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22화 (1,021/1,826)

§ 나는 될놈이다 1022화

베알 성!

한때는 오스턴 왕국 2왕자의 성이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지나간 일이다.

지금은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가 이 성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국경지대에 있는 데다가, 성 근처에서 나오는 광산과 던전도 수입이 좋았고, 점령하면 서로에게 공격을 시도하기도 좋았다.

서로 포기할 수 없는 성!

덕분에 베알 성은 일종의 중립지대가 되어 있었다. 양쪽이 계속 물러나질 않으니 어느 한쪽도 완전히 점령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혼란스러우면 자연스럽게 악명 높은 NPC들이 모이게 마련.

“베알 성에 있다?”

“예! 거기에 소환문이 열렸습니다!”

“세계수가 아니었군….”

하긴 세계수로 오면 태현의 눈에 들켰겠지!

거기 앞에 대놓고 신전을 박아놨는데….

“그런데 왜 오스턴 왕국이지? 이유라도 있나?”

태현을 직접 공격하려면 아탈리 왕국이나 더 낫고, 귀족들을 매혹하려면 에랑스 왕국이 낫지 않나?

“글… 글쎄요…? 악마 공작님께서 준비하신 거라 저 같은 하찮은 악마는….”

“흠.”

태현은 몰랐다.

태현이 악마 공작들을 속이고 다니면서 ‘난 오스턴 왕국에 있다! 어디 한번 와봐라!’ 같은 말을 하고 다녀서라는 것을!

아다드 같은 악마 공작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오스턴 왕국으로 나갈 출구를 만든 것이다.

알아내야 할 거 대충 다 알아낸 태현은 악마를 슥삭하려고 했다. 그러자 이세연이 뒤에서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잡으려고?

-어? 그러면 잡아야지. 그냥 놔주라고?

-악마를 산 채로 붙잡는 건 희귀한 기회니까 더 활용해야 하지 않아?

-어차피 이미 붙잡은 악마들도 많은데?

-…!!!

그랬지!

생각해 보니 태현은 악마를 포장해서 데리고 다니는 미친 플레이어!

“설… 설마….”

악마가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차. 들켰나?!’

이세연은 아차 싶었다. 궁지에 몰린 악마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저를 붙잡아서 노예로 부리실 생각이십니까? 제발 그러지 말고 깔끔하게 마계로 보내주십시오! 으흑흑! 집에 가족이 있단 말입니다!”

“…….”

상상을 초월하는 반응에 이세연은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악마는 보통 마계로 역소환되는 걸 매우 두려워했다. 한 번 역소환되면 다시 나오기도 힘들뿐더러 힘을 크게 잃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악마는 그냥 역소환을 시켜달라고 빌고 있다!

대체 마계에 소문이 어떻게 났길래…!

“…그, 그래.”

태현도 민망했는지 단칼에 악마를 역소환해 버렸다.

“마저 깰까?”

“…그러자.”

이세연마저 힘을 되찾은 이상 더 이상 미적거릴 이유가 없었다.

언데드와 골렘을 소환해서 숫자로 밀어붙이며, 둘은 빠르게 던전을 돌파해 나갔다.

‘네크로맨서가 편하긴 편하군.’

일인군단이란 별명이 괜히 붙는 게 아니었다. 이세연 정도 되는 네크로맨서는 이론상 거의 만능이었다.

탱킹도 되고 딜링도 되고 힐도 자기 마법으로 치유 가능하고….

소리 없이 덤벼든다고 해도 아예 사방이 꽉 차 있으면 기습 자체가 불가능했다.

물량공세의 장점!

-주인님. 지금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본 것 같습니다만….

‘안, 안 부러워했거든. 나도 숫자 동원하려면 많이 나오거든.’

-주인님…!

결국 보스 몬스터까지 깔끔하게 클리어!

소리 없이 덤비면서 까다롭게 굴었지만 두 랭커가 합을 맞춰 딜을 넣으니 그대로 녹아내렸다.

“으으… 되게 오래 있었던 기분이야.”

이세연은 동굴 입구 밖에서 내리쬐는 밝은 빛에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렇게 오래 공략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오래 걸린 기분!

‘거인은 없겠지?’

다행히 거인은 없었다. 아예 다른 쪽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서로 고생 많았어. 그러면… 아. 거인 잡으러 왔다고 했지? 파이팅!”

“…….”

저, 저, 저…!

동맹을 맺었는데도 여전한 사람을 빡치게 만드는 재능!

“지금 같이 쫓겨놓고 그 소리가 나와!?”

“난 또 포기 안 할 줄 알았지.”

태현은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인 잡느라 시간 낭비 좀 더 해줬으면 좋겠는데!

같은 느낌이 팍팍 났다.

“안 잡을 거거든? 돌아가서 다른 퀘스트 할 거야. 그에 비해 너는….”

이세연은 태현을 쳐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여기 원하는 게 있어서 온 걸 테니까 바로 빠지진 못하겠네?”

이번에는 태현이 아픈 곳을 찔렸다.

확실히 이세연은 퀘스트 포기하고 빠지면 그만이지만 태현은 아직 할 게 더 많이 남았던 것이다.

“이번 경우가 예외적인 거였고, 원래는 거인 만날 일 없어. 지하로 다닐 거라고.”

‘쳇.’

‘칫.’

서로 어떻게든 은근하게 견제해 보려는 수작!

자존심 강한 두 천재들답게 한 수 한 수가 치열했다.

[카르바노그가 보기에는 정말 하찮은 수작 같…]

“그러면 퀘스트 고생해.”

“너야말로. 이제 곧 경기일 텐데 준비는 다 했을지 모르겠네.”

“나야 언제나 준비되어 있지.”

“나도 준비되어 있….”

“난 예전부터 준비했….”

[아 좀 쓸데없는 견제 그만하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 * *

<알래스카 폴라베어즈>는 판온 1부 리그의 20팀 중 중하위팀에 속했다.

그렇게 인기도 많지 않았다. 팬들은 대부분 ‘북극곰이 귀여워요’ 같은 말을 하며 좋아해 줬지만, 전 세계적인 인기가 있으려면 역시 실력이 있거나, 확실한 이미지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 팀 KL을 상대하는 이 팀이 생각지도 못한 이변을 일으켰다.

이긴 게 아니었다.

만약 이겼다면 모든 팬들이 뒤집어졌을 것이다. <알래스카 폴라베어즈>는 졌다.

졌지만….

1라운드를 무승부 따내고 2라운드, 3라운드까지 간 것이다!

다른 팀 상대로라면 이건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싸움은 언제나 열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이었으니까.

유성 게임단도 한 라운드 정도는 내줄 때가 있었고, 지금 상위권에 위치한 다른 팀들도 1패 정도는 겪거나 겪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판온은 워낙 무궁무진한 게임이라 생각지도 못한 전략이 한 번 튀어나오면 그대로 말려 나가는 것이다.

팀원들의 능력들도 중요하지만 전술, 전략도 그만큼 중요한 게임!

그러나 상대가 팀 KL이라면?

그러면 이야기가 달랐다.

리그 시작하고 나서 전술 제외하고 모든 경기를 피지컬로 압도해 버린 팀 KL!

다른 팀 팬들은 ‘김태현 제발 다른 게임 리그로 이적해라’, ‘단장님 제발 똥쓰레기 선수들 데리고 있지 말고 팔아서 김태현 좀 사오세요’ 같은 말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대도 않고 있던 <알래스카 폴라베어즈>가 1라운드에서 무승부를 따내고 2라운드, 3라운드까지 갔다!

졌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팀 KL을 상대할 때 희망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충격. <알래스카 폴라베어즈>는 사실 강팀이었다…!

-<알래스카 폴라베어즈> 좀 강해진 거 같지 않음?? 이제 <알래스카 폴라베어즈>의 시대가 온 거 같지 않음??

-북극곰 놈들이 미쳤냐?? 야 너희 졌어! 졌다고! 1무 2패로 졌다니까?? 승점 0점이야!

-김태현 상대로 1무 2패면 솔직히 타팀 상대로 3승이지. 승점 9점 줘라.

-5승 인정은 해줘야 한다. 15점이네. 헉. 1위 아님?

-별 또라이 같….

-앗. 베이징 파이터즈 팬인가 보다.

-ㅋㅋㅋㅋ 베이징 파이터즈 다음 경기 팀 KLㅋㅋㅋㅋ 순위권 싸움에서 발목 묶여 버리고 ㅋㅋㅋ

벌써부터 전승우승 같은 말이 나오는 팀 KL이었지만, 팀원들은 전혀 부담을 갖지 않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이 알았다면 배가 아파서 돌아버렸을 것이다.

오히려 부담을 가지는 건 그 밑의 상위권 팀들!

위에서는 ‘이대로 팀 KL한테 1위를 내줄 거냐!?’ 같은 갈굼을 받고, 팬들은 ‘2위는 해야죠?’, ‘그래도 라이벌 팀은 이겨야죠?’ 같은 응원을 보내고….

1위를 노려야 한다는 욕심과, 지금 순위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선수들을 꽁꽁 묶고 있었다.

한 판 한 판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한창 상위권 경쟁을 하고 있는 팀들에게 팀 KL은 공포 그 자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1패가 예약될 거 같은 공포!

1승이면 승점 3점을 받고, 무승부로 끝나도 1점을 받는데, 지면 아무 점수가 없었다.

치열한 경쟁에서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개소리하지 마라. 베이징 파이터즈 같은 근본 있는 팀은 팀 KL과는 다르다.

-근 본!

-그… 그런 게 있었나?

-오래되긴 했….

-오래되기만 하면 근본이면 유성 게임단은 근본 그 자체 아니냐?

-여기 앉아봐라. 할아버지가 쩌는 이야기를 들려주마. 유성 게임단이….

-아 저리 가요 좀!

-근본 있는 베이징 파이터즈는 전략 안 바꾸고 평소 구성 그대로 나오시겠져?? 바꾸면 진짜 근본 없는 놈들이다.

-맞음. 강팀은 자기 전략 그렇게 안 바꿔야 강팀이지. 팀 KL 봐라. 진짜 전략이 바뀌지 않음. 이게 챔피언이지!

-그건 그냥 전략이 없는 것 같….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은 차마 ‘우린 전략 안 바꾼다!’라고 대답하지는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번에 <알래스카 폴라베어즈>가 보여준 전략이… 너무 그럴듯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베이징 파이터즈>도 이 전략을 따라할 것 같다!

아니, 따라했으면 좋겠다! 1패보다는 1무가 차라리 나으니까!

<알래스카 폴라베어즈>의 전략은 간단하면서도 놀라웠다. 팬들도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저걸 할 줄이야!’라고 놀랄 정도로.

-우리는 승리를 노리지 않는다. 무승부를 노린다!

판온 리그에서 무승부를 따내려면 3라운드 모두 무승부가 나와야 했다.

보통 노린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었다.

경기마다 규칙이 다른 데다가 3라운드 모두 제한 시간을 끝까지 채워서 버텨야 하는 것!

게임단들도 체면이 있지 설마 저런 양심 없는 전략을 고르지는 못했는데, <알래스카 폴라베어즈>는 그걸 고른 것이다.

그 결과 <알래스카 폴라베어즈>는 다섯 명의 탱커가 나왔다.

전원 탱커 조합!

힐은 탱커들에게 HP 회복 옵션 달린 장비와, 각자 최대한 HP 회복 스킬을 익혀오는 것으로 대체했다.

상대하는 태현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당황했을 정도의 조합이었다.

-나 많이 맞아서 위험하다! 대신 막아줘!

-기다려! 내가 맞는다! 김태현! 날 패라 이 나쁜 놈아!

-뭐라는 거야 미친놈들아! 비켜!

-후후… 우리 여럿이 있을 때 추가되는 버프가 있다. 어디 한번 뚫어봐라, 김태현!

-크하하! <단결의 생명>!

-<동료의 피>!

-<다섯의 활력>!

태현도 처음 해본 싸움!

상대가 반격을 전혀 안 하고 진짜 방패만 들며 끈덕지게 버티는 싸움이라니.

게다가 이것 관련해서 훈련도 꽤 했는지 합이 장난이 아니었다.

태현한테 맞아 죽을 거 같으면 재빨리 다른 탱커들이 몸으로 덮어서 가리고….

서로 위치 바꾸는 스킬에, 죽을 거 같으면 한 번 더 HP가 올라가는 스킬에….

진짜 버티는 것에 작정을 하고 온 팀은 무서웠다!

최상윤, 정수혁이 덤벼들고 이다비까지 각종 지원을 했는데도 <알래스카 폴라베어즈>는 1라운드를 버텨내는 데 성공했다.

슬슬 어떤 스킬들이 있는지 감을 잡은 태현이 2라운드부터는 한 놈부터 필사적으로 조져서 넷으로 만든 다음 상대 버프를 깨버리고 하나씩 쪼개 잡긴 했지만….

“…미친 게임이었어.”

태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런 게임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진흙탕 늪에서 싸우는 것 같은 게임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뭐… <알래스카 폴라베어즈>는 작정하고 준비한 것 같았으니까. 다른 팀은 따라하려고 해도 하기 힘들 거야. 여기 특화된 탱커 다섯 명을 갖고 있는 팀이 그렇게 많겠어?”

“설마 무작정 따라하는 팀 나오는 거 아냐?”

“게임단이 그렇게 아마추어처럼 굴겠습니까? 다들 오랫동안 준비했을 텐데.”

“하하. 그렇지?”

태현도 웃어 넘겼다. 그러나 최상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게임단 가끔 터지는 거 보면 의외로 조직 굴러가는 게 되게 주먹구구식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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