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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016화 (1,015/1,826)

§ 나는 될놈이다 1016화

태현의 예상은 정확했다. 사실 예측하기 힘든 상황은 아니었다.

이세연 같은 플레이어가 저렇게 소환수도, 파티원도 없이 혼자 있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고대 거인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생각보다 심하게 털렸군.’

이세연 정도면 바로 소환할 수 있는 정예 소환수가 수십에, 그런 게 없어도 즉석에서 각종 언데드 정예를 불러낼 수 있을 텐데….

저렇게 맨몸으로 다니는 걸 보니 소환수가 전부 쓸려나갔거나, 고대 거인한테 무슨 마법을 맞은 게 분명했다.

‘…얘 갑자기 나 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이세연은 문득 불안해졌다.

태현의 예상대로 지금 이세연은 평소보다 매우 매우 약해진 상태였던 것이다.

평소에도 태현과 상성이 안 좋은 이세연이었다.

판온 1과 달리, 판온 2에서의 태현은 어마어마한 폭딜을 언제라도 쑤셔 넣을 수 있는 역대급 딜러!

마법사 직업들은 기본적으로 유리몸이었고, 암살자나 도적 같은 딜러들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태현은 딜러 중의 딜러였으니….

원래라면 주변에 호위와 소환수를 잔뜩 깔고, 자기 자신한테 각종 예비 마법을 걸어서 대비를 해놔야 했다.

그런데 이세연은 지금 정말 맨몸이었던 것이다.

‘내가 판온 1에서 이기기도 했으니 얘도 나한테 원한이 꽤 있을 테고….’

태현이 들었다면 ‘오냐! 원한 있다!’ 하며 울컥해서 찔렀을 생각!

어쨌든 이세연도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세연이 빠지면 흔들리는 건 유성 게임단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물론 유성 게임단이 팀 KL처럼 후보 선수 없이 미친 듯이 달리는 팀은 아니었지만, 주장으로서 이세연이 가지는 무게감은 보통이 아닌 것!

* * *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

김현아는 제대로 열이 받아서 이를 갈고 있었다.

고대 거인을 상대로 후퇴하다가 파티가 박살이 난 것이다.

‘판단에 틀린 건 없었는데…!’

분명히 제대로 판단을 내렸다. 망설이지도 않고, 남은 플레이어들끼리 바로 진형을 정비해서 후퇴를 했는데….

고대 거인은 정말 예상 밖의 스펙으로 덤벼들었다.

게다가 누가 리더인지 알고 있는 것처럼 집요하게 이세연만 쫓아왔다.

이세연은 거리를 벌리면서 파티원을 한 명씩 흩어 보내는 식으로 교란을 시도했지만 거인은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이세연의 소환수들을 모조리 부수고 씹어 먹은 뒤 마법까지 카운터치며 압도해 나갔다.

결국 김현아까지 옆으로 빠져나가게 한 뒤 혼자 후퇴!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길마로서, 파티장으로서 책임감이 있기에 할 수 있는 결정이었던 것이다.

그걸 알기에 김현아는 더욱더 화가 난 상황!

고대 거인 놈 발목 하나 못 잡는 스스로한테도 화가 났고 멋대로 돌격한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한테도 화가 났다.

‘이따가 끝나면 무조건 악플 달아주겠어…!’

“김현아 씨. 지금 남은 파티원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길마님을 지켜야 했는데….”

스미스와 이세연의 호위로 데리고 온 아자르, 게파일이 고개를 숙였다.

특히 스미스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미안해하고 있었다. 아스비안 제국에서 연습장을 허가받는 대가로 퀘스트를 도우러 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니.

“모이는 대로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이세연 씨는 아직 로그아웃 안 당하셨죠?”

“안 당했어요. 하지만 지금 출발한다고 해도 이미 늦은 데다가 막을 방법이 없을 거 아니에요!”

김현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여기 모인 파티는 고대 거인에게 효과적으로 데미지를 줄 방법 자체가 없었다.

그런 파티로 가봤자 또 고대 거인의 공격을 맞고 흩어질 뿐!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갖고 있는 스킬들 중 시도를 못해본 스킬들이 있으니, 그걸 사용해서 놈의 시선을 돌리게 만들어보겠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불만 있는 사람?”

“스미스 씨. 리그는….”

선수 중 한 명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세연이 죽으면 미안하긴 했지만 그건 유성 게임단의 일이었다.

하지만 스미스가 죽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뉴욕 라이온즈 쪽에서 얼마나 황당해하겠는가.

스미스야 간판스타 중 하나였으니 뭐라고 못 한다 하더라도 후보 선수들한테 불똥이 튄다!

“약속한 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목숨은 제가 책임질 테니.”

“아니 그래도 그렇지….”

“만약이란 게 있잖습니까?”

“만약에 여기서 뒤지고 싶냐???”

김현아는 바로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 스미스 아니었으면 공격부터 넣었을 것이다.

‘이 자식들 추태 다 올려 버리겠어…!’

“김현아 씨. 우리가 그쪽 길드원은 아니잖습니까. 너무 말씀이 심하신 거 아닙니까?”

“맞는 말이네. 우리가 그쪽 부하도 아니고.”

“우리 길드원 아니니까 뒤지고 싶냐고 묻는 거지. 우리 길드원도 아니지, 나한테 연봉 주는 회장님 가족도 아니지, 뭘 믿고 입을 놀리는 건데? PK해보고 싶어서 아냐?”

김현아가 살벌하게 검을 들고 다가오자 선수들은 경악했다.

이 인간….

정말로 싸울 생각이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뒷감당을 어쩔 생각이지?’

그러던 김현아가 멈칫했다.

“…언니가 김태현을 만났다는데…?”

“??????”

“아, 둘이 사귀는 사이라서 구해주러 온 거군?”

뉴욕 라이온즈 선수 중 한 명은 무심코 물었다. 헛소문은 한 번 퍼지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죽어!!”

“으아악! 진짜 휘둘렀어 이 미친 여자!”

* * *

이세연은 그래도 태현을 좀 칭찬하기로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뭘 칭찬하지?’

억지로 칭찬하는 건 생각보다 매우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세연은 태현의 실력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이건 그나마 쉬울 것 같았다.

“으흠. 으흠.”

“?”

“리그에서 활약 대단하더라?”

“…???”

“들어가는 타이밍도 대단했고, 거기서 상대 스킬 봉쇄하는 것도 대단했고, 힐러 먼저 녹인 다음에 빠져나오는 것도 대단했고, 하여튼….”

대충 생각나는 대로 읊었는데 의외로 정확하게 핵심만 짚고 있는 이세연!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이세연.”

“왜?”

“진심으로 기분 나쁘니까 그만둬주지 않겠어?”

“…….”

진심으로 때리고 싶다!

이세연은 허리 뒤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앞에서 쥐면 김태현이 분명히 알아챌 테니까.

“너 혹시 내가 지금 공격할까 봐 그러는 거 아니지?”

“아… 아니거든?”

“맞는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날 그렇게 아부나 하는 사람으로 보는 거야!?”

“응.”

“…….”

“…….”

둘 사이에 잠깐 침묵이 맴돌았다.

하긴 그건 그렇지!

서로가 서로를 ‘저 자식은 이길 수 있으면 뭐든지 하려는 놈이야’ 하며 여기고 있었으니….

“쓸데없는 걱정은 안 해도 돼. 여기서 선공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

“서로 준비되었을 때 싸우자고. 안 그러면 져도 졌다고 인정 안 할 게 뻔히 보이니까.”

뜨끔!

이세연은 움찔했다. 확실히 방금 말은 정곡을 찔렀던 것이다.

서로 100%로 싸우지 않으면 이겨도 여러모로 찝찝할 것 같았다. 판온 1에서 이세연이 이기고서도 답답했던 것처럼.

“예전이랑은 많이 변했네? 예전이었으면 바로 공격했을 텐데.”

“하하. 지금 공격해 줄까?”

“농담한 거거든?!”

“난 진담이었는데.”

“…….”

“뭐 사람이야 변하는 거니까. 나도 파티 이끌고 같이 다니면서 좀 부드러워지긴 했지.”

“???”

[????]

-????

이게 부드러워진 거면 그 전은 대체??

물론 이세연은 따지지 않았다. 상대가 살려준다고 했을 때에는 얌전히 가만히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너 속으로 지금 판온 1 때 생각하면서 욕했지?”

“안, 안 했거든.”

“그래? 이상하군. 보통 나하고 판온 1에서 부딪힌 적 있던 사람들은 다 욕하던데.”

“…….”

“어쨌든 파티 플레이하면서 다른 재미도 느끼고 있긴 해. 네가 판온 1에서 제안한 이유도 조금 알 것 같더라고.”

“…!!”

이세연은 정말로 놀랐다. 그리고 그 말에 순간 울컥하고 감동을 받았다.

쌓였던 원한이 녹는 것 같은 느낌.

저게 뭐라고 이렇게 감동을 받는단 말인가.

김현아가 옆에 있다면 ‘언니! 저 새끼한테 당한 게 얼마인데 그것만 듣고 홀리는 거예요! 속지 마요!’라고 말했겠지만 아쉽게도 옆에는 김현아가 없었다.

“난….”

이세연이 입을 여는 순간 뒤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놓칠 줄 알았냐!

[카르바노그가 떠들 시간에 좀 더 빨리 몰았어야 했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똑같이 몰았거든?’

“…저 XXXXXXXX가!”

“당한 게 많았나보다? 안 하던 욕을 하고.”

“…물론 그 이유밖에 없지…!”

* * *

“이 좋은 날에 나와 같이 함께 오신 여러분!”

“…….”

“…….”

기껏 말을 꺼냈는데 돌아오는 건 싸늘한 시선들뿐. 케인은 생각했다.

‘김태현 이 자식은 대체 이런 시선들을 어떻게 견디는 걸까?’

여기에 모인 것보다 몇십 배 많은 사람들이 노려봐도 신경도 안 쓰는 배짱!

케인이 그런 걸 따라하기는 무리였다. 케인은 그냥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흥. 앞으로 내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바다에 던져 버릴 거다.”

당당 그 자체!

“…개자식…!”

“저런 뻔뻔한…!”

“천하의 비열한 놈이 따로 없어!”

“약점 잡았다고 신난 거 봐!”

“리그 잘나간다고 아주… 너무 얄밉다! 저놈에게 해줄 욕이 없어!”

“리그 성적 망해라?”

“성적 망해도 이미 돈 많이 벌잖아! 그리고 김태현 있는 팀인데 어떻게 성적이 망해!”

“평생 외롭게 살아라?”

“그거 좋다!”

“그건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여!”

“평생 외롭게 살아라 이 자식!”

“평생 외롭게 살아라!”

케인에게 코가 꿰여서 외딴 북쪽 섬 노드란체에 온 플레이어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입을 모아 외쳤다.

““평생 외롭게 살아라!””

“너, 너희들 왜 이래? 미쳤냐?!”

케인도 당황할 단합력!

이렇게 잘 뭉치는 놈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에잇! 전부 다 입 다물어라! 입 안 다물면 페널티다!”

“…….”

“흥. 너희들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정해진 시간 동안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아! 거기부터 거기, 1조! 그 다음부터 거기까지, 2조! 그리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3조! 이렇게 셋으로 나눈다!”

케인이 모인 플레이어들을 셋으로 나누자 다들 의아해했다.

왜 나누는 거지?

“1조는 일단 몬스터들부터 쓸어버린다! 던전 발견하면 지도 작성하고!”

“…….”

1조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노드란체는 외진 곳이긴 했지만 몬스터가 약한 곳은 아니었으니까.

만약 좋은 던전이라도 발견한다면….

‘괜찮은데?’

‘생각보다 이상한 일을 시키진 않는군.’

“2조는 노드란체 마을 근처 퀘스트들을 해결한다! 가능한 퀘스트들은 전부 정리해 와서 공유해! 못 깰 거 같으면 같이 깰 거니까.”

2조까지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노드란체는 찾아온 플레이어가 거의 없었으니, 각종 좋은 퀘스트를 독점하고 보너스를 받을 수도 있었으니까.

‘뭐야. 케인 이 자식… 진짜 멀쩡한 걸 시키네?’

‘난 몬스터 몰아와서 지 혼자 사냥하게 만들 줄 알았는데.’

‘난 세금을 90% 정도 때릴 줄.’

대형 길드의 갑질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들에게 케인의 갑질은 애교 수준이었다.

기준의 차이!

잔뜩 겁을 먹고 긴장한 플레이어들이었기에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조는 뭐지?’

‘혹시 더 좋은 건가!?’

“3조는 나랑 근처 땅 파고 바다 메꿀 거야. 여기 근처가 너무 개판이라 숨만 쉬어도 주민들 불만도가 쌓이고 있어!”

“…….”

“…….”

3조는 절대 안 돼!

모든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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