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09화
어째서 진심은 통하지 않는가!
아키서스 포병대 드워프들은 그렇게 한탄했다.
그러나 드워프 순찰대들에게는 당연한 반응!
아무리 동족이라도 봐주는 한계가 있었다.
뒤에서 악마와 거인, 키메라까지 포함해서 데리고 오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인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드워프 놈들이….”
“그만해라. 드워프 통로 맞잖아.”
이 와중에도 고블린들이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자 태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폐하. 드워프 놈들이 뭐하러 이렇게 커다란 통로를 만든단 말입니까?”
이 지하 통로는 말이 지하 통로였지, 거인들과 악마들이 들어간 감옥도 문제 없이 오갈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넓었다.
고블린들이 괜히 ‘이건 드워프가 판 게 아니야!’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
드워프들이 팠다면 이것보다 훨씬 작게 파도 되지 않았겠는가.
[<드워프 철갑증기전차>가 등장합니다!]
“아! 왜 통로가 넓은지 알겠다!”
“그렇다! 바로 이거 때문이었다!”
뒤에 있던 거인들이 이마를 딱 치며 감탄했다.
드워프들만 오가는 게 아닌, 각종 대형 병기들을 오갈 수 있게 만든 거구나!
“지금 감탄할 때냐! 방어 준비! 방어 준비!”
“악마 놈들 에너지 충전시켜! 바로 요격한다!”
아키서스 포병대 드워프들은 기겁해서 외쳤다.
같은 드워프였기에 서로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워프!
고블린보다 뛰어난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갖고 있는 장인 종족.
고블린들과 달리 위험하고 불안정한 기계공학 스킬을 잘 쓰지는 않지만, 그건 그래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드워프 전통의 대장장이 기술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실제로 드워프는 고블린들보다 더 잘 나갔다.
고블린들은 부족 단위로 흩어져 있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드워프들은 산맥 아래 좋은 땅에 자리 잡고 전통 깊은 왕국들을 유지해 나갔다.
고블린들이 싫어하는 이유가 있는 것!
“전투 준비. 일단 대화를 하더라도 제압을 하고 해야겠군.”
태현 일행도 공격을 위해 진형을 잡았다.
드워프들이 덤빈다고 하지만 여기서 그런 거에 겁먹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겁을 먹기에는 너무 강한 적들과 싸워 온 이들!
드워프들이 강하고 단단한 걸로 소문이 났다지만, 악마 공작이나 죽음의 반신과 비교하면 약하게 느껴졌다.
‘근데 드워프 놈들 기계공학 안 쓴다고 하지 않았나? 뭔 전차?’
판온에는 총도 있고(원시적이었지만), 로봇 같이 생긴 골렘도 있고, 있을 건 다 있긴 했다.
탱크 같이 생긴 전차도 당연히 있었다. 태현도 지하 연합 고블린들의 소굴에서 비슷한 걸 본 적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첨단 기계공학 스킬로 만들어진, 잘 터지는 결과물!
드워프들은 기계공학 스킬을 잘 안 쓸 텐데?
그 답은 곧 나왔다.
쿠르르릉!
[<드워프 철갑증기전차>가 <마법 부여된 강철 장갑>을 작동시킵니다!]
[전방으로 <중급 화염 폭풍>이 쏟아져 나옵니다!]
“!”
기계공학이 아니라 마법이잖아?!
드워프의 전차는 대장장이 기술 스킬과 마법으로 돌아가는 게 분명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들 중 상위 스킬에는 마법검 제작이나 마법 부여도 있었으니 드워프들이 이런 마법에 능숙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렇지만….
태현은 살짝 실망을 느꼈다. 그리고 놀랐다.
‘내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한테 물들었군…!’
원래라면 마법을 보면 ‘와 마법이다 부러운데?’라고 했을 텐데, ‘기계공학이 아니라 마법이라니!’ 같은 반응을 보이다니.
[카르바노그가 화신은 원래 그랬던 것 같다고 말합…]
[사디크의 권능으로 화염을 흡수합니다!]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말을 무시하고 화염을 흡수한 다음 전방으로 뛰었다.
‘고대의 망치.’
빠르게 무기가 바뀌어졌다.
무생물 상대로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인 무기, <고대의 망치>!
활활 타오르는 오러는 압도적인 기세를 내뿜었다. 거대한 전차 안에서 드워프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저, 저 망치 봐!
-저건… 저건 사야 해!
‘잘못 들었나?’
-신의 예지,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드워프 철갑증기전차>의 장갑이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화염 데미지를 입힙니다!]
[사디크의 권능으로 저항에…]
<드워프 철갑증기전차>는 굴러다니는 쇳덩어리 같은 공성 병기였다.
일종의 소형 이동요새!
만약 태현이 평범한 플레이어였다면 때릴 곳이 없어서 막막했을 것이다.
장갑은 마법 부여까지 되어 있어서 튼튼하지, 그렇다고 억지로 때리려고 접근하면 사방으로 마법을 뿌려대지….
깔리기라도 하면 어디 한 군데는 박살이 날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기본적으로 상성이 너무 좋았다.
‘심지어 공격도 화염 위주군.’
태현은 권능과 회피를 믿고 아래로 낮게 치고 들어갔다.
단단하다지만 태현의 공격력은 때리면 장갑을 그대로 찢어발길 정도였다.
그리고 <신의 예지>로 보니 전차도 약점은 명백했다.
‘아래 바퀴!’
꽝!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드워프 철갑증기전차의 바퀴가 그대로 파괴됩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
끼이이익!
바퀴가 부서지자 철갑증기전차는 더 이상 조종이 되지 않았는지, 빙글빙글 돌더니 벽에 충돌했다.
“훔치자!”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걸 본 지하 연합 고블린 레인저들은 신이 나서 외쳤다.
드워프들의 병기를 뺏을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즐겁다!
“아니. 대화를 시도한다.”
“폐하! 드워프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닌….”
“아니야! 폐하는 폭탄으로 하는 대화를 말하시는 거야!”
그건 대체 어느 세계의 대화니?
태현은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말했다.
“이 산맥에서 해야 할 퀘스트가 한두개가 아니고 얻어야 할 정보가 한두 개가 아닌데, 만나는 종족마다 다 싸울 수는 없다. 드워프라면 그나마 이야기가 통할 테니 대화를 나눠야 해.”
태현이 만나자마자 비교적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종족이 고블린, 드워프였다.
그런 드워프와 싸워서 좋을 게 없었다.
미개척 영역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거기 살고 있는 종족들을 찾아 친밀도를 쌓는 것!
그래야 마을에도 머물고 각종 도움도 받지 않겠는가.
[카르바노그가 그걸 아는 사람이 왜 마계에서는…]
‘쉐도우 엘프하고 친하게 지냈거든?’
태현이 명령을 내리자 고블린들은 매우 아쉽고 아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튀어나와라, 땅딸막한 드워프 놈들!”
“할 줄 아는 건 쇳덩어리만 만지작거리는 놈들!”
“마법? 마~법? 어디서 그런 걸 배워가지고 말이야!”
-…….
[설득에 실패했습니다.]
당연히 전차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너희들은 그냥 뒤로 빠져라.”
“크흑…! 자신 있는 설득이었는데…!”
“드워프들 앞으로.”
“예! 저희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포병대의 드워프들이 다가섰다. 고블린들은 물러서면서 궁시렁거렸다.
“저놈들이 뭐 그리 설득을 잘 한다고….”
“드워프가 얼마나 꽉 막힌 놈들인데 설득을…!”
‘고블린들이 내 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아키서스 교단 같아지는 것 같은데.’
태현은 떨떠름한 눈빛으로 지하 연합 고블린들을 쳐다보았다.
유능하긴 유능한데 자꾸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제발 아키서스에 물들지 말아다오!
“후. 고블린 놈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드워프 핏줄에 내려오는 전통과 격식을 모른다, 이 말이야.”
“서로 만나면 죽일 듯이 싸우는 고블린 놈들과 달리, 우리 드워프는 전통을 알기에 동족을 존중하지. 동족들이여! 우리가 왔네! 얼굴을 내밀어주게나!”
포병대 드워프들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확실히 드워프들은 고블린들과 달리 종족 안에서는 사이가 꽤 좋은 편이었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종족!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가 좀 멀쩡해 보이는 드워프일 때의 이야기였다.
-악마를 데리고 온 놈이 뻔뻔하게 뭐라는 거냐!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심지어 거인까지! 거인하고 손을 잡다니. 넌 드워프가 아니다! 드워프 탈을 쓴 고블린이야!
전차 안에서 들려오는 말에 드워프들은 극노했다.
감히 뭐라고?
“이… 이놈의 건방진 자식 같으니! 나와! 나오란 말이다! 네놈을 끌어내서 악마 우리에 같이 던져주겠어!”
“감히 친절하게 말해줬는데 마빡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우리를 모욕해?!”
“…그냥 내가 설득할 테니 비켜라.”
* * *
“그, 그러니까… 이 악마와 거인들은 폐하께서 거느린 부하들이라 이 말입니까?”
“그렇지. 못 믿겠으면 저 감옥을 만져봐도 좋아.”
전차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드워프들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이동감옥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감탄했다.
“이런 기술을…! 악마를 한두 번 상대해 본 게 아니군…!”
“드워프의 수염에 맹세코! 이건 걸작입니다!”
[드워프들이 <아키서스의 봉인 감옥>에 감탄합니다!]
[친밀도가 크게…]
[드워프들이 <악마 마력 추출 장치>에…]
“어르신… 혹시 이걸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드워프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포병대 드워프에게 물었다. 아까 한 모욕 때문에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흥. 마음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흥. 딱히 자네가 예뻐서 그런 건 아니야. 젊은 드워프한테 가르침을 줘야 하니까 그런 거지.”
“어르신…!”
“…저기 성수 있는데 한 번 뿌려보겠나?”
[드워프들의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갈카드 드워프 부족>이 일행을 손님으로 받아들입니다!]
드워프들은 방금 나눴던 모욕을 잊고 서로 화해했다.
-미친 드워프 놈들아! 왜 화해를 한다고 나한테 성수를 뿌리는 것이냐!!
물론 포갈로한테는 죽을 맛이었다.
* * *
“그야 거인들입니다.”
태현이 자이언 산맥에서 위협적인 놈들을 묻자, 드워프들은 바로 즉답했다.
“거인들은 알고 있는데, 그렇게 위험할 정도인가? 솔직히 드워프 정도라면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우. 폐하.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다.”
“우리 강하다. 드워프 짓밟는다.”
뒤에 있던 포병대 거인들이 항의했다.
이건 종족 자존심!
그러나 태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거인 하나하나가 강하다 하더라도, 수십이서 미친 듯이 무장하고 조직적으로 덤벼드는 드워프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물론 자이언 산맥의 몬스터들은 크고 강한 놈들이지요. 저희들도 상대할 때는 긴장할 정도입니다. 데스웜이나 바실리스크, 실버 와이번이나 드레이크. 폭주한 암석 정령도 무시무시하고, 실버 와이번은….”
[실버 와이번을 두 번 말한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의아해합니다.]
“하지만 그런 놈들은 어떻게든 상대해도, 미친 고대 거인 놈들은 정말 위험합니다. 보통 거인보다 더 크고 강한 놈이 지능도 높아서… 저희 드워프들이 한두 번 당한 게 아닙니다.”
드워프가 치를 떨었다.
기본적으로 드워프는 지하에서 생활하는 종족이라 거인과 부딪힐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치를 떨 정도였으니, 고대 거인 놈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적인지 알 수 있었다.
잠깐 밖으로 나올 때면 눈치를 봐야 하는 존재!
‘그 정도로 강한가?’
태현은 드워프의 설명에 의아해했다.
사실, 거인족 몬스터들은 태현과 상성이 매우 안 좋았다.
대부분의 공격이 물리 공격이라 태현을 맞출 수단이 거의 없었고, 까다로운 마법 같은 건 정말 드물었다.
거인족 마법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쓰더라도 화끈한 공격 마법을 쓰지 자잘한 회피 불가 저주를 쓰진 않았다.
그렇기에 저번에도 태현이 자이언 산맥을 자신 있게 공략했고, 이번에도 온 것 아니겠는가.
[카르바노그가 고대 거인이 남아 있다면 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