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33화 (1,032/1,826)

§ 나는 될놈이다 1033화

흑흑이는 눈치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골드 드래곤보다 블랙 드래곤이 눈치가 좋다는 게 학계의 정설!

게다가 아키서스의 신수가 아니라 사디크 출신인 흑흑이는 더 눈치가 좋아야 했다.

이다비 같은 일행의 실세에게 잘 보여야 한다!

-아니 내가 잡은 걸….

-아 좀 조용히 하라니까!

흑흑이는 날개로 용용이의 입을 덮었다.

이놈이 눈치가 없어!

그러니까 아키서스한테 종족 단위로 사기를 당하지!

‘잠깐. 이거 데이트 아닌가…?’

이다비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얼굴이 확 붉어졌다.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저 잡으러 가죠!”

“다 잡았는데…?”

“더 잡으러 가죠! 더 열심히!”

갑자기 몇 배의 의욕을 보여주는 이다비!

태현은 의아했지만 판온 열심히 한다는데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케인이 저런 열정을 보고 배워야 하는데!’

이다비 봐라! 아직도 만족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

‘나중에 밖에 나가서 잔소리 한 번 더 해둬야지.’

태현은 멀티태스킹의 달인이었다. 판온에서 사냥을 하면서 이따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동시에 케인한테 할 잔소리를 짜낼 수 있는 사람!

* * *

팀 KL의 선수가 세 명이나 있다!

그 사실만으로 MBS 스태프들은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소… 소리가 들린다!’

‘시청률이 폭발하는 소리…!’

판온 리그에서 팀 KL의 시청률은 압도적이었다. 그만큼의 성적과 퍼포먼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것과 별개로 팀 KL은 프로 선수들 중 가장 노출이 적은 팀이었다.

개인 방송도 거의 안 하고(퀘스트 동선이 노출되니), 게임단 자체 행사도 안 하는(굳이 이유가 없으니까) 팀!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MC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스태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던 것이다.

귓속말을 따로 안 보냈는데도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기회 놓치면 그냥 사직서 내고 나가십쇼!

“…그러고 보니 요즘 팀 KL 성적이 엄청 잘 나가잖습니까? 무슨 비결이라도?”

“하하. 무슨 비결까지는 없고… 다들 열심히 노력해서죠.”

“맞습니다. 다들 열심히 뜻을 모아서….”

최상윤과 정수혁은 바로 모범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들도 대회 뛴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태현이 갈궈서죠!”

“…….”

“…….”

야 인마!

최상윤과 정수혁은 기겁해서 케인을 쳐다봤다.

너 인마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케인 미쳤다 ㅋㅋㅋㅋㅋㅋ

-에이 짜고 하는 거 아님?

-아닌 거 같은데? 최상윤하고 정수혁 얼굴 보셈. 당황한 얼굴이잖아.

MC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았다.

이거지!

선수들이 다 모범적인 대답을 하면 이미지 관리는 좋겠지만 방송사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케인 선수, 고맙습니다!’

충성충성충성!

“어떻게 갈구는 거죠?”

“아이고, 진짜 말도 못해요! 왼쪽에서 딜러 누구 들어오면 막아라, 뒤에서 누가 은신 걸고 들어오면 막아라, 수혁이나 이다비한테 공격 들어가면 그만큼 너 때릴 거라고 막 구박하는데 진짜… 쉬는 날에는 빨리 판온 들어가서 스탯, 스킬 레벨 작업해서 1이라도 올리라고 하는데….”

“…그,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탱커한테 막으라는 건 당연한 거 아냐?

그리고 스탯 스킬 성장은 당연한 거잖아…?

“아니 그걸 진짜 많이 말한다니까요?? 아, 이걸 당해봐야 아는 건데! 진짜 폭풍 잔소리인데!”

“그, 그렇군요. 김태현 선수가 그런 이미지가 아닌데 안 보이는 데에서는 상당히 잔소리가 많은 모양이군요.”

태현은 과묵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선수였다. 판온 1 때부터 그래왔었다.

당연히 팀을 이끄는 주장일 때도 등으로 말하는 그런 선수인 줄 알았는데….

“아뇨. 태현이 그렇게 잔소리 안 심해요. 오히려 상당히 프리한 편인데.”

“선배님 잔소리 거의 안 하십니다만?”

“…????”

케인은 당황해서 둘을 쳐다보았다.

너희들이 그러면 내가 뭐가 되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케인 ㅋㅋㅋㅋㅋㅋㅋㅋ

-버림당함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케인만 잔소리하는 거 같은데?

-케인아 잘 좀 하자!

-케인아 잘 좀 하자!

MBS 쪽에서는 사전 방송으로 인터넷에도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원래 잘 다듬어진 정식 방송이 더 인기가 좋았지만, 팀 KL은 예외였다.

팀 KL이 찍고 지나간 발자국만 나와도 보러 가는 충성 팬들!

“아, 아니 나한테만 잔소리한다고? 너희들한테는 안 해?”

“…….”

“…….”

최상윤과 정수혁은 차마 ‘응’이라고 대답하지 못해 시선을 피했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케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차마 두고 보기 힘들었는지 MC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하하하. 그럴 수도 있지요! 그만큼 케인 선수가 중요한 역할이니까!”

“아니 그냥 케인이 자꾸 머리로 생각을 안 ㅎ….”

“쉿. 그러지 맙시다.”

정수혁이 최상윤을 말렸다. 케인이 불쌍하잖아!

“아무래도 팀 KL은 김태현 선수가 주도해서 만든 팀이다 보니 역할이 클 텐데, 예전에 한 번 화제가 됐었죠? 엄청나게 좋은 숙소로.”

숙소 퀄리티만 따지면 국내, 아니 전 세계에서 손꼽힌다!

어느 게임단이 저런 곳에서 지내겠는가.

“아. 네. 저희는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또 많이 달라졌는데, 숙소 생활은 어떠신가요? 뭐 불편한 점이 있나요?”

“딱히 없는데요?”

“하하하. 케인 선수. 그렇게 눈치 볼 거 없어요. 편하게 말하셔도 됩니다.”

MC는 케인을 노렸다. 방금 한 대화 때문에 케인이 주눅 들었다고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케인은 정말 아무 불만이 없었다.

‘반찬에 고기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하면 욕먹겠지?’

그 정도 판단은 되는 케인이었다.

“같이 살면 이런저런 일들이 생길 텐데, 아. 식사 같은 건 어떻게 해결한다고 하셨죠?”

“김태현이 차려주는데요.”

“…전부요?”

“…어… 네.”

“그, 그럼 다른 일들은 케인 선수가? 청소 같은 건…?”

“…그, 그것도 김태현이 해주는데… 그거 할 시간에 판온 집중하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타 등등 다 해준다!

너는 판온만 좀 잘 해라!

말하던 케인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거….

너무 내가 쓰레기 같지 않나???

-참사장님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뭐 저런 게임단이 있음?? 콩가루임???

-팀 KL은 사장이 선수 밥 차려준다ㅋㅋㅋㅋㅋㅋ

-케인 양심이 있냐? 네가 사람이냐???

-아니 저렇게 해주면 잔소리 해줘도 엎드려서 감사합니다~ 하고 들어야 하는 거 아님?

-야 나랑 바꿔! 나 저기 들어갈래!

-팀 KL 수입도 거의 터치 안 한다며? 뭐 저런 팀이 있냐??

-김태현 케인한테 약점 잡힘?? 왜 저렇게 퍼줌??

-아니, 다른 선수들도 저렇게 해준다면서. 저렇게 퍼줘서 남는 게 있나?

-여러분들이 남습니다.

-팬들이 남습니다….

-아 좀 치트키 쓰지 마라!

-ㅋㅋㅋㅋㅋ 아니 보통 소규모 게임단은 복지가 더 떨어지지 않냐? 저기는 뭐 대형 게임단보다 더 복지가 좋은 것 같네.

-팀 KL(김태현이 나머지 선수들 구제해 주려고 만든 팀)

-솔직히 김태현은 팀 KL 접고 다른 게임단 가도 탑 대우받지 않나?

진짜 생각도 못 해본 팀!

저런 게 말이 되냐??

보고 있던 팬들은 팀 KL의 충격적인 상황에 경악했다.

케인은 다른 두 선수를 보며 귓속말로 물었다.

-…내, 내가 너무 쓰레기 같지 않나?

-그걸 이제 알았니? 그래서 우리 입 닥치고 있었잖아.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정수혁과 최상윤은 태현이 얼마나 챙겨주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평소 하던 것처럼 투덜거린 케인만 당첨!

“와… 김태현 선수가… 정말… 대단하네요… 그쵸?”

MC도 놀란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눈빛이 ‘넌 양심이 없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저, 저는 항상 감사하고 있었어요 사실!”

“아 그렇군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아니 좀 들어주세요! 제가 김태현한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말할 테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늦었어 인마ㅋㅋㅋㅋㅋㅋ

-이미 다 나왔는데 뭔 수습임?

-케인, 팀 KL에서 방출… 충격!

-이건 김태현이 당장 쫓아내도 이해한다.

-아니 나도 케인처럼 똑같이 집에서 판온만 할 수 있는데! 왜 우리 부모님은 나 구박함??

-…….

-…….

“편집 가능하죠?? 방금 대화 편집 가능하죠???”

“그거야 가능한데 이미 이것도 방송 중….”

“안 돼! 여러분! 오해에요! 오해라고요! 저 진짜 김태현 존경해요!”

-케인! 네 진심을 전해! 사장님 저한테 간섭하지 마세요라고!

-케인 방출당하면 팀 KL 면접 열리냐??? 저 진짜 개처럼 구르고 짖을 수도 있습니다!

-전 집안일도 할 수 있어요! 제발 들여만 보내주세요!

* * *

“태현 님. 방송 있잖아요.”

“왜? 케인이 뭐 이상한 소리라도 해?”

이미 케인 쪽 찍는다는 걸 들어서 태현도 알고 있었다.

정수혁도 최상윤도 그쪽으로 갔으니 그렇게 이상한 소리가 나올 리 없을 텐데?

“케인 씨가 욕을 좀 먹는데요… 개뻔뻔한 새끼라고….”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이 자식 뭔 소리 하고 다니는 거야!?

“뭘 했길래?!”

“글, 글쎄요. 저도 자세히는 안 봤는데 푸념 좀 한 것 같아요.”

“케인이 투덜대는 게 뭐 어제오늘 일인가. 그런 걸로 욕할 필요 없는데….”

태현은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팀 KL 방송 켜서 해명이나 해주자.”

“네? 진짜요?”

“응. 어차피 프리카 대륙이라 퀘스트 방해받을 일도 적은 데다가 받아도 크게 상관없고… 이런 건 미리 말해주는 게 낫지. 내버려 두면 케인 또 구석에 박혀서 밖에 안 나가려고 한다.”

“…….”

너무 그럴듯해!

태현은 팀 KL 방송을 켰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10초도 되지 않아 미친 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KL 팬들 집합!

-아차. 2등.

-뭐임?? 도대체 뭐임???

-저쪽에서는 팀 KL 선수들 인터뷰하고, 여기서는 김태현이 직접 방송 켜고. 오늘 무슨 날임???

-지구 멸망하나? 헉. 판온 서버 종료함??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태현이 직접 방송에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태현은 그냥 켜놓고 자기 할 일 하는 사람이지 이렇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여기는 지금 프리카 대륙이고….”

-!!!!!

-지, 지금 김태현이 말 걸어주고 있나?

-합성 아냐? 혹시 협박당하고 있다는 건가?

-태현 님 협박당하고 있으면 검을 흔들어주세요!

-야, 그런데 왜 프리카 대륙이냐? 프리카 대륙에 남은 거 있나? 사디크 교단 다 망하지 않음?

-프리카 대륙에 뭐 있나 본데??

-거기 뭐 있나? 해안가 쪽에 영지 좀 생긴 거 말고….

-거기 너무 짜증 나는 곳임. 차라리 마계를 가고 말지.

사람들이 떠드는 동안 설명하려던 태현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핵심만 말하면 됐지.

“그냥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지금 방송 킨 건 케인이 이상한 소리를 해서 욕먹고 있다고 해서 킨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사장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케인이 저렇게 말하는 건 다 서로 알고 장난치는 겁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 동

-케인 보고 있냐?? 솔직히 청소는 네가 좀 하자!

-김태현이 원래 영상만 켜놓지 직접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진짜 미친 듯이 챙겨준다. 미친 듯이 챙겨줘.

-혹시 케인이 김태현 친동생임?

-뭐래. 케인은 외국인임.

-??? 케인 한국인이잖아?

-뭐? 케인 한국인이었어??

-여러분 혹시 아십니까? 김태현 선수는 사실 중국인….

-미친놈 아냐 이거?

-그럼 타협해서 일본인으로 할래?

-제발 양심 좀….

-선수 없으니까 진짜 별짓을 다 하네!

팀 KL의 팬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중국 팀들을 갈아엎었는데도 중국에도 팬이 많을 정도!

오죽하면 ‘김태현 중국인 아님?’이라면서 퍼뜨리고 다니는 놈들이 있을까.

심지어 다른 나라 팬들도 그걸 보고 슬쩍 따라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