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78화
태현처럼 사디크의 권능과 아키서스의 권능 등 여러 신의 권능을 가진 사기적인 존재도 냉기의 핵 근처에는 못 다가가고 있었다.
아무리 교단의 영웅들이 뛰어난 영웅들이라 할지라도 냉기의 핵을 건드리지 못한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푸르네우스가 참 대단한 놈이긴 하군.’
[악마 공작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어이없어합니다.]
악마 공작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당연히 대단하겠지!
“그래서 봉인해야 한다고요?”
“바로 그걸세.”
“…그건 좀….”
“?!”
냉기의 핵을 봉인하라니.
태현에게는 너무 하기 힘든 일이었다.
내 손으로 그런 강력한 사기 아이템을 봉인하라니!
가슴이 찢어지고 피눈물이 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 아니… 왜 그런가? 봉인해야 한다니까…?”
“우리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가?”
“아니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냉기의 핵으로 세상에 좋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
-????
영웅들, 신, 소환수들 모두 의아해하는 말!
대체 냉기의 핵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뭐지?
그런 게 있나??
“대체… 그런 게 있는가?”
“그게 무엇인가요 대체?”
물론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태현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야 했다.
“만약 대륙에 폭염의 저주가 찾아온다면 이 <냉기의 핵>으로 열기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폭염의 저주가 왜 찾아오나?”
“뭐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추운 냉기의 저주도 찾아오고 역병도 퍼진 적 있는데.”
[카르바노그가 자꾸 그렇게 말하면 불안해지니까 그만 말하라고 말합니다.]
아무 근거 없지만 자꾸 그런 저주 이야기를 하니 왠지 모르게 언젠가 한 번 올 것 같다!
카르바노그는 더운 걸 좋아하지 않았다.
“젊은이. 그거는 너무 막연한 것 같은데….”
“그거 말고도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쳐들어온다면 이 냉기의 핵으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누가?”
“다른 왕국의 병사들이나 플레이어들?”
태현의 말에 영웅들은 경악했다.
지금 다른 왕국이나 모험가들을 상대로 저 사악한 악마의 아이템을 쓰겠다는 건가?
우리의 교단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곳이었다니!
[교단의 영웅들이 커다란 충격을 받습니다!]
[이대로 계속 내버려 둘 경우 충격을 받은 영웅들이 각자 행동에 나설 수 있습니다.]
정체성에 혼란을 받은 영웅들!
하필이면 성기사들이나 사제 같은 이들이었기에 충격은 더더욱 컸다.
믿음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에 한 번 흔들리면 대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이다.
원래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삐뚤어지면 더 막 나가는 법!
태현은 급히 말을 바꿨다.
“…한테 쓸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악마들한테 쓰지 않겠습니까.”
“아아….”
“그것도 그렇군. 악마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는 없을 테니 말일세!”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교단의 영웅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교단의 영웅들 사이에서 평판이 오릅니다.]
‘간단한 설득이었는데도 경험치를 상당히 주는데?’
교단의 영웅들이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란 뜻일 것이다.
겉으로 보면 무방비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사실 교단의 영웅들은 한 명 한 명이 대단한 존재들이었다.
한 명이라도 교단으로 데리고 가는 순간 퀘스트 여러 개가 우르르 발동될 존재들!
사실 태현도 설명하면서 긴장했다.
이 교단의 영웅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아직 결정을 못 내린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게 왜 감당 못 할 거짓말을 하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어쩔 수 없었어.’
그냥 놓치기에는 너무 괜찮은 인재들이었다.
실제로 이 교단의 영웅들을 받은 덕분에 아키서스 교단은 각종 신성 스킬들을 공짜로 얻은 것이다.
한동안 망해서 고위 NPC가 없는 탓에 신성 스킬이 부족한 아키서스 교단한테는 매우 커다란 도움!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원래는 퀘스트가 마무리되면 골짜기로 가서 교단 NPC로 받을 생각이었지.’
가장 안정적인 방법.
대륙의 각 교단에는 고위 NPC들이 있었다.
성기사단장이나 대주교를 필두로 한 고위 성기사, 고위 사제 같은 이들.
교단 총본산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퀘스트 목적 때문에 대륙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이들 하나하나가 교단에 들어간 플레이어들한테는 커다란 도움이었다.
강력한 신성 스킬을 배울 수도 있었고, 퀘스트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으며, 각종 조언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아키서스 교단에 가장 부족한 건 고위 NPC!
물론 도박꾼 펠마스나 필사꾼 갈락파드, 대도적 에드안 같은 NPC들이 있긴 했다.
[화려한 라인업에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감탄하지 마.’
이들이 능력이 있긴 했지만 일반적인 고위 NPC랑은 거리가 멀었다.
일단 아키서스 교단 신성 스킬 중 고위 스킬에 들어가는 걸 하나도 못 쓰는 것이다.
결국 아키서스 교단의 구조는 심플하게 두 층으로 나뉘었다.
혼자 권능 스킬 찾으며 허덕이는 태현과, 그 밑의 새로 생긴 일반 사제와 성기사들.
-고위 NPC들을 구해야 해!
보통 자기 교단 NPC들을 잘 키우고 키워서 고위 NPC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태현의 발상은 독특했다.
남의 교단 NPC를 훔쳐 와서 쓰겠다!
[그렇다면 계획한 대로 골짜기로 가서 받으면 되지 않냐고 카르바노그가 의아해합니다.]
‘음. 안 그래도 지금 교단에 이상한 놈들 많은데 저 교단의 영웅들 받으면 완전히 난장판이 될까 봐….’
[이제 와서 새삼 뭘 그런 걸 신경 쓰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이미 교단은 난장판이야!
사실로 두들겨 패는 카르바노그였다.
* * *
“봉인을 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보초를 서겠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태현은 말리려다가 멈칫했다.
일을 안 한다→영웅들이 심심해서 밖으로 나갔다가 사고를 친다→태현의 골치가 아파진다.
성의 최상층 근처를 지킨다→그 일을 하느라 바쁘다→태현이 행복해진다.
“…해주신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역시 여러분들은 영웅…!”
“우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일세. 젊은이. 껄껄껄.”
교단의 영웅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성의 최상층 근처를 좀 더 강화하고 싶은데, 혹시 전설 등급의 신성 아이템 있나? 그걸 써서 신성 마법진을 치고 싶은데 말이야.”
“…그런 비싼 건 없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태현뿐만 아니라 다른 교단 플레이어들도 저렇게 비싼 아이템은 없을 것이다.
전설 등급이라니.
그냥 성수나 축복 받은 아이템 같은 것만 해도 가격이 어마어마했는데 전설 등급이라면….
교단에서 엄중히 관리하는 아티팩트일 것이다.
“흐음. 그러면 평범한 신성 아이템 같은 건?”
“그런 거라면야 있….”
“대신 레벨 제한이 500 정도만 넘기면 되는데….”
“…….”
태현은 깨달았다.
이 영웅들, 감각이 이상해!
생각해 보니 당연했다. 엄청 오래전 사람인 데다가, 그 당시 교단에서 손꼽히는 영웅.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아침에는 전설 등급 성수로 입가심을 하고 점심에는 전설 등급 성검으로 스테이크를 잘랐겠지!
[대체 왜 그런 짓을 하겠냐고…]
“그런 건 없습니다.”
“어이구…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교단이 꽤 가난해졌군그래.”
“나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야.”
영웅들은 안타깝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물론 태현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한 눈빛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뭐…!
“그러면 우리가 알아서 해보겠네. 이만 가봐도 좋네.”
“감사합….”
말하려던 태현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냉기의 핵 근처에 해놓을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폭탄이냐며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내가 폭탄만 쓰는 건 아니거든. 카르바노그. 물론 많이 쓰지만.’
태현이 생각한 건 다른 스킬이었다.
<시이바의 구속 의자 제작>!
슬라임 신 시이바의 권능 스킬로, 한 번 앉으면 의자가 부서지기 전까지 명령을 들어야 하는 무시무시한 권능 스킬이었다.
플레이어한테 쓸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냉기의 핵을 노리러 오는 놈은 기본적으로 악마일 확률이 99%일 테니까.
-시이바의 구속 의자 제작!
[<시이바의 구속 의자 제작>을 사용했습니다. 시이바의 권능이 담긴 슬라임 의자가 만들어집니다.]
[구속 의자의 내구도는 기계공학 스킬과 대장장이 기술 스킬, 신성 스탯에 영향을 받습니다.]
[구속 의자의 내구도는 앉은 상대에게 명령할 때마다 감소합니다.]
[상대의 레벨에 따라 내구도의 감소량이 달라집니다.]
[……]
‘오. 겉모습을 조절 가능하군.’
태현은 제법 그럴듯하게 의자의 모양을 바꾸었다.
마계에서 봤던 푸르네우스의 영역. 수정과 얼음으로 가득한 그 풍경과 비슷하게 바꾼 것이다.
그리고 냉기의 핵 최대한 가까이에 뒀다.
[카르바노그가 의자 뒤에 ‘आज्ञा’라고 적자고 말합니다.]
‘그게 무슨 뜻인데?’
[악마들의 말로 ‘의자’란 뜻이라고 말합니다.]
‘…그, 그래.’
[악마들의 언어에 대한 지식이 늘었습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완성된 광경을 보니 꽤나 그럴듯했다.
최상층 한가운데에서 마력을 내뿜고 있는 냉기의 핵.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푸르네우스의 의자(같아 보이는 것)!
여기 무심코 앉기만 한다면….
‘큭큭큭큭….’
태현은 사악하게 미소 지었다.
[카르바노그가 교단의 영웅들이 저기 앉으면 어쩌냐고 묻습니다.]
‘너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 * *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드디어 태현이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세계수 랭커들이 환호했다.
와! 신난다! 던전이다!
소풍 가기 전날의 어린아이들처럼 잔뜩 기대한 랭커들!
태현은 그들을 보면서 의아해했다.
‘얘네들 진짜 긴장 안 하나?’
던전 공략에 대한 긴장이 아니었다.
랭커쯤 됐으면 던전 공략한다고 긴장할 수준은 지났으니까.
물론 미공략 던전들은 랭커들도 실패하는 곳이긴 했지만, 실패한다고 해서 꼭 로그아웃당하는 건 아니었기에 긴장하진 않았다.
던전 공략에서 긴장하면 실수한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태현이 의아해하는 건 다른 부분.
즉….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 쪽 던전을 터는 것에 대한 긴장!
태현이야 이미 적들이 운동장을 채울 정도로 많아서 새로 한 명 더 생긴다고 달라질 건 없었지만, 랭커들은 대형 길드 간의 관계를 어마어마하게 신경을 썼다.
이 던전을 터는 순간 이들은 <길드 동맹>이나 <미다스>에게 선전포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러나 랭커들도 믿는 구석은 당연히 있었다.
-김태현이 있으니까 김태현한테 쏠리겠지.
-김태현이 있으니까 당연히 김태현이 주도했다고 생각하겠지.
-김태현이 있으니까 나한테는 별로 신경 안 쓰겠지.
태현의 명성이 너무 상상을 초월해서, 같이 있는 랭커들마저 덮어버리는 것이다.
교활하지만 정확한 판단!
랭커들은 확실히 머리가 좋았다. 오랫동안 판온을 해온 경험은 어디 가지 않았다.
미공략 던전을 공략함으로써 보상을 한몫 챙기고, 그 뒷감당은 태현한테 돌린다.
그야말로 이기적인, 랭커다운 발상이었고 해볼 만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언제나 계획한 대로 굴러가지 않는 법.
그들은 두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현재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 모두 서로 싸우느라 바빠서 태현을 적으로 두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
그리고….
사람은 원래 누군가한테 맞았는데 복수를 할 수 없다면 다른 누군가한테 화풀이를 한다는 점이었다.
태현한테 화풀이를 할 수 없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