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73화
당연한 일이었다.
악마 공작의 영역에 들어가 역병과 독을 풀어 정령들을 전부 다 폭주시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는데….
이게 가장 작은 업적이었다.
푸르네우스를 기습해서 공격하고, 아다드와 싸움까지 붙인 뒤, 마지막에는 푸르네우스의 성까지 탈취!
어떤 쉐도우 엘프도 해내지 못한 대단한 업적이었고, 앞으로도 해내지 못할 위대한 업적이었다.
쉐도우 엘프들의 눈에는 흥분과 존경이 가득했다.
[쉐도우 엘프 내 공헌도가 매우 크게…]
[칭호: 쉐도우 엘프 용사…]
[칭호: 쉐도우 엘프의 친구…]
[칭호: 쉐도우 엘프의…]
[……]
[푸르네우스의 성을 탈취한 것으로 인해 쉐도우 엘프 마법사들 사이에서 당신의 명성이… 도움을 요청할 경우 받을 수 있습니다.]
[쉐도우 엘프 대장장이들이 무료로 당신의 요청을 받아줍니다.]
[……]
너무 메시지창이 많아서 일일이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앞으로 쉐도우 엘프 사이에서 VIP 대접을 받게 되리라는 것!
‘김태현이 같이 왔어야 했는데!’
케인은 속으로 한탄했다.
케인 혼자 있어도 이렇게 대접해 주는데 태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쉐도우 엘프들은 자기들 간이라도 빼서 내줬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NPC들 상대하는 전문가는 태현이나 이다비였다. 여기서 뭘 더 어떻게 뜯어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에이. 현상 유지나 하자.’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도 동맹인 거겠지?”
-물론이다. 너나 다른 용사들처럼 용맹한 자들이라면 우리가 오히려 영광이다. 앞으로 모험가들은 건드리지 않겠다.
“어. 아니야. 건드려도 돼.”
-??
-네 동료 아니었나??
“아닌데? 모르는 사람들인데?”
케인은 재빨리 대답했다.
요새에 있는 랭커들이나 고렙 놈들이 뭐가 예쁘다고!
“인간들이라고 다 같은 친구가 아니라고. 신경 안 쓰는 놈들이니까 마음껏 잡아가도 돼.”
-그랬군. 흠. 네 동료인 줄 알고 건드리지 않았는데.
-앞으로 잡아가야겠어.
“그래. 특히 자기들을 <길드 동맹>이라고 하거나 <미다스>라고 하는 놈들은 아주 재수 없는 놈들이니까 마구마구 잡아도 돼! 평소에 엘프 별거 없다고 비웃는 놈들이야!”
태현이 옆에 있었다면 카르바노그와 같이 감탄했을 것이다.
정말 많이 성장한 케인!
물론 케인은 개인적인 원한에 활활 타오를 뿐이었다.
‘평소에 나 얕보던 재수 없던 놈들!’
사실 이제 케인을 얕보는 랭커들은 없었다.
레드존 길마 때를 꺼내거나 김태현 뒤를 따라다니면서 출세했다고 까긴 해도, 케인의 실력을 무시하기에는 케인이 보여준 결과가 너무 대단했던 것이다.
입으로는 ‘케인 그놈~~’ 하면서 욕을 하더라도 속으로는 인정하는 게 대부분!
하지만 그런 걸 케인이 알 리 없었다.
케인 입장에서는 ‘이 자식들… 물론 내가 실력이 없고 운만 좋아서 김태현 따라다니면서 받아먹긴 했지만 그렇게 말하면 상처 받잖아!’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맞는 말만큼 아픈 게 없는 법.
그 원한이 지금 마계에 온 정예 파티들을 찌르고 있었다.
덕분에 영문도 모르고 같이 싸잡힌 다른 길드원들!
-엘프를 비웃다니. 간이 배 밖에 나온 놈들이군!
-보이는 족족 쏴서 죽여야겠다.
“맞아!”
-그렇지만 네 동료들과 구분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음. 그렇게 말하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러면 이 징표를 주지. 이 징표를 갖고 있는 모험가들은 공격하지 않겠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쉐도우 엘프들이 준 징표는 옷 위에 다는 장신구였다.
별 효과는 없었지만 쉐도우 엘프들에게 공격 받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
옆에 있던 거인들은 그걸 듣고 감탄했다.
-아주 좋다! 아주 좋다!
-어디에 쓸 수 있을지 우리도 알겠다!
한창 장사에 재미를 붙인 거인들!
엘프들이 준 징표를 보고 어디에 써야 할지 바로 깨달은 것이다.
거인들의 말에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좋은 거지. 쉐도우 엘프들이 우리를 인정해 줬다는 뜻이잖아.”
-그렇다! 그러니 그걸….
“소중히 여기고 잘 아껴두라 이거지? 쉐도우 엘프들의 진심에 보답하기 위해서?”
-???
-뭔 소리 하는 거냐?
거인들도 당황할 만한 멍청함!
케인도 당황해서 되물었다.
“아니… 쉐도우 엘프들이 자기들 친구라고 준 징표잖아? 이걸 함부로 다루면 화를 낼 수도 있다고.”
-멍청하다! 멍청해!
-돈 받고 팔아야 할 거 아닌가! 징표 뒀다가 수프 끓여 먹을 건가!
“!!!”
케인은 경악했다.
이 거인들 대체 언제 이렇게 변했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이 용암이 맛있다’, ‘아니 이 용암이 더 맛있다! 넌 매운맛도 모르냐’ 하며 원초적인 대화만 하던 그들!
그런 놈들이 장사에 맛을 들이자 무시무시했다.
얼마 지나면 자기들 무기도 팔아먹을 거 같다!
쿵쿵-
거인들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책임자가 너무 멍청하다! 이대로는 우리를 이끌 수 없다!
-화신이 돌아와야 한다! 노예는 멍청하다!
“아… 아니야! 나도 잘할 수 있어!”
-정말인가?
거인들은 의심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케인은 허겁지겁 대답했다.
“이 징표를 많이 만들어서 요새의 플레이어들한테 비싸게 팔라 이거잖아?”
-그거뿐인가?
“더… 더 있나?”
-시간 제한 있어야 한다! 그래야 또 판다!
-잘 부서져야 한다!
-한 번 거절한 놈한테는 더 비싸게 팔아야 한다!
[아키서스 포병대 거인들의 상업 스킬이 오릅니다!]
[아키서스 포병대 거인들의 지혜 스탯이 오릅니다!]
[……]
[아키서스 포병대의 명중률이 올라갑니다!]
“그, 그래. 그렇게 할게. 그렇게 하면 되잖아.”
태현이 없어도 거인들은 알아서 배운 것들을 잘 써먹고 있었다.
[<버려진 땅의 요새> 경제 등급이 향상됩니다!]
* * *
“허. <버려진 땅의 요새>는 정말 내버려 둬도 오르네.”
“잘츠 왕국이랑은 정반대네요.”
“…….”
유지수가 잘츠 왕국 이야기할 때에는 감정이 가득했다.
태현이 이세연 이야기할 때나, 이다비가 파워 워리어 길드원 이야기할 때와 비슷한 감정!
“그래도 잘츠 왕국 나왔잖아?”
“나중에 직업 퀘스트 또 깨려면 다시 가야겠죠….”
“아키서스 쪽으로 전직할래?”
“…!”
유지수는 그 말에 매우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잘츠 왕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다가 태현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유지수는 고민 끝에 고개를 저었다.
“이제까지 한 게… 너무… 아까워서….”
“그 마음 이해한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유지수도 훌륭한 판온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예전에 봤을 때는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뉴비였었는데…!
지금은 판온에 목숨 좀 건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선배, 아까도 말했지만 잘츠 왕국에서 수리하려는 것보다 오스턴 왕국으로 가서 구하는 게 나을 거예요.”
2번이나 강조하는 유지수!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츠 왕국에서 구하기 힘들면 오스턴 왕국에서 뜯어… 아니, 빌려야겠지.”
“네! 선배가 오스턴 왕국에서 뜯어… 아니, 빌려 오신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 앞장설게요!”
주먹을 꽉 쥐고 말하는 유지수의 모습은 케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믿음직스러웠다.
‘그나저나 케인이 걱정되는군.’
요새 잘 관리하고 있나?
다른 곳이면 나았을 텐데 하필 마계라서 걱정이 두 배일 수밖에 없었다.
메시지창은 멀쩡한 것 같은데….
“김, 김, 김태현!”
“?”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성 안에 타고 있던 랭커들이 새파래진 얼굴로 달려 나왔다.
“무슨 일이지? 혹시 타이럼 사냥꾼들이 성 안에 들어왔나?”
“??”
“그게 무슨… 아니! 랭커 중 몇 명이 사라졌어!”
“휴. 별일 아니었군.”
“…….”
“…….”
랭커들은 귀를 의심했다.
“뭐가 별일이 아니야?!”
“이동 도중에 미아가 될 수 있다니까? 이 정도 인원이 남은 게 운이 좋았던 거지. 어차피 사라졌다고 해봤자 대륙 어딘가에 있을 거야. 랭커면 알아서 잘 찾아오겠지.”
“악… 악마!”
“피도 눈물도 없어!”
“아니, 이 정도면 충분히 신경 써준 거 아닌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줘? 너희들한테 부하들 좀 빌려줄 테니까 구하러 갈래?”
태현의 질문에 랭커들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랭커쯤 됐으면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암.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하는 법.”
“우리가 구하러 가면 오히려 자존심이 상해서 화를 낼지도 몰라.”
“…….”
태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10초 만에 사라진 우정!
마계에서 생긴 우정은 아마 마계에서 두고 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누가 사라졌지?”
“수아나하고… 요한손하고….”
[카르바노그가 내기 잊지 말라고 합니다.]
‘무슨 내기? 아, 쟤네 둘이 사귀는지 안 사귀는지? 에이, 안 사귄다니까.’
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카르바노그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토끼 동상이 갖고 싶어도 그렇지!
“폐하, 수리를 위해 재료를 모아 오실 생각이라면 저희도 같이 가겠습니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성의 수리 재료를 위해서는 그들이 직접 보고 고르겠다!
아키서스의 키메라들도 같이 나와 눈을 끔뻑거렸다.
“성을 지켜야 할 인원도 필요하지 않나?”
“정령들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고블린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지금 성 안을 지키는 냉기 정령들은 우습게 보여도 레벨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계에 있으니까 졸병 취급을 받았던 거지, 대륙에 있으면 하나하나가 준 보스 몬스터!
[<아키서스의 하늘성>에 소속된 냉기 정령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갈 경우 크게 페널티를 받습니다!]
[현재 정령술 스킬이 낮…]
[<냉기의 핵>의 버프가 사라집…]
[<아키서스의 하늘성>의 버프가 사라집…]
아쉬운 건 정령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싸울 수 없다는 점.
정령들의 힘은 <아키서스의 하늘성>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태현의 MP를 쭉쭉 빨아먹는 놈들이 되었을 테니까.
“하긴 정령에….”
“교단의 영웅들도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불안해지는데.”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
교단의 영웅들은 지금 성 한구석에서 고이 잠들어 있었다.
나이가 많으면 잠이 많아지는 법. 성이 날아가는 동안에도 ‘그럼 우리는 한숨 잘게~’ 하고 들어갔던 것이다.
태현도 굳이 ‘아닙니다! 주무시지 마시고 계속 깨어 있으시며 문제를 일으켜주십쇼!’ 하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자는 게 낫다!
“정령들. 만약 일어나서 이상한 짓 하려고 하면 그냥 얼려 버려.”
-그… 그래도 됩니까?
순진무구한 정령들은 태현의 명령에 당혹했다.
아군 아니었어?
“원래 얼어 있던 사람들인데 좀 더 언다고 뭐 달라지겠어. 얼려.”
[카르바노그가 논리 그 자체라며 감탄합니다.]
“그보다 재료를 구하려면 역시 광산인가? 잘츠 왕국이야 광산은 많지만….”
왕국 자체가 산악 왕국이다 보니 산맥에 위치한 광산들도 여럿 있었다.
잘츠 왕국 안에 위치한 광산도, 잘츠 왕국과 오스턴 왕국 경계에 위치한 광산도 있었고 이런 광산들은 그나마 인기 있는 곳 중 하나였다.
물론 광산 좀 있다고 잘츠 왕국 고르는 미친놈은 없었다.
다른 왕국도 광산 있는 데다가 정 안 되면 잘츠 왕국으로 여행 와서 광산 가면 되니까!
“수리에 어느 정도가 필요한 거지?”
“사실 수리도 수리지만 마계에서 급하게 작업하느라 못했던 보강을 더 마치고 싶습니다.”
<하늘성의 보강-지하 연합 고블린 퀘스트>
급하게 개조된 <아키서스의 하늘성>은 내구도나 방어력에서 약점이 드러났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자신들의 걸작에 이런….
“알겠어. 마음대로 해.”
태현은 바로 수락했다. 굳이 다 읽어볼 필요도 없었다.
“정말이십니까? 그 많은 재료를 다 구하실 수 있으신….”
“…잠깐만.”
태현은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질 좋은 상급 강철 주괴 (1500)
질 좋은 상급 청동 주괴 (1500)
……
……
……
[카르바노그가 이 정도 재료라면 자기 거대 동상 하나 세우고 남겠다고 경악합니다!]
“퀘스트 취소.”
“아… 아니! 제발 그러지 마십쇼!”
“폐하! 그러지 마십쇼! 엉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