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51화
“…….”
필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검은 바위단>은 작지만 탄탄하고 실력 있는 길드였고, 서로 아끼는 길드였다.
그렇기에 구성욱이 직업 퀘스트로 울음의 검을 찾을 때 길드 전체가 나서서 생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그 뒤 길드 안에서는 규칙이 생겼다.
-김태현과 더 이상 엮이지 말자!!!
판온에서는 김태현 얼굴 한 번 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그러나 검은 바위단은 이제 충분했다.
너무… 너무 개고생이었어!
물론 김태현과 한 퀘스트는 객관적으로 보면 남는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은 퀘스트였다.
‘이걸 말해줘야 하나?’
길드원 구성욱은 태현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흠칫흠칫 놀랐다.
그만큼 고생이 깊이 남았던 것!
‘크음… 그렇다고 말 안 해줄 수도 없고.’
필은 결국 구성욱한테 조심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하필 또 김태현입니까! 아니, 그보다 필 씨 거기 있었어요?
-아, 아니… 아이템 잘 나와서….
* * *
“교황님! 태초의 불을 완성시키시다니, 이 장로 베켈프는 교황님의 능력에 감탄, 또 감탄했습니다!”
유난히 자기 장로 자리를 강조하며 고개를 조아리는 베켈프!
교단의 장로 자리에 매우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정말로 <태초의 불>을 완성시킬 줄이야!
‘얘는 자기가 갇혀 있다는 거 모르나?’
[카르바노그가 기분 좋은데 괜히 괴롭히지 말자고 말합니다!]
베켈프의 멋진 인성은 이미 드워프 왕국에 있을 때부터 알려져 있었기에, 태현은 만반의 감시를 하고 있었다.
하늘성에 있는 교단의 영웅들과, 하늘성의 정령들이 모두 베켈프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할 일 없어서 심심한 교단의 영웅들은 베켈프 옆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정령의 대장간> 일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허.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나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크흠. 꼭 내가 뭐 그렇게 하란 건 아니고… 물론 자네가 드워프기도 하고, 더 뛰어난 대장장이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쪼끔, 쪼끔 아쉽달까? 그런 말을 하고 싶었어!”
“…….”
기분 좋았던 베켈프도 빡치게 만드는 교단의 늙은 영웅들!
베켈프는 태현에게 하소연했다.
“교황님. 저 혼자 작업하게 해주시면 안 됩니까?”
같은 대장장이면 모를까, 대장장이 일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성기사들이 훈수를 두니 없던 분노도 솟구쳤다.
태현은 슬쩍 못 들은 척했다.
“베켈프. 너는 이 교단의 기둥이야. 다른 장로들은 아무도 하지 못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
“…!”
재빠른 화제 돌리기!
그러나 베켈프는 눈치 못 챈 듯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베켈프 정도면 아키서스 교단 장로들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성실한 편이었다.
일단 대장장이 일은 열심히 하잖아!
그 정도면 아키서스 교단에서 상위 1%에 속하는 성실함이었다.
‘덕분에 이제 본격적으로 교단 소속 대장간을 돌려도 될 거 같아.’
대륙의 교단들은 보통 다 자기들이 갖고 있는 대장간이 있었다.
교단 소속 대장장이들이 열심히 만든 장비들은 교단 NPC들이 입거나, 혹은 교단에 공을 세운 모험가들에게 보상으로 내려왔다.
정말 잘 만들어진 걸작들은 교단 보물창고에 보관되기도 하고!
그러나 아키서스 교단은 이제까지 그런 걸 거의 하지 않았었다.
‘실질적으로 돌리기가 불가능했으니까.’
좋은 재료 나오면 태현 일행이 만들어서 입기도 빠듯한데 무슨 교단 지원이란 말인가.
갖고 있는 대장간들이 꽤 있긴 해도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아이템은 (대량의) 폭탄 정도!
나머지는 플레이어들이 바치거나 태현이 퀘스트에서 갖고 오거나 다른 사람들한테서 뺏어 온 아이템들 정도.
물론 그 정도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긴 했다.
오죽하면 교단 소속 플레이어들이 ‘태현 님 요즘 누구 안 패시나요?’ ‘태현 님 요즘 길드 동맹 애들 장비가 좋아 보이던데 싸워주시면 안 되나요?’ 같은 글들을 올릴까!
그러나 교단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려면 약탈에 의존해서는 안 됐다.
정기적으로 꾸준히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그럴 능력이 됐다.
<태초의 불>이 있는, 다른 교단의 축복 받은 거대 대장간과도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강력한 대장간!
고블린들과 드워프들이 신나서 퍼올리는 안정적 재료 수급!
그리고 열심히 만들 노ㅇ… 대장장이!
[카르바노그가 한 명 가지고 괜찮겠냐고 걱정합니다.]
‘괜찮아. 베켈프는 혼자가 좋대.’
[아니 그건 그런 뜻이 아니었…]
[하늘성에 위치한 <정령의 대장간>에서 교단의 장비들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외로운 대장장이, 베켈프가 만드는 장비들은 아키서스 교단 소속 장비로 부여됩니다.]
[희귀 등급 이하의 장비들은 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보상으로 풀릴 수 있습니다.]
[영웅 등급의 장비들은 창고에 보관되며, 특정한 퀘스트 보상으로 주어질 수 있습니다!]
[전설 등급의 장비가 나왔을 경우 메시지가 나옵니다!]
[……]
[……]
‘흠. 진짜 아키서스 교단이 강해지고 있군.’
솔직히 판온 접을 때까지 그런 모습은 못 볼 줄 알았는데….
퍼주고 퍼주다 보니 강해지긴 한다!
‘아키서스 교단이 그래도 양심은 있어….’
태현은 살짝 감동했다. 이만큼 퍼주고서도 안 강해졌으면 정말….
게다가 이다비의 말을 들으니, 갈락파드가 이끌고 간 아키서스 십자군이 대단한 업적을 세운 모양이었다.
사실 믿기지는 않았다.
‘이 자식들 자폭해놓고 업적 세웠다는 거 아냐?’
아무리 봐도 그것밖에는 없는데??
* * *
휘오오오오오오오오-
하늘성에서 가장 섬뜩한 소리를 내는 장소, 냉기의 핵!
[<태초의 불>로 인해 <냉기의 핵>에게서 보호받습니다!]
[회피에 성공…]
[저항에 성공…]
[다가갈수록 <냉기의 핵>의 힘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후. <부활> 스킬 여기서 쓰게 되면 진짜 배가 아프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시간 역행 권능부터 부활 권능까지 다 쓸 각오를 하고 태현은 냉기의 핵을 향해 내달렸다.
영지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강… 강이 끓어오른다!?
-물, 물고기가 다 죽었어! 건져! 건져!
-밭이 불탄다! 왜 갑자기 불이 나지?!
태현이 냉기학파 마탑을 만들었다면 마법사들을 동원해 영지의 온도를 좀 식히기라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냉기학파 마법사 NPC들을 좀 갖고 있는 영지들은 다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없는 영지들은 죽을 맛!
태현이 있는 건 화염학파 마탑뿐이니….
‘태초의 불로 버프 받은 건 좋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으니….’
결국 태현이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냉기의 핵>에 접촉했습니다!]
[원하는 것을 바라십시오!]
[<냉기의 핵>이 들어줄 수 없는 것을 요구했다가는 커다란 페널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커다란 페널티를…]
‘알고 있으니까 그만 말해라.’
태현은 빠르게 외쳤다.
-영지를 <화산의 저주>로부터 보호해라!
[<냉기의 핵>이 당신의 부탁을 들었습니다!]
[<냉기의 핵>을 다루는 데 성공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
태초의 불 퀘스트와 이전 퀘스트로 쌓여 있던 경험치 합쳐져 레벨 업!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을 각오한 상태에서 이 정도면 매우 선방한 것이었다.
게다가 레벨 업은 덤이었고….
[<냉기의 핵>이 당신에게 대가를 요구합니다!]
[신성 스탯으로 인해 저항…]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저항…]
[강력한 행운 스탯으로…]
[대가가 결정되었습니다!]
[고급 마법 스킬이 사라집니다!]
[고급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이 저항합니다.]
‘어?!?!’
태현은 기겁했다.
마법 스킬이 사라진다니.
검술 스킬이나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사라지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페널티 아닌가!
어쩐지 묘사가 심상치 않더니…!
‘…잠깐만. 나는 어차피 손해가 없는데?’
생각해 보니 태현이 키운 마법 스킬들은 대부분 흑마법 위주였다.
그것도 느부캇네살을 잡고 나서 전부 다 (강제로)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으로 바뀌었고.
이건 신성력이 담긴 저주 같은 거라, <아키서스의 화신>을 전직 포기할 수 없듯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실제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메시지가 뜨지 않았던가.
그러면 딱히 사라지는 마법이 없는데?
언령도 마법 스킬이 아니라 화술 스킬이고….
‘뭐야. 생각보다 별로 손해가 아니잖아.’
[고급 냉기의 저주를 얻었습니다!]
고급 냉기의 저주 1 (1%)
냉기의 핵에서 받은 저주의 힘을 이용하는 마법이다. 강력한 냉기를 불러올 수 있지만 사용자에게 데미지를 준다.
‘오….’
<마법 스킬>이 사라지는 대신 <냉기의 저주>로 바뀌는 페널티 같은 거였나 보군!
그런데 하필이면 이미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이 바뀌어 있어서 사라지지도 않고….
‘그런데 좀 애매하긴 하다.’
보아하니 태현의 HP를 깎아서 쓰는 마법 같은데, 태현은 이런 종류의 스킬을 잘 쓰지 않았다.
<혈마법> 스킬을 예전에 얻고서도 쓰지 않았던 건 마법 위주로 키우지 않아서도 있지만, 태현의 HP가 그리 많지 않아서기도 했던 것이다.
‘없어서 나쁠 건 없다지만.’
저걸 언제 쓰지?
[카르바노그가 사디크의 화염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하긴 그것도 그래.’
서로 사이좋게 사디크를 까는 신과 화신!
사디크가 이 꼴을 봤다면 펄펄 뛰었을 것이다.
지들이 이제까지 사디크의 화염을 얼마나 써놓고…!
* * *
[영지에 <냉기의 보호>가 시전됩니다!]
[<화산의 저주>가 그칩니다!]
“…!”
“화, 화산의 저주를 막았어?!”
영지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태초의 불>이란, 멀쩡해도 너무 멀쩡한 강력한 시설이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화산의 저주>까지 막아내다니!
몇몇 플레이어들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아니~ 나 때는 말이야. 영지가 진짜 개판이었다고! 그걸 참으면서 뽑기 돌리는 게 여기 진짜 골짜기 맛이었는데! 어!”
“요즘 골짜기는 너무 편해져서 탈이야!”
“뭐지? 미친놈들인가?”
원래 골짜기는 일반적으로 좋은 영지라기보다는 특별한 영지에 가까웠다.
그런데 점점….
흠잡을 곳 없이 좋아지고 있어!
게다가 예전과 달리 영지 플레이어들 숫자는 몇 배로 늘어난 상태였다.
마계와의 통로가 골짜기에 열린 탓에 고렙 플레이어들 다수가 여기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들 중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뜬 <태초의 불>을 보고 기겁했다.
레벨 높은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은 <태초의 불>이 뭔지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근데 그게 왜 여기 설치되냐??
“김태현이 대체 <태초의 불>을 어떻게 설치한 거래??”
“그거 피우는 방법 실전되지 않았나? 누가 알고 있었던 거지?”
“김태현이 드워프 왕국 뚫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드워프들한테 들은 거 아냐?”
“거기를 가야 하나? 아, 드워프 왕국 하나 찾는 것도 힘든데….”
보통 멀고 깊은 곳에 있는 드워프 왕국들은 레벨 낮은 플레이어들은 찾아가기도 힘들었다.
찾아가도 친해지는 것 자체가 일!
영지에 외부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많으니, 퍼지는 속도도 몇 배는 빨랐다.
-‘그 골짜기’에 태초의 불 설치됐다!
-개소리하지 마시죠.
-저번에는 영지에 드래곤 나타났다고 누가 구라치더라. 골짜기 애들은 다 왜 그러냐?
-애들이 좀 다 미친 거 같아.
-골짜기 소속 플레이어들 상대할 때는 눈빛을 잘 봐야 함. 좀 오래 있었던 놈들은 눈빛에서 광기가 번뜩이더라.
-진짜야 미친놈들아! 영상을 봐!
-그리고 화산의 저주도 막음.
-아 1절만 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냐! 지금 아레네도 냉기학파 마법사들 총동원해도 못 막고 있는데….
길드 동맹 수도도 더위에 허덕이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막냐!
-그거 막았으면 내가 길드 탈퇴하고 골짜기 가서 장비 뿌린다!
-크하하!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