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57화
“젠장.”
역시 꼭 불길하면 맞더라!
태현이 혀를 차는 것도 모르는 채, 숲에서 싸우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잔뜩 신이 났다.
“공격 들어가고 있지? 확실히 들어가고 있어!”
“우리 생각보다 강한 거 아님??”
평야에서 이것보다 몇십 배 더 많은 숫자로 부딪혔는데도 박살이 난 개척단이었다.
훨씬 더 적은 숫자로 막아내고 있으니 자신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발만 디디면 폭발에 함정이 터지는 지옥 같은 숲에 고대 곰 수인족 전사들은 이를 갈았다.
-이런 개 같은 짓거리를…!
-어떤 놈이 이딴 짓을 한 거냐!
-잡히기만 하면 사지를 찢어주겠다!
-분명 아키서스 놈이 했을 거 같다!
그러나 확실히 이 수인족 전사들은 강했다.
단순히 어마어마한 맷집과 공격력을 갖고 있어서만이 아니었다.
전투에 관한 지능이 높다!
-놈들이 있는 곳을 노려라! 놈들이 있는 곳이 안전지대다!
-그쪽으로 밀고 들어가라!
“!!”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케인도 깜짝 놀랐다.
‘아키서스 상대하는 법도 그렇더니 정말 지능이 장난 아니구나!’
“계속 얼어 있다가 깨어났는데 지능이 왜 저렇게 멀쩡하냐?”
-저놈이 우리를 모욕했다! 죽여!
-저놈부터 죽여!
[<아키서스의 노예> 보너스로 상대를 모욕하는 데 성공합니다!]
[상대를 도발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안, 안 했어! 아니야!”
-죽여라!!
“아니라고 했잖아 이것들아!”
케인은 울컥해서 접근하는 전사들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팔, 팔이 여섯 개라니. 괴물이다!
-징그러운 놈 같으니!
“…덤벼라!”
케인은 반드시 한 놈은 잡아주겠다는 마음으로 돌진했다.
분노의 돌진!
콰아앙!
닥치는 대로 돌진했지만, 케인은 의외로 바로 밀리지 않았다.
본인도 랭커인 데다가 장비도 사기적인 장비들을 고루 갖췄고, 각종 버프란 버프는 다 받은 상태인 것이다.
그에 비해 수인족 전사들은 숲 옆을 헤치고 오면서 닥치는 대로 두들겨 맞은 상태!
아무리 그래도 케인을 바로 밀어낼 수는 없었다.
[<굳건한 신체> 스킬로 인해 스탯이…]
[<강철 같은 신앙심> 스킬로 인해 보너스를…]
[<노예의 분노> 스킬로 인해…]
[<노예의 방어력 강화> 스킬로…]
[……]
쿵!
-이… 이놈. 괴물이지만 강하다!
-도와줘! 이놈이 만만치 않다!
수인족 전사들도 케인이 단단한 걸 깨달았는지 바로 동료들을 불렀다.
콰콰쾅!
[함정이 작동…]
물론 부른다고 바로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케인이 주변의 어그로를 모두 잡아준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한결 더 여유가 생겼다.
“후퇴! 후퇴!”
“뒤로 빠져!”
“야. 케인 안 도와줘도 되냐?”
“알아서 잘 하겠지! 너무 가까이 붙었잖아!”
유리할 때야 신이 났지만, 수인족 전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숲을 돌파하니 슬슬 겁이 났다.
플레이어들은 길을 따라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그제서야 깨달은 케인이 외쳤다.
“야! 너희 어디 가냐?!”
“후퇴해서 다음 집결지로 가고 있잖아!”
“미친놈들아! 할 거면 같이 후퇴해야지 왜 너희만 후퇴해!”
“네가 안 온 거야! 빨리 쳐내고 와!”
“지금 앞에… 컥! 있는데 크악! 어떻게 쳐내고 오냐! 너희 진짜… 돌아가기만 하면 제일 빡센 퀘스트만 시켜주마!”
케인의 원한 섞인 목소리에 플레이어들은 움찔했다.
케인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쪼잔한 인간!
“다시 돌아가야 하나?”
“야. 죽는 것보다는 퀘스트가 낫지.”
“맞아. 빨리 뒤로 빠져! 길이 좁아서 너희 안 가면 우리도 못 간다고!”
* * *
-이놈 떼어내 줘라!
-으아악! 주술사를 데리고 왔어야 했다! 이놈 도저히 맞질 않는다!
“얌전히 있지 못해! 검술 스킬이 안 오르잖아!”
태현은 화를 내며 도망치는 수인족 전사들을 쫓았다.
레벨도 높겠다, 방어력과 체력도 높겠다, 게다가 태현을 공격할 수단도 없겠다.
이들은 완벽한 허수아비였다.
검술 스킬을 위한 허수아비!
[카르바노그가 괴수 신경 안 쓰냐고 당황해합니다.]
‘아직 안 보이니까 오기 전까지 시간이 있어!’
괴수가 오면 상황이 또 달라질 테니, 그때까지 최대한 스킬을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스킬을 올릴 사람!
“김태현! 도와줘! 도와줘!”
도망치는 수인족 전사들을 신나게 두들겨 패던 태현은 뒤를 돌아보고 놀랐다.
“…왜 너희들만 있냐?”
태현 일행을 제외하고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숲 안쪽으로 도망치고 있는 상황!
케인 혼자서 전사 여럿의 합공을 받아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최상윤이 옆에서 잘라내고, 정수혁과 유지수가 원거리 폭딜을 퍼붓는 사이 이다비가 골드를 뿌려가며 스킬을 쓰고 있어서 버티는 거지 아니었다면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애들이 나만 두고 뒤로 빠졌어!”
“넌 왜 안 빠졌는데?”
“분… 분위기 때문에?”
“…….”
태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케인. 숲 밖으로 나와라 그냥.”
“???”
“나오라니까?”
“나, 나보고 죽으라고? 자폭시키게??”
케인은 울먹이며 물었다.
내가 실수를 했다지만 그 실수 한 번으로 자폭시키려고 하다니!
케인의 말에 수인족 전사들은 더더욱 기겁했다.
-아무리 실수를 했다고 해도 그렇지 동료를 자폭시키려고 하다니!
-정말 무서운 놈이다!
-이놈이 괴물 같은 놈이지만 그래도 네놈에게는 동료일 텐데!
[카르바노그가 쟤네 귀 왜 안 막고 있냐고 의아해합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그냥 좀 나와.”
케인은 또 시키는 대로 했다.
케인의 장점!
헛소리는 자주 해도 일단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케인을 포함한 일행이 버티면서 숲 밖으로 빠져나오자, 수인족 전사들은 신이 나서 주변을 둘러싸고 포위….
하지 않았다.
수인족 전사들은 매우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
-저놈들이 왜 나온 거지?
-둘러싸서 공격하자!
-멍청하기는! 함정일 수도 있다. 놈들을 내버려 두고 약한 놈들부터 공격하자. 숲의 놈들부터 공격하는 거다!
-오오…! 가르가, 너는 참으로 똑똑하다!
-내가 좀 똑똑하다. 고대 제국의 마법사 놈들도 나보다는 멍청하다. 자! 저 아키서스의 잡놈한테 속지 말고 숲으로 들어가서 쓸어버리자!
[고대 곰 전사들이 노드란체 숲을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노드란체 숲 요새>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현재 점령 상태는 96%…]
[점령도가 떨어질 경우 페널티를…]
“역시 저렇게 할 거 같더라.”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기 곰 전사들은 우락부락한 덩치에 살벌한 외모를 갖고 있었지만, 전투에 한해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이들이었다.
일행이 밖으로 나와서 태현과 합류하면 계속 태현을 노릴까?
아니었다.
더 만만한 상대를 노리겠지!
“흠… 원래 같이 막아주려고 했는데 저렇게 애들이 희생을 해주니… 우리는 노드란체 밖으로 가서 쟤네들이 어디서 왔나 확인이나 해볼까?”
“그래요, 선배님!”
“좋은 생각이에요!”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일행 모두 만장일치!
퀘스트는 혼자 먹을수록 맛있는 법. 굳이 저렇게 자기들끼리 막겠다고 뒤로 빠져주니, 그 배려를 감사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케인만 당황해서 물었다.
“야, 야. 쟤네 저렇게 내버려 둬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매우 불길한 대사!
케인이 안절부절못하자 태현은 다시 설명했다.
“개척단 플레이어가 몇 백 명이거든? 게다가 대부분이 고렙이고. 수인족 전사 놈들이 레벨 300, 400 넘는다고 하더라도 못 막아낼 정도는 아니야. 공격 유형도 단순하고.”
곰 전사들이 갖고 있는 스킬들은 대부분 전사 계열 스킬들.
베고, 치고, 후려갈기고… 이런 부류의 스킬들은 당황하지만 않으면 상대하기도 쉬웠다.
“그런데 깨져서 도망쳤잖아?”
“그건 책임질 놈들이 없어서 그렇지. 남아서 싸워봤자 이득도 없는데 누가 싸우겠어.”
그에 비해 지금은 드넓은 숲 안에 잔뜩 함정과 요새들을 배치해 놓은 상태.
플레이어들이 버티고 싸우기도 좋았고, 한 곳에서 깨져서 도망치더라도 다른 간이요새로 가서 버틸 수 있었다.
시간 끌면서 게릴라전 벌이기는 최적!
“그리고 무엇보다 도망칠 곳이 없으니까 잘 싸울 거야. 도망칠 곳 없으면 없던 능력도 꺼내서 싸우겠지.”
“뭔 소리야? 도망칠 곳이 없다니. 그냥 도망치면… 헉.”
케인은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좁은 길 하나 말고는 태현이 전부 다 함정을 깔아버린 것이다.
강제 배수의 진!
‘이걸 노린 거였나?!’
케인은 다시 한번 전율했다.
처음에는 그냥 어디서 오든 막아내려고 저걸 설치하나 싶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진짜 노린 건 플레이어들!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을 한데 묶어서 전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너무 대단해…!’
천재!
사람 부려먹기의 천재!
“너 지금 속으로 나 욕했냐?”
“아, 아니. 안 했는데.”
“정 불안하면 도와주러 가도 되는데. 네 영지니까 네 선택에 맡길게. 퀘스트 깰까? 아니면 도와주러 갈까.”
“…퀘스트 깨러 가자!”
케인은 안전하다는 말을 듣자 바로 말을 바꿨다.
생각해 보니 나 버리고 간 놈들 뭐가 예쁘다고 도와주러 가냐!
* * *
쾌속 완판!
나름 히트에는 경험이 있는 MBS 쪽도 깜짝 놀랄 만한 열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광고들이 이렇게 전부 다 판매되는 것은 드문 경우였던 것이다.
광고주들은 태현의 이름만 듣고서 아낌없이 돈을 뿌렸고,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경매까지 벌일 정도였다.
좋은 시청률을 예상한 PD들도 이 정도 화끈한 반응은 예상 못 했는지 놀라워하고 있었다.
“진짜 하루하루 주가가 뛰는 거 아닙니까?”
“벌써부터 다음에 언제 나오냐고 묻고 있습니다.”
“매번 내보내면 우리야 좋지만 그게 되겠습니까. 선수들도 바쁜데. 리그 일정도 빡빡하잖습니까. 게임은 게임대로 하는데 경기도 준비해야 하니….”
“팀 KL 같은 경우는 정말 시간이 하나도 없겠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모조리 훈련을 하겠죠?”
팀 KL의 사정을 잘 모르는 PD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했다.
그 정도 성적이 나온다는 건 정말 혹독한 훈련이 있어서겠지?
팀 KL 같은 소규모 게임단일수록 다른 대형 게임단을 이기기 위해서는 더 훈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가?’
‘딱히 그럴 시간이 없어 보이긴 했는데….’
PD들도 개인적으로 이번 방송에 관심이 많았는지, 태현의 퀘스트에 대해 연신 물어봤다.
“그런데 케인 선수가 정말 김태현 선수를 부려먹나요? 그렇게 안 봤는데….”
“에이. 방송의 재미를 위한 과장이죠. 어떻게 사장을 부려먹어요.”
“저도 놀랐는데 진짜더라고요.”
“?!?!”
“그만. 지금 어떻게 김태현 선수 출연을 더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리 아니었나?”
눈치 없는 신입 PD 한 명이 손을 들고 말했다.
“출연료를 더 주면….”
“그걸 말이라고 하냐? 10배를 때려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안 하는 선수야. 아니, 애초에 생각을 해봐라. 지금 그렇게 잘나가는데 출연료 몇 푼에 마음이 바뀌겠냐? 솔직히 이번에 찍었던 것도 장욱이가 예전에 같이 했던 인연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어.”
안 그래도 유명했던 선수였지만, 이번 판온 리그에 대대적인 흥행으로 그야말로 인지도가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는 게 태현!
직접 출연하지 않고 영상만 따와서 쓰는 광고만 허락하고 있는데도 줄을 서서 찍으려고 하고 있었다.
지금 가장 잘나가는 스타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역시 정성 아니겠습니까?”
“…헛소리 같지만 들어는 주지. 무슨 소리냐 그게?”
정성으로 될 일이면 내가 벌써 예전에 ‘김태현 vs 이세연’ 찍었다!
세상에는 정성으로 될 게 있고 안 될 게 있는 것이다.
“팀 KL이 아무래도 리그 중이니, 판온에서 도움 될 만한 퀘스트나 아이템을 찾아서 선물해 준다면… 저희 방송국에 나오는 플레이어가 몇 명인데 그런 정보 하나 못 구하겠습니까? 찾다 보면 나오지 않을까요?”
“…오…?”
의외로 그럴듯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