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89화
네가 이대로 가버리면….
우리는 어떡하라고?!
‘큰일 났다!’
‘야. 이거 진짜 어쩌냐?!’
국경 산맥에 있는 미공략 던전들을 클리어했냐, 못 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랭커들이 이 던전들을 클리어하면서 얻을 보상을 엄청나게 노리긴 했다.
태현이야 레벨 1업을 할까 말까였지만 랭커들은 잃은 걸 다 되찾고 다시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미공략 던전을 한 개도 아니고 여럿을 다 깨버린다는 것에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그런데 태현은 혼자서 화술 스킬로 미공략 던전들을 꿀꺽해 버렸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최악은 아니었다.
최악은 태현이 투기장 리그 뛰러 가버린다는 점!
벌써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원한테서 귓말이 오고 있었다.
-야. 콰드로. 우리 길마가 너한테 이 말 좀 전해달라는데?
-너 뒤졌대.
-ㅋㅋㅋㅋ 김태현 없을 때 두고 보자.
목소리부터 신이 난 목소리!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는 벌써 축배를 들고 있었다.
-개자식들을! 모두! 잡아버리자!
-길드의 이름으로! 김태현 만세!
-김태현 씨 리그에 집중해 주십시오! 파이팅!
“…….”
“…….”
세계수 랭커들은 서로 쳐다보며 무거운 침묵에 빠져들었다.
마치 장례식장 같은 분위기!
“좋아. 하늘성 띄워! 아탈리 왕국에 보낸 다음 난 투기장으로 간다.”
“잠… 잠깐! 김태현! 잠깐!”
“?”
“이렇게 우릴 떠나면 안 돼!”
“혹시 우리가 사귀는 사이였냐?”
태현은 당황했다.
랭커들이 이렇게 애절하게 달라붙을 줄이야!
그냥 던전 같이 깨려고 모인 사이 아니었어?
“이대로 가면 우린 죽어!”
“사람은 누구든 오래 살면 죽게 되어 있잖아.”
“그렇…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라! 길드 동맹이나 미다스 놈들한테 죽을 거라고!”
“아니… 내가 너희들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줬잖아.”
“…….”
‘다 죽여라’가 조언이냐?!
랭커들은 울화통이 터질 뻔했다.
그러나 태현은 의외로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그거 할 자신 없으면 그냥 접속을 하지 말거나 숨어 있으라고.”
“…!”
[카르바노그가 그런 정상적인 조언에 깜짝 놀랍니다!]
태현이 이런 조언도 하다니!
그러나 랭커들은 저 조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끄으응….”
“으으윽….”
판온 접속을 하지 않는 건 랭커로서 죽음이나 마찬가지!
접속을 하고서 계속 숨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레벨 업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럼 됐지? 자! 출발!”
“아, 안 돼!”
그러나 태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하늘성을 띄웠다.
지금 이렇게 낭비할 시간도 아깝다!
“타, 타야 하나?!”
“지금 타면 계속 하늘성 안에 숨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내려오지도 못하잖아!”
“죽는 것보단 낫다!”
“아니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정체 숨기고 먼 곳으로 튀는 게 낫지! 우리가 제작 직업도 아니고 하늘성에서 뭐하게!”
그렇게 떠드는 사이 하늘성은 공중에 떴다. 랭커 그린은 주섬주섬 장비를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후다닥 탈것을 불러내 달려나갔다.
‘저놈들하고 같이 있지 말아야지!’
최대한 저놈들하고 거리를 벌린 다음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에게 합류한다!
“저… 저놈 튄다!”
“잡아! 저거 잡아!”
“그린! 안 죽일 테니까 돌아와! 같이 살자고!”
* * *
-투기장 이동.
-투기장 이동.
하늘성을 수리, 보강을 끝내고 띄우기까지 마치자 태현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투기장 리그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주어진 스킬 <투기장 이동>.
어디에 있든 간에 공식 투기장으로 갈 수 있는 스킬!
다른 팀들은 이 스킬을 유연하게 이용했다.
주기적으로 모여서 연습 경기를 진행한다거나, 시즌 시작 전에 친선 경기를 진행한다거나….
태현 팀이 신나서 마계 퀘스트를 몰아치고 광산을 채굴할 때, 밖의 게임단들은 이런 일정들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습 경기와 친선 경기 모두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았다.
판온 투기장 리그에 투자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 정도의 뜨거운 관심!
가장 인기 있는 게임 리그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관심은 태현한테 더 쏠려 있었다.
투기장 경기도 안 뛰고 퀘스트만 하는데도!
다른 팀들이 배가 아파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다 모였군.”
“…근데 우리 진짜 이렇게 연습 안 해도 돼?”
쉐도우 엘프 종족으로 변신한 상태인 케인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경기가 다음 날인 이상에야 지금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다른 게임단은 자기들끼리 1군 팀/2군 팀/연습생 나눠서 연습 경기 벌이고, 다른 팀과는 친선 경기 벌이는데 새삼 걱정이 된 것이다.
“5명으로 같이 싸우는 거 한두 번 해보냐. 적이라고 해서 달라질 거 없어. 걱정 마라. 상대 팀 전략은 내가 분석할 테니까.”
“어. 애초에 분석할 생각도 없었는데.”
“…….”
“…….”
케인의 말에 모두 침묵했다.
그걸 입 밖으로 말하면 안 되지 인마…!
태현은 매우 한심하다는 듯이 케인을 살짝 쳐다본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다들 일정은 봤겠지만, 일주일에 세 번은 싸우게 될 거다. 우리는 매번 전략을 바꿀 능력도, 그럴 필요도 없어. 정공법으로 간다. 상대 전략 정도만 머리에 넣어두고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거지.”
꿀꺽-
태현의 말에 모두가 긴장했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경기 전날에 시간 내서 분석 대비하고 경기 당일에 뛰고. 이 사이클 반복하자고. 꼭 리그를 1위로 끝낼 필요는 없어. 물론 1위도 어마어마한 명예고 영광이겠지만 우승을 노리면 되니까.”
리그가 끝나면 상위권 팀들이 따로 플레이오프를 치러 진정한 우승자를 가렸다.
태현은 이 제도를 노릴 생각이었다.
‘애초에 대형 게임단은 역사가 길고 자금, 시설까지 유리해서 이런 리그 경기에 매우 유리해. 우리는 불리할 수밖에 없고.’
감독, 코치, 분석 팀 등 각종 지원 팀들을 업고 리그를 진행한다.
거기에 선수들도 어느 정도 리그를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랭커들!
판온에서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리그 성적으로 보상을 보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태현 팀은 그런 거 하나 없이 우리끼리 다 해먹겠다는 욕심 그 자체인 팀.
리그를 진행하다 보면 패배는 당연히 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총 20팀, 38경기. 한 팀당 2경기씩인가… 솔직히 좀 불안하긴 한데.’
태현은 일행을 휙 둘러보았다. 일행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최상의 전력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태현이나 케인, 최상윤은 흠잡을 곳 없는 랭커였지만 정수혁이나 이다비는 불안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케인도 랭커라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머리가 없어서 언제 호구짓을 할지 몰랐고….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결국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
태현은 결심했다. 혼자서 3인분 정도는 하겠다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인다!
불끈!
“야. 쟤 좀 무서운데.”
“네? 그냥 평소 같으신데.”
“아니… 저거 눈빛이 판온 1 때 길드 떼몰살 시킬 때 눈빛인데….”
최상윤은 질색했다.
“에이, 각오를 다지시는 거겠죠.”
“맞습니다.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지금 나만 걱정하는 거냐?”
* * *
“오옷. 시작한다!”
최명성은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화면을 쳐다보았다.
전 세계에서 참가하는 손꼽히는 게임단 20개!
이 20개에 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게임단들이 로비를 하고 교섭을 해왔던가.
그러나 자리는 정해져 있었고, ‘우리가 2부 리그라니! 미쳤냐!’라고 항의하던 남은 게임단들은 ‘큭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라며 2부 리그를 준비하고 있었다.
-팀 KL! 이 팀은 굳이 소개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너무 많은 수식어를 갖고 있지요! 현 판온 최강 팀으로 꼽히는 팀 중 하나! 압도적으로 소규모인 팀인데도 여기까지 왔다는 게, 이 팀의 선수들이 얼마나 재능 넘치고 단합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팀장님. 저 옆에 있습니다만.”
“어. 너 아직도 퇴근 안 했냐?”
“팀장님이 같이 야근하면서 보자고 하셨잖습니까!!”
“아. 내가 그랬나?”
윤주환은 맥주 캔을 집어 던지려다가 말았다.
그래도 상사잖아!
“…그런데 팀장님. 이번 리그 방식 있잖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김태현한테 유리한 방법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어, 뭐 밸런스 맞춰야 한다고 위에서 이것저것 이야기 나오지 않았습니까? 팽팽하게 해야 한다고….”
“그랬지.”
“…설마 김태현 스탯 안 말하셨습니까?!”
관리자라고 할지라도 권한이 많지는 않았다. 플레이어 스탯이나 스킬들을 다 열어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맹점이 있었다.
한 선수를 계속 관찰하면 얻은 스탯과 스킬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
최명성은 그런 집념으로 태현의 직업과 스킬, 스탯들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들으면 ‘으 미친 스토커인가 봐’라고 할 정도의 팬심이었다.
“내가 왜 해야 하냐?”
“아니…?!”
근본 논리부터 부정하는 최명성!
윤주환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그래야 하니까요?”
“내가 만약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말을 했겠지. 근데 이미 레벨 100으로 맞췄을 때도 김태현이 이겼잖아.”
“…그렇죠.”
“아이템 다 떼고 레벨 다 떼고 스탯도 뗐는데 김태현이 이겼으면 그건 다른 놈들 잘못 아니냐? 그리고 이번에 아이템, 레벨, 스탯 다 들고 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한 게 누구야? 대형 게임단들 아냐?”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고 필사적으로 로비를 한 곳들은 바로 대형 게임단들이었다.
스탯과 레벨, 아이템을 떼고 컨트롤로만 가면 태현이 너무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거기서 내가 더 어떻게 하냐? 김태현만 레벨 깎고 스탯 깎고 해야 한다고 했어야 했냐?”
“…그건 그러네요.”
“자기들이 자기들 유리하게 해보겠다고 그렇게 로비했는데 내가 그걸 말려줘야 해? 다 지들 자업자득이지. 그리고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이 룰이 저번 룰보다 나아. 그나마 가능성 있잖아. 컨트롤로만 하면 변수가 없지만 이렇게 하면 이것저것 다양한 전략이 나오겠지. 난 제대로 의견을 낸 거야. 로비한 놈들이 얄밉긴 했지만 말이야.”
현재 태현은 판온에서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유명하다는 건, 가장 많은 정보가 풀리고 가장 많은 분석이 이뤄졌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회에서 태현의 약점을 노리는 스킬들이나 전략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대형 게임단들도 완전히 바보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김태현 팀 약점은 너무 명백하잖아.”
“?”
“다른 팀원들.”
“아… 확실히 김태현이나 케인 말고는….”
“…….”
‘난 케인 말한 건데.’
최명성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케인은 커다란 대회에 나가면 구멍 역할을 할 것 같은 플레이어였다.
랭커의 묵직함 같은 건 조금도 없는 플레이어!
-팀 KL의 첫 번째 상대는….
“첫 경기 나온다!”
두근거리는 효과음과 함께 화면에서 상대 팀의 이름이 나왔다.
-…상하이 팬더즈!
발표와 함께 관중들 중 상하이 팬더즈 팬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필이면 첫 상대가 팀 KL이냐!
“…아이고. 우리 왕 팀장님 어쩌냐?”
“팀장님 지금 웃고 계신데요?”
“하하. 내가 뭘. 그리고 꼭 상하이 팬더즈가 진다는 보장이라도 있냐? 이길 수도 있는 거야. 팀 KL은 연습 경기도 친선 경기도 안 해서 실전 감각이 없을 테니까. 하하하.”
‘조금도 그렇게 생각 안 하시면서….’
-아, 이거 불리한 싸움이 될 것 같군요. 그렇죠?
-하지만 아직 모릅니다! 결과는 언제나 끝나야 아는 법이니까요! 팬 여러분들은 상하이 팬더즈의 분투를 기대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팀 KL이 7:3나 6:4 정도로 유리하다고 점쳤다.
첫 경기이기 때문에 나온 점잖은 예측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예측은 전부 빗나갔다.
결과는 10:0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