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23화 (1,022/1,826)

§ 나는 될놈이다 1023화

베이징 파이터즈!

태현과는 몇 번 악연이 있는(사실 태현이 일방적으로 남의 던전에 쳐들어간 거지만) 게임단이었다.

중국에서는 꽤 오래된 축에 들어가는 게임단이었다. 괜히 팬들이 ‘우리는 근본이 있다!’라고 하는 게 아닐 정도로.

하지만 오래된 팀이라고 무조건 잘나가지는 않는 법. 베이징 파이터즈는 그 역사에 비해 성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매번 ‘팬 여러분들 죄송합니다! 다음 해는 다를 겁니다!’, ‘팬 여러분들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 해는 정말 다를 겁니다!’를 하는 팀!

그나마 판온에서는 팬들이 나름 기대를 했었지만….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 팬에게 욕설과 공격… 이래도 괜찮은가?

-베이징 파이터즈, 혼자서 쳐들어온 김태현한테 보인 추태! 1군 선수들의 추락!

선수들이 하라는 연습은 안 하고 사고를 일으키고, 판온에서는 기껏 만든 연습장을 탈탈 털리기도 하고….

팬들이 뒷목을 잡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세상 일은 모르는 법.

최근 베이징 파이터즈는 팬들도 놀라울 정도로 급격하게 달라졌다.

모기업이 바뀌고, 사장이 바뀌고, 단장이 바뀌고, 감독도 바뀌고, 거기에 맞춰 새 선수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정말 이름 빼고는 다 바뀐 수준!

너무 놀라운 변화였지만, 팬들에게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팬들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성적!

얼마나 잘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게 팬이었다.

그리고 베이징 파이터즈는 그 기대를 성공적으로 만족시켰다.

-베이징 파이터즈, 르페브 선수 영입… 딜러진 대폭 보강!

-<라니에스> 길드의 로드리게스 선수 베이징 파이터즈 입단… 베이징 파이터즈, 국적 가리지 않는 광폭 영입! 다크호스로 부상하나?

중국 게임단은 가능하면 중국인 선수를 많이 뽑는 게 국룰이었다.

꼭 그래야 한다는 법칙은 없었지만 정부, 투자자, 팬들이 다 그러기를 은근히 바라며 압박을 주는 것이다. 이런 압박을 무시할 수 있는 팀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베이징 파이터즈는 그런 걸 무시하고 닥치는 대로 선수들을 사 왔다.

거기에 감독까지 외국인으로 선발!

파격 그 자체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베이징 파이터즈는 판온 리그 시작 전부터 무시무시한 기세를 보여주었다.

친선 경기나 연습 경기에서 보여준 저력을 그대로 이끌고 가 리그에서도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왜 중국인 선수를 안 뽑냐?’며 불만을 가지던 팬들도 마음을 돌릴 정도의 활약!

그러나 하필이면 같은 리그, 같은 시기에 더 미친 팀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팀 KL이었다.

베이징 파이터즈가 아무리 따라해도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미친 피지컬의 팀!

위에서는 ‘팀 KL은 시설도 없는 열악한 아마추어 소규모 팀인데 이런 팀한테 지는 게 말이 되냐’고 계속 쪼아댔지만 감독은 신념이 있었다.

-지금 주의해야 할 상대는 유성 게임단이나 뉴욕 라이온즈 같은 팀들입니다. 그런 상위권 팀들한테 패배하면 승점 경쟁에서 너무 치명적입니다.

-팀 KL은?? 아니, 다음 경기가 팀 KL인데 무슨 소리를 하나?

-분석팀 보고서를 올렸지만, 지금 팀 KL은 약점이 보이지 않는 팀입니다. 괜한 무리를 하는 것보다는 다른 경기에 더 집중하는 게….

-그걸 말이라고 하나!? 한 경기 한 경기를 집중해야지 그렇게 던져도 되는 건가?

-경기를 던진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우선도를 매겨서 전략을 짠다는 겁니다. 팀 KL의 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할 테지만, 약점이 보이지 않고 저희가 열세인 경기니 최대한 수비적으로 역습을 노리는 정도로 준비하고, 남은 시간에 다른 팀들의 전략을 카운터 칠 준비를….

-지지 않을 생각을 해야지 벌써부터 이렇게 패배적인 생각을 하니 팀이 잘 돌아가겠나!

감독은 울컥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단장이나 사장에게 덤벼서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었으니까.

-사장님께서 경기를 매번 챙겨보시는데, 이번에 새로운 전략을 추천하시더군.

-예???

감독은 불길한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꼈다.

현장에서 안 뛰는 양반이 전략 추천해서 잘 돌아가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

-여기, <알래스카 폴라베어즈>란 팀이 팀 KL을 몰아붙였다며? 약팀인데도 몰아붙인 걸 보고 감탄하시더군. 보라고. 다른 팀 경기 시청률의 2배잖나. 화제도 독점했고. 이… <5인 탱커> 전술이 꽤 쓸 만한 거 같은데. 다음에는 이걸로 가보지? 우리 선수들이 여기 선수들보다 훨씬 비싸니까 우리는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어?

단순무식한 계산법!

쟤네가 쓴 전술을 우리가 쓰면, 우리는 더 비싼 선수들이니 더 잘 되겠지?

물론 감독 입장에서는 기겁할 소리였다.

-안 됩니다! 5인 탱커는 아무 팀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쉬워 보이지만 꾸준히 저기에 맞춰서 준비한 탱커 다섯 명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힐하고 버프 주고 시너지를 못 주면 김태현의 딜에 그대로 녹아버릴 겁니다! 폴라베어즈는 그렇게 했는데도 결국 2라부터는 녹아내렸는데….

-아, 그렇게 못한다 못한다 소리만 할 거면 감독은 왜 하나! 시끄럽네. 그만한 연봉을 주면 저 정도는 해내야지! 다음 경기는 반드시 잡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감독은 끝까지 버티려 했다. 간신히 선수들 이곳저곳에서 모아와 합 맞춰놓고 전술을 가르쳤다.

이제 좀 굴러가는데….

갑자기 새 탱커 다섯 명 뽑아서 새 전술 하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멸이다!

‘그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정말 눈치가 없군. 자네가 월급 주나? 사장님 명령이야. 설사 결과가 안 좋게 나오더라도 자네한테 책임을 묻겠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만 따지게.

단장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차고 가버렸다. 감독은 말문이 막혀 할 말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진짜… 진짜 탱커 다섯 명 뽑아서 던지라고?

* * *

“아오, 김태현은 대체 왜… 이런 곳에 있어서…!”

마음은 급해 죽겠는데 귓속말은 받지 않자, 우드스탁 길마는 직접 움직였다.

삼고초려!

태현을 직접 찾아가서 설득하려는 정성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정성을 보여주면 그놈도 좀 흔들리지 않을까?”

“글… 글쎄요.”

“이럴 때는 그럴 거라고 말해야지 이 자식아! 초치냐!”

“아, 아니. 정말 안 그럴 거 같은 걸 어떡합니까!”

자이언 산맥은 마계나 프로즈란드만큼 악명 높은 곳이었다. 들어가는 우드스탁 길드도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태현 방송 안 켰냐?”

“안 켰는데요. 어… 어?”

“왜?”

“뉴욕 라이온즈 쪽 팬들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는데, 후보 선수들 몇이 자이언 산맥에 있나 봐요.”

“…야.”

“예?”

“내가 김태현 찾으랬지 뉴욕 라이온즈 놈들 찾으랬냐!?”

“아, 아니… 그게… 김태현이 거기 있다는 소문이….”

“!!”

“길마님! 와이번! 와이번 나타났어요!”

“전부 망토 덮고 엎드려서 은신!”

* * *

“고대 거인을 다시 만날 것 같지는 않지만 좀 신경이 쓰이긴 해.”

태현의 말에 일행 모두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고대 거인은 공포 그 자체였다.

드워프들이 왜 저렇게 벌벌 떠는지 이해가 갈 정도!

“그래도 우리 퀘스트는 달라질 거 없어. 어차피 처음 계획은 지하로 돌 생각이었으니까. 지하로 돌면서 아다만티움 찾아내고 드워프들 설득한 다음 퀘스트 깨자.”

다행히 태현이 고대 거인을 성공적으로 끌어내 준 덕분에, 갈카드 드워프 부족들은 매우 고마워해하고 있었다.

“처음에 고블린과 거인과 악마를 데리고 온 미친놈이라고 생각한 걸 용서해 주게!”

“나는 그쪽이 우리 왕국을 불태울 거라고 생각했어!”

나이 많은 드워프 장로들도 와서 사과할 정도의 고마움!

[카르바노그가 왠지 사과를 받았는데도 기분이 나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세연을 만났다고?”

“어. 뉴욕 라이온즈 애들하고 같이 퀘스트 하고 있던데?”

“그냥 뉴욕 라이온즈를 밀어버리… 아니. 경기 많이 남아서 별 의미 없겠다.”

바로 튀어나오는 본심!

선수들 생각은 다 똑같았다.

상대 팀 주전 선수가 우리 경기에만 좀 안 나와 줬으면 좋겠어!

“걔는 고대 거인 잡아야 할 거 같아서 고민일 거야.”

“고… 고대 거인을 잡으려고 한다고!?”

“포기한다고 말은 했지만….”

태현은 이세연을 잘 알았다.

지금 잡기 힘든 보스 몬스터가 나오면 남들은 ‘더 강해지고 나서 잡아야겠다’ 하고 물러서지만, 태현이나 이세연은 ‘아니야!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하면서 매달리는 타입!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었다.

“아. 그리고 괜찮은 던전 하나 발견했어. 스킬 레벨 올리기 좋아 보이더라. 나중에 데리고 가줄게.”

“그래? 어떤 던전이길래.”

“괜찮아. 이세연이랑 같이 깨는데 스킬 레벨 좋더라.”

태현의 말에 일행들은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던전인지는 아직 안 가봐서 전혀 모르는 이들!

[<8번 갱도 광산>에서 다시 작업이 진행됩니다!]

[갈카드 드워프 광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청할 경우 그들이 나서서 길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베켈프가 일하던 8번 갱도 광산에 다시 돌아온 일행.

태현은 이번에야말로 아다만티움을 꼭 찾아내겠다고 결심을 다졌다.

고대 거인한테 쫓겼으니 그 정도는 받아야 보상이 되는 법!

그런데….

광산이 넓어도 너무 넓었다.

-신의 예지.

<신의 예지>를 써도 길이 하나만 나오지 않고 몇 갈래로 나왔다. 아마 목표로 가는 길이 그만큼 많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걸 다 파고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보통 이런 길 만드는 건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곡괭이질이나 삽질에 좀 자신 있는 사람 모아서 같이 하는 퀘스트지!

하지만 태현이 누군가.

“광부들 집합!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플레이어의 도움이 없어도 NPC들로 대체가 가능했다.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의 노예가 없다는 점에 아쉬워합니다.]

‘하긴. 케인은 정말… 삽질에 재능이 있어.’

케인이 땅에 삽을 넣고 파내는 동작에는 특유의 리듬이 있었다.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재능!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케인은 매우 매우 싫어했지만….

[최고급 전술 스킬로 인해 광부들의 효율이 폭발적으로 올라갑니다!]

[채굴 스킬이 오릅니다.]

[힘 스탯이 오릅니다.]

[……]

* * *

“케… 케인.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한데?”

“아니… 3조는… 있잖아! 알면서 왜 그래!”

“???”

케인이 시치미를 뗀다고 생각한 개척단(케인이 그사이 이름을 지었다) 플레이어들은 케인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알면서 왜 숨기는 거야!

“뭐가 있다는 건데? 노동과 보람?”

“아니… 그런 거 말고! 에이! 네가 3조를 맡았을 때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 아냐! 숨겨진 꿀 같은 거!”

케인을 따라 전부 다 3조로 들어온 개척단 플레이어들.

그런데 하는 건 정말 삽질과 곡괭이질과 톱질밖에 없었다.

근처의 돌 들어내고, 얼어붙은 땅 파내서 돌 채운 다음 도로 깔고, 나무 잘라서 마을 근처에 벽 세우고….

공사, 공사, 공사!

건축가 직업 아니면 할 필요가 없는 퀘스트였다.

이게 판타지 온라인이야 두덕리 온라인이야??

“어? 아니, 내가 솔선수범해야 너희들이 불만을 안 가질 테니까 3조 한 건데.”

“…….”

“…….”

케인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삽질을 하고 있었다는 건가?

“죽어!!!”

“뭐, 뭐!? 아니… 지금 감동해야지!”

“감동은 무슨!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미친놈아! 오해하게!”

“죽어! 죽어!”

저주도 무시하고 돌멩이를 집어 던지는 플레이어들!

데미지는 거의 안 들어갔지만, 마음이 왠지 모르게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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