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15화
상대가 귀를 막은 틈을 타 태현은 가차 없이 고대 거인의 발목을 노렸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고대 거인의 피가 공격을 견뎌냅니다! 데미지가 크게 감소합니다!]
[고대 거인의 가죽이 당신을 균형 잃게 만듭니다!]
‘윽!’
고무공을 때린 것 같은 반탄력!
강하게 후려친 태현이 오히려 튕겨 나가서 균형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아키서스의 세 번째 공격을 사용했습니다. 적중한 부위는 새로운 약점이 됩니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위험하다!’
-아키서스의 돌격!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아키서스의 돌격> 스킬을 사용했다. 순간 태현이 점멸하듯이 사라지더니 앞에서 나타났다.
남은 자리에 있는 건 폭발 직전의 폭탄들!
콰콰콰콰쾅!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연쇄 산탄 폭탄의 파편이…]
[치명타가…]
[고대 거인의 피가…]
몇 합을 교환한 것만으로 태현은 고대 거인이 어떤 타입의 보스 몬스터인지 깨달았다.
왜 카르바노그가 싸우지 말라고 했는지도!
‘뭐 이런 사기 같은 게… 스미스 상위호환이잖아?!’
성기사란 직업은 보통 ‘단단하고’, ‘HP가 많다’는 특성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스미스는 그런 기사 중의 기사!
손꼽히게 비싼 장비 세트와 각종 전설 직업 스킬들을 업고 HP로 버텨대니, 때리는 입장에서 욕이 나올 수준이었다.
예전에 상위권 랭커 세 명이 스미스를 노리고 덤벼들었는데 결국 쓰러뜨리지 못하고 물러선 이야기는 스미스의 이름이 나오면 꼭 나오는 이야기였다.
케인이 태현 덕분에 세계 최고의 탱커 같은 과분한 칭찬들을 듣고 있지만, 스미스의 팬들이 듣는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고대 거인은 스미스의 상위 상위 호환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특히 저 고대 거인의 피라는 패시브 스킬이 너무 사악했다. 대부분의 스킬을 막아내는 것 아닌가.
태현은 알지 못했다.
그래도 태현은 고대 거인에게 가장 많은 데미지를 준 플레이어라는 것을!
방금 전 뉴욕 라이온즈의 선수들은 제대로 된 데미지도 주지 못하고 쓸려나간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빨리 튀라고 말합니다!]
‘안 그래도 튈 거야!’
태현이 거리를 벌리자 고대 거인은 분노해서 바로 뒤를 쫓… 아오지 않았다.
멈추더니 의기양양하게 웃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에 태현은 가슴이 덜컥했다.
‘들켰나!’
설마 드워프 도시를 위해 미끼 역할을 했다는 걸 눈치챈 것인가?
역시 고대 거인답게 지능이 높….
-아키서스놈! 어디 함정을 팠구나. 하지만 나는 걸리지 않는다!
“…….”
[…….]
-자. 나를 잡으려면 어디 한 번 와봐라! 난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미치겠군.”
[카르바노그도 동감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지능이 정말 예사롭지 않았다. 심지어 대화를 아예 막기 위해 귀를 막은 게 대단했다.
저게 의외로 까다롭다!
‘내가 다짜고짜 귀 막는 거인 놈한테 당황할 줄이야….’
원래라면 말을 걸어서 꼬여냈을 텐데, 말도 무시하고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걸 보니 막막했던 것이다.
[그냥 도망치면 고민하다가 쫓아올 거라고 말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태현은 고민을 끝내고 움직였다. 상대가 시간을 낭비해 준다면 감사히 받아먹을 뿐.
태현이 뒤를 돌아서 계속 거리를 벌리자 고대 거인은 코웃음을 쳤다.
혼자 떠드는 고대 거인!
-그런 수작에 속을 거 같으냐?
-어서 돌아와라. 아키서스놈. 날 잡으려고 하는 걸 안다.
-함정을 빨리 작동시켜라. 내가 그쪽으로 가면 작동하는 거겠지?
-…왜 안 오는 거냐? 빨리 오란 말이다! 난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크아아아아아!
[타락한 고대 거인이 울부짖습니다!]
[공포 저항에 성공합니다.]
[<신성 권능>으로 <고대 거인의 울부짖음> 디버프를 저항하는 데 성공합니다.]
태현은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고대 거인도 이런 걸로 태현을 잡으려고 한 게 아니었다.
목적은 함정 파괴!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크아아! 크아아!
울부짖는 스킬을 몇 번 써도 잠잠한 통로!
고대 거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발을 내디뎠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키서스놈!!!! 날 속였겠다! 감히 날 속였겠다! 오호라! 과연 속임수의 신답구나!
[고대 거인은 도발도 잘 한다고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와. 저거 은근히 얄미운데.’
고대 거인은 이상하게 사람의 성질을 건드리는 게 있었다. 물론 태현은 상대하지 않고 밖의 통로를 타고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너보다 몇 수는 위다! 네놈을 잡아 먹어주마!
쿵쿵쿵쿵쿵!
굉음과 함께 고블린들이 파고 내려왔던 통로가 으깨지기 시작했다.
그 아래에서 올라오는 거인의 머리!
마치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1차 목표 성공.’
일단 거인을 저 소굴에서 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이제는 거인을 따돌리기만 하면 된다!
[카르바노그가 할 수 있겠냐며 걱정합니다.]
‘상관없어. 밖으로 나온 이상 거리 벌리기 쉬우니까.’
태현은 용용이를 불러낸 다음 바로 올라탔다.
“무조건 위로 날아올라!”
-알고 있다, 주인이여!
자이언 산맥 같은 곳에서는 비행도 함부로 하면 안 됐다. 온갖 비행 몬스터들이 날아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고대 거인 같은 놈이 쫓아오고 있을 때에는 와이번 몇 마리 상대하는 게 차라리 나았다.
삐이이이이익!
“!”
고대 거인이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파람을 불자, 저 멀리서 대형 와이번 한 마리가 날아와 고대 거인 앞에 섰다.
“!!!”
[저, 저거 빨리 막아야 한다며 카르바노그가 기겁합니다!]
설마 공중까지 쫓아올 줄은 몰랐던 태현도 등에 식은땀이 났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가능한 고대거인!
-주인이여. 공격하겠다!
용용이는 바로 허공에 번개 구체를 띄워 닥치는 대로 쏘아대기 시작했다.
고대 거인에 비해 와이번은 약한 편이었다. 와이번이 약하다고 표현하는 게 웃겼지만….
‘하지만 맞는 말이다!’
태현도 아래에서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와이번을 집중 견제했다.
고대 거인을 잡는 것보단 그게 쉬웠으니까!
-고대의 방패 소환!
그러나 고대 거인도 그 정도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로 마법 방어막을 켜서 와이번을 보호했다.
‘젠장. 잡으려면 아예 가까이 붙어야 하는데….’
태현은 고민했다. 붙으면 와이번 정도는 폭딜로 녹일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 고대 거인한테 붙는다는 건 너무 위험해 보였다.
-흑흑이, 골골이! 따로 날아올라!
태현은 데스 나이트 골골이를 소환해 흑흑이 위에 태운 뒤 바로 옆으로 움직이게 했다.
혼란 주기!
뒤에서 고대 거인이 짜증을 냈다.
-작작해라 이 아키서스놈!
용용이와 흑흑이로 갈라지자 고대 거인은 누구를 쫓아가야 하나 고민이 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고대 거인은 정말 똑똑했다.
-아키서스한테 호구 잡힌 드래곤 종족이 골드 드래곤이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냐!
“!!”
[카르바노그가 저거 진짜 만난 놈들 중 가장 똑똑하다며 감탄합니다!]
일단 태현을 만나자마자 귀부터 막는다는 점에서 지능을 고평가해 줄 만했다.
-블랙 드래곤은 가짜겠지! 죽어라!
-…….
열심히 날던 흑흑이는 울컥했다. 자기를 안 쫓아오는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누구를 가짜 취급하는 거야?’
블랙 드래곤도 아키서스한테 호구 좀 잡힐 수 있지! 드래곤 차별하냐!
* * *
고대 거인은 집요하고 끈질겼다. 저런 스펙을 가진 보스 몬스터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정말 대단했다.
‘아. 저거 진짜 허기의 던전까지 끌고 가야 하나.’
영지에 설치한 아키서스 허기의 던전!
강한 보스 몬스터를 던져 놓기 딱 좋은 곳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거기까지 따돌리는 것도 힘든 데다가 가는 길이 쑥대밭이 될 테니까.
거기 생각이 날 정도로 집요하다는 뜻!
끼에에에엑!
와이번 무리가 나타났다. 태현은 보자마자 산탄 폭탄을 던져 스턴을 걸어준 뒤 경로에 있는 놈들에게 폭딜을 넣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의 돌격> 쿨타임이 초기화되었습니다!]
[<반격의 원>으로 와이번의 화염을 튕겨내는데 성공합니다!]
[아키서스 검법이 추가 효과를 불러옵니다. 와이번에게 스턴 효과를 줍니다!]
[……]
시간만 주면 더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뒤에서 거대 거인이 고함을 지르며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저 와이번 놈은 지치지도 않나?’
저 덩치를 태웠는데!
[앞에 보라며 카르바노그가 비명을 지릅니다!]
“!”
앞쪽의 산봉우리에서 보이는 고대 거인의 머리. 또 다른 고대 거인의 모습이었다.
‘돌겠군 진짜.’
태현의 머리는 그 순간 빠르게 회전하며 몇십 가지 생각을 했다. 용용이를 다른 곳을 보낸 다음 땅으로 내려가야 하나? 영혼관 권능은? 전투 천사로 변신해서 따로 날까? 아니면 오토바이를 꺼내서….
그 순간 누군가가 산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다른 생각을 하던 태현은 무심코 용용이 위에 그 사람을 태웠다.
‘뭐야?!’
여기 있을 플레이어라면….
“어르신?”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니거든?”
물론 그 플레이어는 유 회장이 아닌 이세연이었다.
“뭐야?! 함정인가?!”
“여기서 뭔 함정이야!”
이세연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외쳤다.
공중 부양 건 상태에서 아래로 뛰어내려 추격을 따돌리려 하는 와중에 나타났는데 뭔 함정!
이세연이 왜 여기 혼자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태현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앞뒤로 거인이 나타난 상태였던 것이다.
-용용아! 최대 속도로 아래로 꺾어!
앞뒤로 포위된 이상 산맥 아래쪽으로 날아가 시간을 벌어볼 생각이었다.
콰콰콰콰콰쾅!
“?!”
뒤에서 들리는 소리.
-이놈이 남의 영역에 뻔뻔하게 잘도!
-여기가 네 영역이라고 이름 붙여놨느냐?
두 거인이 서로 보자마자 주먹을 날린 것이다.
한 번 한 번 칠 때마다 주변의 산봉우리가 무너지고 바윗덩이가 쪼개져 나가는 괴력!
“…따돌렸나?”
“…그런 것 같은데…?”
태현은 이세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얘 왜 혼자 있지?’
이세연은 태현처럼 혼자 다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일단 직업부터가 네크로맨서 아닌가. 태현처럼 생존력이 강한 직업이 아니었다. 호위는 필수였다.
이세연은 철두철미한 플레이어였고, 소환수뿐만 아니라 길드원들을 데리고 다니는 걸로 알았는데…?
[카르바노그가 지금 바로 떨어뜨리자고 말합니다!]
너만 떨어지면 아스비안 제국 황제는 나야!
‘그거 정말 솔깃한 아이디어군.’
물론 현실성 없는 소리였다. 이세연 잡는다고 황제 자리가 태현에게 들어오겠는가.
‘그리고 이세연은 마법 때문에 떨어뜨려봤자 안 죽을 거야.’
“넌 왜 여기 있냐?”
“…이야기하자면 길어. 넌 왜 여기 있는데?”
“…나도 이야기하면 긴데.”
서로 한두 줄로는 설명이 힘들다!
태현은 일단 경계하면서 계속 용용이를 몰았다.
거리는 벌려야 했으니까.
‘뒤에서 찌를 거 같아서 신경이 쓰이는데.’
무한불신!
[카르바노그가 걱정 말라고 합니다.]
‘카르바노그… 이세연을 믿는 거야?’
[아니. 네크로맨서니까 찌르지 않고 마법을 쓸 거라고 말합니다.]
‘…그렇군!’
“왜 그런 표정으로 봐?”
“네가 날 없애고 리그 1위를 노리겠다는 야심을 가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거든?!”
이세연은 울컥했다.
사실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고맙다고 말할까 말까 고민 중이었던 것이다.
지금 사람이 조용히 고마워하고 있는데 무슨 누명을!
이세연은 상황을 설명해 주려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말해주면 이 자식은 분명….
-뭐?? 몬스터 한 마리한테 파티가 박살이 나서 흩어졌다고?? 아니, 이세연 씨 맞으세요?? 이세연 씨 아닌 것 같은데??
…라면서 신나게 놀릴 게 분명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남의 소환수에 타고 있으니 너부터 말하지?”
“…….”
“흠. 말 못하는 거 보니 고대 거인한테 잘못 걸려서 파티원들이 박살 났나보군. 소환수도 다 역소환 당했나?”
“…!!”
이미 다 눈치채고 있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