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10화
‘왜? 내 수준으로 잡기 힘든가?’
[카르바노그가 자기가 아는 고대 거인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말합니다.]
“!”
태현은 놀랐다.
태현의 스탯이나 스킬에 대해 잘 아는 카르바노그였다. 그런 카르바노그가 저렇게 말릴 줄이야.
[고대 거인은 아직 신들이 남아 있던 고대 시절에 신들에게 직접 덤벼들어 싸우던 놈들이라고 말합니다.]
판온에서 고대는 온갖 괴물들이 설치던 시대였다.
신들도 대륙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악마들도 심심하면 대륙에 더 자주 놀러 왔고, 지금 나오면 레벨 1000은 될 법한 마법사들이 제국을 돌아다니고, 느부캇네살 같은 놈은 뭘 잘못 먹었는지 ‘내가 신이 되겠다!’ 하고 다니고….
그렇기에 보통 직업에 ‘고대’가 들어가면 일단 강하고 센 거 아니겠는가.
‘신들하고 직접 싸우다니. 대단한데.’
태현은 솔직히 놀랐다.
<아키서스의 화신>인 태현이었기에 신의 권능이 얼마나 강력한지 느끼고 있었다.
불완전한 상태인데도 이 정도!
그런데 신들하고 정면으로 맞붙었다니….
[당연히 패배했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 탓에 고대 거인들은 저주를 받고 지금처럼 변한 거라고 합니다.]
신들에게 저항한 대가는 무거웠다.
고대 거인들은 잘생긴 외모, 뛰어난 두뇌, 각종 강력한 능력들을 전부 잃어버리고 지금처럼 변한 것이다.
몰락한 수준이 이 수준!
‘무시무시하군.’
종족 중에서 거인은 딱히 모시는 신이 없었다. 거인들의 신은 이름 잃었다는 표현도 자주 나왔고.
덕분에 아키서스를 믿게 하기도 쉬웠지만….
‘그런 사정이 있었단 말이지?’
[카르바노그도 그때 있었다고 말합니다.]
‘뭐? 진짜? 고대 거인들과 싸웠어?’
[그냥 옆에서 웅크리고 지켜봤다고 말합니다.]
‘그… 그래. 혹시 아키서스도 있었나 그 자리에?’
[아키서스는 남 속이는 걸 좋아하지 직접 싸우는 건 그닥…]
‘…….’
어찌 되었든 간에 태현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미친 고대 거인은 건드리지 말아야겠군.’
카르바노그의 말을 들어보니 고대 거인은 아직 플레이어가 잡을 수준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몬스터와 상대해서 좋을 게 없는 것이다.
‘어차피 퀘스트 목적은 아키서스의 권능이다. 드워프들하고 친하게만 지내면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
다른 플레이어라면 이 산맥 위를 돌아다니면서 한두 번은 거인과 마주치겠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드워프들과 친해져서 이 산맥의 지하 통로로 돌아다니겠다!
“이런 통로가 더 있나?”
“예. 어르신들의 어르신들이 만든 종족의 자랑이죠.”
“흥. 뭐 그런 거 가지고….”
“너희들 악마 성 띄워봤냐?? 황제 성 띄워봤냐고!”
뒤에서 고블린들이 투덜거렸지만 드워프들은 무시했다.
“이 통로를 이용해서 산맥의 다른 드워프 부족들을 방문하고 싶은데 가능한가?”
“그건 좀….”
“어째서지?”
“통로 곳곳이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저희도 다른 드워프 왕국들을 방문할 때에는 밖으로 나가서 갑니다.”
“으음.”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밖에 나가야 하나?
[카르바노그가 고대 거인이 있다면 나가지 말자고 옷깃을 잡습니다.]
‘일단 드워프들 방문해 보고. 걱정 마. 나도 최대한 싸움은 피해 볼 테니까.’
* * *
랭커.
전 세계의 수많은 판온 플레이어들 중에서 레벨로 따져서 최상위권에 드는 플레이어들.
-최상위권 랭커들은 레벨 300을 목표로 달리고 있는데 총 스탯이….
-레벨 200 갓 넘긴 고렙 플레이어들 다섯 명하고 붙는데 그냥 썰어 버리더라….
랭커에 관한 이런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았다. 게시판에서 할 일 없는 플레이어들은 ‘누가 더 세냐’, ‘솔직히 레벨 220 정도면 랭커 아니냐’ 같은 쓸데없는 주제로 싸우곤 했다.
이세연 생각에 랭커는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가 아닌, 존재감이 높은 플레이어였다.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분위기를 바꾸는 플레이어!
그리고 이세연은 그 예시에 가장 잘 맞는 게 태현이라고 생각했다.
“거인 발견했습니다!”
“정지! 포위할 때까지 기다려.”
그러나 이세연은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그녀 본인도 그런 플레이어라는 것!
태현 일행이 아무리 강한 적을 만나도 태현을 믿고 겁을 먹지 않는 것처럼, 이세연 일행도 그랬던 것이다.
이세연 때문에 파티원들은 여기가 자이언 산맥인데도 불구하고 겁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다른 문제를 불러왔다.
-우리가 먼저 내려갈까?
뉴욕 라이온즈의 후보 선수들은 시선을 교환하며 귓속말을 나눴다.
-포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잖아? 멋대로 굴었다가 뒷감당 어쩌려고?
이세연은 카리스마가 있었다.
뉴욕 라이온즈의 후보 선수들이 전부 다 랭커 끝자락에는 드는 플레이어라지만, 이세연과 입장은 천지 차이!
명령을 어기는 건 매우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포위하는 순간 내려가자는 거지. 딱히 어기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면.
-오… 그, 그럴까?
하지만 선수들은 욕심이 있었다.
뉴욕 라이온즈의 주장. 스미스.
유성 게임단의 주장. 이세연.
이 둘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
게다가 여기 퀘스트는 나중에 공식 영상으로 올라올 가능성이 컸다.
뉴욕 라이온즈는 워낙 선수단 구성이 탄탄해 후보 선수들이 주전으로 올라오기 힘든 게임단.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만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내가 활약한 게 찍혔다면 그만큼 인기가 올라가겠지.’
꼭 실력뿐만이 아닌, 인기도 요소 중 하나였다. 수많은 팬들이 A 선수를 원한다면 팀도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었다.
“지금!”
“간다!”
“!”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산비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거인을 발견했지만 이세연은 서두르지 않았다.
거인족은 강력한 몬스터였고, 김태현과 달리 다른 플레이어들은 거인족한테 한 대 맞으면 온갖 충격 관련 상태 이상에 걸렸다.
어마어마한 힘 스탯 때문!
게다가 여기는 워낙 다른 몬스터들도 많으니, 한 마리를 잡을 때에도 확실하게 포위해서 빠르게 끝내려고 했는데….
라이온즈 선수들이 갑자기 돌격해 버린 것이다.
‘뭐하는… 이럴 때가 아니지.’
“전원 공격! 스미스. 안으로 들어가!”
“알겠습니다!”
스미스도 이세연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걸 깨달았는지 페가수스를 움직여 빠르게 돌진했다.
-위대한 빛의 광휘, 기사의 울부짖는 돌격!
[<위대한 빛의 광휘>가 파티원들에게 추가 버프를…]
[……]
쐐액!
기사 직업은 탈것을 타고 있을 때 그 위력이 몇 배로 더해지는 직업이었다.
페가수스를 탄 스미스는 마치 쏘아지는 화살처럼 날아갔다.
-스미스가 날아오는데?
-공격해, 빨리!
선수들은 그걸 보고 더더욱 서둘렀다.
늦었다가는 스미스가 다 잡겠다!
-요아힘 검법! 황소의 참격!
-이글거리는 철퇴!
꽝! 꽝!
-으어, 으어!
갑작스러운 기습을 맞은 거인은 깜짝 놀라 몽둥이를 들고 휘둘렀다.
쐐애애액!
어마어마한 소리였지만, 선수들은 맞지 않았다. 이런 거에 맞을 정도면 랭커가 아니었다.
선수들이 타고 있는 탈것은 <붉은 거대 괴물 새>로, 빠르고 HP가 높아 고렙 플레이어들이 애용하는 탈것.
그들은 잽싸게 날아올라 공격을 피했다.
-아프다! 아프다!
거인은 바위를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낭비한 사이 이세연은 언데드 군세를 돌진시켰다.
산비탈 위, 아래, 옆에서 포위하듯이 몰고 들어오는 정예 언데드 군세!
해골마를 타고 나타난 정예 데스 나이트들이, 푸르게 타오르는 마검을 들고 사방에서 덤벼들었다.
-어둠으로부터의 근원, 죽음의 오오라, 불멸의 뼈, 사악한….
[언데드가 뿜어내는 죽음의 기운이 거인을 중독시킵니다!]
[언데드가…]
파파파파팍!
마치 개미가 사람을 물어뜯듯이, 데스 나이트들은 사방에서 솜씨 좋게 창과 검을 찔러댔다.
쾅! 쾅!
거인은 울부짖으며 몽둥이를 찍어댔다. 데스 나이트들은 선수들과 달라 한두 명씩 박살 났지만, 애초에 언데드 군세는 한두 명씩 잡는 것으로는 이길 수가 없었다.
네크로맨서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해서 부활하고 늘어난다!
“언니. 저도 내려갈까요?”
“아니. 내 옆을 지켜줘.”
김현아도 만만찮은 딜러였지만, 이세연은 내보내지 않았다.
이세연은 이번 퀘스트에 길드원 몇 명을 데리고 왔다.
전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호위를 위해서!
리그 참가 중인 이세연은 팀의 핵심 전력.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죽으면 안 됐다.
빡빡한 경기 일정 탓에 무조건 1패, 혹은 2패까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페널티까지 생각하면….
“네! 꼭 지킬게요. 아자르, 게파일! 스킬 준비하고 있지?”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시죠!”
신입 길드원들은 의욕이 흘러넘쳤다. 이세연이 둘을 뽑은 이유는 갖고 있는 스킬 때문이었다.
호위에 매우 적합한 스킬!
‘거의 잡긴 했는데… 어떻게 소환을….’
이세연이 거인을 잡은 뒤 어떤 언데드로 불러낼지 고민하는 그 찰나.
이변이 일어났다.
“?”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산봉우리가 높아졌나?’ 하고 처음에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타난 건 몬스터였다.
고대 거인!
[타락한 고대 거인이 울부짖습니다!]
[공포 저항에 실패합니다! 상태 이상…]
[<고대 거인의 울부짖음> 디버프에 걸립…]
[……]
“진형 재정비!”
이세연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반응했다. 데스 나이트들이 빠르게 날아오르고 다시 포위망을 구축하려 했다.
그러나 고대 거인은 예상을 초월했다. 무려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암석 폭풍 소환!
하늘에서 미친 듯이 바윗덩이들이 쏟아져 내려오자 진형을 갖출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들부터 데스 나이트들까지 재빨리 방어막을 치고 거리를 벌렸다.
그사이 고대 거인은 몸을 완전히 드러냈다.
‘크다!’
거인도 보통 사람의 2배는 넘는데, 그 거인을 압도할 만한 크기라니.
선수들은 그 덩치에 무심코 침을 삼켰다. 거대한 몬스터는 수없이 많이 잡아봤는데도 왠지 모를 위압감이 상대에게는 있었다.
[타락한 고대 거인이 <거인족의 분노>를 사용합니다.]
“공격 들어간다!”
“잠깐만! 멈추십시오!”
스미스가 말리는데도 선수들은 선공을 시도하려 했다.
그 순간 고대 거인의 몸이 사라졌다.
산비탈을 박차고 날아, 허공에 있던 선수 둘을 그대로 양손으로 붙잡은 것이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
[붙잡혔습니다!]
[탈출하지 않을 경우…]
[페널티가…]
[HP가 0이 되어 사망했습니다.]
“…….”
“…….”
보통 거대한 몬스터한테 붙잡히면 탈출하기 전까지 계속 데미지를 입었다.
당연히 그사이 탈출하란 건데….
고대 거인은 붙잡고 1초 만에 그대로 로그아웃을 시켜버렸다.
그 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큰일 났다!!
적을 잘못 판단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드는 싸늘함!
등골이 싸늘해지는 감각에 모두가 일시적으로 움직임이 멈췄다.
“언니…!”
“모두 물러서!”
-흑색 신전의 저주, 끓어오르는 악몽의 밤, 유령의 원한 섞인 비명, 혹한의 시선!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날아가는 상급 저주들의 연타.
고대 거인을 묶으려는 속셈이었다.
[고대 거인의 피가 <흑색 신전의 저주>를 견뎌냅니다! 저주의 효과가 90% 감소합니다.]
[고대 거인의 피가 <끓어오르는 악몽의 밤>을 견뎌…]
[……]
[……]
‘…….’
이세연은 경악했다.
거인족 몬스터들을 많이 상대해 왔기에 거기에 맞춰서 준비를 해왔는데, 이건 완전히 계산 밖이었다.
저주뿐만이 아니었다.
[<철혈의 일격>이 방어를 뚫지 못합니다! 데미지를 주는 데 실패했습니다.]
[<요아힘 검법>이 방어를 뚫지…]
[……]
공격 스킬들 대부분이 막혀버렸다.
거대한 벽을 상대하는 것 같은 압도적인 막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