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11화
판온에서 레벨 차이, 그러니까 스탯 차이가 심하게 나면 이런 일들이 있었다.
자기가 하는 공격은 다 빗나가거나 막히는 상황.
이렇게 되면 숫자가 많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싸움이란 건 일단 상대한테 공격할 수단이 있어야 가능한 법!
고대 거인은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거인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거인은 그래도 덩치 때문에 좀 둔한 감이 있었지만 고대 거인은 쏜살같이 빨랐다.
크기도 몇 배인 거대 몬스터가, 압도적인 힘과 민첩 스탯을 앞세우고 덤벼든다.
거기에 방어력과 저항력이 어마어마해 공격과 스킬은 통하지도 않는다!
이세연과 스미스는 동시에 외쳤다.
“후퇴!”
보스 몬스터를 잡을 수 없을 때에는 바로 후퇴해야 했다. 던전이든 필드든 어디든 간에!
그러지 않으면 남는 건 전멸뿐.
“이 자식이 감히!”
“그만두십시오!”
그러나 선수들 중 몇 명은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다.
한 대라도 맞춰보겠다는 객기!
선수로서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욕심과, 랭커로서의 자존심이 섞여 일어난 일이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고대 거인은 뒤에서 덤벼드는 선수들은 완전히 무시하고 도망치는 놈들을 잡으려 했다.
“다리부터 공격해! 쓰러뜨린다!”
훤히 드러난 뒷모습에, 선수들은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 스킬들을 때려 박았다.
콰콰콰콰쾅!
[……]
[공격이 튕겨나갑니다!]
[무기의 내구도가 크게 내려갑니다!]
[……]
이동력을 깎으려고 다리를 집중적으로 노렸는데도, 데미지가 전혀 없다는 충격적인 결과!
고대 거인은 귀찮았는지 뒤차기를 날렸다.
퍽!
반응할 틈도 없는 빠르기에 선수 둘이 또다시 치여 하늘 위로 날아갔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있었다.
욕심 부리고 나선 선수들 덕분에 어그로가 완전히 그쪽에 쏠린 것이다.
이세연은 굳이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전속력을 다해 흩어져서 도주!
스미스도 바로 말머리를 돌려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남은 선수들이 몇 명 있긴 했지만 그들을 구해줄 방법은 없었다. 알아서 살아 나와야 했다.
‘아스비안 제국 이 또라이들…! 이딴 퀘스트를 내줘?!’
* * *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3초마다 한 번씩 투덜거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드워프들이 너무 잘나갔기 때문!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황제를 피해 사막으로 도망쳐 지하에서 힘들게 힘들게 살고 있는데, 드워프들은 이런 좋은 지하를 잡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배가… 배가 너무 아프다!
고대 제국 시절부터 있던 통로들은 시작일 뿐이었다.
통로를 지나 갈카드 부족의 지하 도시에 도착하자 드넓은 지하 시설이 일행들을 반겼다.
성 정도 되는 공간이 지하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땅을 파서 공간을 만든 게 아니었다.
곳곳에 단단한 관문들이 설치되어 있고, 길과 길 사이에는 각종 고풍스러운 드워프 건물들이 있었다.
하루 이틀에 생긴 게 아닌, 아주 예전부터 여기에 자리 잡고 살았다는 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번영한 왕국!
드워프 부족들은 자기들 부족이 사는 곳을 작아도 마을이라고 하지 않고 ‘왕국’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런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
“전통 있네요.”
“다들 드워프들 사는 곳 가보고 싶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거인들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땅딸막한 놈들 좋은 곳에 산다. 여기 용케 다 만들었다.”
“기술 대단하다.”
“아 별거 아니라니까!”
고블린들은 거인들마저 넘어가자 더욱더 분통을 터뜨렸다.
드워프들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갈카드 드워프 왕국>을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경험치가…]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
“여기서 기다리시면 안에 들어가서 말을 전하겠습니다.”
굳게 닫힌 관문 앞에서 드워프들이 그렇게 말했다. 태현은 그러라고 하려다가 멈칫했다.
‘…근데 말을 전할 수가 있나?’
태현은 드워프 순찰대원들이 돌아가서 할 말을 생각해 봤다.
-여러분! 저희가 밖에 나가서 이 산맥에 찾아온 손님을 만났습니다. 그 손님은 매우 뛰어난 대장장이 기술과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는 인간 왕족인데, 명성이 높고 수많은 업적을 갖고 있는 영웅입니다!
-오오… 그런 자라면 왕국으로 들여도 되겠군. 어떻게 만났느냐?
-고블린과 거인과 악마를 데리고 오는 걸 지하 통로에서 만났는데, 저희 전차를 박살 냈습니다!
-…뭐라?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설득될 것 같지가 않았다.
드워프들이 ‘저 순찰대 놈들이 악마를 만나서 미쳤나 보다!’ 하고 반응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할 일!
[카르바노그가 직접 설득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 나도 그래 보여.’
“아니. 그냥 드워프들을 여기로 데리고 나오는 게 나을 거 같다. 내가 직접 말할 테니까.”
“?”
드워프 순찰대는 태현이 왜 저러나 싶어 의아해했다.
“폐하께서 직접 설명하고 싶으시다면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래그래. 부탁하네.”
* * *
갈카드 드워프 왕국의 지하성채 앞에서 아키서스 포병대와 같이 오순도순 기다리고 있던 태현.
“…잠깐. 소리 들리지 않나?”
“예? 폐하. 저, 저희 침 안 뱉었습니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허겁지겁 변명을 했다.
얄밉고 재수없어서 침을 좀 뱉긴 했는데 그 소리를 들었단 말야!?
“그 소리가 아니라…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
태현 일행은 곧바로 일어섰다. 지하성채 안에서 무슨 소란이 일어난 것 같았다.
-…다! …마다!
-전투 준비! 전차를 끌고 와라!
-전부 일어나라! …가 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선배님. 혹시 저희를 공격하려는 거 아닙니까?”
정수혁이 긴장된다는 듯이 물었다. 태현 일행은 서로 빤히 쳐다봤다.
…그, 그런가??
“선배. 먼저 선공하죠.”
유지수가 바로 총과 활을 꺼내들고 말했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눈빛은 타오르고 있었다.
싸우게 된다면 선빵이 최고!
누구한테서 아주 좋은 것만 배우고 있었다.
“상황을 좀 확인해 보고 싸워야 하지 않을까?”
“맞아요. 확실하지 않은 상황인데….”
최상윤과 이다비는 유지수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공격한 다음에 확인해도 되잖아요!”
“헉. 저 궁수 논리적이다.”
“반박할 수가 없다.”
거인들은 유지수의 논리에 감탄했다.
먼저 치고 확인하면 되잖아!
그러는 사이 태현은 고민하고 있었다.
싸우는 거야 솔직히 언제든 싸울 수 있었다.
태현이 언제는 준비를 하고 싸웠는가.
지금 일행도 바로 버프 건 다음 움직이면 전투에 돌입 가능했다. 포병대도 물론이고….
고민하는 건 드워프들이 왜 저러나!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진짜 우리인가?”
찔리는 게 많았기에 태현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던 게 정말 현실로 일어났단 말인가!
[카르바노그가 그러니까 겉모습 좀 신경 쓰자고 말합니다.]
이제까지 운 좋게 태현이 권위로 찍어 누르거나, 태현을 너무 좋아하는 종족들을 만나서 망정이지 아키서스 포병대는 너무 겉모습이 흉악했다.
악마들을 철창에 가둔 채 끌고 다니면서 힘을 뽑아서 대포에 충전시키는데,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광경이란 말인가.
‘근데 이걸 뭐 어떻게 바꾸지? 악마들을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여러모로 불편할 텐데.’
[카르바노그가 악마들은 당연히 데리고 다녀야 한다고 말합니다.]
‘?’
[대신 겉에 예쁘장한 토끼 무늬 천을 둘러서 가리는 게 어떠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
콰콰콰쾅!
-악마 놈이 더 날뛰지 못하게 잡아! 마법 대포를 발사해!
-놈이 밖으로 도망친다!
“!”
고민하던 태현은 반색했다.
“다행이다! 우리가 아니었어!”
“정말 다행입니다!”
태현 일행이 환호하자 용용이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이여. 드워프들 도시에서 악마가 나타난 건데 다행은 아니지 않나?
“아. 하긴 그렇군.”
생각해 보니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드워프들이 봤다면 ‘저 저 저 악마 데리고 다니는 놈들이 결국 사악한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하고 했을 테니까.
“폐하! 드워프들을 도와주십시오!”
아키서스 포병대 드워프들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렇게 말했어도 도와줄 생각이었다.”
일행의 모두가 싸울 준비가 된 상태였다. 투덜거리는 고블린들만 빼고.
“안으로 들어간다! 지형이 좁고 복잡할 테니 안 부수게 조심하고!”
쾅!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굉음과 함께 관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태현은 순간 가슴이 철렁거렸다.
“…너희 중에 누가 쐈니?”
“안 쐈어요! 선배!”
유지수가 기겁해서 손을 흔들었다. 태현한테 그런 오해를 받는다면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저희도 안 쐈습니다!”
포병대 드워프들도 기겁해서 외쳤다. 도와주러 가는데 왜 대포를 쏘겠는가.
모두의 시선이 고블린들한테 향했다. 고블린들은 펄쩍 뛰었다.
“저희가 아무리 그래도 명령도 어길 놈들은 아닙니다!”
“흠. 그래. 난 너희를 믿는다.”
“폐하…! 역시…!”
“근데 저기 뒤에 좀 가 있을래? 별 건 아니고 그냥 너희들은 좀 빠져 있으라고.”
“폐하! 못 믿으시는 거 맞잖습니까!”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우리 사이의 뜨거운 믿음과 우정이 있는데!
그러나 태현은 냉정했다.
‘이놈들이 제일 수상해.’
[카르바노그가 앞에 보라고 외칩니다!]
-하! 너는 또 어떤 잡놈이느냐!
“?”
그랬다.
고블린들이 드워프 관문을 부순 게 아니었다. 도시 안에 나타난 악마가 안에서 관문을 부수고 나온 것이었다.
“…고블린들! 난 너희를 믿고 있었다!”
“폐하! 역시!”
[지하 연합 고블린들이 크게 감동합니다!]
[친밀도가 오릅…]
이렇게 대충 대해도 내려가지 않는 친밀도!
고블린들에게는 정말 마성의 남자였다.
관문을 부수고 나온 악마는 태현 일행이 그를 무시하자 분노했다.
악마는 원래 오만하고 건방지고 성질 더럽고 비열하고 뒤끝 많은 종족.
엎드려서 벌벌 떨어도 모자랄 판에 저렇게 건방지게 굴자 더욱 화가 났다.
-하찮은 필멸자 놈! 드워프들과 같이 죽여주마!
“발사.”
-?
꽈꽈꽈꽝!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벼락같은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미 장전을 완료한 드워프들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십여 개의 대포를 작동시켜 집중포화를 시작했다.
-저도쏘면안될까요주인님?!
“네가 쏘면 경험치 안 들어가니까 참아.”
유지수는 총을 뒤로 둔 채 활을 꺼내 스킬을 사용했다. 정수혁도, 이다비도 각종 원거리 스킬을 퍼부어댔다.
“이다비. 딜은 충분한 것 같으니 버프 위주로 걸어줘.”
“네.”
이다비는 골드를 꺼내 바로 사제 스킬을 사용했다.
포탄에 신성 버프까지 추가로 걸리자 데미지는 더욱더 아프게 들어갔다.
-잠ㄲ… 잠깐! 잠ㄲ!
폭발하는 소리 사이에서 악마가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병대 드워프들은 태현을 쳐다보았다. ‘멈출까요?’ 하는 의미였다.
그러나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끝내버려.”
악마를 잡는 것도 좋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일단 악마를 충분히 데리고 왔는데다가 상대의 정체를 잘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괜히 잡으려고 위험을 만드는 것보다는 숨통을 끊는 게 나았다.
꽝! 꽈르릉! 꽈꽈꽝!
태현이 끝내버리라고 하자 드워프들은 망설이지 않고 신나게 갈겨댔다.
거인들은 재빨리 포탄을 들어 옮긴 후 척척 넘겼다.
-잠ㄲ! 잠깐이라고 했.. 개ㅈ… 크아아아악!
[보물에 봉인되어 있던 악마, 칼카손이 쓰러졌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전술 스킬이…]
[레벨 업 하셨습니다!]
“어?”
태현은 의아해했다.
의외로 강한 놈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