해 데미지를 경감시킵니다!]

[이동속도가 내려갑니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설마 이렇게 생긴 무식한 괴수가 이 정도 광역 저주를 펼칠 줄이야.

다행히 <신성 권능> 스킬과 사디크의 권능 때문에 데미지는 없었다. 이동속도가 내려간다지만….

-아키서스의 돌격!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빠를 필요 없었다.

곰 전사들보다 빠르면 됐으니까!

“뛰어!”

뿌오오오! 뿌오!

태현의 말을 들으라고 했다면 아무리 그래도 성공하기 힘들었겠지만, 숲에 가서 고생하는 것보다 여기 짜증 나는 전사들부터 먼저 먹으라는 설득은 손쉬웠다.

쾅! 콰콰쾅! 콰콰콰콰쾅!

으직, 으지직-

[<도시파괴자>의 난동으로 인해 지진이 일어납니다!]

[지진으로 인해 땅이 갈라집니다. 숨겨졌던 입구가 드러납니다!]

[<고대 제국 유적>의 입구를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

태현은 놀랐다. 퀘스트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었는데, 정말 이 똥땅 지하에 뭐가 있었단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