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40화
불사조는 나이가 들거나 많이 다쳐서 죽을 때가 되면, 용암으로 몸을 던져 몸을 태운 다음 새로운 몸을 얻어 솟아오르는 영물!
즉 이 분화구는 이 불사조의 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분화구 앞에 아키서스가 있다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라고 카르바노그가 설명합니다.]
‘너 요즘 은근히 아키서스 욕하는 것 같다?’
-끼에엣! 끼엣!
“저건 뭐라고 하는 거지?”
잘 모르겠지만 뭔가 꺼지라고 하는 것 같은데?
[자긴 아키서스 권능 없다고, 빨리 돌아가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깃털을 받으러 왔는데.”
휙!
불사조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깃털을 쏘아 보냈다. 태현 앞에 불사조의 깃털이 파파팍 꽂혔다.
[아이템을 얻었…]
[아이템을 얻었…]
-끼에엣!
[이제 댈 이유가 없을 테니 빨리 돌아가 달라고 말하고 있…]
‘알겠어. 그만 해석해.’
이렇게 쉽게 해결이 된다고?
태현은 좀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깃털은 얌전히 챙겼다.
퀘스트가 쉽게 해결되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불사조와 싸울 생각은 없었다. 잡아봤자 다시 부활할 거고, 이 근처는 싸우기 좋은 곳도 아니었고….
태현이 물러설 기색을 보이자 불사조가 오히려 당황했다.
-끼엑?
진짜 물러선다고?
정말 깃털만 챙기러 온 건가?
너 아키서스 맞아?
[불사조가 정말 물러설 거냐고 묻고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저거 왜 저래?’
[상대가 아키서스니 좀 이해해달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끼에엑. 끼엑. 끼에엑.
불사조는 태현이 정말 물러서려고 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울었다.
[????]
‘왜? 무슨 말을 했길래?’
카르바노그는 당황스러운 말투로 불사조의 말을 전했다.
살고 싶으면 빨리 튀라는데?
‘그냥 물러서라는 거랑 똑같잖아. 어차피 물러설 건데 뭘….’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이곳이 매우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화산 폭발 때문인가?
태현은 가장 먼저 화산을 떠올렸다. 하지만 여기가 도시 근처면 모를까, 여기는 외진 산맥 남쪽 끝의 화산지대였다.
그냥 날아서 도망치면 별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화산 밑에서 잠들어 있던 레드 드래곤이 곧 깨어날 때가 되었는지 주기적으로 소리를 내고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
뭔 드래곤???
레드 드래곤은 드래곤 중에서도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드래곤이었다.
착하고 성실한 골드 드래곤이나, 음흉하고 더러운 블랙 드래곤과 달리, 순수한 분노조절장애 드래곤!
자기가 머무는 곳에 모험가들이 와있는 걸 보면 일단 열부터 받을 것이다.
‘…빨리 튀어야겠군.’
“고맙다.”
-끼에엑.
불사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서스라고 해서 긴장했는데, 의외로 상대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흠. 그런데 혹시 교환 같은 거 할 생각 없….”
-끼에엑!
불사조는 재빨리 몸을 돌려 분화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첨벙!
방심할 뻔했다!
아키서스와 길게 말을 섞으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진짜 사기 안 치고 교환할 생각이었는데….”
[카르바노그가 어깨를 토닥입니다.]
* * *
태현의 뒤를 따라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움직인 플레이어들 중에는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내 감이 말하고 있다니까. 이 동굴이 뭔가 있을 것 같아.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보기에는 너무 그럴듯하게 생겼잖아?”
“괜히 시간낭비만 하는 게 아닌지….”
[<근원의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크게…]
[……]
[……]
“!!!”
“!!!!!”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나오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대 통로!
화려한 조각과 잘 다듬어진 통로. 절대 그냥 자연동굴이 아니었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환호했다.
“대박이다!!”
“여기 뭐하는 곳이지??”
“뭔지는 몰라도 뭔가 있는 건 확실해! 방송 켜!”
“방송 켜도 괜찮을까?”
“어차피 켜봤자 우리 있는 곳 찾아오지도 못해! 간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방송을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카프 화산지대인데 남들과 다른 퀘스트를 하니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이 우글우글 몰렸다.
-여기 어디야? 김태현은 지금 분화구에 도착했던데?
-분화구 아닌 것 같아요.
-어디로 가는 길이지? 뭐야, 이런 길도 있었나? 여기 어떻게 가는 거야?
수많은 반응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바로 이거지!
‘김태현이 불사조 찾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으면….’
‘깃털 얻으면 김태현한테 줄 거냐?’
‘미쳤냐? 당연히 그걸로 우려먹어야….’
신나서 달려 나가던 약탈자 플레이어들.
그들 앞의 통로가 갑자기 끝나더니, 거대한 유적지가 나타났다.
[<근원의 둥지>를 발견했습니다!]
[목숨이 아깝다면 돌아가는 게 나을 겁니다.]
[……]
[……]
태현이었다면 ‘야 이거 뭔가 이상하다!’ 하며 일단 백스텝을 밟았을 테지만,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간덩어리가 부은 상태였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안으로 발을 디뎠다.
“몬스터 없나?”
“그러게? 왜 아무것도 없지?”
-여기 뭐하는 곳이지?
-좀 더 돌아다녀 봐요!
-맞아! 확인 좀 하게 돌아다녀 봐!
“아. 말 더럽게 많네. 기다려봐! 하고 있잖아.”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시청자에게 짜증을 내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거창한 이름과 어마어마한 보너스와 달리, 이 근처는 이상하게 뭐가 없었다.
“방이 꽤 많은데 돌아다녀 볼까?”
“뭔지도 모르는데 멋대로 열지 마. 괜히 함정이라도 있으면 골치 아파진다. 맵 구조부터 파악을 해야….”
“네가 뭔데 명령이야? 난 열어볼 거야.”
“이 자식이….”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금세 싸우고 금세 깨졌다. 이런 부분에서 협동심이 있을 리 없었다.
덜컹-
“보, 보물 같은데?!”
문을 열고 다니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운 좋게 보물을 발견!
그러자 다른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눈을 빛냈다.
‘여기… 그냥 보물창고였나??’
아무도 온 적 없는 보물창고!
함정도, 몬스터도 없는 보물창고라니. 판온 플레이어들의 꿈 아닌가.
방 하나를 열었던 플레이어 한 명이 이상한 걸 발견했다.
거대한 방 가운데에는 둥그렇게 솟아 있는 커다란 언덕이 있었고, 그 위에는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붉은 석판이 있었다.
[고대 언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읽지 못합니다.]
[감정 스킬이 부족해…]
[……]
[……]
“야, 이건 뭐냐?”
“석판 같은데?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일단 챙겨. 챙겨!”
거대한 붉은 석판. 뭔 뜻인지는 몰라도 가격이 될 거라는 짐작은 갔다.
-저게 뭐지?
-혹시 저 언어 아는 사람?
-알더라도 직접 봐야지 이 화면으로 보면…
-묘비 같은 건가?
-재질이 꽤 괜찮아 보이는데 뭐가 섞인 거지?
“혹시 불사조는 없냐? 알이라도?”
“불사조 용암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다 자란 놈이고, 새끼는 알에서 나올지도 모르잖아.”
“하긴….”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부푼 가슴을 달래며 더 뒤지기 시작했다.
정말 불사조 알이라도 찾는다면 나중에 태현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늦었다.
-김태현 불사조 발견!
-깃털 확보함 ㅋㅋㅋㅋ 게임 끝!
-늦었죠?
-너희 여기서 뭐하냐?
“???”
“뭐야?!”
신나게 챙기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소식에 당황했다.
태현이 불사조를 발견해서 깃털을 챙긴 뒤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화산지대에서 철수하고 있다니!
“야. 더 챙겨도 되잖….”
“미쳤냐? 몬스터 다시 나오면 어떡하려고?”
지금 화산지대 근처가 안전한 이유는, 태현이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이 근처를 확 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몬스터들이 부활하기라도 하면 그들은 여기에 갇히는 것이다!
“젠장. 빨리 튀어야겠다.”
“김태현 퀘스트 끼어들었어야 했는데….”
“보물 챙긴 게 어디야.”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챙긴 것의 정체를!
붉은 석판의 정체는, 레드 드래곤의 아버지가 묻혀 있는 무덤의 묘비였다.
원래라면 드래곤이 사는 둥지에는 수많은 가디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고, 침입자를 정 이겨낼 수 없으면 동면하고 있는 주인을 깨워서라도 막아냈다.
그러나 지금 이 레어는 그 많던 가디언들이 다 사라져 있었다.
아까 화산의 첫 번째 울음 때 영향을 받고 밖으로 나와 싸우다가 전멸한 것!
어마어마한 행운….
아니. 결과만 놓고 보면 어마어마한 불운이었다.
세상에 어떤 드래곤이 자신의 둥지에서 보물을 찾아간 놈을 내버려 두겠는가?
* * *
“모두 고생 많았다.”
태현의 말에도 모두 시무룩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개척단….’
‘개척단 기회를 놓치다니. 흑흑. 나는 정말 바보야. 거기서 그냥 달려들어 볼걸.’
“…다들 고생이 많았으니 개척단에 참가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소개를….”
“정말입니까?!”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와아아아아아!”
“…나중에 후회된다고 나한테 뭐라고 하기 없기다.”
“하하. 농담도!”
“그걸 왜 후회합니까?”
“고마워하면 고마워했지!”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
“방송 때문에 사람들이 혹한 것 같은데요?”
“그놈의 방송이 사람 여럿 잡는데….”
나중에 태현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겠다!
“태현 님! 여기 얘네들 좀 보십쇼!”
“?”
“얘네들 혼자 던전에 들어가서 보물을 챙겨 나왔습니다!”
웅성웅성-
시선을 돌리니, 한 파티를 둘러싸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노려보고 있었다.
방송을 하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게 마련.
남들은 열심히 사냥해서 길 뚫어놨더니 혼자 던전 가서 보물 먹고 왔다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 플레이 한 게 뭐 어때서!”
“태현 님이 버프 안 걸어줬으면 너희가 여기 들어올 수나 있었냐? 말도 없이 혼자 보물을 먹어?”
“맞아! 맞아!”
아무리 태현이 내버려 뒀다고 하지만, 엄연히 태현이 파티를 이끈 덕분에 화산지대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걸 무시하고 혼자 던전의 보물을 독차지하다니!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간다는 걸 깨달았다.
“칫… 비켜!”
-고속 이동!
-연막의 그림자!
“!!!”
“저놈들 도망친다! 쫓아!”
“저것들 뭐하는 놈이야?!”
플레이어들은 분개하며 뒤를 쫓을 준비를 했다.
“태현 님. 같이 쫓으실 겁니까?”
“명령만 내려주시면 쫓겠습니다!”
“아냐. 난 됐어. 너희들 좋을 대로 해. 일단 화산지대에서 물러나자고.”
이미 목적을 이룬 태현은 보물 좀 더 챙기겠다고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레드 드래곤이라는 찜찜한 이름까지 들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영지 돌아가서 <태초의 불> 완성시킨 다음 빨리 아키서스 권능 찾으러 가야지.’
[카르바노그가 잊고 있는 줄 알았다며 안도합니다.]
* * *
그 많던 플레이어들이 싹 사라지고 나서도 카프 화산지대는 꿈틀거렸다.
그러던 도중, 또 한 번 땅이 울었다.
[<화산의 두 번째 울음>이 카프 화산지대에 울려 퍼집니다!]
[카프 화산지대의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가 깨어납니다!]
-어떤 놈이 내 레어에 침입했느냐!!!!!
그다음 메시지창부터는 대륙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떴다.
[카프 화산지대의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가 극도로 분노합니다!]
[<화산의 세 번째 울음>이 프리카 대륙 너머 중앙 대륙으로 울려 퍼집니다!]
[니팅거스가 <화산 폭발>을 사용합니다!]
[대륙에 <화산의 저주>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화산의 열기가 필멸자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니팅거스의 분노-레드 드래곤 퀘스트>
니팅거스의 분노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륙은 끝없는 열기의 저주에….
[퀘스트 등급: 전설]
생각지도 못한 전설 등급 퀘스트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