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21화
“김태현이라고 안 된다는 편견을 버려. 판온 1 때문에 다들 선입견을 갖지만, 김태현도 사람이라고. 그렇게 인기가 많아졌으니 성격이 부드러워진 거지. 인터뷰 영상 봤지? 겸손하게 말하는 거.”
“아니 인터뷰에서도 난리 치면 그게 또라이….”
“아 시끄럽고! 해서 손해 볼 거 없잖아. 해서 손해 볼 거 있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애초에 씨알도 안 먹힐 제안을 하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
“그리고 우리는 김태현과 아는 사이잖아.”
‘그걸 아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드스탁 길드의 길마, 우드스탁!
예전에는 길드 동맹 소속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길드 동맹에서 쫓겨 나온 길드였다.
원래라면 길드 동맹한테 누명이 씌워져 전멸당했어야 했지만, 그때는 운이 좋게 한창 태현과 길드 동맹이 치고받던 상황이었다.
태현이 오스턴 왕국에서 깽판을 치며 날뛰는 덕분에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걸 운이 좋다고 말할 수가 있는 걸까?’
“아 너 또 속으로 중얼대고 있지! 그만 중얼거려!”
“아니 길마님 계획이 그지 같으니까 그렇죠! 솔직히 김태현 만나고 싶지 않다고요!”
부길마 하파라는 그때 태현과 같이 오스턴 왕국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다.
아. 저놈은 같이 다니면 진짜 위험하겠구나!
하파라는 적당히 굵고 길게 판온을 하고 싶은 거였지, 미친 듯이 굵고 짧게 살고 싶은 게 아니었다.
태현과 같이 다니면 목숨이 10개라도 부족할 것 같았다.
“요즘 개나 소나 다 투자받고 현금 굴리는 거 알지? 남들은 투자받은 걸로 덩치 키우는데 우리 혼자 가만히 있으면 밀릴 뿐이다. 길드 동맹 놈들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잘나가는 거 보면 배 아프지 않냐? 다 투자받아서라고.”
“그건 그렇지만….”
판온의 대형 길드들 사이에서는 투자를 받고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유행이 불고 있었다.
여기에 끼지 못하면 밀릴 뿐!
그리고 이 모든 확장의 전제조건은 영지였다.
일단 영지가 있어야 한다!
“진짜 들어봐라. 이번에는 완벽한 계획이라니까? 아탈리 왕국은 흔히 김태현이 왕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렇죠….”
“그런데 김태현도 완벽한 게 아니야. 북부나 중앙 쪽은 저번에 싸워서 점령했는데, 남부 쪽 귀족들은 김태현의 말을 안 듣는다고.”
“미친 겁니까!? 왜요!?”
“아, 귀족 놈들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알아! 죽고 싶은가 보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어쨌든 이 남부 쪽 영지들이 애물단지란 게 중요해! 네가 만약 김태현이라고 생각해 봐.”
“상상이 안 가는….”
“아 그냥 하라고! 네가 만약 김태현이야! 근데 갑자기 내가 와서 골드를 잔뜩 바치면서, 이 애물단지 놈을 처리해 주고 알아서 영지를 점령한 다음 충성을 바치겠다고 하면 어쩔 거 같냐?”
“…!!!”
하파라는 정말 깜짝 놀랐다.
우리 길마가….
우리 길마가 이런 비책을?!
‘우리 길마가 아닌가???’
“그럴듯하지???”
“그… 그럴듯한데요…?”
김태현 입장에서는 OK 해줄 수밖에 없는 조건!
너무 그럴듯해서 다른 놈들이 먼저 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빨리! 빨리 제안합시다!”
“녀석! 그렇게 나와야지!”
* * *
“아. 왜 자꾸 귓속말이 오지. 성가시게.”
“친구 아니면 전부 차단해 버리는 건?”
“중요한 상황에 놓칠 수도 있어서 안 돼.”
“무슨 귓속말이길래?”
“자기가 어디 길마인데 한 번만 만나달라고… 뭐, 많이 오는 제안이야.”
“아. 그런 제안 많지.”
둘 다 판온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다 보니 가만히만 있어도 온갖 제안이 들어왔다.
-김태현 선수! 제발 제 방송에 한 번만 나와주시면… 나와주시면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세연 선수! 한 번만 같이 파티 사냥 해주세요! 여기 못 깨는 던전이 있는데 진짜 좋은 곳이에요! 몬스터 레벨이 무려 120…!
-김태현 선수. 제가 새로운 길드를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최고만을 위한 길드! 그 길드에는 바로 당신이 필요합니다! 길드원이 몇 명이냐고요? 김태현 선수가 OK하면 두 명….
덕분에 둘 다 시답잖은 귓속말이면 일단 끄고 봤다.
[타락한 고대 거인의 <고대로부터 속박>이…]
[타락한 고대 거인의 <거인 파괴 함성>이…]
[……]
[……]
[……]
[…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됐다!’
이세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뭔 놈의 저주가 이리 지독하단 말인가.
“이세연, 이쪽으로 와. 반응하기 힘들잖아.”
“어, 어? 어.”
“너 집중하고 있는 거 맞지? 지금 내 소환수들이 방패하고 있다고 해서 ‘나 대신 얘네들이 맞겠지’ 하는 생각하는 거 아니지?”
“안 했거든?!”
골드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이 순진무구한 눈동자로 빤히 쳐다보자 이세연은 마음이 매우 아파 오는 걸 느꼈다.
진짜 그런 생각 안 했어!
-저 거인 놈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까?
-없을 거 같은데.
-고대 거인 놈들이 얼마나 지독한데… 절대 상대하지 말자고.
-이 던전은 왜 이렇게 조용해?
“?”
“???”
태현과 이세연은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던전에 사는 몬스터들은 소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저 대화는?
외부에서 들어온 놈들!
슥-
태현은 바로 이세연과 함께 은신 스킬을 사용했다. 태현의 은신 스킬은 고급 끝자락에 도착한 수준.
어지간한 도적은 뺨 때리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행운의 은신> 스킬까지 있으니 실제 은신 능력은 훨씬 더 올라갔다.
“저기. 나… 그….”
“??”
이세연은 ‘나 지금 언데드 소환할 수 있는데’라고 말하려다가 머뭇거렸다.
이상하게 말하기가 힘들다!
태현은 이세연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줘서 눌렀다.
“자세 낮춰. 뭔 소리를 하려는지 모르겠는데 나중에 하고.”
“아니, 그게…!”
“뭐하는 놈이길래… 설마 거인이 보냈나?”
“#@&^#&4….”
정체불명의 소리를 끙끙대는 이세연!
[악마가 들어왔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악마의 기운을 귀신같이 맡은 카르바노그!
‘고대 거인이 악마도 부리나?’
[그건 절대 아닐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아키서스면 모를까 고대 거인은 그렇게 악마를 부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은근슬쩍 아키서스 욕을 하며 설명해주는 카르바노그.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확실히 고대 거인 성질에 악마와 친하게 지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냥 잡아야겠군. 다들 준비해라. 셋. 둘. 하나. 지금.’
팟!
태현은 은신을 풀고 덤벼들었다.
무방비한 채로 걸어오고 있는 악마들 정도는 녹여 버릴 수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들려오는 소리에서 대충 위치도 짐작이 가고….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황금 연쇄 번개!
-추적 지옥 화염구!
용용이와 흑흑이의 화력 지원과 함께 태현이 번개처럼 덤벼들었다.
명령을 받고 찾아온 악마들은 기껏해야 레벨 200~300.
높다면 높은 레벨이었지만 태현의 맹공을, 그것도 기습받은 상태에서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쾅!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악마들!
-뭐야?! 뭐야!?
태현은 묵묵히 검만 휘둘렀다.
대답할 시간에 한 대 더 팬다!
악마들은 원래 상대해 주면 손해를 봤다. 간교한 혓바닥으로 사기를 치는 존재 아닌가!
[카르바노그가 이제까지 악마들을 속인 게 누구냐며 황당해합니다.]
-이 자식이 감히…!
-뒤의 마법사를 처리해!
두들겨 맞던 악마들은 정신을 차리고 이리저리 흩어지려 했다. 그중 하나가 마법부터 막으려 덤벼들었다.
-악의 점멸!
단거리 공간이동 마법을 쓰며 접근해 온 악마들!
용용이와 흑흑이, 골골이는 기겁해서 움직였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이세연이 공격을 받을 테니까.
그러면?
‘주인님이 미친 듯이 갈구겠지!’
김태현의 폭풍 잔소리!
너희는 드래곤이 되어 가지고~~ 그것도 못 막냐~~ 드래곤 맞냐~~ 와이번 아니냐~~ 같은 잔소리가 벌써부터 귀에 생생했다.
-막아야 한다!
-막고 있다! 아니, 이놈이 또 순간이동을! 골골아! 네가 막아라!
-이놈이 더럽게 빠르다!
“…<어둠의 마력 방패>, <최상급 파이어 골렘 소환>, <공격 집중>, <마력 흐름의 저주>!”
혼란스러운 대화를 듣고 있던 이세연은 그냥 바로 마법을 연타해 버렸다.
마력으로 방어를 급격하게 올리고 골렘을 소환한 다음 거기에 공격을 집중시키게 만드는 마법까지. 마지막은 상대가 도망 못 치게 마법 방해를 걸었다.
-컥!
점멸을 쓰며 이리저리 움직이던 악마는 그대로 붙잡혔다.
-죽어라, 이놈! 누구를 엿 먹이려고!
-너 때문에 우리가 망할 뻔했다!
“…….”
이세연은 소환수들의 대화를 듣고 혼란에 빠졌다.
…뭐 어떻게 교육을 시키고 있는 거야…!?
“어? 이세연. 디버프 풀렸어?”
“어? 어… 어! 지금 풀렸어!”
“아까 풀렸는데 일부러 안 풀린 척한 거 아니지?”
태현은 농담을 던졌다. 그 농담에 이세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어떻게 안 거야!?’
“농담이야. 네가 케인도 아니고 그런 짓을 할까.”
“으… 응.”
[카르바노그가 좀 이상하다고…]
‘그래그래그래.’
[탕탕탕탕탕탕!]
무시하지 마 이 아키서스 놈아!
* * *
태현은 딱 한 놈만 남겨 놨다. 이세연도 원래 힘이 돌아왔겠다, 이제 굳이 조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무슨 목적으로 여기까지 왔냐?”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인간 놈! 난 그저 고대 거인에게 쫓겨왔을 뿐이다! 날 놓아주면 크게 사례하겠다!”
‘어?’
태현은 그 말에 당황했다.
‘난 당연히 암살자인 줄 알았는데.’
악마한테 한 짓이 하도 많아서 악마만 보면 ‘헉 날 죽이러 온 놈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카르바노그도 암살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그치?’
“날 죽이러 온 게 아니었나?”
“내가 왜 널 죽이러 오냐!”
“흠. 악마 공작 성 훔쳐서 암살자를 보낸 줄 알았지.”
“…….”
그 순간 악마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아. 내가 누군지 몰랐군?”
“그, 그게… 그것이… 나는 그냥 정찰만 하려고 온 거다! 정말이야! 건드릴 생각도 없었어! 생각해 봐라! 나 같은 악마가 어떻게 아키서스한테 덤벼든단 말이냐!”
‘악마가 자기 약하다고 호소하고 있어…?!’
이세연은 상식이 붕괴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보통 악마는 하급 악마든 상급 악마든 오만하고 거칠었다.
인간한테 지더라도 ‘크크큭! 인간…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때 네놈의 심장을 박살 내주마!’ 하며 퇴장하는 게 국룰 아닌가.
그런데 지금 악마는 ‘나 정말 약해! 그런 내가 너한테 흑심을 품었겠어??’ 하며 호소하고 있었다.
‘…정말 판온은 넓어…!’
“흠. 그랬단 말이지?”
“그래! 그래!”
“지금 너 혼자만 보내지는 않았을 거고… 악마들 어디에 많이 있냐?”
악마를 많이 상대해 본 사람답게 태현은 노련했다.
악마 공작들이 태현을 상대할 때 악마 한두 마리만 보냈겠는가?
당연히 최대한 많이 보냈겠지!
그리고 악마들이 우르르 대륙에 나올 때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흑마법사가 소환을 했든 무슨 차원문을 찾았든….
이 악마가 나온 걸 보니 분명 그런 방법이 어딘가에 있으리라!
“그, 그걸 말하면 다른 악마들은….”
“다른 악마들은?”
“…생각해 보니 제 알 바 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비밀 지켜봤자 그한테는 이득이 전혀 없잖아?!
‘악마들은 이런 점이 참 매력적이야.’
[카르바노그는 저러니까 평생 아키서스한테 아키서스당하는 거라고 한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