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82화
다행히 세계수 랭커들에게는 서로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 위로하고 머리를 맞대며 대책을 세워나갔다.
“길드 동맹 쪽 랭커들 숫자도 확 줄었고 지금 하는 일도 많아서 전면전으로 나서지는 못할 거야.”
“맞아. 암살자 조심하고 같이 붙어 다니면 돼.”
“다른 놈들과 달리 우리는 랭커다! 우리는 쉽게 당하지 않아!”
“맞아! 우리는 친구야!”
“야. 요한손한테 귓속말 오는데? 무슨 소리냐고….”
“아직도 차단 안 했냐? 난 아까 뜨자마자 차단했다.”
“요한손 친구들한테 오는 귓속말 받지 마라. 빨리 차단해 너도.”
“…….”
태현은 랭커들의 대화를 들으며 매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카르바노그가 파워 워리어에 어울리는 놈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다비 복장 터지게 할 일 있냐? 절대 안 돼.’
[아키서스의 사제라면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랭커들은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며 멘탈을 회복시켜나가고 있었다.
기다리던 태현은 하품을 하며 물었다.
“이제 슬슬 출발해도 되나?”
“그래! 이 피도 눈물도 없….”
-미다스 길드 척살령 발표!
-이하의 플레이어들은 현상금이 걸렸으며 PK 확인 시 보상 가능.
-요한손, 그린, 콰드로, 캉, 수아나….
“…….”
“…….”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랭커 중 하나가 드디어 정신이 나갔는지 광산 벽을 붙잡고 날뛰기 시작했다.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일 거라고!”
“진정해! 미친놈아!”
“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 과거로 돌아가거나 숨겨진 직업이 있을 거야!”
“인간 놈들이 정신이 나갔다! 말려라!”
지하 연합 고블린들이 랭커들한테 닥치는 대로 수면침과 마비침을 날리기 시작했다.
아키서스의 키메라들은 저항하는 랭커들을 단단히 붙잡아 눌렀다.
그리고 태현한테 귓속말이 날아왔다.
-XX XXX XX XXX….
욕설이 전부여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된 일이야?!
-아. 어떻게 된 일이냐고?
-어!
수아나는 평소 하던 존댓말도 쓰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옆에서 요한손이 난리를 치고 있는지 수아나가 요한손과 하는 대화도 들려왔다.
-이 XXX들이 내 귓속말을 다 차단했어!
-내 잘못 아니다.
태현은 재빠르게 상황을 요약해 줬다.
랭커들이 하자고 했어!
그 설명에 둘은 바로 깨달은 모양이었다.
-%[email protected]^&%!#%@&!
[카르바노그가 인간 종족의 욕은 정말 어휘가 다양하다고 감탄합니다!]
‘슬슬 차단해야지.’
태현은 재빨리 둘을 차단해 버렸다. 안 그러면 귓속말로 귀찮게 굴 여지가 있었다.
“애들아.”
태현은 랭커들 앞에 섰다.
솔직히 어디까지 가나 보고 싶긴 했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랭커들은 귀중한 노동력!
그 레벨은 어디 가지 않아 일반 플레이어 수십 명이 할 일을 혼자서 해냈다.
“정신 차려라. 아직 판온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김태현…!”
“그래…! 김태현이 있었지!”
“판온에서 가장 많은 적을 둔 남자, 김태현!”
“가장 높은 현상금이 걸린 걸로 기네스북에 오른 남자, 김태현!”
“하루에 암살자를 한 번이라도 만나지 않는다면 가시가 돋는다는 김태현!”
“…….”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기네스북에도 올랐었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알게 된 진실!
그러나 말거나 랭커들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태현을 쳐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태현만큼 <어떻게 대형 길드에게서 살아남는가?>에 대해 전문가인 사람도 드물었다.
김태현이라면 분명 그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방법을 알려줄 거야!
“김태현…! 우리한테 말해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음? 무슨 소리야?”
“대형 길드 놈들이 지금 우리 목에 현상금을 걸었잖아!”
“어… 그랬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잘 하면 되지 않나?”
“…….”
“…….”
랭커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태현도 설명이 너무 부족했다는 걸 느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음. 나한테 뭘 기대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난 특별한 방법을 몰라. 평범한 방법만 썼다고.”
“그 평범한 비결을 전수해 줘!”
“맞아! 그거면 충분해!”
“흠. 그럴까? 일단은 알고 지내던 플레이어들하고는 모두 연락을 끊어.”
“…???”
“…왜???”
“설마 그다음은 게임을 접는 건가…?”
“뭔 소리야? 그놈들이 널 배신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거지.”
“…….”
랭커들은 반쯤 혼이 나간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다음에는?”
“일단 그렇게 시작해서 무조건 솔플만 하는 거야. 파티 플레이는 절대 하지 마. 아무리 어려운 던전이든 퀘스트든 간에! 네가 만난 파티가 암살자일 수도 있고 현상금 사냥꾼일 수도 있으니까!”
“…….”
랭커들의 입이 반쯤 헤 벌어지더니 침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기본 준비는 됐다고 봐야 하지. 그다음에는 은신처를 구하는 게 좋아. 은신처는 던전을 추천해. 던전 중에서도 통로가 복잡하고 함정 깔기 좋은 게 좋은데 보통 이런 건 길드 놈들이 갖고 있거든? 어차피 지들도 힘으로 뺏은 거니까 너희들도 힘으로 뺏어도 돼. 그다음에 알아서 잘 꾸미면 1차 준비도 끝이다. 그다음은 싸움이지. 위치가 대충 공개됐으니 현상금 타려는 놈들이 우르르 몰려들거든.”
랭커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에 지금 자기들이 어떤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걸 방송하면 시청자 숫자가 하늘을 찌를 텐데!
“하, 하지만 너는 혼자고 적들은 계속 몰려오지 않냐?”
“계속 잡고 잡고 잡고 잡으면 보통 적들이 먼저 포기하던데?”
“…….”
“…….”
미친놈아!
“그렇게 질릴 때까지 잡으면 네 레벨은 꽤 오르고 각종 보상도 챙겼을뿐더러, 상대방은 한동안 겁을 먹고 덤비지 않을 거다.”
“그… 그렇군. 요지는 우리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보여주는 거군.”
“하긴 우리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알게 된다면 섣불리 덤비지 않을 테니까… 그다음 협상하는 건가?”
“뭔 협상?”
“아, 그냥 도망치는 건가? 잊혀질 때까지?”
“뭔 도망?”
“???”
“그다음은 상대방의 영역으로 가야지.”
“…!!!”
“맞고만 살면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 협상은 무슨. 협상은 상대 쪽에서 나오게 해야지 네가 먼저 제안하면 듣지도 않아.”
“아니 혼자서 뭔….”
“혼자니까 더 좋은 거야. 안 들키기 좋거든. 이 다음부터는 자기 직업이나 익힌 스킬에 따라 좀 많이 달라지니까 구체적으로 말하기 뭐한데… 뭐,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하면 되겠지. 난 3의 법칙을 애용해.”
“3…의 법칙?”
“상대방이 싫어하는 약탈의 법칙이지. 외워놔도 좋아. 길드 하우스에서 3시간, 길드 마을에서 3일, 길드 던전에서 3주, 길드 영토에서 3달. 이 정도는 버텨줘야 상대가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잘못을 깨닫거든.”
“…….”
랭커들은 새삼 소름이 돋았다.
그랬다.
지금 눈앞에 있는 건 판온 2의 명성 높은 스타 플레이어가 아닌, 판온 1의 학살자!
너무 이미지가 달라져서 잊고 있었지만 판온 1에서 태현만큼 미친놈도 드물었었다.
사실 지금도 비슷하긴 했지만….
“이걸 꼭 다 할 필요는 없고, 순서대로 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이 중 2개 이상은 해주는 게 반응이 좋더라. 맞다. 길드 하우스나 길드 마을에서 싸울 때는 꼭 주변 파괴하는 거 잊지 마라. 놓치기 쉬운 일인데 이런 곳에서는 일단 불부터 지르는 게 좋아. 상대방이 막아야 하니까 힘들거든. 어쨌든 이렇게 열심히 반격하다 보면 상대도 내 진심을 깨닫고 협상을 하길 원하지.”
“그… 그렇군….”
“그때 척살령을….”
“아니지! 협상을 받아들이면 상대방이 약하게 본다니까! 넌 내 말을 뭐로 들은 거냐?”
“끝, 끝이 아니었어???”
“약하게 보이면 지금 협상이 끝나더라도 언제라도 보복을 당해. 너 같으면 복수 안 하겠냐? 그런 꼴을 당했는데?”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러면?”
“협상을 무시하고 더 날뛰어야지. 척살령은 그러다 보면 자기들이 알아서 몰래 풀어. 걔네들도 사람이라 계속 길드원들 꼬라박고 싶어 하진 않거든. 길드원들도 피할 거고.”
“드디어 끝….”
“아니지! 내버려 두면 길드가 복수한다니까! 너 뭐냐? 너 랭커 맞아?”
태현은 짜증을 냈다. 진심 어린 짜증에 랭커는 당황했다.
“미… 미안. 아니, 이게 끝 아니었어?”
“계속 날뛰다 보면 언젠가 길드가 해체되거든? 그때가 되면 대충 끝난 거라고 보면 돼. 물론 그냥 끝내면 안 되고, 길마나 간부는 쫓아다니면서 꼭꼭 PK를 해줘야 해. 그래야 다른 놈들이 반성하고 안 하거든.”
“…….”
“대충 이 정도? 별로 안 어렵지?”
“…난 판온 접어야겠다….”
“?!”
* * *
물론 접는다고 말한 랭커들 중에 정말 접는 랭커는 없었다.
그렇게 쉽게 접을 수 있었다면 애초에 랭커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접을 수 있는지 말해줄까?”
“그건 됐거든???”
태현의 말에 랭커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딴 팁은 필요 없어!
태현은 살짝 시무룩해졌다. 판온 1에서 직접 겪은 팁을 알려주려고 했는데….
랭커들은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놈 팁은 아무 의미가 없어.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해.”
“맞는 말이야.”
태현의 조언은 틀린 부분이 없기는 했다.
…문제는 당사자가 태현이라는 것!
태현이니까 저 모든 걸 해낼 수 있었지 그들은 아마 싸우다가 던전에서 로그아웃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저런 걸 ‘이렇게 저렇게 슉슉하면 되지 않냐?’라고 말하는 태현에게 살의가 솟구쳤다.
저 저 저…!
“앞으로 뉴비들이 뭐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할 거야.”
“나도…! 이 쉬운 걸 왜 못하냐?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겠어!”
“우리 다 같이 영차영차 해보자!”
“애들아. 영차고 뭐고 간에 우리 망한 건 그대로거든. 정신 차려.”
“일단 이번 던전들은 다 깨야겠지.”
“거기서 잃어버린 것들 최대한 회복하고 골드도 좀 쟁여놓자. 보상도 들어올 테니.”
“그다음은?”
“그다음은 일단 사람 없는 곳으로 빠져야겠지. 중앙 대륙 왕국에 있는 건 미친 짓이겠고….”
“방송도 못 틀겠군. 틀었다가는 대번에 들킬 테니.”
말하던 도중 랭커들은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순간 모두가 동시에 같이 한 생각!
-이 새끼를 믿어도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절박해지면 서로를 팔아넘길 것 같은 놈들!
“…각자 흩어질까?”
“그거 좋은 생각 같은걸?”
“내가 딱히 너희를 못 믿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하하… 나눠서 흩어지면 생존 확률이 더 높아지잖아. 안 그래?”
“난… 아스비안 제국 쪽으로 튀어야겠다.”
“…난 프리카 대륙. 그쪽은 아직 발견 안 된 곳 많으니까.”
“난 우르크 쪽으로 갈 거다.”
물론 다 거짓말이었다.
자기가 갈 곳을 정직하게 말하는 건 바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바보는 언제나 하나 있는 법. 유난히 거짓말을 못하는 랭커가 있었다.
“그린, 넌 어디로 갈 거야?”
“…난 그냥 뭐….”
말끝을 흐리는 그린. 이 모습에 다른 랭커들은 눈빛을 반짝였다.
이놈 봐라?
왜 이러지?
“왜 그래? 우리가 설마 네가 갈 곳을 말할 것 같아서 그래?”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내가 너 가는 곳에 같이 갈까 봐?”
“…….”
“그거 맞구나!”
“와, 그린.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냐? 네가 갈 곳에 안 가도 우리도 갈 곳 있어!”
“진짜?”
“그럼! 그러니까 말해보라고. 그냥 궁금해서 그래.”
“…난 그냥 김태현 곁 따라다닐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