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976화 (976/1,826)

§ 나는 될놈이다 976화

생각해 보니 랭커들이 고생한다고 해도 이다비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도 아닌데!

“그러니까 방송이 재미없어서 저렇게 우울해하는 거잖아.”

“그렇죠?”

기껏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김태현과 같이 하는 환상의 랭커쇼!>라고 해놓고 하는 게 <김태현하고 같이 광산에서 곡괭이질 합니다!>였으니, 사람들이 화를 낼 만도 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태현의 이름값만으로 사람이 몇 배나 몰렸지만, 그 반응 대부분은 욕이었다.

-아 뭐하냐고! 빨리 사냥하라고!

-마계에서 안 싸우고 뭐함?

-너희 때문에 김태현이 퀘스트 안 하고 채광만 하잖아!

“내가 쟤네들한테 실수로 폭탄을 던지면 재밌어지지 않을까?”

초보 방송인의 대책 없는 애드리브!

태현은 길드 동맹 상대할 때 자주 썼던 가짜 폭탄을 꺼내 던졌다.

“으아아아악!”

랭커들은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매우 리얼한 가짜 폭탄!

“뭐야?! 뭐야?!”

“우, 우리가 집중 안 했다고 이러는 거야?”

“…바로 그거다. 너희들을 테스트해 보려고 한 거였지.”

“우리 열심히 하고 있었어! 봐!”

“뭐 이런 과격한….”

랭커들은 전율했다.

기사나 매체에서 ‘팀 KL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언제나 떠들어댔었다.

정말 이유를 알 수 없는 강함!

다른 게임단들이 따로 시간을 내서 연습 경기를 하고 대회 준비를 할 때 팀 KL은 목숨을 내던진 것처럼 위험한 퀘스트들만 줄곧 내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되는 방식!

기자들과 해설가들은 머리를 싸매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팀 KL이 강한 이유는 ‘실전 훈련’ 덕분….

-매번 고난이도 퀘스트를 함으로써 유지되는 실전 감각….

-억지로 훈련할 필요 없이 퀘스트 동선으로 훈련을 만든다! 팀 KL!

그때는 기사들을 보고 ‘에이 그래도 훈련은 따로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던 랭커들이었는데….

오늘 경험하니 알 것 같았다.

‘팀 KL 미친놈들 이런 걸 하고 있었어?’

‘이러니까 강해지지…!’

던전을 돌 때 파티원이 폭탄을 던지는 걸 대비해야 하는 긴장감!

이 긴장감이 강함의 원인인가…!

물론 아니었다.

* * *

“앗. 폭탄이.”

“으아아아악!”

“또 손이 미끄러졌네.”

“끄아아아악!”

“다시 폭탄 간다.”

“이제 안 속아! 가짜잖….”

콰콰콰콰쾅!

“으아아악!”

태현의 기계공학 경력이 몇 년인데, 가짜 폭탄과 진짜 폭탄 섞어서 쓰는 건 이미 예술의 경지였다.

랭커들이 그 미묘한 심리전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가짜인가? 싶으면 진짜고 진짜인가? 싶어도 진짜인 오묘한 폭탄의 세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맞아!!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우리가 악마 같다고 욕한 거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사과할게!”

“…너희 나 악마 같다고 욕했었냐?”

“…아차.”

“나, 나는 안 그랬어. 얘가 그랬다?”

랭커들은 재빨리 책임을 돌렸다.

우린 잘못 없어요!

마계에서 워낙 빡세게 구르다 보니 태현의 뒷담을 까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얼어 죽기 전에 ‘김태현 나쁜 놈!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외쳤던 건 모두가 숨겨야 할 비밀이었다.

태현은 랭커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들 방송을 재밌게 해주려고 해준 건데….”

“…네?”

“뭐?”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거지?”

랭커들은 귀를 의심했다.

‘아니 그냥 평범하게 사냥을 해!’

‘넌 그냥 평범하게 퀘스트만 해도 재밌는 사람이야!’

왜 이상하게 재미를 만들려고 하는 건데!

“재미가 없었나?”

“당연히 재미없었지!”

랭커들은 발끈했지만 사실 사람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아뇨! 재밌었어요!

-더 해주세요!

굴러오는 폭탄을 피하는 두근두근 회피 쇼!

-왜 그만하려고 함 ㅡㅡ 더 하셈.

-김태현이 방송을 안다니까.

-김태현한테 방송 배우자.

랭커들은 수없이 올라오는 반응들을 무시하고 강력하게 말했다.

재미없다!

이런 건 방송이 아니다!

방송의 진짜 재미는 퀘스트와 던전 공략에 있다!

“그래? 괜한 짓을 했나….”

태현은 아쉬워했다.

나름 도와주려고 했는데!

-아니에요! 더 하셔도 되는데!!

-아 방송 재미없게 하네 ㅡㅡ

랭커들은 들킬까 봐 황급히 말을 돌렸다.

“김태현. 우리를 도와주려면 더 좋은 방법이 있어!”

“그게 뭔데?”

“난이도 높은 광산 던전을 공략하는 거야!”

“너무… 수수하지 않나?”

태현의 말에 랭커들은 할 말을 잃었다.

‘네가 언제 수수하게 던전을 공략했다고 그래 미친놈아…!’

‘내가 네 판온 1 때 영상도 다 봤거든?’

‘그게 수수한 거면 세상 던전 공략 파티들은 다 접어야겠다!’

세상에서 ‘수수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인물!

“선배, 어차피 저 사람들 배려해 줄 필요 없이 광석 모아야 하지 않나요.”

“아. 하긴 그러네. 나 악마 같다는 놈들 배려해 줄 필요가 있나.”

“…….”

“…….”

철저한 뒤끝!

랭커들은 속으로 울었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었다니까…!

“난이도 높은 광산 던전 공략하는 건 나도 찬성이긴 한데.”

태현은 랭커들이 꺼낸 말에 동의했다.

어차피 지금 모아야 할 광석 양은 광산 한두 개 털어서 될 양이 아니었다.

난이도 높은 광산의 깊은 곳일수록 광석의 양도 늘어난다!

고렙 광부들이 난이도 높은 광산에 찾아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고난이도 광산이 그냥 굴러다니진 않을 텐데. 지금 최대한 빨리 성 수리한 다음 왕국으로 옮기고 싶다고. 시간 오래 끌고 싶지 않아.”

그런 광산들은 찾는 것도 일이었다. 이미 유명한 광산들 몇 개 빼고는 전부 다 숨겨져 있을 테니….

랭커들은 태현의 말을 듣고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럴 줄 알고 준비해 왔다!”

“자! 여기 지도를 봐!”

이곳저곳에서 차곡차곡 빼 온 알짜배기 고난이도 광산 던전 리스트!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차례대로 순례하자!”

“큭큭큭… 이번 기회로 세계수에서 잃었던 손해를 만회하는 거야…!”

랭커들의 눈빛에는 광기가 번뜩였다.

한 방…!

한 방으로 갚을 거야!

“야. 여기는 완전히 오스턴 왕국 쪽인데?”

“상관없어!”

“여기는 미다스 길드가 지배한 곳 아니었나?”

“그것도 상관없어!”

“…너 길드 동맹하고 친하지 않았었나?”

“그것 또한 상관없다!”

기존 길드 동맹이나 미다스와 친한 랭커들도 많았다.

원래 태현처럼 대형 길드들과 각을 세우고 대립하는 사람이 특이한 거였지, 보통 랭커들은 어느 정도 사이를 원만하게 만들어 놨다.

싸워서 서로 좋을 일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여기 있는 광산 던전들 다 깨기만 하면, 세계수에서 잃었던 거 복구하고도 남는다.’

‘마계에서도 사실 고생하긴 했지만 경험치 보상만큼은 어마어마하게 들어왔어.’

미해결 던전 클리어 보너스+광산에서 떨어지는 보상까지.

이 정도면 길드 동맹이나 미다스에서 정색하는 거 무시할 만했다.

그 모습에 태현은 신기해했다.

‘랭커들은 보통 각 세우는 걸 싫어할 텐데….’

[얘네들의 눈빛은 정상이 아니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해줍니다. 한 방으로 인생을 뒤집으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하긴. 맞는 말이다.’

뒷일보다는 지금 당장 던전을 깨려는 저 의지!

그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좋아. 이 리스트로 간다!”

“…!!!”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태현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이제 방송 보는 사람들이 좋아하나?”

“물… 물론이지!”

-아 폭탄 재밌었는데 ㅡㅡ

-구독 취소합니다.

-후원금 돌려주셈 ㅡㅡ

* * *

간다! 고 말했지만 바로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난이도 낮은 광산에서도 철저하게 다 긁어내는 게 태현이었다.

아직 사람들이 발견 못 한 광맥까지 다 차곡차곡 발견해서 뜯어가는 그 솜씨에는 랭커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와 저걸 다 어떻게 찾아내지?’

‘김태현 채광 스킬도 키웠나? 저런 미치광이 같은 놈….’

태현이 떠나고 나면, 여기 올 광부 플레이어들은 놀랄 게 틀림없었다.

평범한 광산에 광맥이 몇 배로 늘어나 있었으니까.

“김태현. 이제 슬슬 가도 되지 않나?”

랭커들은 광석들을 등에 짊어다 옮기면서 은근하게 물었다.

빨리 던전을 깨고 싶었던 것이다.

-아 아까 폭탄이 재밌었는데 ㅡㅡ

-다시 폭탄 던져달라고 해요 ㅡㅡ

방송 반응도 지금 폭발하기 직전!

물론 태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냐.”

“아니… 이 정도면 여기는 탈탈 다 털었잖아! 이제 저기 잘 나오지도 않아! 저기 곡괭이질 소리 턱턱대는 거 들리잖아!”

“그러면 너희들끼리 먼저 가던가.”

“으읏…!”

랭커들은 망설였다.

물론 랭커들은 초보자가 아니었다. 그들끼리 가서도 먼저 깰 수 있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지금 사람들이 난리를 치고 있는데 태현을 두고 그들끼리 가면?

방송창 폭주!

시청자 대거 이탈!

‘그리고 난이도 높은 던전 같은 경우는 이놈들끼리만 가는 건 좀 걱정인데.’

‘얘네들이 잘할 수 있을까?’

일명 ‘세계수 랭커’들은 속으로는 서로를 살짝 얕보고 있었다.

세계수에 홀려서 망한 놈들!

나사가 하나쯤 빠진 놈들이라, 이놈들끼리만 난이도 높은 던전을 깰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난이도가 높은 광산들은 결국 하층까지 공략이 안 된 미공략 던전들.

합이 잘 맞는 다른 랭커 공략 파티도 깨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김태현이 무조건 필요!

“크흑… 기다릴게….”

“마음대로 깎아. 우린 기다릴 테니까.”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늦어진다니까. 광맥이란 제대로 끝까지 깎아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태현은 숫제 방망이 깎던 노인으로 빙의를 했는지 채광의 극한을 추구하고 있었다.

판온 1 때의 추억이 되살아난 것!

광산 재료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박박 긁어모으던 그때의 추억!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현재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신의 예지> 스킬로 인해 광맥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매우 높은 행운으로…]

[매우 높은 힘 스탯을…]

[채광 스킬이 고급에서 시작합니다.]

[전술 스킬이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칭호: 광산 작업 관리자를…]

[고블린들의 평판이 더 이상 오를 수 없습니다.]

[드워프들의 평판이 오릅니다.]

“후. 이쯤 할까….”

“!!!”

열심히 짐을 실어 나르던 랭커들은 눈빛을 반짝였다.

진짜???

진짜지???

“아니. 포기하면 안 되지. 좀 더 해야겠어.”

“케에에에엑!”

“꿰에에에엑!”

랭커들의 괴성에 아키서스 키메라들은 놀라서 쳐다보았다.

저 모험가들… 사실 우리랑 같은 종족이었던 걸까?

* * *

[지하 연합 고블린들이 골렘을 해체해 <이동식 강력 화로>를 하늘성 안에 설치합니다.]

[냉기 정령들이 작업을 도와줍니다!]

[하늘성의 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작업물들에 정령 보너스가 들어갑니다.]

[하늘성의 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작업물들에 냉기 보너스가 들어갑니다.]

[질 좋은 구리 주괴가 만들어졌습니다!]

[질 좋은 구리 주괴가…]

[행운이 매우 높습니다.]

[아키서스의 화신…]

[아키서스의 보이지 않는 손 스킬이…]

[질 좋은 구리 주괴가 추가로 만들어집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작업대.

태현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참아야 했다.

매번 퍼주기만 하는 지하 연합 고블린들!

이러니 지하 연합 고블린들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퍼주고서도 ‘폐하가 남습니다’만 말하는 고블린들이라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고블린처럼 사랑해라!

‘덕분에 대장간을 공짜로 얻었군.’

골짜기에는 악마의 대장간, 수도에는 천사의 대장간이 있었지만 하나 더 있으면 무조건 좋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대장간.

그리고 심지어 정령의 대장간 아닌가.

[카르바노그가 대장간 수집하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기계 신수 소환>은 쓰지 않냐고 묻습니다.]

‘하긴. 슬슬 써야겠다.’

이제 던전 공략을 달리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바쁠 테니, 지금 쓰고 가는 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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