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20화 (1,019/1,826)

§ 나는 될놈이다 1020화

‘설렜… 아니, 놀랐잖아!’

이세연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태현이 평소와 다르게 진지하게 말한 탓에 착각한 게 매우 부끄러웠다.

[카르바노그가 저 네크로맨서 좀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역시 이세연이 좀 수상한가?’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조언을 진지하게 들었다.

카르바노그가 힘을 잃고 간신히 존재만 남은 신이었지만 그래도 신이었다.

그 예리한 통찰력과 직관력은 언제나 태현에게 도움이 되어 왔었던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수상하다고 하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카르바노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평소에는 잘 돌아가는 머리가 왜 이럴 때는 아키서스의 노예 수준으로 떨어지지?

‘그거 말고 뭐가 있는데? 아. 이세연이 좀 힘들어 보이는 거? 그거야 고대 거인한테 저주를 제대로 맞았으니 그런 거겠지. 평소 쓰던 스킬들이나 스탯을 못 쓰게 되면 불안해질 수밖에 없잖아.’

또 다른 건 잘 눈치채는 태현!

[그런 거 말고 좀 더 토끼적인…]

‘??’

[에잇! 좀 더 호감 관련된… 그냥 짝짓기적인 의미라고 말합니다!]

‘…네가 토끼 신이긴 토끼 신이구나.’

부정적인 의미의 토끼 신!

토끼는 번식과 다산(多産)에는 꼭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동물이었다.

카르바노그의 축복이 영지에 걸리면 왜 영지 NPC 숫자가 팍팍 늘어나고 키우는 동물들 숫자가 늘어나겠는가.

태현이 부정적인 의미로 말했다는 걸 카르바노그가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자긴 제대로 봤다고 카르바노그가 화냅니다!]

‘그래그래. 핑크빛노그.’

저번에 요한손과 수아나가 싸우는 걸 보면서 ‘쟤네 사귈 거임’이라고 했을 때부터 뭔가 수상했다.

카르바노그는 머릿속이 완전 핑크빛인 게 분명했다.

연애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는 토끼!

‘아버지도 그러셨으니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김태산은 잘 숨겼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태현은 서재 책꽂이 뒤 비밀공간에 순정만화가 빼곡히 꽂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아저씨들이 돌려 읽더라!

[탕탕탕탕탕탕!]

‘아. 알겠다니까. 시끄러. 시끄러. 이세연은 인재 좋아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판온 1 때부터 이세연의 사람 보는 눈은 유명했다. 지금 이세연의 길드원 중 몇 명은 판온 1에서 이세연과 싸웠던 길마들이었다.

이세연에게 지고 스카우트당한 것!

“…으흠. 으흠.”

이세연은 마음을 가다듬고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저번에는 왜 거절….”

“네가 <황제 살해자> 같은 수상쩍은 이야기를 해서잖아!”

“하하. 그건 오해라니까. 그냥 이름이 그런 거야. 이름이.”

“…어쨌든 동맹은 아주 좋다고 생각해. 솔직히, 상황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거든.”

판온은 이미 단순한 게임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자본이 들어와 있었다.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이니만큼 당연했다.

대형 길드들이 전 세계에서 투자를 받는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

“지금 돈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디인지 너도 알지? 하나는 대회 관련이고….”

“다른 하나는 영지전인가?”

“맞아.”

대회.

판온 리그는 말할 필요도 없이, 2부 리그부터 시작해 각국에서 열리는 규모 작은 대회까지 인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투자자들이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는 상황!

판온 리그가 시작할 때 ‘우리 팀이 2부 리그라니! 그럴 바에는 참가 안 하겠소!’라고 했던 게임단들이 ‘2부 리그라도 넣어주십쇼!’라고 태도를 돌변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투자자들은 항상 많은 걸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중국 쪽 거대 자본들은 단순 투자가 아닌 경영과 운영에도 참가를 원하는 공격적인 투자자들!

그런데 판온 대회들에는 의외로 돈을 넣을 곳이 없었다.

물론 각종 게임단에 투자하고 광고를 넣고 후원하는 것으로도 어마어마한 수익이 났지만, 경영이나 운영에 참가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쪽 게임단들은 회사의 지분을 나눠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철통 방어를 했고 판온 회사는 아예 비상장 기업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게임 회사다운 배짱!

이빨이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결국 투자자들은 그 외 게임단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수익을 노렸지만, 만족스러울 리는 없었다.

A급 게임단은 내버려 두고 B급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그러나 게임 내 길드는 이야기가 달랐다.

판온 이전부터 이어져 와서 역사가 깊고 조직이 단단한 게임단과 달리, 판온 내에서 새로 만들어진 길드들은 경영권 방어 같은 개념이 거의 없었다.

대형 길드쯤 되면 수익이 어지간한 기업 수준으로 나오는데 운영은 아마추어 수준!

투자자들한테는 맛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게임만 하던 길마들은 돈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대부분 냉큼냉큼 받아들였고….

현재 대형 길드 중 대부분이 투자자들을 잔뜩 끼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계속 영지를 만들고 영지전을 하라고 재촉을 해. 그게 돈이 되니까.”

대형 길드는 각종 방법으로 돈을 벌지만, 그중 가장 폭발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건 영지전이었다.

일단 한 번 길드끼리 싸우면 사람들의 관심이 어마어마하게 모이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싸움일 경우 판온 리그마저 압도할 정도의 열기가 있었다.

“에이. 그래도 리그가 더 많이 보지 않나?”

“아니. 분석 들어보니까 네가 길드 동맹 털 때 보던 사람들이 리그 경기 평균 숫자보다 많더라.”

“…그, 그래.”

갑자기 자기 이름이 나오자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하긴 태현이 길드 동맹과 싸울 때에는 모든 게시판과 방송들이 그 싸움에 주목했었다.

“지금 제일 크게 싸우는 곳이 미다스 길드하고 길드 동맹이지? 투자자들이 다른 대형 길드들한테 말이 많아. 너희는 뭐 하고 있냐고.”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는 서로 목숨 걸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지만, 덕분에 많은 광고와 시청자를 확보한 건 사실이었다.

다른 대형 길드들 입장에서는 배가 아플 수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영지를 만든다는 건가?”

“그렇지. 곧 그렇게 될 거야.”

이제까지 ‘굳이 영지가 필요한가?’ 하고 넘어가던 대형 길드들도 ‘무조건 영지를 얻어야 한다!’고 흐름이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대형 길드들이 힘이 부족해서 영지를 못 얻었던 게 아니었다. 얻으려다가 괜히 손해만 볼까 봐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었지.

영지를 얻으려면 어떻게든 얻을 수 있을 것이 분명!

“으. 길드 동맹 같은 놈들이 몇 개 더 생긴다고 생각하니까 좀….”

“…네가 원한을 유달리 많이 샀다고는 생각 안 해봤어?”

“아. 예. 우리 이세연 씨는 원한을 안 사셨겠죠. 솔직히 너도 적 많거든?”

“으읏.”

이세연은 찔린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태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세연도 적이 많았던 것이다.

‘확실히 이세연 말이 맞아. 요즘 대형 길드들이 다 심상치 않았지.’

에랑스 왕국이나 덩글랜드 왕국에서 편하게 있던 놈들이 에스파 왕국으로 가고, 오스턴 왕국의 빈 땅을 찾고, 우르크 지역을 뒤지고….

그도 모자라서 아예 남쪽 대륙인 프리카 대륙이나 저 먼 동쪽의 아스비안 제국도 기웃거리고 있었다.

영지 욕심을 내는 게 분명했다.

‘판온 2는 사실 꽤 평화로운 편이었지. 길드 동맹 정도만 영지 욕심을 심하게 부린 편이었고… 덕분에 나만 치고받았지만. 이제는 정말 전면전이 찾아오나?’

중앙 대륙, 남쪽 대륙, 동쪽 대륙 등 알려진 판온 전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면전!

‘플레이어들은 엄청 신나 하겠군.’

퀘스트에 방해되고 어떤 불이익이 올지 모르지만, 이런 빅 이벤트에 흥분하지 않는 건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미리 영지전을 대비해야 해. 길드 동맹만 적이 아니니까.”

“다행히 내가 적이 많은 탓에 아탈리 왕국은 미리 대비를 해놨지.”

“…….”

이세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태현이 장악한 왕국 북부부터 중앙까지는 정말 살벌한 방어력을 갖고 있었다.

특히 ‘그 골짜기’는 천혜의 요새!

보는 순간 ‘저걸 어떻게 깨냐?’가 절로 나오는 영지였다.

그에 비해 아스비안 제국은 땅만 넓었지 너무 공격할 곳이 많았다.

‘부럽긴 해. 확실히….’

“우리 둘이 동맹을 맺으면 어지간해서는 건드리지도 못할 거야.”

“그거 괜찮군.”

태현은 손을 내밀었다.

애초에 이세연과 손을 잡으려던 이유가 저것 아니었는가.

길드 동맹이 혹시 또 미쳐서 노릴까 봐를 대비해서였는데….

다른 위험까지 미리 대비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았다.

대형 길드들이 영지 얻은 다음 어디를 노리겠는가?

만만한 영지를 노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나를 노릴 가능성도 꽤 커.’

이유는 간단했다.

태현이 너무 유명했으니까!

웬 알지도 못하는 조그만 마을 하나 점령하면 몇천 명 정도가 보겠지만, 태현을 공격하면 수십만, 수백만 명이 본다!

손해를 보더라도 공격하려는 놈들이 나올 것이다. 유명세란 그런 것이었다.

“좋아. 동맹이야!”

이세연은 손을 잡았다. 뉴욕 라이온즈 쪽에 연습장을 양보해 준 건 이럴 때를 위한 대비였다.

그러나 태현과의 동맹이 훨씬 더 든든한 동맹이었다.

적일 때는 정말 짜증 나지만 아군일 때는 이렇게 든든한 사람도 없는 것!

* * *

“영지를 팔라고? 미쳤냐?”

“이만한 돈이면 결코 안 좋은 조건이….”

“아, 됐고. 필요 없어.”

김태산은 코웃음을 쳤다.

우르크 지역은 그와 아저씨들과 오크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낸 드넓은 땅이었다.

돈으로는 안 판다!

“갖고 싶다면 힘으로 뺏어봐라.”

“만… 만약에 받아주신다면 여기 저희가 찾아낸 전설 등급 장비 세트, <대족장의 분노> 세트를….”

“…그, 그래도 안 돼!”

“형님 방금 흔들리지 않으셨냐?”

“눈 파르르 떠셨는데?”

한국계 길드, <진군>에서 나온 플레이어는 곤란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거절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라도 말을 해야 협상을 할 텐데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는 김태산!

“그쪽 같으면 내 적이 될 수 있는 놈한테 영지를 팔겠나? 거기서 무슨 꿍꿍이를 꾸밀 줄 알고?”

“아닙니다! 저희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형님. <진군>은 평이 꽤 괜찮은 길드인데요.”

“아 진군이고 퇴군이고 간에 그걸 어떻게 끝까지 믿냐?”

“하긴 그것도 그래.”

“맞는 말입니다.”

김태산의 말에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르크 지역 남쪽의 불모지 좀 떼어줬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으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만약 믿지 못하시겠다면 저희는 <최강지존무쌍>의 휘하 길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

김태산은 깜짝 놀랐다.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제안!

뒤통수를 치려면 적당히 숙여야지, 저렇게 휘하에 들어가면 치려고 해도 칠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이지?’

남의 길드 밑으로 들어가면서까지 저런 불모지를 급하게 얻을 필요가 있나??

“야. 그 땅에 혹시 뭐라도 있는 거 아냐? 금이라던가….”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요?”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저희가 지금 투자를 받기 직전인데, 투자 조건이 영지 확보여서… 어느 땅이든 상관없으니 안정적으로 영지가 필요합니다. 저희는 정말 아무런 사심이 없습니다! 영지전을 벌이더라도 <최강지존무쌍>은 절대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허… 그러게 투자는 잘 보고 받아야지.”

상황을 알아들은 김태산은 불쌍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하긴 판온에서 지금 쉽게 얻을 수 있는 영지는 별로 없었다.

어디든 힘으로 뺏거나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휘하 길드… 솔깃하긴 하군.’

리X지 때처럼 한 번 동원하면 수십 길드가 우르르 나오는 위풍당당함!

길드 동맹이 왜 이길 수 있었던가? 숫자가 많아서 아니겠는가.

* * *

“정답은 김태현이다.”

“예? 왜 하필…?”

“아탈리 왕국은 오스턴 왕국과 달리 내전이 거의 없어서 상태가 좋다. 게다가 에랑스 왕국과 달리 플레이어가 국왕이잖아! 가장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영지야!”

“그, 그런데 상대가 김태현이잖습니까…?”

차라리 에랑스 국왕 상대로 협상하는 게 더 쉬워 보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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