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72화
길드원 대다수가 사망 페널티 같은 건 신경 안 쓰는 게 파워 워리어!
원래도 ‘레벨이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 ‘진정한 무소유는 이런 것이다’ 같은 마음으로 살던 길드원들이었지만, 단검단이나 저격단이 안에서 창시되고 나서는 더더욱 심해졌다.
-너는 출세하기 위해 레벨업 하냐? 나는 출세하기 위해 레벨을 깎는다!
-욜로라고 들어봤냐? 왜 판온에서까지 일을 하려고 해?
-요즘 개나 소나 고렙 찍는데 언제 레벨 올리냐? 우리 다 같이 레벨 1로 즐겁게 판온을 살자!
-애들아 제발 개소리하지 말고 평범하게 레벨업을 해…!
이다비가 아무리 말을 해도 길드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애초에 정직하게 레벨업을 할 사람들이었다면 파워 워리어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
파워 워리어에 들어오는 건 기본적으로 평범한 레벨업에 관심이 없는 플레이어들이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파워 워리어의 분위기는 그들에게 딱 맞았다.
물론 이다비가 원해서 그렇게 만들어진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근데 애초에 광고를 그렇게 하니 이상한 놈들이 온 거 아닌가?’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다비에게 말하진 않았다.
어쨌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날로 먹는 걸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오죽하면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회일까!
-오오 아키서스 님… 인생을 제발 날로 먹게 해주세요!
-…….
그런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에게 태현은 확실한 보증수표였다.
퀘스트에 한 번 참가하면 일 년은 놀고먹어도 된다!
게다가 태현이 방송을 시작하고 나서 개인 방송 순위를 씹어 먹기 시작하자, 길드원들의 갈증은 극에 달했다.
제발… 제발 나가게 해줘!
폭탄이라도 좋으니까!
-저희도 폭탄이 되고 싶습니다!
-제 어렸을 적 꿈이 폭탄이었습니다!
-사실 제 조상님 중 폭탄이 있습니다!
-이 자식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니냐?!
-뭐 어때! 나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안 돼.
-어… 어째서입니까! 대체 어째서!
-너희들은… 레벨이 낮잖아….
-…….
-…….
-그러니까 레벨업을 하라고 했잖아!
-크흑! 길마님… 하지만… 레벨업을 하기 싫어요…! 레벨업을 하면 날로 먹는 게 아니잖아요…!
-…….
‘김태현은 플레이어를 폭탄으로 쓴다’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사실 이건 의외로 부풀려진 이미지였다.
태현이 플레이어를 폭탄으로 쓴 경우는 거의 없었다.
케인이 대회에서 보여준 모습과, 태현을 쫓아다니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취미가 자폭이라 부풀려진 이미지!
<살아 움직이는 폭탄> 스킬은 의외로 쓰기 까다로운 스킬이었고, 어지간해서는 그냥 폭탄을 쓰거나 딜을 넣는 게 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키서스의 제물>은 정말….
만인에게 평등하게 열린 기회!
레벨 1인 너도 할 수 있다!
태현은 이다비를 불러 새로 얻은 스킬에 대해 설명해 줬다.
“…이런 스킬이 나왔는데.”
“…악신 아니죠?”
“아, 아닐걸. 아마.”
태현은 살짝 말을 더듬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마!
“저희 길드원들이 너무 좋아할 거 같아서 짜증 나는데요….”
바로 보이는 미래!
-내가 뭐라 그랬냐! 레벨업 할 필요 없다고 그랬지! 언젠가 날로 먹을 수 있다고!
-욜로! 욜로! 욜로!
-분명 나중에는 쩨쩨하게 한 명씩 쓰는 게 아니라 수십 명 단체로 쓰는 스킬이 나올지도 몰라! 우리 그때를 위해 도원결의를 맺자!
-우리는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날 수는 없었지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접을 때까지 레벨 1을 유지할 것을….
-근데 도원결의가 뭡니까?
-이래서 외국인 놈들은… 삼국지를 모른단 말이야? 어?
이다비의 설명을 들은 태현은 이다비를 위로했다.
“에이, 그래도 파워 워리어는 이제 멀쩡한 사람들도 많이 들어오잖아.”
“그렇긴 한데….”
맞는 말이었다.
인기가 많아지고 나서부터는 파워 워리어에는 고렙 플레이어들과 랭커들도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태현의 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들어오고 나서 길드를 나가지 않는다는 건 파워 워리어가 의외로 매력이 있다는 걸 증명했다.
파워 워리어의 소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력을 느낀 것!
-뭐?! 길드에 가입했는데 매달 길드비를 안 내도 됩니까!?
-아니?! 길드 내에서 위치가 낮은데도 시설 이용에 별 차별이 없다고?!
-아아. 이것이 파워 워리어라는 거다. 이용에 차별이 없지.
-사실 예전에는 딱히 차별할 만한 시설도 없어서 생긴 규칙….
-쉿쉿.
“…그렇게 들어온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좀 이상해진다고요….”
그랬다.
고렙이나 랭커들도 파워 워리어에 들어오면 파워 워리어 길드원처럼 변하는 무시무시한 효과!
-아. 제미스 씨. 길드는 어때요?
-너무 좋습니다! 길마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까지 제가 판온을 잘못 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판온의 즐거움은 레벨업에만 있는 게 아니었군요!
-아, 아니… 그냥 레벨업 계속 하시면….
-길마님!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골짜기로 떠나려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니 왜 골짜기를…! 잠깐만요! 잠깐만요!!
이다비의 설명을 들은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길드 분위기가 좋으니 다행이네!”
“…그러네요….”
매우 정신적으로 피곤해 보이는 이다비를 본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난 나중에라도 절대 길드 만들지 말아야겠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세상!
* * *
“그래서 여긴 어디지?”
태현은 성의 외벽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아하니 어느 산맥 한복판에 추락… 아니, 착지한 모양이었다. 근처로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근데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잠깐… 뭔가 불길하게 낯이 익은데….”
“여, 여기는….”
옆에서 유지수가 경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더 낯이 익었던 것이다.
“잘츠 왕국이잖아요!?”
잘츠 왕국.
에랑스 왕국과 오스턴 왕국 사이에 낀, 북쪽 산악지대에 위치한 왕국.
그리고….
타이럼 시가 있는 왕국!
태현과 유지수가 판온을 시작했던 왕국이었다.
판온 플레이어들이 기피하는 왕국 1위!
판온 플레이어들 숫자가 적은 왕국 1위!
판온 플레이어들이 싫어하는 왕국 1위!
명예로운 삼관왕을 차지한 바로 그 왕국!
[카르바노그가 하필 이런 곳에 떨어지다니 뭔가 불길하다고 말합니다.]
‘너무 심하잖아? 잘츠 왕국도 나쁜 곳은 아니야. 마을이나 도시가 다 산에 있고 관련 시설은 부족한 데다가 플레이어들도 없어서 플레이하기는 더럽게 어렵지만….’
[그 정도면 이미 나쁘다고…]
“그래도 이렇게 보니 좀 추억이….”
“전 별로요.”
유지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잘츠 왕국 싫어!
태현이야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강제전직하고 나서 바로 왕국을 떠났지만, 유지수는 하필이면 직업도 <타이럼 레인저>라 오랫동안 잘츠 왕국에서 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 난이도!
남들은 포션 사려면 그냥 잡화점 가서 사면 됐는데 잘츠 왕국은 잡화점에서 포션을 안 팔아서 직접 붕대를 감아야 했다.
유지수가 빠르게 강해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롤모델이 태현인데 잘츠 왕국에서 플레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래도 판온 초기랑 달리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전혀요.”
다시 단호하게 대답하는 유지수!
판온 초창기에는 ‘초보자들의 무덤’, ‘여기 추천하는 놈 있으면 멱살 잡아라’라고 말이 나오던 타이럼 시.
지금은?
지금은 더 심해졌다!
정보가 더 많아질수록 초보자들은 더더욱 잘츠 왕국을 피하고 잘츠 왕국은 더더욱 플레이어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더 밖으로 나가고….
유지수는 한이 맺혔는지 잘츠 왕국에 대해 100가지 불평을 늘어놓았다.
몇 시간이라도 떠들 수 있다!
“잘츠 왕국이면 수리를 한 다음 바로 날아서 내려가면 아탈리 왕국이겠네.”
오스턴 왕국을 좀 지나기야 하겠지만 지금 오스턴 왕국은 태현을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
신경 쓰더라도 높게 날면 지들이 어쩌겠는가.
“선배… 수리를 할 재료도 구하기 힘들 걸요….”
“…….”
“차라리 저쪽으로 산 타고 내려가면 오스턴 왕국 내려가는데 오스턴 왕국에서 재료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 * *
“케… 케인! 돌아왔나!”
4왕자는 케인을 보고 울먹였다. 케인은 코밑을 쓱 훑으며 대답했다.
“너 때문에 마계에서 있어야 하잖아!”
‘후. 당연히 돌아왔지. 책임감하면 케인, 케인하면 책임감이라고.’
“뭐… 뭐라고 했나? 방금?”
“아차. 속마음이 반대로… 약속 지키러 왔다~ 이런 소리지.”
케인은 재빨리 말을 바꿨다. 4왕자는 워낙 친밀도가 높아서 그런지 케인의 말을 금방 믿었다.
옆의 기사들도 케인을 응원했다.
“왕자님,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케인 경은 분명 돌아올 거라고 말입니다.”
“케인 경은 진정한 기사의 귀감입니다.”
“케인 경이 왕자님을 버리고 쥐새끼처럼 도망가서 혼자 잘 먹고 잘살 리가 없잖습니까.”
묘하게 구체적인 말!
‘4… 4왕자 이 자식 나 도망간 줄 알고 뒷담을 까고 있었어…!’
물론 도망가려고 하긴 했지만!
“그래서 지금 요새 상황은 어떻지?”
“모험가들이 잔뜩 겁을 먹고 움직이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을 따끔하게 혼을 내주십시오, 케인 경!”
“맞습니다. 케인 경 같은 기사가 말한다면 모험가들도 들을 겁니다.”
“…….”
케인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애들아, 너희는 내가 김태현인 줄 아니?
김태현이 한다→다들 감동 받거나 겁을 먹어서 따른다.
케인이 한다→‘네가 뭔데?’란 반응이 돌아와서 케인은 구석에서 펑펑 운다.
같은 미래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 모인 모험가들은 저렙들이 아니었다. 각 길드에서 보내거나 랭커들이 파티장인 정예 파티들밖에 없었다.
그런 놈들이 말을 잘 들을 리가….
‘그리고 나 같아도 나가기 싫겠다.’
악마 공작이 파티들을 갈아버리는 방송이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요새의 플레이어들은 ‘제발 악마 공작이 여기 안 오게 해주세요’, ‘탈출 방법 팝니다! 먼저 골드 선으로 주시면 알려드림! 진짜임!’ 같은 반응만 보여주고 있었다.
“그보다 에랑스 왕국 본대는 언제 오는 거야? 아니, 자기 자식이 위험하면 빨리빨리 와야 하는 거 아냐?!”
케인은 불평했다.
4왕자가 있으니 바로 올 줄 알았는데 에랑스 왕국에서 모으는 원정대는 아직도 출발 준비만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게 맞는 태도였고 선봉대로 나선 4왕자가 이상한 놈이었지만….
케인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
“노예, 쉐도우 엘프들이 왔다.”
그러는 사이 밖의 아키서스 포병대 거인 한 명이 찾아와서 케인을 불렀다.
“음?”
“뭔예? 노예?”
왕국 기사들은 일제히 반응했다. 그러자 케인은 황급히 대답했다.
“신의 노예! 내가 그만큼 신앙심에 충실하다는 뜻이지! 우리는 모두 신의 노예 아니겠나!”
“그… 그 정도까진 생각 안 해봤지만… 확실히 그렇게 말하니 그런 거 같기도….”
“케인 경은 정말 신앙심까지 대단하시군요.”
[4왕자의 호위기사들 내의 평판이…]
[……]
점점 더 친해지는 그들!
‘아, 근데 김태현 없는데 내가 쉐도우 엘프들을 통제할 수 있을까?’
케인은 매우 걱정이 됐다.
쉐도우 엘프들은 마계에서 사는 종족답게 매우 전투적인 종족들.
태현이 없다면 말을 안 들어줄지도 몰랐다.
* * *
[쉐도우 엘프 부족 내 평판이 최고치입니다! 더 이상 오를 수 없습니다!]
[쉐도우 엘프 부족들이 당신을 부족의 일원으로 여깁니다!]
-악마 공작의 성을 날려 버리다니. 최고다!
-정말 대단하군…! 다시 봤다!
연신 감탄하는 쉐도우 엘프 전사들!