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02화
길드 동맹 길드원이나 (전) 길드 동맹 출신 미다스 길드원들은 모두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아니 김태현은 솔직히 그럴 자격이 된다고 쳐도 너는 뭔데?’
‘미쳐 버린 것인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진짜 혼자서 뜰 자신이 있나??’
길드원들을 경악시킨 자신감!
김태현이라도 옆에 있으면 모를까, 당당하게 혼자 와서 걸어가는 저 모습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충격이 가시자 분노가 치솟았다.
‘저 저놈의 쉐끼…!’
‘우리가 못 건드릴 걸 알고 우릴 능욕하고 있어!’
‘죽인다, 케인!’
저렇게 당당하게 걸어가는 이유가 뭐겠는가.
그들이 태현 무서워서 못 건드리는 걸 알고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물론 케인에게는 그런 깊은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냥 4왕자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최단경로로 가고 있는 거였을 뿐!
‘아오… 아오…!! 그냥 날아가거나 배 타고 갈걸! 내가 미쳐가지고…!’
별생각 없이 ‘뭐 그 길로 가면 되지 않나?’ 했다가 지금 사방에서 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게시판을 보니 ‘케인 죽인다’란 글들이 1초에 수십 개씩 올라오고 있는 중!
물론 그런 글들에는 케인을 편들고 길드 동맹을 욕하는 반응들이 훨씬 많았지만, 그거까지 케인에게 보이진 않았다.
‘일단 쉐도우 엘프로 변신해야지.’
팔 많이 달고 다니는 키메라 종족은 너무 눈에 띄었다.
-팔 여섯 개 단 놈이 케인이다!
-으아악! 팔은 자를 수도 없잖아!
…이런 모습이 너무 쉽게 상상이 갔다.
‘그 다음은….’
“크흠. 혹시 나하고 4왕자만 지금 탈것을 타고 날아가면 더 빨리 갈 수 있….”
“케인 경의 용기에 감동받았습니다!”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케인 경!”
[4왕자의 호위기사들이 당신을 더욱더 존경합니다!]
[현재 아키서스의 노예입니다. <에랑스 왕실 백기사>로 전직이 불가능합니다.]
<기사의 길-에랑스 왕국 기사 퀘스트>
비록 기사로 전직하진 못하더라도 당신은 에랑스 왕국의 기사입니다. 기사로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당신의 평판을 좌우합니다.
4왕자의 기사들은 당신이 기사답게 행동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 보이십시오!
만약 그들을 실망시킬 경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보상: ???, ???
‘예상치 못한 일이 뭔데…?!’
무섭잖아!
결국 케인은 오토바이를 불러내지도 못하고 한숨을 쉬며 당당하게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오스턴 왕국 남부로 지나가면 더 빠를 텐데 말입니다.”
“대체 어떤 미친 흑마법사 놈들이 그런 역병과 독을 풀었는지….”
“분명 오스턴 국왕이 반역자라서 아니겠습니까? 신들께서 분노하신 겁니다.”
“…….”
진상을 아는 케인은 입을 다물었다.
최강지존무쌍 아저씨들이 길드 동맹에게 밀려 도망칠 때 하고 간 짓들!
* * *
-…안 오는 거 아닌가?
“아, 아닙니다!”
-안 오는 거 맞는 것 같은데…? 그놈이 도망간 게 틀림없다.
“아닙니다! 콰드로는 도망칠 놈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아닐 겁니다!”
정령왕은 설마 연락을 받고도 태현이 무시할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정령왕의 초대를 거절하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아키서스의 화신은 정령왕의 예상을 뛰어넘는 인물!
-더 이상 기다려줄 수가 없다.
-저 고블린도 아닌 놈들에게 뭐하러 자비를 베푸십니까? 그냥 끝내버리시지요. 저도 새 언데드 재료가 필요한데.
리치 자그가란은 기회다 싶어 정령왕을 부추겼다.
태현이 언데드 군대를 싹 쓸고 나간 탓에 새 부하가 필요했던 것이다.
강한 시체를 쓸수록 강한 언데드가 나온다는 게 학계의 정설!
태현이면 모를까 저놈들은 죽여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그렇게 할까….
모인 플레이어들이 와들와들 떨 때, 멀리서 한 무리의 일행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케인이다! 케인! 김태현이 온 거야!”
“김태현 이 자식… 믿고 있었다구!”
모인 세계수 랭커들은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 물론 케인만 왔다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저자는 누구지?
-화신의 충실한 노예라고 합니다. 보아하니 생긴 것부터가 일 잘하게 생겼습니다.
-흠. 그러면 믿을 만한 놈이겠군. 놈을 데리고 오거라.
-예.
정령왕의 말에 자그가란은 안에서 튀어나와 케인 앞을 가로막았다.
“!!”
“리, 리치다!”
“으아악! 케인! 어떻게 해보게!”
“아, 달라붙지 마! 싸우기 힘들잖아!”
케인은 긴장했다. 태현 없이 혼자서 리치 같은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까?
여기 기사들도 다 고렙이었지만 리치는 혼자 다니지 않을 텐데…!
-화신의 노예여. 내 주인께서 널 보고 싶어하신다.
“어… 잠, 잠깐. 그 리치잖아?”
케인은 태현이 방송할 때 던전에서 나온 리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 그대로!
-화신에게 말을 들었나? 설명이 빠르겠군. 주인께서 보고 싶어하신다. 빨리 와라.
자그가란의 재촉에도 케인은 망설였다. 뒤에서 보고 있는 눈들이 있었던 것이다.
기사다운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네 주인이 누구더라도 난….”
-정령왕님을 기다리게 하지 마라.
“…내 길을 갈 뿐. 지금 가겠다.”
-잘 생각했다.
“케, 케인 경. 저 무례한 부름에 응하시는 겁니까?”
“날 부른 게 누군지는 봐야 할 거 아니냐! 걱정 마라. 만약에 사악한 적이라면 단칼에 베어버릴 테니까! 용을 잡으려면 용의 소굴로 가야 하는 법!”
“오오…!”
“그런 마음이셨군요!”
기사들은 감탄했지만 4왕자는 뚱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그냥 우리끼리 튀면 안 되나?”
‘이 자식…! 눈치가 나랑 비슷한데?’
케인은 4왕자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이름도 비슷한 놈답게 눈치도 비슷했던 것!
* * *
자그가란의 뒤를 따라간 케인 앞에 있던 건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었다.
백 명 넘는 플레이어들이 한 곳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뭐야!?’
-왔는가. 화신의 노예.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확인할 게 있어서다.
케인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김태현이 정령한테 무슨 짓 했었지?
폭력? 살인? 협박? 절도? 사기?
‘했을 법한 게 너무 많아!’
김태현이 쌓은 원한에 결국 자기가 죽다니. 케인은 슬펐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젠가 내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뭐… 뭐지?”
-여기 있는 놈들이 서로 다투면서 자기가 화신의 부하라고 하는데, 나로서는 누가 맞는지 알 수가 없더군. 화신의 노예라면 알겠지. 누가 누구의 부하지?
정령왕은 느릿하게 말했다. 케인은 눈앞의 정령왕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기 위해 온힘을 다해야 했다.
“어… 거짓말을 한 놈들은 어떻게 되는 거… 겁니까?”
-당연히 죽어야겠지. 감히 날 속이려고 하다니.
“케인! 케인! 우리야! 우리 알잖아!”
딱히 대화를 나눠보진 못했던 거 같지만, 세계수 랭커들은 다급하게 친한 척을 했다.
우리 기억하지!
방송에서 열심히 곡괭이를 휘두르던 놈들이라구!
케인은 그들을 보며 고민했다.
“어… 부하인가?”
-저쪽이 거짓말을 한 건가?
“아, 아니… 잠시만… 부하라는 게 어디까지인지 지금 좀 헷갈려서… 그냥 잠깐 만나서 같이 한 사이인 줄 알았는데….”
“아냐!! 부하라니까! 우린 언제나 마음속으로 김태현을 섬기고 있었다고! 부하가 되고 싶었어!”
궁지에 몰리면 사람은 안 하던 소리가 나오게 마련.
세계수 랭커들은 착실하게 자기 발밑을 파내고 있었다.
“그, 그런가? 그러면 그게 부하인 건가?”
케인은 헷갈렸지만 세계수 랭커들이 저렇게 말하니 그럴듯하다 싶었다.
태현과 얼마 전까지 같이 퀘스트도 했으니 저 정도면 부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케인이 설득되는 모습에 현상금 사냥꾼들은 ‘헉’ 소리를 내며 기겁했다.
이러다가 다 죽게 생겼다!
“케인! 잘 생각해 봐. 저놈들은 지금 같이 다니지도 않고 있다고! 친구 추가도 안 되어 있는 놈들이야! 저런 놈들을 부하라고 할 수 있을까?!”
“너희들보단 낫지 이것들아!”
“그에 비해 우리는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한 놈들도 꽤 많아! 골짜기에 세금도 내고 있어!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했으면 김태현 부하 아니냐?!”
“어엇… 그것도 맞는 말 같은데….”
옆에서 듣고 있던 정령왕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
“어… 둘 다 부하들 같습니다만….”
-그러면 부하들이 싸운 건가?
“그… 그런 거 아닌가 싶은데.”
케인은 말하면서도 긴가민가 했다.
내가 지금 맞게 판단을 내리고 있는 거 맞나?
‘으. 평소에는 김태현이 대신 판단을 내려줘도 됐는데…!’
평소에 머리를 투구걸이로만 쓰고 다니던 부작용이 여기서 나타나고 있었다.
-화신을 섬기는 놈들이 멍청하고 볼품이 없구나.
“…좀 그렇긴 합니다.”
케인은 아키서스 교단 NPC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다른 교단들이랑 비교하면 너무 초라하긴 하지!
-내 화신을 위해 선물을 주겠다.
“예? 아니 왜…?”
받는 쪽이 더 당황스러운 선물!
케인은 정말 놀랐다.
고블린 같은 특이한 놈들이 아니면 보통 보스 NPC들은 아키서스를 싫어하던데?
-너는 화신에게 돌아가 내 선물을 알림과 같이 내 위엄을 알리도록 하여라!
땅의 정령왕은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의 힘을 선물처럼 보여주면 태현이 그걸 보고 감동해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찾아올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태현은 그럴수록 ‘저거 진짜 함정 아니냐??’ 하며 피할 뿐!
파아아아앗!
[<정령왕의 충성의 낙인>이 시전됩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정령왕의 충성의 낙인>이…]
[……]
[……]
“뭐야!? 뭔 스킬이야?!”
“갑자기 뭔…!”
이제 풀려나나 했는데, 갑자기 걸려오는 스킬에 모인 사람들은 기겁했다.
<정령왕의 충성의 낙인>!
정령왕이 말을 듣지 않는 부하들한테 새기는 저주 스킬로, 명령을 듣지 않는 이들에게 강력한 페널티를 주는 어마어마한 스킬이었다.
아스비안 제국 황제 우이포아틀이 쓰는 저주 스킬을 뛰어넘는 강력한 스킬!
정령왕은 스킬이 다 걸린 것을 보고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열심히 일해서 충성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도록 해라. 미천한 벌레들아!
“아니 뭐 이런 샊….”
“참, 참아! 또 죽고 싶어서 그래?”
“크윽…!”
상대가 정령왕이라서 욕도 못 하고!
모인 플레이어들은 꾹 화를 참고 상황을 확인했다.
“이거 저주 해제 스킬 있는 사람 시전 좀!”
“스크롤 써봐! 풀리냐?”
-크하하하. 어리석기는. 이 몸의 힘이 그리 약할 것 같으냐?
“저 저….”
“잠깐. 시간 버티면 되는 거 아니야? 기간이 얼마지?”
[남은 시간: 11개월 30일…]
“…….”
“…….”
1년짜리 저주!
상상을 뛰어넘는 스케일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진짜 문제가 심각하다!
“미… 미친 거 아니냐?”
“진짜 큰일인데…???”
그제야 그들은 정령왕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드래곤하고 맞먹으면 맞먹었지 결코 덜 괴팍한 놈들이 아닌 것!
드래곤과 엮여서 살아 나온 플레이어가 판온에서 한 손가락에 꼽히는데, 정령왕과 엮여서 이 정도면 운이 많이 좋은 편이었다.
물론 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 그런데 정령왕님. 여기 김태현이 없는데 누가 명령을 내립니까?”
-그것도 그렇군. 그러면 만날 때까지 노예가 대신 명령을 내리도록 해라.
“???”
[임시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충성의 낙인이…]
[……]
[……]
멍하니 있던 케인은 모두의 시선이 자기한테 쏠리자 깜짝 놀랐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