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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975화 (975/1,826)

§ 나는 될놈이다 975화

휴전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애매모호했지만 일단 하기는 한 상태!

어떻게 얻어낸 평화인데 그걸 태현 손으로 깨도 된단 말인가?

‘깨지 뭐.’

[…….]

-…….

1초도 안 걸린 고민!

예전과는 상황이 달랐던 것이다.

예전에는 길드 동맹이 견제할 세력 하나 없을 정도로 잘 나갔지만, 지금은 길드가 쪼개지고 왕국은 내전 나고 길드원들은 이탈하고….

솔직히 이제 길드 동맹이 전력으로 덤벼 와도 ‘할 만한데?’ 싶었다.

태현은 그사이 새로 추가된 부하들까지 있는 데다가 교단과 다른 왕국들의 인맥까지 동원할 수 있었다.

애초에 싸움을 시작한 건 길드 동맹이었는데 휴전 끝내고 선공 때린다고 죄책감이 생기진 않았다.

평소부터 착하게 살던가!

“선배, 좋은 방법이 있어요.”

“응? 그냥 당당하게 싸우려고 했는데 왜?”

“…저 타이럼 레인저라서 잘츠 왕국 핑계 대고 싸울 수 있는데….”

“…!”

생각해 보니 여기 광산들은 잘츠 왕국 거냐, 오스턴 왕국 거냐로 정해졌다.

잘츠 왕국이야 워낙 욕심 없는 곳이니 오스턴 왕국 플레이어들이 국경 광산들을 점령해도 대응하지 않았지만, 다른 왕국이었을 경우 병사들이나 기사들이 찾아왔을 수 있었다.

국경 지대 광산이란 건 원래 모두가 탐내는 보물!

“들어라, 오스턴 왕국의 병사들아! 여기는 잘츠 왕국의 땅인데도 멋대로 와서 점령을 한 그 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아, 아니… 잘츠 왕국하고 폐하가 무슨 상관이….”

병사들이 당황해서 말하려고 했지만 태현은 무시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 일행들에게 외쳤다.

“잘츠 왕국을 위해! 정의를 위해!”

“와! 잘츠 왕국을 위해! 정의를 위해!”

랭커들은 신이 나서 외쳤다.

그들이야 이유가 뭐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활약할 상황!

마계에서 쥐새끼처럼 숨어 다니면서 고생만 했지만, 이제 김태현 옆에서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랭커다!

랭커라고!

“지금 물러서지 않으면 당장….”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악명이 높습니다!]

[아탈리 왕국의 국왕입…]

[……]

[……]

[오스턴 왕국 병사들의 사기가 낮습니다.]

[병사들이 도망칩니다!]

“…….”

“…….”

“안 돼! 가지 마!”

랭커 중 한 명이 무심코 외쳤다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아, 아니. 보상… 경험치….”

“광산이나 들어가자.”

* * *

광산 맵은 기본적으로 위가 쉽고, 아래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형태였다.

지하 3층 미만의 광산 맵은 이상한 곳에 있지만 않다면 어지간해서는 플레이어들끼리 공략이 끝난 지 오래였다.

3층 정도면 어려워 봤자 현재 플레이어들이 공략해서 보스 몬스터를 깰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깬 던전에서는 지도를 만들고, 광석 위치를 파악한 다음 광부들이 작업에 들어갔다.

물론 몬스터들이 안 나오는 건 아니었기에 싸울 준비는 필수였다.

하지만 5층, 7층을 넘어 지하 10층을 넘어가는 광산 맵은?

의외로 에랑스 왕국이나 에스파 왕국, 아탈리 왕국에서도 못 깬 곳들이 꽤 있었다.

아직 플레이어들 수준으로는 힘든 곳!

워낙 던전 숫자가 많다 보니, 미해결 던전 숫자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던전들을 깨는 건 보통 전문 공략 파티였다.

던전 공략에 이골이 난 랭커들로 구성된 파티!

이런 미해결 던전들을 하나 깨면 어마어마한 명성과 사람들의 관심을 받….

아야 하겠지만, 사실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미해결 던전은 수천수만 개!

여기 도전하는 공략 파티들도 어마어마!

하루에 깨지는 미해결 던전이 몇 개인데 어떻게 그 파티들이 다 관심을 받을 수 있겠는가.

결국 유명해지는 건 그중 일부였다.

정말 어렵기로 소문이 난 던전을 공략한 파티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유명한 파티였거나.

어려운 퀘스트를 깬 플레이어들은 수천 명이 넘었는데 왜 그중 태현만 주목을 받았을까?

그건 태현이 가장 어려운 퀘스트를 가장 어렵게 깼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최고만이 기억된다!

남들이 길드 짜고 파티 짜서 차근차근 해나갈 때 맨몸으로 뛰어들어서 혼자서 깨버리는 압도적인 차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

“기회라 이 말이지.”

랭커 중 한 명이 잔뜩 기대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난 깨달았다. 우리가 왜 마계에 가서 그 고생을 했을까?”

“그건 세계수에서 재산을 날려서….”

“도박을 해서 그런 거 아닌가? 우리 할아버지가 한 말이 사실이었어. 도박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옆에서 떠드는 다른 랭커들의 말을 무시하고, 랭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 고생을 한 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

“뭔 소리래?”

“아, 멍청한 놈아! 지금 방송을 틀어야 한다는 거지!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겠어?”

마계 때는 너무 쪽팔려서 사람들의 열화 같은 관심에도 방송을 켜지 못했지만, 여기는 대륙.

아무리 그래도 망신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찜! 나 찜!”

“찜은 뭔 찜이야 미친놈아! 이런 거에 선착순이 어딨어!”

혼자 먹으려고 재빨리 말하는 랭커한테 구박이 들어왔다.

이걸 독점하려고 하다니 정말 양심이 하나도 없는 놈이 분명!

대화가 끝나자마자 랭커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자기 장비를 점검하고 얼굴을 점검한 다음 방송 켤 준비를 했다.

김태현과 같이 하는 품위 있는 던전 공략 방송!

생각만 해도 유명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컨셉!

“아, 이러다가 팀 KL 후보로 오해받는 거 아닌가 몰라.”

“퍽이나 그러시겠습니다. 사람들이 널 후보로 생각하겠냐? 나 정도는 되어야….”

“애들아. 너희 대화 진짜 추하거든.”

“광산 좀 난이도 높았으면 좋겠는데, 이 근처에 난이도 높은 광산 없냐? 거기로 가자고 하자.”

랭커들은 욕심 가득한 눈빛으로 수군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이 기회에 뽕을 뽑자!

태현과 얼마나 오랫동안 다닐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했다.

“여기 중립지대 광산 쪽에 소문으로 들었던 거 같은데….”

“아, 맞다. 길드 동맹 쪽에 있던 친구한테 들었던 광산 하나 있다. 숨겨진 광산이라 지도에는 없을걸. 10층 넘어가는 광산이라 아직 다 못 깼대.”

“오케이. 거기도 가자고 하자.”

“야. 그러면 이거 말해준 친구가 뭐가 되냐?”

“뭐가 되기는. 길드 따위보다는 친구를 선택한 좋은 친구가 되는 거지.”

“하긴 그것도 그러네. 맞는 말이다. 이것도 김태현한테 가자고 하자.”

랭커들은 신이 나서 지도를 새로 만들고 퀘스트 라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밥 먹고 게임만 한 사람들답게 이런 건 정말 손이 빨랐다.

<길드 동맹> 소속 친구한테 몰래 들은 광산 위치, <미다스> 소속 친구한테 몰래 들은 광산 위치, 비밀게시판에서 돈 주고 산 광산 위치 등등….

난이도 높을 거 같은 광산들은 다 모아!

“큭큭큭… 이제 곧 우리들의 시대가 온다….”

“세계수에 전 재산 날렸다고 날 비웃은 놈들, 두고 봐라.”

“그건 여전히 비웃을 일이야….”

“닥쳐!”

* * *

“저것들 왜 저렇게 수군거리지?”

태현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뒤를 쳐다보았다.

현재 일행은 태현과 최상윤 같은 플레이어들이 선봉.

고블린들과 아키서스 키메라, 유지수나 이다비 같은 원거리 직업들이 중간.

그리고 랭커들이 후방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랭커 놈들이 음산하게 ‘키히힉! 바로 이거야! 크헤헤헷!’ 하고 웃으며 떠드니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도 태현의 의심에 공감했다.

“저놈들 수상쩍기 그지없습니다.”

“폐하! 여기는 광산. 저희는 광산에서 싸우는 데에 전문가입니다. 맡겨만 주시면 여기를 무너뜨려 저놈들을 그대로 묻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도 죽지 않냐?”

“…아!”

“…….”

태현이 노려보자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자, 일을 하자! 일을!”

“여기 광맥이 있군!”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고블린들은 훌륭한 광부였다. 지나가다가 벽을 툭툭 두드리고는 골렘을 시켜 벽을 내리치면 광맥이 하나 뚝딱하고 나타났다.

채광 스킬이 최소 고급 이상이어야 할 수 있는 묘기!

태현은 그걸 보고 그리움을 느꼈다. 나도 판온 1 때는 저런 묘기를 부릴 수 있었는데….

물론 지금도 할 수 있었다. 다른 방법으로지만.

-신의 예지.

꽝!

태현은 신의 예지 스킬을 쓴 다음 고대의 망치를 휘둘러 일격에 벽을 박살 냈다.

“!??!”

“역시 폐하…! 고블린의 얼굴과 고블린의 몸과 고블린의 뇌와 고블린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그 개멋진 모습에 고블린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쯤 되면 그냥 고블린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의아해합니다.]

고블린들과 태현이 광맥을 찾아내면 그다음은 아키서스 키메라들이 움직였다.

힘 스탯, 체력 스탯들은 빵빵해서 짐꾼으로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인재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이 괜히 키메라를 예뻐하는 게 아니었다.

-퀘에엑! 신난다! 신난다!

“하하, 녀석들. 그렇게 좋단 말이냐?”

“고블린 특제 간식을 줘야겠군.”

-퀘에에에에엑! 너무너무 맛있다!

“녀석! 그렇게 좋아할 줄이야!”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코밑을 쓱 닦았다.

아키서스 키메라들의 귀여운 모습이 그들의 자식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물론 아키서스 키메라들은 점점 고블린들을 질색하는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저 고블린들 미친 고블린들이야!

자꾸 우리를 괴롭히려고 해!

* * *

-이 광산은 우리의 광산이다!

[붉은 드워프 도적들이 나타났습니다!]

“어디서 못생긴 드워프 놈들이!”

“여기가 왜 너희 광산이냐!”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격하게 반응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고블린들과 드워프들은 서로 종족적으로 싫어하는 사이!

레벨 100 안팎인 드워프들이었기에 고블린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고블린들이 퍼붓는 기계공학 무기의 화력과 골렘의 화력에 드워프들은 그대로 녹아내렸다.

“크하하핫! 미개한 놈들! 우리 지하 연합의 힘을 봐라!”

“황제도 악마 공작도 우리 앞에서는 무릎 꿇었다!”

고블린들이 신나서 싸우는 동안, 뒤의 랭커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

태현은 점점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쟤네 진짜 왜 저러냐?

뭘 잘못 먹은 거지?

“태현 님. 아마 방송하고 있을걸요.”

“방송하고 있으면 즐겁고 산뜻하게 해야 하지 않나?”

“방송하는데 하는 게 별로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의외로 엄격하거든요.”

시청자들은 의외로 엄격했다.

잘 보고 있는 플레이어라고 해도, 재미가 없거나 지루해지면 가차 없이 비난을 퍼부었다.

방송을 진행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골짜기에 가겠는가!

“으음. 그렇게 생각하니 좀 짠한데.”

태현은 랭커들을 쳐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세계수에서 인생 망했다고 좌절하던 놈들을 뭔가 보여주겠다고 데리고 갔는데, 마계에서 딱히 시켜준 게 없는 기분이었다.

아주 살짝 미안한 기분!

[그건 쟤네가 너무 약해서 그런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악마 공작 상대로 당당하게 선빵 먹일 정도는 되어야 뭘 시켜주지!

‘맞는 말이긴 하군.’

랭커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사실, 그런 잡일도 랭커들이니까 할 수 있었다.

푸르네우스의 영역은 발 디디는 것만으로도 고렙 이하 플레이어들은 모조리 다 죽었을 테니까.

“좀 도와줄까?”

“…어떻게요?”

이다비는 태현의 물음에 살짝 불안해지는 걸 느꼈다.

‘아, 그렇지만 내 일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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