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06화 (1,005/1,826)

§ 나는 될놈이다 1006화

-예? 아, 아니. 하지만 유성 게임단은 유성기획 쪽이고… 그리고 꼭 자사의 게임단만 광고 모델로 쓰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화제가 되는 인물이고, 아이콘이 될 수 있는 인물이라면 누구든지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입바른 소리에 유 회장은 끙끙 앓았다.

맞는 말!

당연히 이런 광고를 그냥 몇몇 직원이 대충 결정 내리고 하진 않았을 테고, 기획팀과 마케팅팀이 주도면밀하게 분석 후에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 선수에게 홍보대사를 맡기는 게 가장 커다란 이익이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게 매우 분했다. 유성 게임단이 지다니!

태현이 온갖 화제를 끌어모으며 인기를 폭발시키고 있었지만, 유성 게임단도 견실하게 이겨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큭… 두고 보자… 김태현 이놈…! 리그는 길다…! 네놈의 빈약한 지원진으로는 언젠가 발목이 잡히게 될 거야…!

-회, 회장님?

* * *

“저번에도 그렇고 와이번을 참 좋아하시는군.”

“하하, 와이번도 구할 겸 산을 타는 거죠.”

“오… 산을 그렇게 좋아하셨습니까?”

태현이 의외란 듯이 유 회장을 쳐다보았다. 물론 유 회장은 눈빛으로 ‘아니야 이놈아!’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태현은 알아듣지 못했다.

‘흠. 엄청 좋아하시나 보군.’

저런 강렬한 눈빛이라니!

“김태현 선수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저희는 이번에 산맥을 아예 공략하려고 왔죠.”

“!”

태현의 말에 아저씨들은 깜짝 놀랐다.

마계를 새로 연 지 얼마 안 되어서 또 자이언 산맥을 개척하려고 하다니.

역시 김태현이다!

언제나 판온의 새로운 영역을 여는 랭커!

“정말 대단한걸? 나 같으면 그냥 마계에서 한동안 머물 텐데 말이야.”

“아직 배가 고픈 거겠지. 크… 아들놈이 저걸 보고 본받아야 하는데!”

아저씨들은 잔뜩 흥분해서 수군거렸다. 마계에 플레이어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린 것처럼, 자이언 산맥에 플레이어들이 새로 몰려올 생각을 하니 신이 났던 것이다.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고 넓어지는 건 판온 플레이어들의 로망!

“으음. 그러면 이 지도들 더 비싸게 팔리려나?”

“그러게. 미리 지도 좀 만들어놓을까….”

태현은 딱히 아무 생각 없는데도 붐이 올 거라고 확신하는 아저씨들!

“아니. 딱히 유행 올 거라고는 기대 안 하시는 게 좋을 텐데….”

“아닙니다! 올 겁니다. 이 아저씨는 알 수 있어요!”

“비트X인은 가라앉았지만 자이언 산맥은 뜬다!”

“쓸 만한 장소 미리 몇 군데 알아놓을까?”

유 회장은 쯔쯔 혀를 찼다. 아저씨들이 욕망에 눈이 멀어서 번쩍번쩍 빛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은색 와이번은 언제 잡으러 갈 거냐?”

“앗. 죄송합니다. 김태현 선수가 진영도 빌려줬는데 여기서 잠시 재정비하고 가시죠.”

그러는 사이 최상윤과 이다비는 수군거렸다.

“은색이라면 역시 R183 G183 B178이 좋겠지?”

“R184 G184 B178이 나을 것 같은데요?”

‘괜히 왔나?’

유 회장은 심란한 마음을 다잡으며 손녀를 쳐다보았다. 웃으면서 떠드는 모습을 보니 보기 좋았다.

‘…저 녀석하고만 같이 안 다니면 더 좋을 텐데 말이야. 크흠.’

* * *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저번에 들은 강의가 재밌었어요.”

“아니. 대학 생활 말고. 판온 말이다.”

유 회장은 슬쩍 물었다. 최근에 읽은 <손자손녀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는 방법>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공통의 관심사를 갖자! 판온 같이 세대 차이가 없는 게임을….

그것을 보고 유 회장은 무릎을 딱 쳤다.

자신은 이미 판온을 하고 있으니 친해질 수밖에 없겠구만!

실제로 그 조용하던 유지수가 눈빛을 빛내며 말을 늘어놓고 있지 않은가.

옆에 있던 아들, 유 사장이 헛기침을 했다. 괜히 유지수가 게임 이야기만 하는 탓에 아버지가 화를 낼까 봐 걱정한 것이다.

“아버지. 이미 보고서를 받으셨겠지만 이번 분기 매출 실적이 아주 좋….”

“쉿. 조용히 해라.”

자랑을 하려던 유 사장은 시무룩해졌다. 모처럼 칭찬을 듣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선배가 그때… 성을 훔쳐서 띄우는데….”

이야기의 80%가 김태현 이야기!

하긴 태현하고 같이 다닌다고 했으니 당연히 김태현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듣는 유 회장의 속은 타들어 갔다. 솔직히 재밌고 생생하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유성 게임단하고 같이 다니면 안 되는 거니?’

왠지 손녀한테 어디 팬이냐고 물으면 팀 KL이라고 할 것 같았다.

눈치 없는 아들놈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

“아, 김태현이라면 그 판온 선수 말하는 거지요, 아버지? 젊은 친구가 참 대단하더군요. 직원 말들 들어보니까 거기서 아주 독보적이라고… 유성 게임단은 왜 그런 선수를 영입 안 했나 모르겠습니다.”

“시도했어 인마! 못 한 거야!”

“죄, 죄송합니다.”

눈치 없이 말했다가 호된 소리를 들은 유 사장이 주눅이 들어 작아졌다.

“손녀야. 다른 선수는 관심이 없니? 이를테면 세계 최고의 네크로맨서라고 불리는… 그런….”

유 회장은 어떻게든 유지수를 설득하려 했다.

손녀야! 같이 유성 게임단을 응원하자꾸나!

“없는데요?”

“…그… 그러니.”

* * *

어떤 회유와 설득에도 유지수는 흔들리지 않았다.

팬의 귀감!

유 회장은 가슴으로 울었다. 안 그래도 서러운데 이 와중에 팀 KL이 유성 홍보대사를 맡아 뛰고 있으니 더….

“땅굴 발견했습니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이 <자이언 산맥 정체불명의 지하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전술 스킬이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찾았다고?”

지휘한 태현이 더 놀라는 결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금방 나올 줄이야.

물론 이런 산맥 밑에는 지하에서 사는 종족과 몬스터들이 온갖 통로를 만들어놓긴 했지만, 여기는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무작정 파고 내려간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고블린들은 정말 유능하군.’

어느 교단 NPC들하고 비교하기 싫은데도 자꾸 비교하게 되는 이 마음!

“좋아. 지금 내려가겠다. 아. 같이 가시겠습니까?”

“땅굴은 좀….”

“산을 오르는 게 아니니까….”

호불호 뚜렷한 아저씨들!

“우리는 여기서 좀 쉬다가 다시 와이번을 찾으러 가지요. 만약 실버 와이번을 찾으면 알 하나 선물하겠습니다. 김태현 선수!”

“아니. 그러면 너무 미안한데….”

“대신 <아키서스의 특수 기도 신전> 이용권 좀….”

“…아니 제작기가 아니라?”

태현은 놀랐다.

<아키서스의 특수 기도 신전>은 그거였다. 산맥 위에 위치한, 푸른 금속으로 이루어진 인간과 접촉해서 종족 변화를 일으키는 신전!

케인이 팔이 여섯 개가 됐는데도 아직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아. 하긴 케인이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더 그렇겠군.’

판온 리그에서 케인은 확실히 강렬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 건 탱킹밖에 없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탱커가 탱킹만 잘하면 됐지 또 뭐가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강함의 비결은 종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탱커를 위해 태어난 종족!

잃을 게 많은 주전 탱커 선수들은 망설이고 있었지만, 몇몇 팀의 후보 탱커 선수들은 눈 딱 감고 도전도 하고 있었다.

“케인 선수 같은 팔이 갖고 싶습니다. 아. 날개도 좋고.”

“그, 그렇습니까. 뭐… 그 정도야….”

태현 일행이 통로 아래로 내려가자, 남은 아저씨들은 신이 난 목소리로 떠들었다.

“참 좋은 청년 아닙니까? 저렇게 잘나가는데도 겸손하다니.”

“딸이 있으면 소개해 주고 싶을 정도라니까.”

“난 아들이 있어도 소개해 주고 싶을 정도다.”

“???”

“그만 떠들고 다시 올라갈 계획이나 말해보게.”

“날만 밝으면 바로 출발하죠. 덕분에 편하게 쉴 수 있어서 좋지 않습니까?”

태현 일행이야 와이번이 날아오는 순간 공중에서 뛰어들어 처리할 능력이 있었지만, 보통은 아니었다.

파티 진형을 갖추고 상대해야 하는 게 와이번!

그러다가 실수로 밀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떨어지는 거니 보통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흥. 그건 그렇지만.”

“에이, 어르신. 판온의 외진 곳에서 만났는데도 안심할 수 있는 랭커는 흔치 않습니다. 김태현 선수가 인성 좋은 건 인정해 주셔야죠.”

“인성이 좋기는 뭐가?!”

눈에 콩깍지가 껴도 너무 심하게 낀 거 아니냐!?

유 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에 비해 이세연 선수는 눈 마주치면 공격한다며? 무섭다니까.”

“무섭네. 정말.”

“???”

유 회장은 이상한 소문에 눈을 크게 떴다.

“그 소문은 어디서 들었나?”

“김태현 팬카페에서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헛소문이잖나!”

“엇. 그런가?”

“그런데 김태현 선수만 만나면 맨날 노려보고 있던데 근거 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

“그건 그….”

쉬이이익-

밤의 어둠 사이에서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바로 자세를 낮췄다.

“와이번이다!”

“잠깐… 울음소리가 안 들리는데?”

아저씨들은 한두 번 산을 타본 게 아니었다. 산에서 단골로 나오는 와이번 계열 몬스터에는 매우 익숙했다.

와이번이라면 귀를 찢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와야 하는 게 정상!

“잠깐… 본 와이번이잖아!”

“뭐? 언데드?”

시야가 좋은 아저씨가 말하자 다른 아저씨들은 당황하며 장비를 바꿔 끼기 시작했다.

뼈로 만들어진 본 와이번을 부릴 정도면 꽤 강한 네크로맨서가 분명했다. 정 위험할 경우 김태현 선수한테 도움을 요청하기라도 해야….

그러나 본 와이번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

“…내려가자!”

“그대로 싸우면 전멸이야! 어르신! 이쪽으로 오십시오. 자세 낮추시고!”

아저씨들은 전략을 바꿔 각종 몬스터가 알아차리기 힘들게 만드는 은신 계열 아이템들을 꺼냈다.

“거기서 뭐하세요?”

“…??”

아저씨들은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있었다.

‘이세연 선수다!’

‘…지, 지금 욕했다고 찾아온 거 아니지?’

‘형님이 욕해서 그렇잖아 멍청한 놈아!’

‘같이 해놓고 그러지 말자!’

이세연은 아저씨들이 아닌 유 회장을 보고 있었다. 옆에 붙어 탄 김현아도 마찬가지였다.

-회장님 아니에요?!

-회장님 맞는데…?

-어, 어떻게 하죠? 내려서 무릎 꿇을까요?

-현아야… 이상한 드라마 좀 그만 봐.

-…….

재벌들에 대해 이상한 편견을 갖게 만드는 드라마!

-저 저번에 손녀한테 이상한 소리 했다가 찍혔다고요! 말했으면 어떡해요!

-걔는 그런 거 말할 사람 아니라니까….

-진, 진짜 그렇겠죠? 저 방출되면….

-만약 그러면 언니가 책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

“저… 이세연 선수입니까?”

“네, 맞아요.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실버 와이번이 있다고 해서 왔지.”

유 회장이 나서자 아저씨들은 놀랐다.

설마 아는 사이였나?

“아는 사이셨나?”

“아, 생각해 보니 유성 게임단 팬이셨던 거 같아.”

“아하. 팬이라서 만난 적이 있으시구나.”

“우리 유성 게임단 지라고 하지 않았나…?”

“…앞으로는 어르신을 좀 배려해드리자구.”

‘다 들린다 이놈들아!’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버 와이번이라면 어쩔 수 없죠.”

색은 매우 중요한 것!

“저희는 자이언 산맥 퀘스트 깨러 왔습니다. 제국 퀘스트 때문에 찾을 게 있어서….”

“안녕하십니까.”

뒤에서 본 드래곤이 아닌, 페가수스와 각종 날아다니는 탈것을 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인사를 했다.

유 회장은 그들을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

판온 리그의 선수들은 직접 다 확인하고 있는 유 회장이었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스미스와, 뉴욕 라이온즈 2군 선수로 뛰고 있는 랭커들이었다. 팀이라는 인연 때문에 같이 다니는 게 분명했다.

유 회장은 바로 ‘저놈들을 떨어뜨리면 1승…!’라고 말하려다 멈칫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체면 없이….’

너무 늦은 반성이었다.

‘그리고 지금 떨어뜨려봤자 유성 게임단이 1승을 못 얻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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