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25화
태현이야 안으로 들어가서 아다만티움도 챙기고 사악한 드워프가 만든 유산도 챙길 시꺼먼 생각이었지만, 드워프 광부들은 기겁해서 말리고 들었다.
“안 됩니다, 폐하!”
“드워프가 작정하고 만든 함정은 정말로 위험합니다! 베켈프 그놈은 안 그래도 성질이 사악하고 비열한 놈이었는데!”
“너 아까까지는 베켈프 씨 좋은 드워프였다고 하지 않았냐?”
“아, 원래 죽은 드워프는 좋게 말해주는 게 예의야 인마!”
드워프 광부들은 서로 아웅다웅했지만 의견 하나는 통일되어 있었다.
-사악한 드워프가 수작 부린 곳에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다!
심지어 지하 연합 고블린들도 난색을 표할 정도였다.
“폐하. 고블린들의 옛말에 ‘드워프 놈들과는 말도 섞지 마라’ …아니, 이게 아니라. 뭐였지?”
“드워프 놈들을 욕할 때는 수염을 욕해라?”
“아! 드워프 놈들이 먼저 잡은 요새에는 들어가지 말라, 였다!”
“그거네! 그거!”
“폐하. 이렇듯 드워프들이 준비한 곳은 위험합니다!”
고블린 레인저는 각종 함정과 잔수작에 능통한 이들이었다. 태현이 괜히 지하 연합에서 데리고 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기겁을 할 줄이야!
“고블린이 되어서 드워프들 함정에 겁먹으면 좀 그렇지 않나?”
태현의 말에 고블린들은 움찔했지만, 바로 시선을 피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콜록, 콜록. 딱히 드워프들한테 겁을 먹은 게 아니라… 너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건 좀 위험하니까….”
“사실 저희는 지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
사이 나쁜 두 종족이 사이좋게 말리자 태현도 살짝 고민이 될 정도였다.
그렇게 위험한가?
그러나 이다비는 단호하게 말했다.
“들어가죠. 위험하다고 해도 태현 님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선배! 언제부터 선배가 그런 걸 신경 썼다고 그러세요! 안 어울려요!”
“…지수가 방금 나 욕한 거 아니지?”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일행 중에서 정수혁이나 최상윤이 중립이나 신중한 편에 속했다면, 이다비나 유지수는 매우 적극적인 편에 속했다.
공격적 플레이어 그 자체!
이다비야 원래 파워 워리어 운영하던 사람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유지수는 예전에는 분명 되게 소심했던 것 같았는데….
‘역시 판온이 사람을 망치나?’
[카르바노그가 누구 때문에 옮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앗. 이세연인가?’
[…….]
“하긴 맞는 말이야.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 함정 좀 있다고 해도 고대 거인 수준은 아니겠지.”
마계를 갔다 오고, 고대 거인한테도 쫓기고 나니 상당히 관대해진 태현이었다.
그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음. 아니다. 케인 없으니 혼자 가야겠군.”
평소처럼 케인만 데리고 가려다가 케인이 없다는 걸 깨달은 태현이었다.
“선배. 저 같이 갈 수 있는데요.”
“아니. 너도 HP 높은 편이 아니라서 좀 그래.”
공교롭게도 케인을 제외하면 나머지 팀원들이 전부 다 HP가 낮은 편이었다.
원거리 딜러인 유지수뿐만 아니라 정수혁도 마법사였고 최상윤도 유리몸 딜러였고….
그나마 상인 출신이던 이다비가 HP가 더 높은 수준!
이렇게 되니 태현이 미공개 던전이나 지형을 도전할 때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한 명이라도 죽으면 치명적이었으니까.
“괜찮아. 소환수들 있으니까.”
-?!?!?
-주인이여!?
“하하. 너희를 믿는다는 거잖니.”
-그… 그런 거죠? 믿고 있었습니다.
-…주인이여….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 * *
쿵!
‘시작부터 화려하군.’
들어오자마자 옆에서 날아오는 굵은 강철 화살!
푸르스름하게 반짝이는 게 독이 발려 있는 게 분명했다.
-주인님! 피하십시오!
“흑흑아. 말할 시간에 막아주면 안 되겠니?”
판온의 던전은 정말 종류가 다양해서, 꼭 몬스터만 나오는 던전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몬스터가 하나도 없고 함정만 있는 던전도 있을 정도!
그런 던전은 아예 함정 전문을 파는 플레이어가 공략에 나서야 했다. 괜히 HP만 믿고 까불다가는 바로 로그아웃당하는 수가 있었다.
그런 함정 특화 플레이어가 태현을 보면 ‘뭐 저런 게 다 있냐?’ 하며 어이없어 할 것이다.
왜냐하면….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태현은 피하지도 않았다.
저런 공격에 일일이 반응하다가는 정말 위험한 함정에 반응하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까.
무지막지한 행운 스탯을 기반으로 회피력을 가진 태현은 이런 함정 던전 돌파에 최적화된 플레이어였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공략’을 한다면 태현은 ‘돌파’를 했다.
차원이 다른 속도!
‘그래도 위험한 게 없지는 않지.’
태현의 행운 스탯은 분명 강력한 무기였지만,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바닥을 주의한다.’
바닥 통째로 빠뜨리는 함정. 이런 건 걸리면 골치가 아팠다. 회피고 뭐고 없었으니까.
회피 불가능한 저주나 그런 게 걸려 있는 무기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건 숫자도 적고, 카르바노그가 미리 경고해 줄 수 있지.’
[카르바노그가 자기만 믿으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런 특이한 마법은 카르바노그가 미리 눈치채고 경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콰콰콰쾅!
쿠르르릉-
파파파팍-
[회피에 성공…]
[회피에 성공…]
[행운이 오릅니다!]
“아오. 작작 좀 하지.”
안 올라도 되는 행운 스탯이 또 오르잖아!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창. 위아래에서 떨어지는 각종 바윗덩어리들. 심지어 마법 안개까지 쏘아져 나왔다.
베켈프 이놈…!
죽었으니 망정이지 안 죽었으면 죽였을 것!
함정, 함정, 함정.
몬스터는 없이 함정만 나오는 것도 고역이었다. 아무리 데미지를 안 받는다는 걸 알고 있어도 앞에서 함정만 계속 보는 것도 피로가 쌓이는 것이다.
“…솔직히 크게 걱정을 안 하긴 했지만, 이쯤 되면 뭐라도 좀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카르바노그가 불길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카르바노그의 말이 무색하게 정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길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빙글빙글 돌고 나서야 태현은 저 멀리 있는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많은 함정을 데미지 하나 없이 돌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행운이 오릅니다.]
‘야!!’
[칭호 <함정의 달인>을 얻었습니다.]
칭호: 함정의 달인
수많은 함정을 몸으로 겪어보며 이겨냈습니다. 함정 관련해서 보너스를 받습니다.
행운이 5 영구적으로 상승.
“…….”
그만 올려 좀…!
* * *
끼기기기긱-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힘 스탯이 부족합니다.]
[……]
[어떻게 할 거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응? 부술 건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망치를 휘두르는 태현!
콰콰콰쾅!
두꺼운 철문이 그대로 아작이 났다. 그러자 안에서 비명이 나왔다.
“뭐, 뭐하는 놈이냐!”
“?”
안에서 드워프 목소리가 들리자 태현은 당황했다.
먼저 온 놈이 있나?
아니… 저 통로를 뚫고?
[드워프 베켈프를 발견했습니다!]
[<베켈프가 숨겨놓은 아다만티움>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명성이…]
[……]
“…….”
-…….
태현과 소환수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베켈프란 놈이 살아 있었다고?
“골골아.”
-예! 주인님.
“무기 하나 꺼내 봐라. 바로 안 죽을 만한 걸로.”
“잠, 잠, 잠깐! 이 무식하고 폭력적인 인간 놈이!”
태현이 살벌하게 말하자 베켈프는 상황 파악을 못하고 외쳤다.
“여기는 갈카드 드워프 왕국의 영역이다! 감히 너 같은 인간 놈이 와서 설칠 곳이 아니란 말이다!”
-주인님. 이건 어떻습니까?
“그건 너무 세서 한 번에 죽을 수도 있잖아. 다른 무기 없냐?”
-주인님께서 워낙 딜이 높으셔서….
베켈프가 외치거나 말거나 태현은 소환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모습이 더 무서웠다.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베켈프가 협박으로 겁에 질립니다!!]
“듣, 듣고 있냐! 나는 갈카드 왕국의 장로 자리에 있고 날 따르는 드워프 전사들만 수십이라 날 건드리면 후환이….”
“이 친구 없고 가족도 없는 드워프 놈이 자꾸 거짓말이야!”
빡!
태현은 옆에 있던 나무몽둥이를 들어 베켈프를 후려갈겼다.
-주인님 나이스 샷이십니다!
같이 함정을 돌파하느라 조마조마하고 있던 소환수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너 친구 없고 가족 없고 유언장까지 조작한 거 이미 다 알고 있다 이 자식아!”
“그… 그걸 어떻게…!?”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베켈프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태현이 몽둥이를 다시 들어 올리자 소환수들이 급히 말렸다.
-주인님! 한 대 더 패시면 그대로 죽을지도 모릅니다! 진정하셔야 합니다!
[릴렉스! 릴렉스! 후! 하! 후! 하! 하며 숨을 쉬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카르바노그. 그게 더 화나거든.’
태현은 몽둥이를 내려놓고 말했다.
“베켈프. 갈카드 왕국의 이름으로 널 체포한다. 죄를 덜고 싶다면 당장 숨겨놓은 아다만티움의 위치와 무기의 위치를 나한테 부는 게 좋을 것이다!”
뒤의 말은 사심 100%인 말이었다.
베켈프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내가 잡혀갈 것 같으냐 이방인 놈…!”
“뭐라도 해보려고? 네 함정은 나한테 안 통할 텐데.”
태현은 의아해했다. 베켈프가 아직도 숨긴 수단이 있나?
[별 이상한 기색 없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에잇! 이거나 받아라!”
베켈프는 품속에서 작은 조각상을 꺼내더니 태현을 향해 휘둘렀다.
[<잊혀진 아키서스 조각상>이 <아키서스의 저주>를 내립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입니다. <아키서스의 저주>가 통하지 않습니다.]
“아키서스시여! 저 괘씸한 놈한테 벌을 주십시오!”
“…….”
-…….
[…….]
태현, 소환수, 카르바노그 모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이름!
베켈프는 전원 침묵을 다른 뜻으로 오해했는지 크게 웃기 시작했다.
“으핫핫핫! 역시 아키서스 님의 저주는 강력하기 그지없도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무릎을 꿇어라! 그러지 않으면 미친 듯한 불운이 너희를 덮치리라!”
“아, 쪽팔리니까 작작 해 자식아.”
태현은 창피함에 얼굴을 가리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아키서스 믿는 놈들은 진짜 다 왜 이러냐??’
카르바노그도 태현이 불쌍했는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퍽!
“어, 어째서!?”
“어째서긴 뭘 어째서야. 내가 그 아키서스 교단 교황이다.”
“…!?!?!”
베켈프는 더더욱 놀랐다.
“내… 내 기도를 들어주러 온 건가?”
-헛소리 좀 그만해라!
용용이가 듣기 싫었는지 날아와서 날개로 후려갈겼다. 베켈프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우리 같은 골드 드래곤이 맨날 오해받지 않나! 아키서스한테 속았다고!
용용이는 울분 섞인 목소리로 베켈프를 팼다.
아키서스 교단을 믿는 놈들이 좀 그럴듯하고 멀쩡했다면 골드 드래곤들도 ‘아 뭔가 생각이 있어서 계약했나 보다’ 같은 시선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계약한 놈들이 다 이런 놈들이니 골드 드래곤들도 ‘불쌍하게도 아키서스한테 속아서….’ 같은 시선을 받는 것 아닌가!
“그만해라. 용용아. 후….”
업보 그 자체!
‘데리고 갔다가 드워프들한테 괜한 오해 받는 거 아냐?’
왕국을 망치려고 한 놈이 아키서스 믿고 있었다면 별로 좋은 이미지는 아닐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말하지 말고 조용히 데리고 가자고 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카르바노그.’
때로는 숨겨야 할 진실이 있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