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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008화 (1,007/1,826)

§ 나는 될놈이다 1008화

그러나 사실 둘은 하는 짓이나 하는 생각이나 비슷하긴 했다.

물론 스미스처럼 ‘동료를 믿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믿지 못할 소리였다.

“팀 KL의 다른 선수들도 훌륭한 선수들인데 김태현 선수가 왜 그러겠습니까?”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세연은 이마를 매만지며 얼마 전에 있었던 팀 KL의 두 번째 경기를 떠올렸다.

* * *

-<런던 파이레츠> 팀 선수들, 방어를 단단히 굳혔습니다. 너무 소극적으로 보입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팀 KL 딜러진, 정확히는 김태현 선수죠. 김태현 선수의 공격력을 생각해 본다면 절대 섣불리 행동할 수 없지요. 심지어 이번 라운드는 점령전도 아닌 <목표 보호>잖습니까.

미국과 중국이 독주하고 그 뒤를 한국이 쫓는 E-스포츠 세계에서 유럽 팀들은 언제나 팬들의 기대를 받았다.

언젠가 유럽 팀도 정상에 설 날이 올 거다!

리그에서도 유럽 팀은 숫자가 적은 편이었기에, <런던 파이레츠>는 유럽 팬들의 많은 환호와 응원을 받았다.

-<런던 파이레츠> 망해라!

-꼴등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우리 <파리 라이트닝> 밑에만 있어!

-영국 놈들 이름부터 인성 나오죠! 해적이 뭐냐 해적이!

-뭐지?? 옛날에 약탈 좀 해봤다는 뜻인가???

…어쨌든 많은 환호와 응원을 받았다.

팀 KL의 첫 번째 학살극… 아니, 첫 번째 경기를 보고서도 수비를 하지 않는 팀은 없을 것이다.

런던 파이레츠는 탱커를 두 명, 힐러를 두 명 두는 조합으로 나섰다. 아예 팀의 인원을 바꿀 정도로 태현에게 겁을 먹은 탓이었다.

탱커 둘과 힐러 둘로 최대한 지속력을 키워서 태현의 기습을 막는다!

아예 장비도 폭탄 내성과 물리 공격 내성 옵션만 맞춰 온 상황.

나쁘게 보면 겁을 잔뜩 먹은 것이었고, 좋게 보면 유연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 유연한 전략을 취할 수 있었던 건 <런던 파이레츠>가 강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런던 파이레츠>는 솔직히 좋게 봐줘도 중위권 팀이었고, 아무리 해도 강팀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강팀은 주전 선수들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고 쓸 전술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방식으로 밀어붙인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도 강팀으로 꼽히는 팀들은 모두 그랬다.

상대 팀에 맞춰 일일이 전술을 바꿔가면서 리그를 치루다가는 선수들만 혼란스럽고 합이 잘 안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본말전도였다.

그러나 약팀 선수들은 그런 부담이 훨씬 덜했다.

혹시라도 잡기라도 하면 대박!

-<런던 파이레츠> 선수들! 목표를 보호하면서 정해진 장소까지 가야 합니다! 아. 말하는 사이 또 버프를 걸고 있습니다. 정말 보기만 해도 단단한데요?

-아주 단단히 각오를 다진 것 같습니다. 전략을 착실히 짜왔다고 할 수 있겠어요.

-팀 KL은… 아, 달려듭니다! 달려들어요! 김태현 선수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달려듭니다!!

경기장 안의 팬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상대 팀 팬들에게는 이미 공포영화나 다름없는 태현의 등장!

‘구성 보니 딜러가 한 명 같은데, 그 정도면 팀 데리고 가도 된다.’

이미 멤버 구성에서 태현은 상대 전략을 절반 넘게 추측하고 있었다.

‘딜러 없으니 저주 걸려도 데미지 좀 적게 들어가겠군. 그러면 방어할 시간에 몇 대 더 패고….’

앞에서 가로막는 탱커의 공격을 피한 뒤 무릎을 집중 공격. 상태 이상에 걸리게 만든 다음 드러난 방패 사이로 쌓은 치명타를 폭발시켜서 딜링.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상대에게 <이동 불가> 상태 이상이…]

[……]

[검술 스킬이 올랐습니다!]

태현 앞에서 탱커가 한 번 상태 이상이 걸렸다는 건 샌드백이 되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태현의 반사속도는 다른 딜러들이 판단을 내리고 스킬을 쓸 때 그보다 몇 배 빠르게 스킬을 연타해 넣을 수 있었다.

타고난 감각의 차이!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치명타 폭발!

상대 선수는 탱커는 HP가 20% 밑으로 떨어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태현은 굳이 쫓지 않았다.

먼저 죽일 놈들은 따로 있었으니까.

-김태현 선수! 탱커를 밀어버리고 안으로 침입합니다! 그 많던 HP가 그대로 녹아내립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완력입니다!

-런던 파이레츠 진형 다시 갖춰야 합니다. 이대로 무너지면 학살당해요!

태현이 진형 사이로 파고들려고 하자 선수들은 기겁하며 준비했던 걸 꺼냈다.

태현의 발을 묶음과 동시에, 힐러 둘은 다른 팀 KL 선수들을 견제하려는 속셈이었다.

공격력은 약해도 견제로는 충분!

그러나 그때 위에서 미친듯한 마법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용암 소나기>가 사용되었습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저주의 시야>가…]

[<정령의 울부짖음>…]

‘수혁이 녀석. 마음껏 딜링하라니까 정말 마음껏 딜링하는군.’

정수혁의 폭딜!

어지간해서는 태현이 죽을 일이 없었으니 마음껏 쏴갈기고 있었다.

덕분에 상대 선수들은 뭘 할 정신도 없이 자기 보호부터 해야 했다.

태현은 힐러부터 갈아버리기 위해 스킬 콤보를 준비했다.

눈이 마주친 힐러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잘립니다! 잘랐어요! 정말 너무 강합니다! 대체 이 선수를 어떻게 막아야 하나요!

-탱커 둘이 막는데도 한 명을 밀어버리고 한 명을 뚫어버립니다! 슈퍼 플레이! 김태현 선수의 슈퍼 플레이! 매 경기 매 경기 명경기를 만들어냅니다! 지루할 시간이 조금도 없습니다!

해외 해설가들이 흥분해서 발을 구르는 사이, 런던 파이레츠의 딜러는 이를 악물고 혼자서 역습에 나섰다.

-아! 런던 파이레츠! 역습! 역습에 나섭니다! 무모합니다!

태현과 똑같은 짓이었지만 아무도 그게 같다고 보진 않았다.

격의 차이!

-이대로 가다가는 어차피 전멸할 겁니다.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역습이… 아아! 케인 선수! 막아섭니다!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길을 내주지 않습니다! 자네 선수 우회를 시도해 보지만 바로 쇠사슬로 견제! 막힙니다! 막혔어요!

-힐러 두 명이 결국 모두 잘려 나갑니다!!

* * *

결국 팀 KL은 두 번째 경기에서도 승을 따냈다.

벌써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무패 우승 같은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였다.

두 경기 모두 공략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 강렬함!

명경기라는 건 이세연도 인정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태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팀원들이 실수할까 봐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다른 팀 경기를 보면 훨씬 더 템포가 느렸다.

각자 준비를 마친 다음, 서로 빈틈을 엿보며 소모전을 벌이다가 빈틈이 드러나면 그쪽부터 물어뜯는 싸움!

물론 이것도 박진감 넘치는 싸움이긴 했지만, 팀 KL은 정말 차원이 달랐다.

김태현도 그 방법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굳이 저런 방법을 취한다는 것 자체가 팀원들이 실수를 할까 봐 걱정한다는 걸 의미했다.

“김태현 선수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건 그렇지.”

이세연은 ‘아! 김태현 아시는구나!’ 하면서 길게 떠들려다가 멈칫했다.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열심히 말하면 쪽팔려!

“솔직히 말해서, 한 번 같이 뛰고 싶은 선수입니다.”

“그것도 그렇지.”

“이번에 이야기가 나왔는데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아니, 그건 아니지?! 무슨 이야기?! 그거 실패로 끝난 거 아니었어?!”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그러자 사람 좋던 스미스가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앗… 이건 비밀로 지켜주셔야 합니다. 뉴욕 라이온즈에서 김태현 선수를 어떻게든 영입해야 한다고 다시 이야기가 나와서….”

뉴욕 라이온즈는 판온 이전에도 비싼 선수를 사와 우승을 노리곤 했다.

게임단에 돈이 많으니 가능한 일!

어린 이세연은 그 때부터 ‘나쁜 XX들아! 그만 사!!’ 하면서 화를 냈었고.

그런데 이번에 또 김태현을 사려고 한다니 분노가 치솟았다.

유성 게임단에 들어오는 거라면 괜찮지만 뉴욕 라이온즈에 들어가는 거라면 용서할 수 없다!

“절대 안 될 거야…!”

“정성을 다해 설득하면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안 돼!”

* * *

그리고 지금.

이세연 일행은 태현 일행을 발견하고 합류한 상태였다.

-이세연 선수. 혹시 유성생명 홍보대사는 생각이 없나?

-네? 저 네크로맨서인데요?

-…….

유 회장은 슬쩍 말을 꺼냈다가 민망해졌다.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림이 좀 이상했던 것!

그러는 사이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와이번을 굳이 자이언 산맥에서 잡을 필요 있나? 너무 어렵지 않아?”

“아니. 실버 와이번이라면 그럴 만하지.”

“R183 G183 B178?”

“미쳤냐? R184 G184 B178이지. 너 눈은 폼으로 들고 다니냐?”

랭커들은 냉정했다.

색은 중대 문제!

“그러면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그러게.”

이세연 일행이 다시 진형을 재정비하고 떠나자, 유 회장은 살짝 후회했다.

‘김태현 있다고 말을 해줬어야 됐나?’

이세연은 흠잡을 데 없는 팀의 리더였지만, 김태현과 엮이면 이상하게 사람이 망가지는 것 같았다.

* * *

[자이언 산맥의 깊은 지하로 들어왔습니다.]

[이동 속도가 내려갑니다.]

[……]

[……]

고블린들이 길을 만들었다지만, 급하게 뚫어서 만든 지하 통로가 좋을 리 없었다.

각종 페널티 메시지창을 받으며 태현 일행은 아래로 내려갔다.

참고 내려가자 제법 그럴듯한 지하 통로가 나왔다.

흙이나 먼지 대신 단단한 돌로 천장과 벽을 다진 통로!

“누가 만든 거지?”

“고블린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고블린들은 이런 거 할 시간에 땅 하나 더 파자고 하는 놈들이었다.

최단시간 공사에 환장하는 종족!

이런 세세한 배려를 할 리가 없었다.

“고블린이 아니면… 드워프밖에 없지 않나?”

“정령이나 악마도 있고….”

“불길한 소리 하지 마라.”

고블린들의 말에 태현은 움찔했다. 지하에서 사는 악마들도 종종 있긴 했다.

‘여기서 마주치면 곤란한데….’

악마야 여기서 죽으면 마계로 역소환되니 태현만 손해였다.

게다가 여기는 같이 죽기도 좋은 장소!

“드워프 같은데?”

“저도 드워프 같아요.”

“그렇지?”

“아닙니다! 드워프일 리가 없습니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꺾이지 않았다.

드워프 싫어!

“드워프 같은 놈들이 이런 통로를….”

쿵쿵쿵-

[<드워프 순찰대>가 나타났습니다!]

[현재 칭호…]

[기계공학…]

[대장장이 기술…]

[……]

촤르르륵 뜨는 메시지창!

기계공학이나 대장장이 관련된 칭호 때문에 드워프들에게도 기본적으로 호감을 사는 태현이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고블린들을 데리고 있습니다! 페널티를 받습니다!]

[고블린들과 친합니다! 페널티를…]

생각지도 못한 악효과!

그래도 워낙 보너스가 많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정지! 누구냐!”

“총을 치워라, 동족! 우리는 적이 아니다!”

아키서스 포병대의 드워프들이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뭘 데리고 다니는지 잊고 있었다.

[<드워프 순찰대>가 겁에 질립니다!]

“그… 그 뒤에 있는 건 뭐냐! 거인 놈들에 악마잖느냐!”

“아, 아니 이놈들은 잘 훈련되고 기른….”

“비상! 비상! 웬 미친 놈들이 거인하고 악마를 데리고 들어왔다!!”

뿌우우우우-

드워프 나팔이 불어지고, 드워프 순찰대들은 짧은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키서스 포병대 드워프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잘… 훈련시키고 기른 놈들인데…! 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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